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95년 고베 대지진 때도 그랬고, 재해 법률상 피난민들은 입거한 날부터 2년까지만 가설주택에서 살 수 있다. 다카다 씨는 “둘째 딸이 이곳으로 오라고 해 운이 좋아 안정적으로 살고 있지만, 다른 사람들은 가설주택에 살고 있다”며 “그들은 마음속에 답답함과 불안감을 항상 가지고 있다”고 전했다.
돌아갈 수 없는 땅, 지진 해일 피해와 원전 사고로 피난 지역인 후쿠시마 원전 20km 경계안 사람들은 일본 전역에 뿔뿔이 흩어져있다. 정부는 사고 이전 20km 내 거주하고 있던 인구 약 7만8천2백명 중, 사고 이후 작년 4월 22일 10개 지역에서 약 8만5천명이 대피하고 있고, 그 중 어린이가 약 6천명이라고 발표했다.
도쿄 가와사키시 다카츠구에 위치한 시영아파트(총 5개 동)에 살고 있는 피난민은 8가구다. 같은 아파트에 살고 있어도 타 지역에서 피난 온 사람들이라 서로 잘 모른다. 그는 나미에마치에 살던 이웃들은 서로 만나지 못하고 전화로 안부만 확인한다고 했다.
3월 11일을 회상하던 다카다 씨는 쉬지 않고 전쟁 같던 시간을 풀어냈다. 그는 딸 부부와 손자, 손녀와 함께 도쿄로 향했다.
![]() |
▲ [사진총괄 : 도영, 정재은] |
“일본 정부가 나서서 탈핵해야... 원전만은 절대 안 돼”
초등학교 손자, 손녀 원전 얘기 하면 말도 못 꺼내게 해
손녀딸의 갑상선 피폭이 걱정이다
3.11 원전 폭발 뒤 방사능 공포와 핵발전을 둘러싼 논쟁이 불붙었다. 후쿠시마 제1원자력발전소로부터 불과 7km 떨어져 산 주민으로서 어떤가
방사능 문제에 대해서는 정부가 나서서 탈핵해야 해요. 경제도 중요하지만 핵발전만은 안 된요. 그런 운동이 필요합니다. 원전의 문제점은 모두 다 알게 됐죠. 원전만은 절대 안 돼요.
사고 전 나미에마치 살 때도 방사능에 대한 두려움을 느꼈나
없었어요. 원전 가까이에 사는 사람에게는 전력회사에서 지원금이 많이 나오죠. 일자리도 생기고. 그때는 두렵지는 않았죠.
이번 사고를 겪으면 다카다 씨뿐만 아니라 손녀, 손자도 정신적 피해가 상당할 것 같아요
내가 2차 세계대전 때 초등학교 6학년이었는데, 당시 전쟁 때 비행기 폭탄 투하 기억이 지금도 생생히 남아있어요. 지진 쓰나미는 초등학교 4학년, 2학년 손자, 손녀에게 무서운 기억으로 계속 남을 거예요. 손자, 손녀는 원전 얘기하면 “그런 얘기 하지 마라”, “듣고 싶지 않다”며 얘기도 못 꺼내게 해요. 그 정도로 심리적 충격이 큰 듯해요.
‘말도 못 꺼내게 한다’ 손녀의 행동에서 당시 충격이 전해지는 것 같아요. 건강도 걱정일 텐데
신문에 기고한 적이 있는데, 나는 그 글에서 나미에마치서 피난 왔는데, 손녀딸의 갑상선 피폭이 걱정이라고 했죠. 이이다떼무라, 가와마타마치로 일주일동안 피난했고, 여기는 핫스팟이죠. 멀리 피난가지 못했던 것을 후회한다고 했죠.
최근 체르노빌이 원전 사고에 관한 기사로 아이들의 갑상선암, 심장 장애, 유전자 변위 등에 관한 글을 읽었어요. 실제가 알고 싶어서 ‘체르노빌의 심장’이라는 영화를 봤죠. 여기서 작업원이 1만3천명이 사망했고, 콘크리트로 덮었다. 사고 이후 30년 지나 콘크리트는 부식되어서 비가 안으로 들어가고, 물이 새고. 그 물이 땅에 스며들고, 엄청난 방사능이 계속 유출되고 있다고 해요. 현장에서 200킬로미터 멀리 떨어져 있는 고등학교에서도 높은 수치의 세슘이 측정되고, 많은 병이 생기고 있다고 해요. 여러 가지 문제점을 지적한 다큐멘터리 영화였는데, 그거 보고 우리 손녀딸에게 무슨 문제가 생길지 너무 걱정이에요.
