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구 전하동에 있는 사무실을 찾아가니 넓은 사무실에 하창민 지회장 혼자 앉아 누군가와 전화통화를 하고 있었다. 박일수 열사의 사진이 걸려 있고 지역 단체들의 종이신문이 모아져 있고 회의실도 보인다. 마치 80년대 말에서 90년대 초의 사무실을 보는 듯한 느낌이다.
하창민 지회장은 올 2월 28일 현대중공업 하청업체에서 일하다 해고됐다. 부당노동행위 구제신청을 부산지방노동위원회에 냈지만 기각됐고 지금은 중앙노동위원회에 재심신청을 준비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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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금속노조 현대중공업사내하청지회 하창민 신임 지회장 |
"아빠로서 떳떳하고 싶어 하청업체 관리자 그만둬"
블랙리스트 올라 물량팀서 석달만에 해고
- 어떻게 처음 노동조합 활동을 할 생각을 했는지요?
사실 제가 예전에 현대중공업 사내하청 현장관리자였습니다. 직장이라는 직책을 맡았었는데 한 10년 그렇게 일했어요. 하루종일 일 시키고 업체 사장의 대리인 역할을 하는 게 제 일이었습니다. 현장 사망사고도 많이 접했죠. 그러나 다음날도 저는 착취의 일부 역할을 하고 있다는 생각을 하게 됐습니다. 아빠로서 떳떳하고 싶고 자신으로서도 의미 있게 살아가는 것이 무엇인가 생각해보게 됐어요. 후회없이 살고 싶다. 그래서 무언가 해보려고 직장 그만두고 물량팀 들어갔다가 3개월 만에 짤리고 다른 곳 취업하려고 알아보던 중 아무래도 취업이 안되는 겁니다. 제가 블랙리스트에 올라가 있다는 것을 알았죠.
- 물량팀은 어떤 일을 하는지요?
물량팀은 실체가 잘 보이지 않습니다. 업체가 자신이 고용한 직원 만으로 일을 다 할 수 없으니 한 사람에게 일감을 떼어줍니다. 그러면 그 사람이 자기 아는 사람들을 몇 사람 불러서 같이 일을 합니다. 서류도 필요없고 일 없으면 그냥 쉬어야 해요.
- 그럼 보통 공장마다 일감을 찾아 돌아다니며 일하는 플랜트 노동자들과 비슷한 건가요?
비슷해 보이지만 그건 아닙니다. 현대중공업의 경우 하청업체들이 보통 2~3팀의 물량팀을 씁니다. 제가 직장으로 있을 때도 글라인더팀과 용접팀 2개의 물량팀이 있었죠. 업체는 원청에서 배당된 TO를 적게 채용하고 물량팀 사람 중에 누군가를 출입증 나올 수 있는 사람으로 등록해서 실제 임금은 업체 사람 수준으로 원청에서 지원받고 물량팀 사람에게는 적은 금액의 임금을 줍니다. 또 하나의 편법과 착취가 일어나는 곳이죠. 물량팀이 다치면 산재도 안돼요.
- 그럼 물량팀은 취업하면서 근로계약서를 작성하지 않나요?
근로계약서 작성하지 않고 아예 면접서류도 없습니다. 법적인 보호를 전혀 받을 수 없는 사람들이죠. 그러나 실제로 물량팀을 쓰지 않으면 공기를 맞추기 힘듭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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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차별과 착취를 끊어내고 하청노동자도 인간답게 살기를 염원했던 박일수 열사와 류기혁 열사의 사진이 지회 업무를 보는 책상 앞에 걸려 있다. |
- 그럼 하 지회장도 잠시 물량팀에 있었는데 해고 통보를 받았나요?
그게 문제입니다. 입사 형식의 서류가 없으니 해고 통보도 당연히 안 합니다. 일 없으면 나오지 말라는 건 당연한 것처럼 돼 있습니다. 그런데 표면적으로 보면 팀장이 사용주 같지만 업체가 실질적 사용주라고 볼 수 있죠. 업체의 실질적 사용주는 또한 원청이 되겠고요. 2009년 무렵부터 물량팀이 급속하게 늘어났다고 볼 수 있습니다.
