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만둔 줄로만 알았던 그녀가 방문하니 처음에는 놀랬던 할머니가 이내 그녀의 손을 잡으시더니 하염없이 눈물을 흘리셨단다.
"아이고 다시는 안 오는 줄 알았네. 내년에도 꼭 와야 하네. 꼭이네. 꼭."
한번 잡은 손을 쉬이 놓지 못하고 연신 당부를 거듭하는 할머니는 절로 나오는 눈물과 울음을 참지 못하셨단다. 이 할머니는 40대 중반의 지적장애인 아들과 함께 살고 있고 방문간호사 의료혜택을 받고 있다.
"어제 할머니 모습이 계속 생각이 나네요. 그 할머니를 계속 찾아 뵈어야 할 텐데요."
▲ '똑똑똑" 방문간호사 김미영(가명)씨가 할머니의 만나는 소리다 . 환한 웃음으로 반겨줬던 할머니들은 요즘 그녀 앞에서 눈물을 많이 보이신다. 그녀가 못올지도 모르는 불안감에서다. 요즘 그녀에게 할머니에게 내년에도 꼭 다시 올게요 라며 안심을 시키는 일도 중요한 일과가 되었다.
ⓒ 김상정 구로구청
내 가족 같은 10개월 기간제 보호자, 방문 간호사
지난 2일 서울 구로구 구로동에서 만난 방문 간호사 김미영(가명, 48세)씨의 발걸음은 무겁기만 하다. 이제 곧 구로구청(구청장 이성)과의 고용계약이 만료되기 때문이다. 그래도 무거운 발걸음을 빠르게 재촉할 수밖에 없다. 그래야 좀 더 많은 이들을 찾아갈 수 있기 때문이다.
그녀가 방문하는 곳은 한 해에 400여 가구. 그러다 보니 한 달에 한 가구를 한 번씩 방문하는 것도 쉬운 일은 아니다. 사실 몸이 많이 불편한 이들은 자주 방문해야 해서 그렇기도 하다. 그래도 거동이 불편하고 아픈 곳은 많지만 돌봐줄 가족도 없고 병원비도 없어 제대로 치료를 받지 못하는 이들에게 그녀는 최고의 벗이자 보호자다.
이미 의료혜택을 받는 이들에게는 자신의 아픈 곳을 돌봐주고 관리해주고 이제는 자신의 곁에 있지 않은 가족보다 더 귀한 존재가 되었다. 그녀가 이 일을 놓을 수 없는 가장 큰 이유이기도 하다. 이미 그녀에게 이들은 자신이 보살펴야 하고 돌봐야 하는 가족 같은 존재다.
그녀가 주로 만나는 이들은 기초생활 수급자로서 가족 없이 혼자서 사는 노인들이 많다. 대부분이 반지하 단칸방에서 어렵고 외롭게 노년을 보내는 이들이다. 그녀는 이들을 방문해 진료하고 환경과 먹는 것을 점검하고 관리한다. 기본적인 혈당협압관리 등은 물론이거니와 주거 환경과 먹거리 관리는 이들의 건강에 큰 영향을 미치기도 해서 필수다. 이런 그녀는 이미 이 동네 어르신들에게는 친숙하고 친절한 '우리 동네 간호사'다. 그러나 이렇게 쌓아 온 친근한 관계도 올해 말이면 끝이 날지도 모른다.
똑똑똑똑, 우리 동네 간호사 왔어요
"400여 가구의 실태를 파악하고 관리하는 데도 꽤 오랜 시간이 걸려요. 1년 정도는 지속적으로 방문해야 안정적으로 관리를 할 수 있어요."
처음 겹겹이 다세대주택이 들어선 그곳에서 집을 찾는 일은 어려운 일이었다. 그러나 이제 2년 차 그녀는 속속들이 집을 잘도 찾아 문을 두드린다. '똑똑똑'
"똑똑똑"
소외 받고 그래서 외로웠고, 또 몸이 아파서 힘들었을 이들에게는 반가웠을 이 문 두드리는 소리. 이제 그녀는 이 문을 내년에는 두드리고 싶어도 두드리지 못할지도 모른다. 구로구청에서 연속 고용을 보장하지 않고 있기 때문이다.
그녀는 10개월 단위로 근무하면서 지난 2년 동안 계약을 두 번이나 했다. 그러나 구로구청에서는 현행법과 고용 여건을 이유로 연속 고용을 보장하지 않겠다는 입장이다. 이런 이유로 그녀는 지난 5월부터 연속 고용을 보장하라며 구로구청에 요구하고 있다.
"누가 제가 이렇게 거리에 나서서 싸우게 될 줄 알았겠어요. 저도 상상도 못한 일이에요. 이런 일은 다 남의 일인 줄 알고 살았었지요."