다카다 씨 건강은요?
스트레스 때문인지 후쿠시마에서 살 때는 병원에 간 적이 없는데, 여기 와서 두 번이나 병원에 갔죠. 몸이 조금 안 좋아요. 사위가 일자리는 찾고 있는데 좋은 일자리가 없죠. 요즘에 그렇게 사니까 아무래도 몸이 약해진 것 같아요.
![]() |
▲ 다카다 씨 |
후쿠시마 사람들, 돈 없고, 일자리 없고, 수입 없고...
“지금 아무 전망 없이 여기 있는 거죠”
원전으로부터 20km? 의미 없는 구별
피난 지원금은 좀 받았나요?
여러 단체와 정부, 지차체 등에서 한 사람당 20만엔(한화 274만원 가량)씩 5명이니까 120만엔 받았어요. 후쿠시마 동네 사람들은 생계가 너무 어려운 사람이 있어요. 왜냐면 지진 때문에 많은 빚을 가지고 있는 사람들이 많죠. 주택 대출 빚도 있는데, 그런 빚도 갚아야 하니까요.
여기 집에 와서 보이듯이, 냉장고 2대, TV 2대, 냉온풍기 2대, 전자레인지도 2대. 적십자 등 지원 물품으로 받았어요. 왜 이렇게 많이 주냐고, 불필요하다며 거절하기도 했죠.
도쿄전력에서의 보상은요?
보상할 수 있겠지만 그거야 도쿄전력과 협상하고 결정하는 것이지. 근데 지금 가지고 있는 빚은 어쨌든 갚아야 하는 빚이죠. 그것을 갚아야 하는데, 돈도 없고, 일자리도 없고, 수입도 없는 상태로 너무 힘든 사람들이 많아요.
지진 보험도 있는데, 후쿠시마 동네 사람들은 지진 보험에 별로 가입하지 않아요. 지진 때문에 피해가 많지만 보험으로 보장받지 못하기 때문이죠. 혹시 보험 가입됐던 사람도 집이 어느 정도 무너졌는지에 따라 보험금이 달라요. 전파냐 반파에 따라. 그래도 50%정도 밖에 보상이 안 돼 어떻게 사냐고 하면 보험회사들은 그래도 계약은 계약이니까 어쩔 수 없다고 하죠.
피난민 생계 문제가 심각한 문제 중 하나인 것 같아요
어렵죠. 정부의 피난 비용 지원과 도쿄전력에서 받는 보상금도 있지만. 어떻게든 여기서 살고 있는데, 앞으로 돌아갈 수도 없을 것 같고... 사위가 일자리를 찾고 있는데 어려워요. 그래도 어쨌든 돌아갈 수 없는 상태에서 무슨 일자리라도 잡아야겠다고 생각해서... 지금 아무 전망 없이 여기 있는 거죠. 아마 계속 그런 생활을 할 수도 있을 것 같아요. 그래도 좋은 일자리 찾을 수 있다면 여기서 계속 생활하게 될 것 같고.
계획 피난 지역인 원전으로부터 20km 안에 거주하고 있던 사람들, 그리고 그 밖 지역 거주자. 방사능이란 게 20km 안쪽만 오염시키는 게 아니잖아요. 그 가운데 차별이 또 발생하는 것 같아요
피난 지역 경계로 20km 이내에 거주하냐, 아니냐 하는 구별은 별로 의미가 없어요. 똑같이 지진 쓰나미 피해당하고, 방사능도 똑같이 나오는데... 20km 안팎의 차별이 있는 건 안타까운 일이예요. 그래도 오늘 신문 보니까, 20km 경계 구역 밖 사람들에게도 미흡하지만 보상금이나 대책이 있는 것 같아서 너무 다행이라고 생각해요.
“돌아갈 수 있을까? 30년 뒤 나는 하늘나라로”
이제부터 어떻게 해야 하나... 아이들 생활이 우선
노인들 모여 들판서 치던 파크 골프 그리워
후쿠시마 나미에마치로 돌아갈 수 있을까요?