- 지노위에서 기각 판정을 받았는데 기각 사유가 뭔가요?
'증거 없다', 그게 다예요. 실체는 있는데 증거는 없다니 말이 안됩니다. 중노위 준비중인데 실질적 사용자를 증명해야 해요. 2009년에 대법 판결에서 불법파견보다 더 포괄적 의미로 '현대중공업의 사내하청 사용자는 현대중공업'이라는 판결이 났습니다.
"현장에 실제 몸담고 있는 사람들을 조직하자"
- 사내하청지회에서는 언제부터 함께 일했는지요?
2009년이었습니다. 하청노동자들은 자기 삶에 대한 분노가 있고 헌법에 보장된 기본권조차 박탈당하고 살죠. 그런 사람들에게 호소했습니다. 그래서 하나 둘 하청노조라는 공간을 통해 무언가 일을 하고 싶었습니다.
- 예전부터 울산에서는 사내하청지회에서 활동하던 사람들이 있었는데 그분들과는 어떻게 연결이 되는지요?
오세일 전 지회장이나 이승열 사무국장, 조성웅 동지 등 오랫동안 싸워온 사람들이 있죠. 그분들의 역사와 사상을 존중합니다. 앞으로도 함께 일을 해나갈 분들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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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현장의 분노를 모아 정파와 계파를 초월해 현장을 조직하고 싶다고 말하는 하창민 지회장 |
- 그럼 하 지회장과 그분들(전 임원)과의 차별성을 말한다면 뭐라고 말할 수 있을까요?
글쎄요. 정치적인 입장이 다르긴 하겠지만 그건 전제하고 싶지 않습니다. 다만 현장의 분노와 활동가들의 활동간에 약간의 공백이 있는 걸 느꼈습니다. 그래서 현장에 실제 몸 담고 있는 사람들을 조직하자는 것이 제 생각입니다. 그래서 임원도 현장에서 일하는 사람으로 하고 그 임원들은 현장 안에서 각자가 노동조합의 역할을 해나가는 겁니다.
- 각자가 노동조합의 역할을 해 나간다?
그게 아직은 그렇습니다. 사내하청노조에 가입하면 불이익을 당하기 쉽고 블랙리스트에 올라가면 울산에서 일하기 힘들죠. 실제로 사내하청노조에 몸 담고 있으면서 현장에서 일하기란 쉽지 않습니다. 아니, 엄청 힘든 일이죠. 그러나 저는 그걸 해내고 싶습니다. 처음에는 보이지 않겠지만 어느 정점에 달하면 엄청남 힘으로 조직돼 나올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왜냐하면 실제 하청노동자들에겐 기본적으로 품고 있는 분노가 있으니까요.
- 지금은 어떤 일을 하고 있는지요?
그동안 유인물 나눠주는 것과 출근투쟁 외에 할 수 있는 일이 매우 제한적이었습니다. 그러나 용기를 내주는 현장 사람들이 있고 그사람들이 저같이 될까봐 걱정도 많이 했는데 용기를 내준 사람들에게 고맙죠. 그들과 함께 현장조직을 하는 것이 가장 큰 목표이자 해야 할 일입니다.
사내하청지회는 정치조직이 아니라 노동조합조직...계파와 정파 초월해야
- 지역에서 사내하청노조에 대해 사람들이 갖고 있는 관심과 사내하청노조가 갖고 있는 역사성이 있을텐데 지역 사람들과의 관계는 어떻게 하고 있는지요?
저는 정치적인 입장으로 사내하청노조를 어떤 틀에 가두고 싶지 않습니다. 그동안 진보신당에서 동구지역 사내하청 관련 주요한 일을 해왔고 지금도 진행중인데 그 일도 함께 해나가고, 동구에 새로 생길 계획인 비정규직센터가 생기게 되면 그 공간도 적극 활용하고 싶습니다. 활용이라는 말이 어찌 들릴지는 모르지만, 사내하청에 관심 갖는 많은 분들과 함께하겠다는 뜻이고 노동조합에 선뜻 오기 힘든 조합원들은 비정규직센터가 동구청에서 운영된다면 거기는 조금 더 쉽게 가지지 않을까도 생각해 봅니다. 조합원들이 다양한 소통의 공간을 갖는 건 좋은 일이라 생각합니다.
