상황은 더 나빠지고...기약 없는 삶에 짓눌린 자주피난민

[동일본대지진 1년, 현장을 가다](16) 간자와 씨

3.11 사고 이후 후쿠시마현 고리야마시에서 도쿄로 온 33세 5살 딸아이의 엄마 간자와 사오리 씨, 도쿄 번화가 신주쿠로 복잡한 전철을 타고 잘 올 수 있을 지 걱정하며 그를 기다렸다.

일반 마스크로 얼굴을 가리고 나타난 그는 ‘자주 피난민’으로 대학생 때 도쿄에 잠시 살았던 것을 제외하고 늘 고리야마에서 살았다. 작년 3월 11일 지진, 후쿠시마 제1원자력발전소 폭발 뒤 원전에서 50km가량 떨어져 있는 고리야마에서 시부모댁 후쿠시마현 서부 아이즈와카마쓰시로 세 식구가 피난했다. 그리고 사고 한 달가량 지나 안 되겠다 싶어 도쿄로 와 피난 생활을 이어가고 있다.

3.11 사고, 14일 시부모댁으로 피난, 다시 도쿄로
자주피난민 살 집 없어...그나마 구한 아파트 계약도 이번 달 끝
상황은 더 나빠지고...도심 한복판에서 전전긍긍


아이를 보육원에 맡기고 온 그는 취재진에게 그가 정리한 간략한 자료를 내밀었다. 자료에는 3.11 사고 이후 정부의 피난구역설정 일지가 담겨있었다.

그는 3.11 사고 뒤 후쿠시마 원전 3호기가 폭발하는 것을 보고 원전으로부터 100km 가령 떨어진 시부모댁으로 14일 피난했다. 정부는 사고 바로 다음 날인 12일, 후쿠시마 원전으로부터 20km 반경을 피난구역으로 정했다.

상황은 더 나빠지고 정부는 한 달 뒤 계획적 피난구역을 30km 반경으로 확대했다. 3월 19일 야채에서 방사능이 검출됐다고 발표됐고, 20일 도쿄 등 원전으로부터 멀리 떨어진 지역에서도 우유 등에서 방사능이 검출됐다는 보도가 이어졌다. 해외 언론들은 원전 30km 밖도 방사능 오염이 심각하다고 보도했다. 그리고 4월 2일 바다 방사능 오염이 심각하다는 보도가 이어졌다.

“상황은 더 나빠졌어요. 정부는 4월 11일 계획적 피난구역을 30km로 확대했죠. 원전 사고 이후 한 달이나 지난 뒤였죠. 우리가 살았던 고리야마는 50km 떨어져 있지만 이곳도 방사능 오염이 심각해요. 방사능 수치가 높지만 피난 구역으로 지정되지 않았죠. 나는 그 때 후쿠시마를 나와야겠다고 생각했어요. 딸아이는 고리야마에 있을 때 밖으로 나가지 못하고 집 안에만 있다가 시부모님 댁에 갔을 때 처음으로 밖으로 나갈 수 있게 됐죠”

  간자와 씨. [사진총괄 : 도영, 정재은]

도쿄로 왔을 때 당장 집을 구하지 못했다. 계획구역 피난민도 마찬가지였지만, 그래도 이곳 피난민은 자주피난민보다 거주할 수 있는 곳을 빨리 마련한 편이다. 지방자치단체에서 배려해 피난소 외에도 도, 시영 주택으로 입거하기도 했다.

“우리 같은 자주피난민은 집을 못 구했어요. 호텔에 묵고, 피난소에도 두 번 갔었죠. 두 번째 간 피난소는 아카사프린스라는 고급호텔이었어요. 폐업한 호텔로, 도쿄도가 피난소로 개방했죠. 이게 한 달간의 생활이었어요.”

한 달 동안 고생한 끝에 집을 구해, 3.11 사고 두 달이 지난 5월에야 민간아파트에 입주하게 됐다. 고리야마에 있을 때, 광고 대리점에서 일했던 간자와 씨의 남편도 직업소개소를 통해 일자리를 얻게 됐다. 세 식구의 도쿄 생활이 시작되는가 싶었지만 그들은 다시 집을 구해야 하는 형편에 처했다.

