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지 유니온 주최로 열린 이 행사에는 20여 명 정도가 참여했다. 이번에 상영된 다큐멘터리는 오소영 감독의 “소금꽃 나무들 희망의 버스를 타다”(45분)이다. 오소영 감독은 지금까지 한국의 이주노동자 문제와 비정규직 노동자 투쟁을 다룬 작품을 발표했지만, 이번 작품에서는 한진중공업 정리해고 반대 고공농성을 계속 하고 있는 김진숙 씨와 그녀를 지원하는 희망 버스 운동을 설명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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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상영회를 하는 모습 [출처: 일본 레이버넷] |
이 영상은 2011년 1월 6일부터 농성을 계속하고 있는 한진중공업 85호 크레인 조종석 내부를 비추고 내부 및 창문에서 보이는 경치, 그리고 농성하고 있는 이유를 김진숙 자신이 직접 설명하는 장면에서 시작한다.
“내가 여기에 올라 온 이유는 단 하나입니다. 정리 해고 철회!”
한국 최대 조선회사 중 하나인 한진중공업은 더 값싼 노동력을 찾아 필리핀 수빅에 거대한 조선소를 건설했다. 이에 따라 한국내의 조선소를 폐쇄하고 대형 합리화를 계속해 왔다. 노조의 정리해고 반대투쟁에 의해서, 회사가 재작년 구조조정을 중단함으로써 노사가 합의했다. 그러나 한진중공업은 약속을 지키지 않고 대량의 노동자를 해고시켰다. 이에 항의하여 김진숙 씨는 지상 35미터 높이의 크레인에서 농성을 시작했다.
농성 157일째에 ‘희망 버스’를 타고 김진숙을 응원하러 가자는 호소가 시작된다. 찻집에서의 협의 중 떠오른 착상에서 시작된 ‘희망 버스’는 당초 한, 두 대 정도로 예상했던 것이 결국 20대까지 부풀어 오르게 되었다. 영상에서는 출발 당시 협의하는 모습부터 시작해 차안에서 마이크로 자기 소개하는 한 사람 한 사람이 나타난다. 모두가 노동운동 등을 경험하지 않은 사람들이다. 초등학생도 마이크를 잡는다. 이런 점에서 이 운동의 특징이 잘 나타나고 있다. 언론이 일체 외면하는 가운데, 트위터, 페이스북, 서적 등을 통해서 김진숙을 알게 된 시민들이 자신의 돈으로 희망 버스를 타는 운동이 시작되었다.
1차 희망 버스는 경찰과 용역경비의 방해에도 불구하고 1000여명의 참가자가 한진중공업 영도 조선소 내에 들어가 하룻밤을 새면서 85호 크레인에서 김진숙과 해고된 조합원들과 어울려 노래하고 춤을 추고 연대를 나눴다.
그러나 14일 후, 법원에서 가처분 명령이 나오고 해고 노동자들은 공장에서 배제되고 크레인 전원을 끊어 고립된 상태가 된다.
7월 9일 2차 희망 버스는 대한민국 전역에서 195대, 1만 명이 모였다. 경찰은 도로를 차단하고 최루액을 뿌리고 50명을 연행했다. 밤새 대치했으나 결국 공장까지 갈 수 없었다. 참가자들은 “다음은 더 많은 사람들이 모이자”라며 3차 희망 버스를 할 것을 결의한다.
왜 이렇게 사람이 모이는지 영상은 노동자, 배우, 시인, 학생, 자영업자 등 참가자 한사람 한사람 인터뷰에서 밝히고 있다.
그리고 왜 김진숙은 85호 크레인 오르지 않을 수 없었는지도... 2003년의 구조조정 때 김주익, 곽재규 두 명의 조합원을 잃은 김진숙. - 노동자는 왜 지는가? 그것은 노동자의 연대가 약하기 때문이 아닌가 - 그 통곡은 여러 번 들어도 영혼을 흔들고 있다.
상영 후 20명 정도의 참가자 소감을 말한다. “김진숙의 말이 가슴에 남았다.” “나도 꼭 희망 버스에 참가하고 싶다”는 등의 발언이 이어졌다. 지금까지 3차 희망의 버스는 부산에서 행해졌지만, 정부에 대한 압력을 가하기 위해 4차 희망 버스는 서울에서 이루어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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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처: 일본 레이버넷] |
8월 27일 희망 버스 행동에 참여하는 사람들은 부산에서 해고자 가족을 만나고 김진숙과 교류한 후 버스를 타고 서울로 향하는 여정이 소개되었다. 한국에 가져 갈 요세가키(여럿이 한 장의 종이에 글을 쓰거나 그림을 그린 것)를 참가자들이 직접 쓰는 것으로 이 행사를 마쳤다. (출처=일본 레이버넷)





![[영상] 현대기아차비정규직 농성..](http://www.newscham.net/data/coolmedia/0/KakaoTalk_20180411_120413041_copy.jpg)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