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부가 대선을 앞두고 영리병원 도입과 철도자산 회수, 면세점 등의 민영화를 강행하고 있다. 게다가 물, 철도, 가스, 전력, 공항 등 공공부문 전반의 민영화가 예고되어 민영화를 둘러싼 여론이 다시 한 번 요동치고 있다.
민영화의 악몽은 단지 정부의 ‘공공부문 선진화’ 정책에 그치지 않는다. 정부의 민영화 정책이 한미FTA 협정과 시너지 효과를 낼 경우, 공공부문 전반의 훼손은 돌이킬 수 없다. 공공부문을 ‘비상업적’ 고려 대상으로 삼지 않는 한미FTA는 외국 투자자들을 위한 무소불위의 조항들로 채워져 있다. 외국 투자자들은 ‘반경쟁적’ 행위가 포착됐을 때 언제든지 한국정부를 제소할 수 있고, 정부는 이를 방어할 수 있는 수단이 없다.
때문에 대선을 앞둔 각 후보 역시 한미FTA 협정과 공공부문 민영화 논란에 촉각을 곤두세우고 있다. 문재인 민주통합당 후보는 국민의정부, 참여정부에 걸쳐 진행된 ‘자발적 민영화’ 흐름에 반기를 들고 있다. 박근혜 새누리당 후보조차 무분별한 공공부문의 민영화를 경계하는 모양새다.
하지만 국민의 민영화 민심을 달래는 대선후보들의 공약은 그야말로 천차만별이다. ‘민영화’와 ‘공공성 약화’라는 단어의 부정적인 뉘앙스를 희석하기 위해 애쓴 흔적도 보인다. 그럼에도 대선후보들의 민영화, 한미FTA 정책은 ‘저지’냐 ‘수정’이냐 하는 임시방편적인 선택에 한정돼 있다.
박근혜와 문재인에게 ‘한미FTA 재협상’ 이란?
박근혜 새누리당 후보는 지난 4일 ‘18대 대선 1차 토론’에서 한미FTA와 관련해 “문제가 있으면 재협상할 수 있다”고 밝혔다. 약 1년 전, 대표적인 한미FTA 독소조항인 ISD와 관련해 박 후보가 “ISD가 있으나 없으나 이것은 일반적인 제도로서 우리 통상협정에 문제가 되지 않는다”고 발언한 것과 비교해 새삼 다른 입장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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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처: 참세상 자료사진] |
하지만 박 후보는 3일 후, 서울 동부권 유세현장에서 “다음 대통령에게 가장 시급한 과제는 한미FTA 재협상이 아닌 민생을 챙기는 것”이라며 “변화를 가장한 무책임한 변화는 민생을 더욱 어렵게 만들고, 국민에게 더 큰 좌절을 안길 뿐”이라며 물타기에 나섰다.
FTA와 관련한 박근혜 캠프의 공식적인 입장을 살펴보면, ‘재협상’의 가능성은 더욱 낮다. 민주노총이 각 후보 캠프로부터 회수한 민주노총 요구안에 대한 답변서에 따르면, 박 후보 측은 ‘한중FTA 등 무차별적 FTA 확산정책 중단과 전면 재검토’에 확실한 ‘반대’ 입장을 보이고 있다. ‘한미FTA 폐기’도 당연히 반대했다.
문재인 민주통합당 후보는 한미FTA 재협상을 내세우고 있다. 하지만, 문 후보의 ‘재협상’은 일각에서 주장하는 ‘전면 재검토’나 ‘전면 재협상’과는 다르다. 그는 일부 문제가 되는 독소조항에 한해 재협상을 추진하겠다는 입장이다.
