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학병원 외래 진료를 예약한 A씨는 한 시간이 걸리는 대중교통을 이용해 병원을 찾아 2분간 진료를 받았다. 검사를 해보고 다시 진료하자는 의사의 말에 다음 진료일정을 예약하고 검사실로 향했다. 3가지 검사의 대기시간에만 두 시간을 넘게 소모한 A씨는 다음 진료에서 간단한 약물치료만 처방받았다.
사례 2.
대학병원에 입원해 수술을 기다리고 있는 B씨는 수술 전에만 CT와 MRI를 각각 두 차례씩 찍었다. B씨의 검사 예약시간은 새벽 1시였다. “왜 이토록 늦은 시간에 검사를 하느냐”고 묻는 B씨에게 병원 관계자는 “낮에는 외래환자들을 검사하느라 검사할 시간이 없다”고 답했다.
의사성과급제가 말썽이다. 의사성과급제란 개별의사에게 매출액이나 진료환자의 숫자 등 실적에 따른 성과급(Incentive)을 지급하는 제도다. 의사성과급제는 미국 등 공공의료가 활성화되지 않은 국가에서 의료서비스의 질을 향상시키기 위해 도입된 제도다. 그러나 국내에선 지나친 성과주의로 과잉진료 우려와 국민건강보험 재정악화, 의사를 비롯한 병원 노동자들의 과잉노동 유발 등 문제를 양산하고 있다.
일단 검사실로
의사성과급제는 진료 행위 수에 따라 성과급을 지급하기 때문에 의사 개인의 불필요한 검사와 치료행위를 유발한다. 경미한 병증으로 병원을 찾은 환자들에게도 CT와 MRI 등의 검사부터 시행한다. 다행히 검사에서 병의 원인을 발견하는 경우도 있겠지만, 검사에서 별다른 성과를 얻지 못하는 일도 부지기수다. 물론 검사에서 병을 발견하지 못해도 검사비용은 내야 한다.
‘인도주의실천의사협의회(인의협)’ 정형준 정책국장은 “의료행위에서 과잉을 구분하는 기준이란 매우 모호하기 때문에 이를 비판하기도 쉽지 않다”고 지적했다. 생명을 다루는 의료행위에서 만일의 가능성을 타진하는 의사의 검사, 치료행위를 무조건 과잉이라고 치부할 수는 없기 때문이다. 그러나 동시에 의사성과급제로 인해 필요하지 않은 검사와 치료행위가 남발하는 것 역시 사실이다.
진료 환자 수로 성과가 평가되기 때문에 3차 병원 외래 진료실은 늘 북새통을 이룬다. 긴 대기 시간끝에 의사를 만나 진료를 받는 시간은 고작 2, 3분 남짓이다. 더 많은 검사와 치료를 위해서 심야시간까지 검사실에는 환자가 끊이지 않고, 경미한 병증에 수술을 권유하는 일도 잦다.
공공운수노조 의료연대본부 서울지부 이향춘 사무국장은 “의사성과급제는 환자 수와 매출에 따라 의사에게 성과급을 지급하기 때문에 의사들은 짧은 시간에 더 많은 환자에게 더 많은 검사와 수술을 하려 한다”고 지적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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과잉의료행위로 인한 국민건강보험의 재정 악화
과잉된 의료행위는 국민건강보험의 재정악화로 이어진다. 건강보험급여는 현재 각 치료행위마다 지급되는 ‘행위별 수가제’로 운영된다. 때문에 치료행위 수 자체가 증가하면 건강보험 급여도 증가한다. 의사성과급제가 유발한 과잉 의료행위는 곧바로 지급되는 건강보험 지급액의 증가를 유발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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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행위별 수가제의 문제가 지적됨에 따라 포괄수가제 도입이 논의되고 있으나 일부 의사들은 이에 반대하고 있다. [출처: KBS 뉴스 캡쳐] |
건강보험은 환자 뿐 아니라 전 국민이 내기 때문에 불필요한 보험급여 지급으로 국민건강보험의 재정이 악화되는 일은 전체 국민의 건강권 침해와 직결된다.
정형준 인의협 정책국장 역시 “의사성과급제는 국민건강보험 재정악화의 원인으로 지목되는 과잉진료를 촉발시킬 우려가 있다”고 지적했다.
치솟는 본인부담금
의사성과급제가 불러온 과잉 의료행위는 국민건강보험 뿐 아니라 환자 개인의 본인부담금도 가중시킬 수 있다.