“민간아파트 계약 기간이 이번 달 3월까지죠. 다시 집을 구해야 할 것 같아요. 도쿄도 등 행정기관에서 피난민들에게 피난소가 아닌 집을 구해주는 사업이 마찬가지로 이번 달에 끝나요. 요코하마나 치바 행정기관은 아직 그 사업을 이어가고 있죠. 그래서 그쪽으로 이사를 가야 할지도 몰라요.”

피난 갔다 정신적 스트레스, 생활고 못 견뎌 후쿠시마로 돌아가기도
“정부 자주피난민 인정 안 해...그럼 방사능 오염구역서 살라고?”
“사고 끝났다고? 아무것도 끝나지 않았다. 상황은 더 나빠졌다”


후쿠시마 현민은 계획적 피난구역 피난민, 자주피난민, 후쿠시마현에 남아 살고 있는 현민 3그룹으로 나뉜다. 현재 피난민은 경계구역 내외를 모두 합쳐 15만여 명에 이른다. 자주피난민은 6만2천6백여 명으로 추정되지만 그 숫자는 아무도 모른다.

그 중 간다와 씨가 파악한 자료에 의하면 야마가타에 1만3천여 명, 도쿄 7천5백여 명, 니가타 7천여 명이 살고 있다 이 중 야마가타에서 35명, 도쿄에서 45명 등이 후쿠시마로 돌아갔다.

“자주피난민이 계속 늘었는데, 올해 2월 들어 자주피난민수가 감소하고 있어요. 1년가량 타지에서 살다 돈이 없고, 정신적으로 힘드니까 방사능 오염이 심각해도 돌아가는 사람들이 조금씩 생기는 거죠.”


생계 문제는 특히 심각하다. 일자리를 구하지 못하거나 구한다 하더라도 낮은 임금의 열악한 노동환경에서 일하는 비정규직이 대부분이다. 간자와 씨도 작년 겨울부터 파트타임으로 일한다.

당연히 정부 배상금에 대한 이야기가 나온다. 도쿄전력 후쿠시마 제1원전 사고의 배상범위를 검토하는 원자력 손해배상분규심사위는 작년 12월 6일, 후쿠시마현 23개 시초성 자주피난민에 대해 8만엔(약 109만원)의 배상금을 지급하기로 했다. 또 18세 이하의 남녀와 임산부에게 40만엔(약 545만원)을 지급하기로 했다. 하지만 불만이 터져 나온다.

“자주피난민 자체를 정부는 인정하지 않아요. 자기가 알아서 혼자 피난했다, 뭐 이렇게 보는 거죠. 그럼 방사능 오염 구역에서 살아야 한다는 말인가요? 자주피난민을 인정하는 게 먼저이고, 그리고 나서 고민해야 하는 거죠. 뒤늦게 배상한다고 결정했지만 배상금액도 납득할 수 없어요. 사고를 낸 건 도쿄전력이예요. 원자력발전을 추진한 거는 정부입니다.”

자주피난민이 교섭을 통해 요구하는 건 더 있다. 그들에겐 현실적인 문제로, 민간주택 보급사업, 교통비 등과 관련한 문제이다.

“예를 들어 지자체의 민간주택 보급 사업이 재해구조법에 의해 법률상 2년인데, 우리는 5년으로 늘려달라고 요구하고 있다. 또 우리가 원래 살던 집으로 돌아갈 때, 그리고 남편이 모자를 만나러 올 때 교통비를 지원해달라는 것이다. 교통비가 너무 비싸 쉽게 만날 수가 없어요.”

도교전력의 움직임을 봐도 답답하단다.

“도쿄전력은 원전 사고를 큰 문제라고 생각하지 않는 것 같아요. 지금도 방사능이 계속 유출되고 있는데 사고가 끝났다니요? 아무것도 끝나지 않았어요. 아무것도 바뀌지 않았어요. 아이들이 갑상선 위협에 떨고 있어요. 오히려 더 나쁜 상황이 되었죠. 이제 원전이란 건 생각할 수 없어요.”