문 후보는 민주노총에 제출한 답변서에서 ‘한미FTA폐기’와 관련해 ‘수용’, ‘반대’ ‘수정’ 중 ‘수정’이라는 중도 입장을 선택했다. 국민적 우려가 있는 독소조항의 해소를 위해 재협상을 하겠다는 것이다. ‘한중FTA 등 무차별적 FTA 확산정책 중단과 전면 재검토’ 문항에 대해서도 ‘수정’을 택했다. 각국과의 FTA는 기존대로 체결하되, 내용적 손질을 하겠다는 입장이다.
하지만 한미FTA의 기본적인 성격은 무역의 자유화를 넘어, 미국 투자자의 진입 자유를 인정하는 것에 있다. 또한 자본이 국가 규제를 제한하는 장치로 실행된다. 내용적 손질로 한미FTA의 기본적 성격을 전환하는 것은 사실상 불가능하다.
또한 사회공공연구소가 발간한 ‘공공부문 재공영화를 위한 법적, 제도적 대안’ 연구보고서에 따르면, 한미FTA의 공공부문 관련 협정은 그간의 정권에서 진행해 온 ‘자발적 민영화’의 흐름에 따라 체결됐다고 분석하고 있다.
실제로 한국정부는 이미 전력, 가스, 철도 등에 대한 민영화를 추진해 왔고, 한미FTA에 따른 공공부문 시장화 정책은 이를 바탕으로 구성됐다. 한미FTA 공공부분 협상이 별 논란 없이 마무리된 이유도 이 때문이다. 단지 독소조항 해소로, 정부의 민영화 정책을 기본으로 한 한미FTA라는 큰 틀을 폐기 혹은 전환시하기는 어렵다.
특히 문재인 후보는 한미FTA체결 당시, 대통령 비서실장으로서 ISD조항에 긍정적인 평가를 하기도 했다. 김종훈 새누리당 의원(전 통상교섭본부장)은 지난달 28일, YTN라디오와의 인터뷰에서 “(문재인 후보가) ISD조항에 대해 굉장히 높이 평가를 했고, 제가 그 기록을 갖고 있다”며 “내용을 보면 이게 글로벌 기준이다, 투자유치를 하는데 도움이 된다, 우리나라의 규제권한을 합리적으로 행사하고 운영하는데도 도움이 되는 제도다, 이렇게까지 평가를 했다”고 밝혔다.
또한 문 후보는 지난달 19일, 한국기자협회가 주최한 토론회에서 “한미FTA 폐기는 현실적으로 불가능하다”며 “국가 간에 체결된 경제 협정을 우리가 마음대로 할 수는 없다”고 못 박았다. 지난달 12일, 외신기자클럽 기자회견에서는 “한미FTA는 이미 비준된 국가 간 협정인 만큼 충실히 이행하겠다”고 밝히기도 했다.
박근혜 ‘민영화 추진’ vs 문재인 ‘민영화 저지’
근본적인 체질 개선 관심 없어
공공부문 민영화 정책에서는 더 뚜렷하게 박근혜 후보와 문재인 후보 간 전선이 형성된다. ‘민영화’와 ‘공공성 약화’라는 부정적 뉘앙스를 피해가기 위해 박근혜 후보는 전반적으로 ‘중도’ 입장을 표방하는 듯 보인다. 반면, 문재인 후보는 적극적인 ‘민영화 저지’의 길을 택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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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처: 참세상 자료사진] |
민주노총이 회수한 대선캠프 답변서에 따르면, 박 후보는 KTX분할 민영화, 가스산업경쟁도입, 공공성 강화, 전력산업 민영화와 재공공화, 물 민영화 정책 중단 등에 대해 ‘수정’하겠다는 입장을 밝혔다.
하지만 이미 언론 등을 통해, 박근혜 새누리당 정권이 집권하면 이명박 정부가 추진해 온 철도 관제권 이관 등 철도민영화가 가속화될 것이라는 전망이 나오고 있다. 상수도 민간위탁을 중심으로 한 물 민영화나 의료, 가스, 전기, 공항 등 공공부문 전반의 민영화 강행 역시 점쳐지고 있다.