흔히 ‘특진’이라고 불리는 선택진료는 환자가 전문의를 선택할 수 있는 제도다. 국공립대 대학병원 교수들의 급여가 같은 경력의 의사들보다 상대적으로 낮은 것을 배려해 일종의 소득보전 대책으로 만들어진 제도로 알려져 있다. ‘특진’을 선택한 환자들은 ‘교수님’들의 진료와 치료를 받는 대신 선택진료비를 내야 한다. 그러나 이 ‘선택진료비’는 만만치 않다. 선택진료비는 전액 ‘비급여’대상, 건강보험의 도움을 받을 수 없는 비용인 탓이다.
선택진료비 수익을 어떻게 나눠 쓰는가는 각 병원마다 어떻게 계획하느냐에 따라 다르지만, 선택진료비가 늘어날수록 의사와 병원의 수익이 급격히 증가하는 것은 일치한다. 따라서 선택진료를 통해 성과급에 대한 기대가 늘어나는 것 역시 자연스런 일이다.
선택진료비는 국민건강보험의 도움이 없는 100% 본인부담금인데다 다른 비급여 수입과 달리 원가비가 전혀 들지 않는 ‘순수익’이다. 선택진료가 과잉되면 걷잡을 수 없는 비용이 환자에게 청구되지만 병원으로선 더 많은 수익을 올릴 수 있게 된다. 정형준 인의협 정책국장은 “아무래도 의사성과급제로 1인실 입원이나 선택급여를 선택한 환자들에게 더욱 집중하고 이를 추천하는 일이 잦다”고 지적했다.
최근 발표된 OECD 보건통계에 따르면 한국의 의료비 증가율은 OECD 평균 증가율의 두 배에 달한다. 의사성과급제가 국민건강보험과 환자 본인 양쪽에 경제적 부담을 강제하고 있는 것이다. 그리고 그 부담은 결국 전체 국민에게 돌아간다.
병원이 돈 벌기 위해 “밤에도 일하라”
의사성과급제가 유발하는 과잉진료는 기실 의사 개개인들의 욕심보다는 병원이 강제하는 면이 더 크다. 과잉 의료행위와 선택진료비로 벌어들이는 수익은 의사 개인에게 성과로 돌아가는 만큼 병원에도 수익으로 남는다.
공공운수노조 의료연대본부가 제공한 자료에 따르면 서울대병원의 지난 2008년 선택진료 수익은 총 474억 8,100만원으로 이중 39.9%인 189억 4,100만원이 의사성과급으로 지급됐다. 나머지 60.1%의 수익은 병원 몫이다. 그렇게 보면 병원의 경영방침이 ‘더 많은 환자를 더 빠른 시간 안에 진료하는, 상업주의적 의료’ 형태로 변화해가면서 생긴 제도라고 이해할 수 있다.
대형병원에선 병원이 의사들에게 외래환자 진료를 독려하는 문자메시지나 ‘행위별 수가제’에 적합한 처방을 요구하는 메시지를 보내는 경우도 숱하다. 비싼 로봇기계를 이용한 수술을 권장하도록 의사들을 압박하기도 한다. 미끼는 역시 ‘의사성과급’이다. 선택진료비가 추가되거나 비급여 치료행위를 권장하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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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의사성과급제로 인한 과도한 노동에 서울대병원 노동자들이 파업을 선언했다 [출처: 참세상 자료사진] |
또한 적절한 인력 충원 없이 기존의 인력만으로 더 많은 환자를 상대하게 하면서 의사 뿐 아니라 모든 직종의 병원 노동자들의 노동량도 극심하게 증가하고 있다.
이향춘 사무국장은 “의사들의 피로도가 높을 수밖에 없으니 의료의 질은 당연히 떨어지고 간호사, 활동 보조인, 병원 내 미화 노동자 등 병원에서 일하는 모든 노동자가 야간노동 등 높은 노동 강도에 시달리게 된다”고 지적했다. 얼마 전 파업을 선언한 서울대병원 민들레분회의 미화노동자들도 의사성과급제가 가져온 높은 노동강도를 비판했다.
결국 의사성과급제는 의료행위의 상업화를 견인하는 제도다. 정형준 정책국장은 “의사성과급을 폐지해야 한다”고 명확히 지적했다. 의사성과급제가 가져온 ‘환자경쟁’은 병원 내에서 진료과 간의 환자쟁탈전으로 이어지거나 특정 의사들에게만 수익을 보장하는 의사들의 부익부 빈익빈 현상을 낳기도 한다.
반면 대형병원들은 의사성과제가 “일반회사의 성과 인센티브와 같은 제도인 의사성과급제가 없으면 3차병원으로의 쏠림현상이 더욱 심해질 것”이라며 의사성과급제의 유지를 주장하고 있다. 그러나 ‘생명’을 대상으로 하는 의사들의 ‘일’을 단순히 돈을 벌기 위한 일반 기업체의 그것과 동등하게 비교할 수 있는지는 생각해 볼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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