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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송년홍 신부 [출처: 천주교정의구현전국사제단] |
“역사를 망각하는 자는 그 역사를 다시 살게 될 것이다.” (The one who does not remember history is bound to live through it again)
죠지 산타야나의 유명한 말로 거의 표어처럼 쓰이는 말입니다. 역사를 망각하면 그 역사가 다시 되살아나서 산다는 것입니다. 요즘 돌아가는 모습을 보면 역사가 반복된다는 말이 맞는 것 같습니다.
아우슈비츠는 우리가 알고 있는 것처럼 히틀러가 자신의 정권을 유지하고 전쟁의 정당성을 확보하기 위해서 유대인들을 학살했던 장소입니다. 그 아우슈비츠에서 유대인 200만~400만 명 정도가 죽었다고 합니다. 그곳을 방문하면 즐거운 여행이 아니라 불편한 여행이 되어버립니다. 나치가 카펫트를 만들었다던 학살된 유대인들의 잘린 머리카락들, 안경들, 신발들, 수용소로 끌려올 때 가져왔던 여행 가방들 그리고 아이들이 가지고 있던 인형들이 전시된 것을 보면 가슴이 저려오고 멍해집니다. 그것을 보고 나온 동창이 이런 질문을 했습니다. “왜 그랬을까?”
“왜 그랬을까?” 이 질문은 2차 세계대전이후 유럽사회의 화두였다고 합니다. 그 답을 찾기 위해서 당시 20대 이었던 사람들이 1960년대(그들이 40대였던 때) 많은 고민을 했답니다. 그 답은 철학, 문학, 사회학, 역사학 등을 통해서 찾아지게 됩니다. 그리고 그것은 우리의 신앙에도 전달되게 되어 정치신학, 해방신학, 민중신학 등으로 이어지게 됩니다. 그래서 답들을 내기 시작했습니다. 다시는 이런 일이 없어야겠다고 말입니다.
그러면서 교회도 많이 비판을 했습니다. 유대인들이 그렇게 많이 죽어갈 때 교황과 교회는 아무 말도 안했습니다. 왜 안했을까? 무서워서? 아니면 그냥 지나갈 거니깐... 몇몇 신부님들과 신자들은 나치에 저항해서 죽기도 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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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처: 천주교정의구현전국사제단] |
아유슈비츠를 떠올리게 한 박근혜 후보의 새만금 개발
얼마 전 박근혜 대선후보가 광주와 전북을 방문했고 지지를 호소했습니다. 전북에 와서 새만금에 대한 이야기를 했습니다. 그 이야기를 듣는 순간에 아우슈비츠 생각이 떠올랐습니다. 거기서 사람들이 그렇게 많이 죽어갔는데 교회는 가만히 있었고, 그것 때문에 역사에 대해 생각하고 역사에 대한 질문을 던져서 유럽사회가 많이 발전하게 됩니다. 그러나 전북에서는 아직도 새만금 이야기를 하면은 표를 많이 찍어줍니다. 1987년 대선 당시 노태우 후보가 새만금 간척지를 농지 등으로 이용한다고 했습니다. 이후 새만금 개발은 대선 공약을 빠진 적이 없는 약방의 감초였습니다. 새만금에 가면 이런 글이 있습니다.
‘새만금 개발 사업은 군산과 부안을 연결하는 세계 최장의 방조제 33.9Km를 축조하여 간척토지 283Km2와 호수 118Km2를 조성하고 여기에 경제와 산업, 관광을 아우르면서 동북아 경제중심지로 비상할 녹색성장과 청정생태환경의 ‘글로벌 명품 새만금’을 건설하는 국책사업입니다.’
박씨가 이야기 하는 것은 새만금 특별청과 새만금 특별법을 만들어서 빨리 개발하게 해준답니다. 새만금에 가보시면 아시겠지만 말로 표현할 수 없습니다. 새만금에는 강이 2개 흐릅니다. 동진강과 만경강. 그 강을 다 막아버렸습니다. 더 이상 바다로 흘러 갈수가 없습니다. 그러면서도 녹색성장, 청정생태환경을 이야기합니다. 그리고 지자체 선거 때는 새만금은 당연히 개발해야 되는 것입니다. 새만금 개발로 전라북도가 낙후에서 벗어나고, 금이 나오는 엘도라도처럼 될 것이라고 이야기합니다.
