쌍용차 77일 파업 구속된 금속노조 간부 2년만에 출소

김혁, "쌍용차 파업 패배하거나 실패하지 않았다"

2009년 쌍용자동차 77일 옥쇄파업으로 구속되었던 전국금속노조 김혁 미조직 비정규국장이 8월 6일 0시, 2년 만에 안양교도소에서 출소했다. 금속노조 간부와 쌍용자동차, 대우자동차 조합원들을 비롯한 100여 명은 안양교도소 앞에서 김혁 국장을 맞았다.

김정우 쌍용차지부장은 “2년 전 오늘 옥상에서 밀려 마지막 전선에서 함께 했던 김혁 동지를 다시 보니 감회가 새롭다”고 밝혔고, 김지태 한국GM 정리해고원상회복위 대표는 “대우차 정리해고, 쌍용차 정리해고에 함께 했던 김혁 동지의 출소를 환영한다.”며 힘찬 구호를 외쳤다.

김혁 국장은 “너무 많은 동지들이 와줘서 고맙다”며 “함께 싸웠는데 한상균 쌍용차 전지부장을 감옥에 남겨두고 출소하게 된 게 너무 미안하다”고 심경을 밝혔다. 무엇보다 쌍용차 노동자들에게 “쌍용차의 투쟁은 실패하거나 패배한 투쟁이 아니다. 결코 물러서지 않겠다는 쌍용차 노동자들의 투쟁 정신은 지금도 많은 투쟁사업장 노동자들에게 힘을 주고 있다”며 “함께 더 큰 투쟁을 하자.”고 힘주어 말했다. (기사제휴=미디어어충청)

[출처: 금속노조 쌍용차지부]

[출처: 금속노조 쌍용차지부]

[출처: 금속노조 쌍용차지부]


김혁 국장 미니 인터뷰

수감 생활은 어땠는지?
쌍용차 파업 당시 최루액을 뒤집어썼던 것 때문에 피부병으로 고생을 좀 한 것 빼고는, 많은 동지들의 편지와 면회, 배려와 관심으로 잘 견딜 수 있었다. 새벽 5시 반에 일어나 영어공부도 하고, 신문도 읽고, 사회과학 서적 읽는데 8-10시간을 보냈고, 운동과 일기와 편지 쓰는 것이 하루 일과였다.

가장 기억에 남는 면회자와 편지는
너무 많은 사람들이 면회를 와줘서 감사하다. 20년 만에 소식을 듣고 교도소로 찾아왔던 친구와 지금은 고인이 됐지만 암수술 직후 면회 왔던 친구가 가장 기억에 남는다. 편지도 많이 주고받았지만 쌍용차 노동자들의 편지가 가장 기억에 남는다. 직접 손으로 대나무를 그려준 동지도 있었고, 하트를 무수히 많이 그려 보낸 동지도 있었다.

쌍용차 투쟁에 대한 감회와 노동자들에게 한 마디 해 달라
2009년 8월 6일 공장안에서 쌍용차 노동자들에게 ‘이 자리와 정신을 잊지 말자’고 외치며 보수대에 끌려갔었다. 지금까지 한 시도 잊지 않았다. 감옥에 있을 때 쌍용차 투쟁에 대해 옥쇄파업이 잘못된 것이니, 평택 안에만 갇혀 있어서 패배했느니 하는 평가서들을 볼 때마다 너무 마음이 아팠다. 쌍용차의 투쟁은 실패하거나 패배한 투쟁이 아니다. 결코 물러서지 않겠다는 쌍용차 노동자들의 투쟁 정신은 지금도 많은 투쟁사업장 노동자들에게 오히려 힘을 주고 있다고 생각한다. 쌍용차 노동자들이 힘들더라도 같이 손잡고 끝까지 같이 싸웠으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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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ajffltj

    수고많으셨습니다. 이런 분들이 계셔서 노동운동이 존재할 수 있는 것 같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