3월까지 정부가 방침이 결정하는데, 방사능 폐기물 중간처리시설을 만든다고 하는데. 절대 안 된다. 아마도 정부를 이미 결정했을 지도 몰라요. 20km, 10km, 0km든 방사능이 너무 많은데 누가 돌아오겠는가. 중간처리 시설은, 각 지에서 생긴 쓰레기들이 방사능 오염되었기 때문에 아무데나 버리면 안 되니까 쓰레기를 임시적으로 보관하는 곳이라고 해요. 임시적이라도 해도 30여년 정도는 보관해야 하고. 30년 뒤라면 나는 아마 하늘나라로 가지 않았을까. 그거 생기면 어떻게 돌아가나...
아무래도 못 돌아갈 것 같아요. 돌아가고 싶지만 사실상 무리라고 생각해요. 돌아가고 싶기는 하지만... 손녀는 항상 돌아가고 싶다고 하죠. 무리예요. 후쿠시마 원전에서 7km 떨어진 집은 수리하면 살 수 있겠지만, 아무래도 방사능이 심해서 못 돌아가겠죠.
![]() |
▲ 손녀딸이 후쿠시마에서 배구 선수였는데, 도쿄로 와서 학교서 배구 클럽 활동을 한다고 한다. 손녀는 지진 재해와 관련해 글짓기를 해서 상을 받았다. 다카다 씨가 살고 있는 시영아파트 거실 중앙에 상장이 붙어있다. |
그럼 도쿄 가와사키시에서 계속 살아갈 수도 있겠네요
이제부터 어떻게 할지는 아직 정하지 않았어요. 그래도 다른 장소도 없고, 갈 때도 없고. 또, 아이들이 여기서 학교 다니고, 친구도 생겼고. 간단히 다른 곳으로 이사할 수 없죠. 일거리는 그 다음이고, 아이들 생활이 우선이죠. 때문에 아버지는 후쿠시마에 남아서 아이들 먼저 피난시키는 그런 집도 많아요. 아마 우리 가족은 모두 여기 시영아파트에서 살 것 같아요.
나의 경우는 구청에서 주최하는 세미나에서 야마모토 씨를 만나고 처음 여기 와서 얘기하는 사람이 생겼어요. 야마모토와 만난 이후에 나는 빠르게 적응하고 살 수 있게 됐어요. 너무 고마운 사람이죠.
고향 생각하면 그리운 것은?
파크 골프예요. 보통 골프와 비슷한데 전용 골프장에서 치는 게 아니고, 들판 등 자연 속에서 치는 거죠. 후쿠시마 노인들이 많이 했는데, 할아버지들이 모여서 일주일 한 번, 이 주일에 한 번씩 했죠. 할아버지 지역에서 모이는데, 많이 모일 때는 200명 정도 모이고 대회도 하죠. 여기 도시에서는 할 수 없죠.
그게 너무 하고 싶어요. 진짜 골프는 힘들지만, 우리같이 나이 많은 사람한테는 파크 골프가 제일 좋아요. 게이트볼은 시골 노인들이 예전에는 많이 했었는데 지금은 싫어요. 오래된 느낌도 들고, 조금 촌스럽기도 하고. 아무튼 싫어요.
쉽지 않았을 텐데 취재진에게 집도 공개하고, 인터뷰에 응해주시고 감사해요. 마지막으로 할 말이 있다면
지진 피해 뒤 많은 사람들에게 도움을 받았죠. 내가 할 수 있는 것도 없고, 나의 경험을 이야기 하는 게 전부라고 생각해 인터뷰에 나섰어요. 한국이든 일본이든 나의 이야기가 필요하면 해야죠. (기사제휴=미디어충청)
* 통역 : 야스다(일본노동넷)
![]() |
▲ 다카다 씨와 딸 부부, 초등학교 4학년, 2학년 손자, 손녀가 함께 살고 있는 시영주택. 사진 왼쪽에 파크 골프채 가방이 보인다. 다카다 씨는 전용 골프장이 아닌 너른 들판서 동료 노인들과 쳤던 파크 골프가 그립다고 했다. |







![[영상] 현대기아차비정규직 농성..](http://www.newscham.net/data/coolmedia/0/KakaoTalk_20180411_120413041_copy.jpg)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