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일 <알자지라> 등에 따르면 전범 재판 판결을 문제로 방글라데시 정부와 야권 이슬람 세력 간 유혈 충돌이 격화된 가운데 사망자가 62명으로 불어났다. 방글라데시 정부는 북부에 군대를 배치하는 한편 가장 큰 이슬람주의 야권 정당은 정치적 판결이라는 이유로 이틀동안 파업에 돌입하고 전범 재판 중단을 요구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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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처: http://www.aljazeera.com/ 화면 캡처] |
전범 재판은 1971년 방글라데시 독립전쟁 당시 전쟁 범죄를 문제로 시작됐으며 이슬람 최대 야권인 자마트당 지도자 9명과 방글라데시 국민당(BNP) 2명 등 야권 지도자를 대상으로 300만 명을 살인하고 여성 20만 명을 성폭행한 모국 파키스탄에 대한 부역행위를 문제 삼고 있다. 2009년 시작된 이번 재판에서 최근 자마트당의 지도자 3명이 사형 및 종신형을 선고받자 이들의 지지자들은 방글라데시 전국에서 시위를 벌이며 항의하고 있다.
그러나 전범재판을 지지하는 방글라데시 민중은 이번 전범 판결 형량이 가볍다며 전범 책임자에 대한 사형 선고와 이슬람 정당 금지를 요구하며 시위를 벌이고 있다.
1947년 영국 식민지에서 독립한 파키스탄에 속했던 방글라데시는 1971년 9개월간의 독립전쟁을 치룬 후 현재의 모습을 갖췄다.
당시 파키스탄 군사정권은 독립운동을 유혈 진압했고 이슬람 정당은 이러한 파키스탄 군부를 지원하며 살인타격대를 조직하고 지식인 등 독립운동 주동자를 공격했다.
방글라데시는 독립 후 바로 전범 재판을 시작하고 이슬람주의 정당을 금지했다. 그러나 1975년 방글라데시 독립운동을 이끈 초대대통령 셰이크 무지부르 라흐만이 미국이 지원한 군부 쿠데타로 암살당하자 전범 책임자는 다시 석방됐고 이슬람 정당에 대한 해금조치도 실시됐다.
1991년 군사독재 종식 후 방글라데시 민중은 전범재판 재실시를 요구했지만 지연돼오다 암살당한 초대대통령 라흐만의 딸 셰이크 하시나가 총리가 된 후 2009년 재실시된다.
올해 2월 5일 전범재판에서 첫번째 종신형이 선고됐으나 사람들은 사형 선고를 요구하며 거리시위를 벌였다. 이들은 향후 이슬람정당이 재집권할 경우 그를 다시 석방시킬 수 있다는 이유로 이를 요구했다. 전쟁범죄 피해지역 학생과 대학교수들은 형량 강화를 요구하며 무기한 동맹휴업과 파업에 들어갔다. 12일에는 전국 수많은 사람들이 함께 3분 묵념을 하며 전범 책임자에 대한 사형을 촉구하기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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