80년대 이후, 세계의 노조 통합전략 흐름과 함께 한국에서도 산별노조 건설운동이 일어났다. 한국 노동운동진영은 87년 노동자 대투쟁의 성과를 제도적으로 공고화 시키고, 기업별 노사관례의 한계를 극복하기 위해 초기업별 노조로의 조직 전환을 시도해 나갔다.
하지만 20년이 지난 지금, 조직재편상의 난점들과 조직 내 민주적 제도정비, 산별중앙교섭의 위상 등의 문제가 드러났고, 노조조직률은 전반적으로 하락하고 있는 추세다. 80년대 이후 노조통합전략을 추진했던 여타의 국가에서도 이와 비슷한 흐름이 나타난다.
대표적으로 호주노총은 80년대 이후, 통합주의 전략을 추진했지만 당초 설정했던 조직적인 목적을 달성하는 데 실패했다. 때문에 공공운수정책연구원 산하 사회공공연구소는 지난 25일, ‘호주 노조통합전략의 과정과 시사점’이라는 제목의 워킹페이퍼를 발표하고 호주 노조통합전략의 추진과정과 한국 노동운동에 대한 시사점을 추출했다.
80년대 이후, 호주노총의 ‘통합주의 전략’...한계는?
현재 호주노총(ACTU) 산하 가맹노조는 54개이며, 조합원 수는 180만 명 수준이다. 전체 조합원의 80%가 산별노조 및 복합 산별노조 등 약 20여 개의 대형 노조들에 소속 돼 있다. 이는 호주 노조운동이 80년대 후반 추진했던 ‘통합주의 전략’의 결과물이다.
호주 노조운동이 노조통합을 추진했던 이유는 △조직률의 지속적 저하 △호주노총 내부에서 조직통합을 향한 강력한 리더십의 행사 △조직전환을 위한 정치적 환경 변화 때문이었다. 하지만 호주 노조는 국가기구와 상당한 의존관계에 있었으며, 신규조합원 확보조차 국가기구에 의한 중재모델의 제도적 지원을 통해 확보되고 있었다.
사회공공연구소는 “결과적으로 당시의 호주 노조에게 조합원을 확대하거나 기존의 조합원들을 유지하고자 하는 조직적 구조도, 조직화를 위한 절박한 공감대도, 그러한 역사적 경험도 보유하고 있지 못했다”며 “결국 80년대 후반 호주 노조운동은 다양한 대안적 전략들이 사장된 채, 호주노총을 중심으로 단순한 조직통합 전략으로 나아가게 된다”고 설명했다.
83년 이후 재집권 했던 노동당 정부와 노조의 우호적인 관계 속에서, 노조통합전략은 노정의 ‘사회적 협약’이라는 정치적 연계 위에서 진행됐다. 이 같은 정치적 프레임은 노사관계의 구축이라는 명분 아래 일정한 노동의 양보를 전제했다.
사회공공연구소는 “노동당 정부와 호주노총간의 사회협약은 노동운동에 우호적인 동기에 의해 추동되지도 않았으며 그 결과 또한 친 노동적인 것이 아니었다”며 “노동당 정부는 83년 집권 직후부터 소위 ‘금융자본주의’로의 변모를 꾀했고, 생산시장 개혁의 일환으로 민영화 추진, 공공부문 축소, 관세인하 및 탈규제 등의 조치를 단행하게 된다”고 설명했다.
또한 연구소는 “더욱 중요하게 살펴볼 것은 노조운동에서의 조직통합이라는 조직적 변화가 사회협약이라는 프레임 안에서 교섭구조의 분권화와 함께 진행되었다는 점”이라고 지적했다. 때문에 호주노총의 대대적인 조직통합 전략에도 노조 조직률은 지속적으로 하락했다. 조직통합 과정에서의 내부적 교육이나 리더십 등도 구현되지 못했다.
이 같은 상황에서 96~2007년까지 11년간, 보수정당인 자유당을 중심으로 한 연합정부의 집권기가 이어졌다. 자유당은 극단적 반노조주의를 확산시켰으며, 2006년에는 ‘호주 역사상 가장 가혹하고 악독한 법’으로 회자되는 노동선택법을 입안했다. 이는 호주노총이 정치적, 이데올로기적 전략을 수립해 정권교체에 나서도록 하는 기폭제가 됐다.
결국 호주노총은 자유당의 장기집권을 끝내고 정권교체에 성공하게 된다. 하지만 호주 노조운동의 정치적 성과는 제도적 성과로 이어지지 못했다.
연구소는 “노조의 영향력이 시민사회 내에서의 유무형의 연대로 굳건히 자리 잡고 있지 못했고, 조직률의 지속적 하락으로 인해 동원력의 기초가 지속적으로 침식되어 가고 있었기 때문에 이후 재집권한 노동당 정부의 인정을 받지 못하게 됐다”며 “호주노총은 노동당 정부로 하여금 친 노조적 정책들을 이끌어내기 위해 노력하고 있지만, 노동조합의 권력 강화를 위한 제반조치, 특히 노동자의 단체행동권 강화와 관련된 노조의 입법요구에는 무척 소극적인 상황”이라고 전했다.
한국 산별노조운동의 ‘교착상태’...“내적 정치 무엇보다 중요”
연구소는 호주 노조운동의 통합주의 전략이 실패한 이유가, ‘혁신’이 아닌 ‘생존’이라는 방어적인 전략으로 추진됐다는 점을 꼽고 있다. 호주 노조운동이 정부의존성을 전혀 극복하지 못했으며, 이들의 통합주의 전략이 정부와의 지속적인 양보 혹은 협조를 조건으로 진행됐다는 점 역시 ‘실패’ 요인으로 분석했다.
또한 연구소는 “교섭체계의 분권화는 노조 간 광범위한 통합에도 불구하고 조직률이 지속적으로 하락했던 결정적인 원인”이라며 “더욱이 노조 간 통합을 통해 노조운동이 확보하고자 했던 노동자간 형평성 확보와 이를 통한 조직내적 동원력의 유지라는 목표를 불가능하게 했던 결정적인 이유”라고 설명했다.
이 같은 호주의 사례는 한국의 산별노조 건설운동에 적지 않은 시사점을 남길 것이라는 관측도 존재한다. 90년대 이후 산별노조운동은 괄목할만한 성과를 낳았지만, 현재 노조운동이 교착상태로 접어든 만큼 이를 극복하기 위한 노력이 수반돼야 하기 때문이다.
연구소는 “산별노조의 건설은 조직규모와 내부적 이질성의 동시 확대를 야기한다는 점에서 내적 정치가 무엇보다 중요하다”며 “노동운동의 정치적 세력화라는 주제와 관련해 조직률 제고 등 내부적인 권력의 증가가 동반되지 않는 통합전략은 실패로 귀결될 가능성이 크다”고 지적했다.
또한 “교섭구조와 조직구조의 보다 적절한 조합을 면밀히 검토할 필요성이 제기 된다”며 “조직전환전략과 조직화 전략은 분리되어 사고될 수 없으며, 산별노조의 온전한 정착은 결국 성찰적인 민주주의와 리더십에 달려있다”고 설명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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