하지만 실제는 그것이 아닙니다. 아직도 건설이 끝나지 않은 33Km라는 세계 최장의 방조제를 막아버려서 세계에서 몇 안 되는 소중한 갯벌을 죽여 버렸습니다. 갯벌이 죽으니 막힌 동진강과 만경강은 당연히 몸살을 하게 되고 그곳에 의지해서 살던 철새들과 사람들은 그곳을 떠나기 시작했습니다. 환경변화 역시 몸으로 느껴질 정도입니다. 더욱이 새만금 개발을 위해서 책정된 돈은 20조가 넘는 액수입니다. 간척지를 개발하기 위해서는 지리산을 통째로 파 옮겨도 모자란다고 합니다. 그럼에도 대선 후보나 지자체 후보는 새만금의 장밋빛 공약을 내놓습니다.
전라북도민들은 1987년부터 새만금 공약에 속았음에도 불구하고 계속해서 새만금 개발을 어떻게 할 것인가를 선택의 근거로 삼았습니다. 새만금을 장밋빛 환상으로 그럴듯하게 포장하고 막대한 자금과 세금이 들어가야 하는지는 깊게 생각하지 않고 그 환상에 표를 던집니다. 왜 그럴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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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처: 천주교정의구현전국사제단] |
"사람들은 왜 그 사람을 선택할까?"
또 하나. 제가 살고 있는 곳에 태양광발전을 신청했더니 한참을 기다려야 한다고 합니다. 정부에서는 그린농 100만 가구를 지어준다는데 언제 될지 모릅니다. 그러면서 동시에 핵발전소를 짓고 있습니다. 후쿠시마 이야기는 지금도 나오고 있고 가끔 TV에도 나옵니다. 얼마 전 TV에서 본 후쿠시마는 아직도 녹고 있고요, 방사능이 엄청나게 나오고 있답니다. 취재진도 1~2분밖에 못 들어간다고 합니다.
여전히 핵발전소의 위험성 보다는 안정성을 그리고 안정적인 전력수급을 이야기 하면서 핵발전의 꿈을 버리지 못합니다. 태양광, 풍력, 조력을 통한 녹색에너지를 이야기하면서도 핵발전을 더 강조하고 있습니다.
또 하나. 한국 경제의 위기를 말하지만 수출 기업들, 대부분 재벌들의 구조조정을 합리화하고, 재벌들의 수출이 살아야 낙수효과를 보는 국민들의 경제가 살아날 것이라고 합니다. 우리 신자들, 보통사람들의 경제위기는 하나도 없습니다. 내수시장을 키우거나 구조조정 대신 노동자들의 삶의 질이나 노동의 강도를 줄이고 수익을 함께 나누는 것에 대해서는 여전히 안중에도 없습니다.
왜 그럴까? 우리는 지금 대한문 앞에서 드리는 월요미사에서도, 국회 앞에서도, 오체투지와 삼보일배를 통해서도 계속해서 질문에 대한 답을 하려고 시도했습니다. 하지만 계속해서 떠오르는 질문은 “왜 그럴까? 왜 그렇게 말하고, 사람들은 왜 그 사람을 선택할까? 또 다시 당할 줄 알면서도!”
이런 모습들 보면서, 특별히 오늘 복음을 읽으면서 역사에 대한 생각을 다시 하게 되었습니다. 역사, 신앙인으로서 역사는 하느님의 구원의지, 하느님의 구원사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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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처: 천주교정의구현전국사제단] |
하느님의 구원의지는 교회가 독점한 하늘의 세상에만 있는 것일까?
하느님은 교회 안에만 계시고, 하늘에만 계신 분인가?
교회는 하느님의 나라를 구체적으로 실천하는 사람들의 모임이 아니라 천상의 세계 곧 죽어야 도달할 수 있는 천국과 지옥을 말하면서 이곳의 삶, 지금 여기서의 삶은 지나가는 과정으로 보았습니다. 그래서 사람의 삶, 곧 인간의 역사는 천상의 역사를 향해가는 과정인 것입니다. 구원도 이곳의 삶은 천상의 역사와 떨어져 보게 되었습니다. 하늘의 역사, 곧 하느님의 구원의지는 우리와 떨어진, 소위 교회가 독점한 하늘의 세상, 교회가 생각하는 하늘의 세상에만 있을 뿐입니다.
인간의 역사는 요한복음에 나오는 것처럼 하느님의 아들 예수를 받아들이지 않아서 악이 판을 치는 세상의 역사로 보았습니다. 그 악의 소굴을 벗어나기 위해서는 그 분을 믿어서 그 분의 말씀을 듣고 따르면 영생을 얻는다고 합니다. 그 이야기는 하늘나라를 가야 한다는 얘기입니다. 하지만 예수님은 세상 사람이 되었습니다. 그러면 우리 인간의 역사가 바로 하느님의 역사고 인간의 역사가 하느님의 구원역사인데 자꾸 분리를 해서 생각합니다.
