근로복지공단, 끝내 ‘삼성 백혈병’ 항소 의지 밝혀

공단 측, “산재보험제도가 근로자만을 위한 제도냐” 발언도

지난달 23일, 법원에서 산업재해 인정을 받은 삼성 백혈병 노동자들에 대해 근로복지공단이 항소 의지를 밝혔다. 지난 7일, 신영철 근로복지공단 이사장이 유족과의 면담에서 ‘전향적으로 검토하겠다’고 밝힌 지 5일만이다.

근로복지공단은 7일 유족 및 피해자들과의 면담 자리에서 “의학적, 법률적인 전문가 그룹의 의견을 들어 검찰과 협의해 열린 마음으로 항소 여부를 결정하겠다”고 밝혔다. 또한 전문가와의 협의 과정에서 피해자 측이 추천하는 전문가를 포함시킬 것 등을 약속했다.

하지만 근로복지공단은 면담 하루 뒤인 8일, 반올림 측에 연락해 ‘상황이 변한 것이 있고, 반올림과 피해자 및 유족에게 설명할 것이 있다’며 긴급 면담을 요청했다. 이에 따라 피해자 및 유족들은 12일, 근로복지공단 측과 면담을 진행했으며 공단은 항소 의지를 밝혔다.


공단, “검찰 지휘 받아야 한다”...항소의지 밝혀

면담 자리에서 허모 이사는 “시스템적으로 행정소송에 있어서는 검찰 지휘를 받게 돼 있고, 우리도 8일 3시경 통보를 받아 사실상 검사 지휘가 떨어진 상태라 그대로 항소를 할 수밖에 없다”며 “항소를 안 하고 싶어도 안할 방법이 없다”고 설명했다.

결국 7일, 유족 및 피해자와의 면담 자리에서 신 이사장이 약속한 전문가와의 사전협의절차의 기회조차 없어진 채 면담 하루 만에 항소가 결정된 꼴이다. 이에 대해 고 황민웅 씨의 부인 정애정 씨는 “행정소송에서는 삼성과 손을 잡더니, 우리가 죽을 만큼 싸워 겨우 승소해 근로복지공단에 항소 포기를 요구하니 검찰 지휘가 떨어졌다고 핑계를 대나”며 “노동자를 위해 존재해야하는 근로복지공단이 오히려 노동자를 죽이고 있다”고 성토했다.

특히 유족들은 공단 측이 주장하고 있는 검찰 지휘에 따른 행정소송 과정 또한 납득할 수 없는 부분이 많다고 주장하고 있다.

국가를 당사자로 하는 소송에 관한 법률에 따르면, 공단 이사장은 소송이 제기된 경우 소송수행직원을 지정하거나 자문변호사를 위촉해 소송을 수행해야 한다. 소송대리인으로 선임된 자문변호사는 소송수행직원에 관한 사항의 준용을 받는다.

여기서 소관 행정청의 소송수행자는 관할 검찰청의 장의 지휘를 받게 된다. 또한 소송수행직원이 항소를 포기하려면 관할 검찰청의 장에게 지휘를 요청하고 그 지휘결과에 따라야 한다.

결국 검찰은 소송대리인을 지휘하는 것으로, 이 같은 규정은 검찰이 소송대리인인 소송수행직원이 행하는 소송행위에 잘못이나 태만이 없는지를 감독하기 위한 취지다. 즉 사건 당사자는 근로복지공단이며, 관할 검찰청의 장은 단지 소송대리인의 소송행위를 지휘할 권한만을 가진다는 것이다.

때문에 반올림은 “근로복지공단이 항소를 원하지 않는 상황에서 검찰이 독단적으로 항소를 제기할 권한이 있다고 볼 법적인 근거는 없다”며 “근로복지공단이 자신들에게 항소권한이 없다고 주장하는 것은 이러한 법체계를 몰랐거나 알고도 의도적으로 무시한 결과”라고 비판했다.

뿐만 아니라, 근로복지공단 소송사무처리규정 5조에 따르면 사회적 관심 대상이거나 공단 운영에 중대한 영향을 미칠 것이라 판단되는 사건 소송의 경우, 이사장의 사전지휘를 받도록 규정돼 있다.

이사장 역시 7일 유족과의 면담 자리에서 “개별 건은 해당관서 송무부에서 관할하나, 이번 건은 사회적 파장력이 있는 건이기 때문에 근로복지공단본부 차원에서 고민하고 있다”고 밝힌바 있다. 하지만 공단은 결국 ‘검찰의 지휘를 받아야 한다’고 밝힘으로써 유족들이 요구한 공단 차원의 항소 포기를 부정하고 나선 셈이다.

한편 이번 면담 자리에서 근로복지공단 허모 이사는 “산재보험제도가 근로자만을 위한 제도냐”고 발언해 유족들의 공분을 사기도 했다. 때문에 유족들은 “산재보험제도는 노동자를 위해 존재하는 제도인데, 공단은 이것조차 이해하지 못하고 있다”며 “저런 발상을 가진 사람들이 근로복지공단을 운영하고 있어 노동자들이 죽어나가는 것”이라며 면담자리를 빠져나왔다.

반올림을 비롯한 피해자와 유족들은 면담이 끝난 직후인 2시 경부터 근로복지공단 농성에 돌입했다. 또한 이들은 13일 오후 1시, 근로복지공단 앞에서 기자회견을 열고 근로복지공단 항소를 규탄하고, 지난달 23일 패소한 3명의 피해자에 대한 항소를 제기할 방침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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