후쿠시마 모자회 소속 가족 90% 이산가족
피난 후 주말마다 보자 했지만 한 달에 한 번 봐
도쿄로 전학 와 학력 차이 느끼는 학생들
“앞이 안 보여 불안하다...후쿠시마 현민 갈라놓은 정부 때문에 답답”


그는 3.11 이후 도쿄에서 후쿠시마 모자회 활동을 하고 있다. 모임의 90% 가량이 엄마와 아이들만 사는 가족이다. 사고 이후 가족들은 뿔뿔이 흩여져 이산가족이 되어버렸다.

“엄마도 힘들지만 아빠도 못 참아요. 90%는 떨어져서 사니까. 지금까지 일본의 큰 재해는 고베 대지진, 화산 폭발 등이죠. 그때도 강제 피난시켰는데, 대규모로 가족이 떨어져 살아야 하는 이번 같은 경우는 동일본 대지진이 처음이죠. 때문에 민간 지원도, 행정부도 처음 당하는 일이라... 아빠에게 하는 지원은 없어요. 가족들은 피난 직후 신칸센, 비행기 등을 타고 매주 만나기로 했죠. 지금은 한 달에 한 번밖에 못 만나요.”

모자회에 모인 사람들은 그 외에도 많은 대화를 나누며 서로 의지한다. 지원을 받을 수 있는 정보를 나누고, 어려움을 토로한다. 일례로 후쿠시마에서 도쿄로 전한 온 학생들은 도시학교 학력차이를 느껴 고생한단다.

“도쿄로 전학 온 학생들이, 후쿠시마보다 공부가 어렵다며 고생해요. 도쿄에 사는 사람에게 그런 얘기를 하니, 무료 가정교사를 신청하라고 하더군요. 모자회의 많은 사람들은 그렇게 극복하고 있답니다. 또, 대부분 남편과 떨어져 사는데, 남편이 귀찮으니까 밥을 해 먹지 않고 자기 부모 집에 가서 밥을 먹나 봐요. 그러면 시부모님이 ‘아내는 뭐하냐?’고 묻고, 불필요한 고부갈등이 생긴데요. 그러면 남편도 마음이 흔들려 ‘아내하고 아이를 안전한 장소에 피난시켰는데, 역시 같이 생활하면 안 되나’라는 생각을 하게 된데요.”

간자와 씨는 도쿄에 와서 지난여름과 설날 고리야마에 갔었다. 그곳서 살고 있는 간자와 씨의 부모님을 만나기 위해서다. 그는 지금 억울한 게 많다. 5살 난 딸아이도 처음에는 그러지 않더니 요즘 부쩍 고리야마에 있는 친구들을 보고 싶다고 한단다.

“할머니, 할아버지도, 그리고 딸도 서로 보고 싶다고 하니까... 도쿄에 와서 환경이 다 바뀌었다. 고리야마에 있을 때도 나는 파트타임으로 일했는데, 아이를 맡기는 등 주변의 도움을 받았지만 여기 도쿄에서는 그럴 수가 없어요. 일본에서는 아이가 한 살 두 살 먹으면서 기념행사를 해요. 그럴 때, 가족과 아는 사람들이 모이는데, 그거 할 수 없는 게 억울해요.”

자주피난민 생활을 하며 가장 힘든 게 무엇인가요 묻자 그녀는 “앞이 안 보이는 것”이라고 말했다. 언제 돌아갈 수 있을 지, 돌아갈 수나 있을지 모르는 기약 없는 삶이 그를 짓누른다.

“앞이 안 보여 불안해요. 그리고 또 하나 말하고 싶은 것은, 같은 후쿠시마 현민을 갈라놓은 정부의 태도에 화가 나요. 그런 차별과 분단에 답답해요. 예를 들어 배상금도 차별적으로 지급하고, 준다, 안 준다... 배상금 문제도 그렇지만, 지역민을 갈라놓은 그런 태도가 답답하죠.”

* 통역 : 야스다(일본노동넷)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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원전 , 후쿠시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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