인권위, “플리바게닝 헌법 위배”

국무위원들도 인권침해 염려해 도입 제동

국가인권위원회(위원장 현병철)는 플리바게닝, 참고인 강제구인제도, 허위진술죄 도입 등을 포함하고 있는 형사소송법 개정안과 형법 개정안이 국민의 기본권을 침해할 우려가 있어 법무부장관에 반대 의사를 표명했다고 4일 밝혔다.

인권위는 일명 ‘플리바게닝’이라 불리는 ‘사법협조자 소추면제’ 및 ‘형벌감면제도’가 자백의 신뢰성 문제를 불러올 것이라고 우려했다. ‘사법협조자 소추면제’ 및 ‘형벌감면제도’는 수사과정에서 공범의 일부에게 소추면제의 혜택을 주고 그로부터 전체 범죄의 규명 또는 저지, 다른 공범의 소재 확인에 필요한 증거를 제공받을 수 있도록 하는 제도이다. 인권위는 이와 관련해 “임의성에 의심이 있는 자백을 유죄의 증거로 사용할 수 없도록 한 헌법 규정의 취지에 부합하지 않고, 공범은 흔히 형사절차에서 책임을 타인에게 전가하는 경향이 있는데다 소추면제라는 유혹에 얼마든지 과장하거나 가공된 진술을 할 가능성이 높다”며 “자백의 신뢰성이 문제가 된다”고 지적했다.

인권위는 필요한 경우 검사가 법원의 구인영장을 발부받아 참고인을 강제로 구인할 수 있게 한 ‘참고인 강제구인제도’에 대해서도 도입이 바람직하지 않다고 판단했다. 인권위는 “혐의사실이 뚜렷하지 않아 체포영장 내지 구속영장을 발부받기 어려운 피의자를 참고인으로 구인해 실제로는 피의자 조사를 진행하는 방식으로 남용될 우려가 있고, 이 제도를 통해 구인된 참고인에 대해서는 피의자와 달리 진술거부권, 변호인의 조력권, 체포·구속적부심사청구권 등이 규정되어 있지 않아 체포 또는 구속된 자에게 이러한 권리를 보장하도록 한 헌법, 자유권규약 등에 위배될 소지가 있다”고 설명했다.

또 형사소송법 개정안이 ‘허위진술죄’를 신설해 참고인에게 진실만을 말할 의무를 부과하고 이를 어길 시 처벌할 수 있도록 한 데 대해서도 인권위는 “수사상 편의를 위해 수사기관의 실체적 진실발견 의무를 참고인에게 전가하는 것으로 헌법 등에서 보장하고 있는 ‘형사상 자신에게 불리한 진술을 강요당하지 않을 권리’를 침해할 수 있다”고 판단했다. 인권위는 “자신의 진술이 향후 어떠한 범죄의 증거가 될 것인지 참고인에게도 명확하지 않을 수 있어 헌법에 근거한 죄형법정주의 원칙(법률 명확성의 원칙)에 반할 우려가 있고 특히, 이 제도가 ‘중요참고인 출석의무제’와 결부되는 경우에는 문제의 소지가 더욱 커질 수 있다”며 도입이 바람직하지 않다고 말했다.

인권위는 이번 형사소송법 개정안이 영상녹화물의 증거능력에 대해 “영상녹화물은 영상녹화 전 피의자에게 가해진 회유·협박·강압 등 그 진술의 임의성을 침해할 수 있는 상황은 담기지 않는 한계가 있다”며 “이러한 결과는 피고인의 공정한 재판을 받을 권리를 침해할 우려가 있어 영상녹화물이 독립된 증거능력을 갖거나 탄핵증거로 사용되는 것은 바람직하지 않다”고 판단했다.

한편 정부는 3일 김황식 국무총리 주재로 열린 국무회의에서 이 같은 내용이 담긴 형법개정안과 형사소송법 개정안을 의결할 예정이었으나, 일부 국무위원들이 제도 도입에 수사 편의적 측면이 있으며 인권 침해 논란을 일으킬 소지가 있다며 반대해 유보됐다.

이날 국무회의에서 몇몇 국무의원들이 이들 법안에 대해 “수사편의적 측면과 함께 인권침해 논란을 일으킬 소지가 있으며 국회에서도 논란이 예상된다”는 의견을 낸 것으로 전해진다. 이에 김 총리는 “법무부가 좋은 취지로 추진했으나 아직 사회적 합의가 이뤄지지 않았다. 숙려기간을 갖고 검토해 통과시켜도 늦지 않을 것 같다”며 개정안 심의를 유보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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