- 소통의 공간이라는 것이 자칫 잘못하면 개인의 정치적 성향에 따라 다르게 작용되지는 않을까요?
제가 가장 우려한는 부분이 그 부분입니다. 사내하청노조는 정치조직이 아니고 노동조합조직입니다. 조합원들은 각자 정치적 성향이 다를 수 있고 아직 수도 얼마되지 않는데 이런 말 하기는 뭐하지만 노조나 조합원들을 대상화하는 정치는 경계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그게 민주노동당이건 진보신당이건 더 좌파적 정치조직이건 마찬가지입니다. 계파와 정파를 초월하고 싶고 그들과의 관계에 있어서 주체는 우리가 돼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 지금까지 활동하면서 힘들었던 것은?
노조가 있어도 사람들이 찾아오지 않는 다는 게 참 힘들죠. 분노가 극에 달한 산재환자나 이런 사람들만이 가끔 사무실을 찾아오곤 했습니다. 제가 노조 일을 많이 하지는 않았지만 공간이 있어도 사람들이 오지 않는 건 무언가 다른 방법을 찾아봐야 한다는 생각을 했습니다.
현대중공업 사내하청 임금이 10년 전이나 지금이나 비슷한 수준입니다. 물가는 오르고 임금은 제자리 걸음이니 가계는 적자가 되기 쉽죠. 300만 원 이상 받는 사람도 있는데 정말 죽어라고 잔업특근해서 받는 돈이죠. 쉬지 못하고 대접받지 못하고 일하면서 스스로 자신도 모르게 자본의 노예가 되는 것입니다. 평생을 소모품으로 살면 그게 참 슬프지 않습니까... 노조가 있으면 좋겠다고 하면서도 선뜻 나서지 못하는 게 아직은 현실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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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금속노조 현중사내하청지회 사무실 내부 모습. 2003년부터 모아 온 소식지가 잘 모아져 있고 책꽂이에는 그동안의 자료들이 보관돼 있다. 거울에 비친 모습은 박일수 열사의 모습을 담은 걸개그림인데 맞은 편 벽에 크게 걸려져 있다. |
2003년 만들어진 사내하청지회는 자체 사무실을 갖고 있다가 재정적 어려움 때문에 2008년 울산해고자협의회의 도움으로 지금의 사무실로 옮겼다. 지금의 사무실 출입구에는 울해협과 사내하청지회 현판이 같이 붙어 있는데 실질적으로 울해협은 이 공간을 사용하지 않고 사내하청지회가 쓰고 있다. 제반 운영비는 지역에서 원.하청 노동자들의 후원금과 자체 경비로 운영하고 있다. 하창민 지회장은 작은 공간이라도 노조사무실을 따로 마련하고 싶다고 했다. 활동비도 지급되지 않는 상황에서 그런 꿈을 꾸며 11월 18일 사업비 마련을 위한 재정사업을 일산해수욕장 주변에서 한다고 한다.
하 지회장이 일일주점 티켓이 나오면 한 장 주겠다고 웃으며 말했는데 그 웃음이 내내 아프게 남는다. 떠나간 해고자들도 그랬고 지역에서 누구보다 힘들게 싸우는 해고노동자들. 현장이 생계를 위한 노동자의 터이든 활동을 위한 공간이었든 해고노동자들의 삶에 대한 대책이 너무 부족하다는 생각이 들어서다.
사무실을 나서니 현대중공업 공장 안에 거대한 크레인이 보인다. 울산 노동자 투쟁의 상징이었던 현대중공업 골리앗투쟁이 떠올랐다. 정규직과 비정규직, 원청과 하청으로 어느샌가 단일 노동자계급이 아닌 다른 계급처럼 돼버린 현실이 안타깝다는 생각을 하며 현대중공업사내하청지회가 현장의 힘으로 잘 성장하길 기대한다. (기사제휴=울산노동뉴스)







![[영상] 현대기아차비정규직 농성..](http://www.newscham.net/data/coolmedia/0/KakaoTalk_20180411_120413041_copy.jpg)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