지난 2005년, 박근혜 후보가 한나라당 대표 시절 “현 정부(참여정부)에서 공기업 민영화 방침도 거의 백지화됐는데, 우리가 집권하면 민영화를 추진할 것”이라고 발언한 것 역시 민영화 가능성에 힘을 싣고 있다. 전반적인 민영화 흐름 속에서 ‘내용검토’ 수준이거나 이도 없이 강행할 가능성이 다분한 셈이다.
반면, 문재인 후보는 ‘KTX 분할 민영화 정책 중단’, ‘가스 산업 경쟁 도입 반대, 공공성 강화’, ‘물(상수도) 민영화 정책 중단’ 등 민주노총 요구와 관련해 모두 ‘수용’한다고 밝혔다. 심지어 문 후보는 지난 9일, 선대위에 ‘물, 의료, 철도 등 공공부문 민영화저지 특별위원회’를 설치했다. 민영화저지특위를 통해 공공부문 민영화 정책을 전면 재검토하겠다는 것이다.
하지만 문 후보는 현재 벌어지고 있는 민영화 흐름에 제동을 거는 것 이외에 근본적인 체질개선에는 관심이 없다. 박근혜 후보와 공방에서도 민영화냐 아니냐, 추진할 것이냐 말 것이냐 라는 프레임에 갇혀 있다.
때문에 문 후보는 답변서에서도 “민영화는 반대, 재공공화는 구체적인 논의가 필요하다”며 ‘재공공화’와 관련해 다소 방어적인 태도를 보였다. 한미FTA 문제와 마찬가지로 민영화 역시 가시적인 논란만을 겨냥하고 있는 셈이다. 그런 점에서 문 후보는 민영화 문제와 관련해 박 후보와 전선은 형성했지만, 정책의 실효성까지 담보했다고 보기는 어렵다.
공공부문 민영화 정책은 김영삼, 김대중, 노무현 정권을 거쳐 현재까지 이르고 있다. 십수 년의 공공부문 민영화 역사는 공적산업 전반을 훼손했다. 전력산업은 1999년 김대중 정권의 분할 민영화 정책을 시작으로 공급 안정성 훼손, 사용자 부담 증가 등의 부작용을 낳고 있다. 철도산업은 노무현 정부 시기인 2004년, 철도의 시설과 운영을 분리하는 ‘철도구조개혁법안’이 통과돼 시행되고 있다. 이로 인해 운영상의 비효율, 유지보수비 감소, 철도안전 위협 등의 문제를 야기하고 있다.
완전 민영화된 KT 역시 그 부작용이 여러 차례 지적됐다. 외국인 주식 배당의 급증과 정리해고, 높은 통신비 등은 KT의 고질적인 문제다. 가스 직도입 정책 역시 현재진행형이어서 수급불안 우려도 상승하고 있다. 때문에 무엇보다 현재 민영화 정책으로 훼손된 공공부문의 치유와 회복이 선행되어야 한다는 목소리도 크다. 이미 노동계와 시민사회 등은 재공영화 절차를 포함해 공공서비스의 무분별한 사유화를 방지하는 ‘공공서비스 기본법’을 만들어놓은 상태다.
송유나 사회공공연구소 연구위원은 “에너지와 철도, 물 등 공공부문 민영화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서는 현재의 구조와 근간을 회복하는 것이 선행되어야 한다”며 “문 후보가 공공부문 민영화 저지에 진정성이 있다면, 이와 관련한 구체적인 답변을 내놓아야 한다”고 설명했다.
또한 송 연구위원은 “만약 문 후보가 정권교체에 성공했다 하더라도, 공공부문 전반에서 진행되고 있는 민영화를 저지하기 위해서는 어마어마한 자본의 반발을 이겨내야 하는 어려움이 있다”고 설명했다. 하물며 이미 자본의 손에 쥐어져 있는 공공재의 ‘재공공화’는 어불성설일 가능성이 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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