그녀를 연속고용보장 싸움에 내몬 건 다름 아닌 그녀를 고용한 구로구청(구청장 이성)이다. 아니 더 정확히 말하면 그녀를 거리로 내몬 건 연속고용을 하지 않는 구로구청이고 그것에 맞서 싸우라고 그녀를 등 떠민 것은 그녀를 믿고 의지하는 할아버지 할머니 장애인 이주민가족들이다.
"저는 간호사가 된 이후 병원에서 환자를 돌보고 치료했고 국제구호활동도 하면서 사람을 구하는 일들을 했어요. 출산과 육아 이후, 방문간호사 일을 하고 있는데 더할 나위 없이 무척 보람됩니다."
그녀는 그녀가 찾아가는 이 사회 취약계층의 건강을 돌보는 일에 한 치의 망설임 없이 자부심을 느낀다고 말한다. 그러나 올해 12월 말일 계약이 만료되면 일을 하다가도 다시 고용되기 위해 면접을 보러 가야 한다. 구로구 관내만 15명의 방문간호사가 있다. 그들 중 몇 명은 고용이 되지 않는다. 1년마저도 다 채우지 못하는 10개월 고용이다. 지난 2년간 그녀는 10개월 고용 2개월 휴직을 반복했다. 사실상 강제휴직기간인 2개월은 피가 마른다. 월급이 지급되지 않는 것은 당연하고 가장 건강에 취약한 계절인 겨울에 방문의료가 절실한 그때 일을 할 수가 없게 발이 묶여서다.
▲ '똑똑똑" 방문간호사 김미영(가명)씨가 할머니의 만나는 소리다 . 환한 웃음으로 반겨줬던 할머니들은 요즘 그녀 앞에서 눈물을 많이 보이신다. 그녀가 못올지도 모르는 불안감에서다. 요즘 그녀에게 할머니에게 내년에도 꼭 다시 올게요 라며 안심을 시키는 일도 중요한 일과가 되었다. [출처: 김상정] |
민간위탁 전환 시도 후 폐기한 구로구청
맞춤형 방문건강관리 사업은 구로구 관내 취약계층 주민을 대상으로 하는 구로구청의 핵심적 복지 사업 중 하나로 꼽힌다. 이에 진보신당 구로당원협의회를 비롯한 구로구 내 시민사회단체들(건강세상네트워크, 구로구 방문간호사, 민주노동당 구로구 위원회, 민주노총 남부지구협)은 구로구청이 방문간호사 당사자들과의 충분한 논의를 통해 연속고용을 위한 합리적 방안을 도출할 것을 계속 요구하고 있다.
이들은 지난 11월 29일에는 구로구청이 난데없이 이 사업을 민간위탁으로 전환한다는 입장을 내놓아서 이를 철회하고 연속고용을 하라는 기자회견도 했다. 이어진 구의회 앞 1인 시위에 그녀도 참여했다.
구청은 지난 1일 이들에게 급기야 민간위탁을 추진하지 않고 1년 또 고용하겠으나 전부 다 고용을 보장할 수 없다는 입장을 비쳤다. 고작 1년, 사실상 10개월 더 일할 수 있는 면접을 볼 수 있는 권한을 준 것이다. 구로구 내 방문간호사 총 15명 중 3명이 벌써 이직했다. 또 한 명은 일을 그만두었다. 사실상 11명의 연속고용 보장을 요구하고 있는데 그것마저도 구로구청은 받아들이지 않고 면접권만을 주겠다는 것이다.
딱 하루만이라도 방문간호사와 함께 다녀보세요
지난 2일 아침부터 김미영 간호사를 따라다녔던 나(아이 둘 딸린 주부, 38세)는 오후 1시경 연속고용보장 싸움에 앞장서 온 방문 간호사들을 구로구청 1층 로비에서 만났다. 의료가방을 짊어지고 구청으로 함께 걸어 들어가는 모습을 사진에 담아봤다. 내년에는 올라가는 발걸음이 한결 가볍고 경쾌하길 바라는 마음에서다.
"우리들은 우리의 일을 자부심과 책임감을 가지고 계속하고 싶을 뿐입니다. 10개월 기간제 계약이 아닌 안정적인 고용계약은 구로구민의 건강과 복지를 위해서도 반드시 이뤄져야 하는 것이지요."
그들은 이성 구로구청장과 관계자들에게 딱 하루만이라도 자신들과 함께 취약계층을 방문해 보라고 한다. 이 일이 단지 그들에게 형식적으로 청진기만을 들이대는 의료행위인지를 단지 10개월 단위로 사람을 바꿔가면서 해야 할 일인지를 그때야 되묻고 싶다고 말한다.