하지만 예수님의 역사에 대한 인식은 하느님의 역사와 인간의 역사를 구분하지 않으셨습니다. 오히려 인간 세상 안으로 들어오셔서(Incarnatio) 인간의 역사와 하나가 되었습니다. 오늘 복음에도 하느님의 역사를 안식일법이라는 율법을 통해서 독점하고 있다고 생각하는 사람들에게 하느님의 역사는 인간의 역사 안에 있음을 보여주십니다.
오늘 복음에도 안식일법에 의해서 사람이 죽고 사는 것이 결정됩니다. 그러나 예수님은 법이 중요한 것이 아니라 사람이 중요하다고 사람이 살아가는 것이 중요하다고 말씀하십니다. 하느님의 역사 자꾸 얘기하다 보면 교회에 이런 말이 있습니다. ‘교회 밖에는 구원이 없다.’ 교회 안에만 구원이 있다는 것입니다. 교회 안으로 들어와야 구원이 된다는 것입니다. 세례를 받아야만 교회에서 구원이 되는 것이고, 교회는 구원을 독점하는 기관이 됩니다. 그렇다면 하느님은 교회 안에만 계시고, 하늘에만 계신 분이 됩니다. 이 땅 안에서 우리와 함께 살아가는 하느님은 더 이상 계시지 않습니다. 교회법 잘 지키고, 주일 미사 빠지면 안으면 되고, 한국천주교회 신자가 지켜야할 6가지만 잘 지키면 구원되는 것처럼 이야기합니다. 하지만 중요한 것은 사람들이 살아가는 것입니다. 하느님이 사람이 되셨고 땅에 와서 살았습니다. 우리의 역사가 바로 구원의 역사입니다. 우리의 역사가 하느님의 역사입니다. 우리의 역사가 예수 그리스도의 역사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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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처: 천주교정의구현전국사제단] |
두려움을 버려야 제대로 선택할 수 있다
“역사를 망각하는 자는 그 역사를 다시 살게 될 것이다.” 역사의식이 없으면 언제나 우리는 속고 살 수밖에 없습니다. 조금 있으면 우리는 선택을 하게 됩니다. 다시 한 번 기회가 주어집니다. 그 기회는 역사를 바꿀 수 있는 기회이고, 반복되는 역사를 끊어 버릴 수 있는 기회입니다.
어떤 철학자가 “계속 돌아가면서 복수의 순환이 되던 이 쳇바퀴처럼 돌아가는 역사를 예수의 십자가가 꽉 막아서 한 번 튀어서 앞으로 가게 했다.”고 했습니다. 예수님의 십자가가 역사를 반복되게 한 것이 아니라 역사를 발전하게 만들었던 것처럼 우리의 선택도 중요한 것 같습니다.
선택할 때 중요한 것은 자유입니다. 자유는 내가 쓰는 것이지 다른 사람이 쓰는 것이 아닙니다. 그런데 기득권을 가지고 있는 사람들은 이런 말을 합니다. “자유를 주겠다, 자유스럽게 살아라.” 그런데 그 전에 공포정치로 두려움을 사람들에게 심어놓습니다. “가서 살아라, 맘대로 살아라.” 두려움 속에서 살던 사람들이 갑자기 자유를 얻게 되면 또 다른 두려움을 느끼게 됩니다. 갑자기 내가 무엇이든 할 수 있는 상황이 되면 다시 두려움을 느끼고 그 틀 안으로 들어갑니다. 예를 들면 새OO당에는 박OO에게는 몇몇 고정표가 있다는 것입니다. 그 틀을 벗어나면 두려운 것입니다. 그런데 다른 사람들도 마찬가지 인 것 같습니다. 선택을 위해 자유가 주어졌지만 두려움이 있습니다. 그 두려움을 이겨 내야만 제대로 된, 잘된 선택을 할 수 있습니다.
예수님은 풍랑에 시달리는 제자들의 배에 오르시면서 “나다. 두려워하지 마라. 용기를 내어라.” 말씀하십니다. 특별히 신앙인들은 이번 선택의 기회에서 제대로 해야 될 것 같습니다. 두려움 없이 제대로 선택해서, 우리에게 필요한 사람이 누구인지 함께 고민하면서 선택했으면 좋겠습니다.
다시 한 번 “역사를 망각하는 자는 그 역사를 다시 살게 될 것이다.” 아우슈비츠의 그 표어가 생각나서 말씀드립니다. 좋은 선택, 잘 준비된 선택을 위해 함께 기도하고 두려움을 없애기 위해서 예수님께 의탁하면서 잘 뽑았으면 좋겠습니다. (기사제휴=지금여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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