▲ 지난 2일 구로구청으로 들어서기 위해 오르는 계단길, 지난 11월 29일 이들은 이 계다누이에서 구로구 방문간호사 연속고용을 요구하며 기자회견을 했다. 그녀들에게 이 계단은 내년에도 내 후년에도 경쾌하고 즐겁게 오를 계단이기를 희망해 본다. 경쾌한 오름길 [출처: 김상정] |
동네 할머니, 할머니, 할머니... 아, 나의 어머니
나는 아기 둘을 데리고 오전 내내 그녀를 따라다녔다. 6개월 아기는 앞에 안고 29개월 아기는 방문 간호사의 손을 잡고 걷고, 겨우 1시간을 따라다니면서 많은 이들을 만났다. 아파서 거동이 힘든 할머니, 이제는 조금 건강해져서 동네 할머니들과 담소를 나누는 할머니, 그리고 슈퍼 아줌마. 이주노동자 가족, 지적장애인 아들을 돌보지만 정작 자신의 건강도 많이 안 좋아 돌봄이 필요한 할머니, 할머니, 할머니….
나의 어머니도 올해 칠순이다. 추운 겨울, 갑자기 다리가 아프시다며 거동을 못하신다. 오늘로 3일째, 그런 이유로 난 이 글을 그날 바로 쓰지 못했다. 아이 둘을 데리고 엄마네집에 가서 엄마를 간호했고 그러면서 내내 걷지 못하는 엄마에게 구로구 내 방문 간호사들 얘기를 했다.
엄마는 간호학교를 나와 시골에서 의료활동을 펼치셨다. 의료혜택이 주어지지 않는 깡시골에 보건진료소장을 하셨고 난 그녀의 막내딸로 둘이 살았다. 혼자 밤을 지샌 적도 많았다. 응급환자가 생겼을 때는 밤이고 낮이고 출장을 가기 때문이다. 난 그때 지새웠던 밤이 무섭고 슬펐던 시간으로 기억되지 않는다. 아픈 사람을 혼신의 힘을 다해 살려낸 엄마의 자랑스러운 모습은 지금까지도 내내 내 마음속에 담아져 있다.
아픈 이들을 치료했던 나의 어머니도 나이가 먹고 세월이 흐르니 여기저기 아프다. 자신의 다리를 어루만지는 엄마에게 방문 간호사가 계속 고용이 되지 못하고 있어서 엄마가 생각나기도 해서 애 둘을 데리고 따라다녀봤다고 그들의 이야기를 좀 널리 알리고 싶은 마음에 무작정 따라나섰다고 말을 했다. 그랬다가 추운 날 애들 고생시킨다며 한참을 혼내셨다. 그랬던 엄마가 한참 생각을 하시더니 말씀하신다.
이성 구청장님, 우리 어머님의 말씀을 들어주세요
"이성 구청장에게 전해주라. 일은 특히 우리 같이 의료활동은 하던 사람이 해야 가장 잘한다. 가정형편을 알고 그 사람을 쭈욱 오래 지켜봐야 비로소 제대로 된 의료활동을 할 수 있어. 내가 그 시골에서 의료활동을 했던 때가 전두환 대통령 시절이다. 지금은 더 좋아져야 하는 거 아니냐? 그것도 수도 서울에서 사는 늙고 아픈 이들이 의료혜택을 안정적으로 받지 못하고 있다는 게 이해가 안 된다. 이성 구청장님께 꼭 그분들 계속 일할 수 있게 해달라고 꼭 얘기해줘라."
정들자 이별이라고 평생 숱한 이별을 경험했을 독거노인들과 내내 소외를 경험했을 장애인과 외국인 이주민들에게는 10개월마다 자신이 마음을 함께 한 방문 간호사가 바뀐다는 것은 가혹한 이별의 반복이다. 매해 겪어야만 하는 이별이 그들에게는 눈물이다. 이는 의료활동에 있어서 인간적인 배려라고는 찾아볼 수 없는 가혹한 처사다.
누가 그 할머니들의 눈물을 닦아줄 수 있을까. 당장에라도 이성 구청장님께 편지 한 통 써서 보내야겠다는 마음으로 이 글을 쓴다. 우리 동네 방문 간호사님을 지키기 위해 내년에도 보기 위해 동네 할머니의 우리 엄마의 마음과 그 엄마의 딸의 마음과 그 딸의 품에 안겨 있는 우리 딸의 마음을 담아서 말이다. 이성 구청장님께 이 마음이 닿기를.
- 덧붙이는 말
-
필자는 구로구에 거주하는 주부로 어린 아이 둘을 키우고 있습니다. 우연히 동네 마실 갔다가 방문간호사 얘기를 듣고 이 소식을 널리 전하고자 방문간호사 분을 직접 따라나서 보았습니다. 구로구의 많은 분들이 이 사실을 알았으면 좋겠습니다. 그래서 이들의 고용이 보장되었으면 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