올해와 내년 선거를 앞두고 좌클릭을 내세우는 제 정당들의 행보와 언어의 성찬이 부산하다. 그 가운데 민주당(민주통합당)에 대한 최장집(고려대)의 기대는 각별하다. 그는 사민주의가 한국 진보파 이념의 ‘최대치’라며 그 범주에 민주당을 포함시킨다. 최장집은 민주당에서도 진보적 자유주의가 가능하며, 사민주의의 자유주의적 버전은 민주주의 틀 안에서 추구될 수 있다고 말한다. 아울러 만약 민주당이 사민주의 영역으로 갔을 때 진보적 정당의 설 자리는 틈새정당밖에 없을 것이라며 독일의 녹색당 등을 지목한다.(레디앙 신년인터뷰 참조)
그러나 오늘 진보대연합 구도에서 종종 회자되는 사민주의는 결코 우리의 미래가 될 수 없다는 논리도 엄존한다. 다음은 <노동자혁명당 추진모임> 발간 혁명(1월호, 창간준비5호)지에 실린 글 ‘자본주의 체제 위기와 사민주의’ 결론부이다. 글쓴이 김병효는 이 글에서 "신용경색과 은행권 위기, 그리고 이어서 국가부채 위기 등 자본주의의 역사적 위기의 초입 국면에서 진행되고 있는 현재의 사태들은 '유럽 사회모델'이 더 이상 고쳐 쓰는 것이 불가능할 만큼 망가졌다"고 사민주의를 매우 부정적으로 전망하면서 노동자계급의 역할을 강조한다.[한국인권뉴스]
그러나 오늘 진보대연합 구도에서 종종 회자되는 사민주의는 결코 우리의 미래가 될 수 없다는 논리도 엄존한다. 다음은 <노동자혁명당 추진모임> 발간 혁명(1월호, 창간준비5호)지에 실린 글 ‘자본주의 체제 위기와 사민주의’ 결론부이다. 글쓴이 김병효는 이 글에서 "신용경색과 은행권 위기, 그리고 이어서 국가부채 위기 등 자본주의의 역사적 위기의 초입 국면에서 진행되고 있는 현재의 사태들은 '유럽 사회모델'이 더 이상 고쳐 쓰는 것이 불가능할 만큼 망가졌다"고 사민주의를 매우 부정적으로 전망하면서 노동자계급의 역할을 강조한다.[한국인권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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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본주의 체제 위기와 사민주의(중에서)
한 시기의 종말
1950-60년대에 자본주의적 생산이 상승 추세를 타고 이윤폭이 커지면서 북유럽의 숙련노동자층에게 일련의 양보조치들을 가능케 했다. “유럽 사회모델”이 그것이다. 사민주의자들은 이제 이 장기호황의 행복했던 날들로 되돌아가는 꿈마저도 꾸지 않는다. 꿀 수도 없지만 꿀 생각도 없다.
이 시기에 공공주택과 의료, 교육 등 복지시스템의 대대적인 확충이 이뤄졌고, 노동조합은 교섭을 통해 지속적으로 임금인상을 이룰 수 있었다. 그러나 1970-80년대에 와서 다시 자본주의 위기 조건 하에서 이러한 개량들이 잠식되기 시작했다.
금융거품으로 빚어낸 호황에 기반한 세계화 시기(1922년-2006년)에 미약하게나마 진행되었던 경제회복 덕분에 사민주의는 많은 나라에서 만년의 짧은 호시절을 누릴 수 있었지만, 이 시기 사민주의의 개량주의는 1945년 이후 시기의 전성기 사민주의와는 뚜렷이 달랐다.
1990년대 중반 영국 노동당 토니 블레어가 채택한 “제3의길”이나 독일사민당 게르하르트 슈뢰더의 “신(新)중도” 노선은 신자유주의 경제정책에 투항한 것을 위장하기 위한 이데올로기적 포장에 지나지 않는다. 블레어의 제3의 길은 교육, 의료, 공공서비스를 기업이나 부자들에 대한 세금으로가 아니라, 신용 거품을 크게 일으켜서 지속하는 것이었다. “개혁”은 이제 “노동시장 유연화”를 뜻하는 말이 되었다. 노동기본권을 축소하고, 공공서비스와 기간산업을 시장화·사유화하고, 기업에 대한 감세와 금융 규제완화를 실시하는 것이 곧 제3의 길이었다.
사민주의는, 금융호황이 지속하는 한 그 핵심 유권자층(독일에서는 금속 제조업 대기업 노동자들, 영국에서는 공공부문 노동자들)의 역사적 성과물을 어느 정도는 보존해 줄 수 있었다. 그러나 이 과정에서 사민주의는 저임금 노동자나 임시직, 청년 노동자 및 이주 노동자들에게 부담을 떠넘겼다. 그리고 그 결과로 프랑스 독일 이탈리아에서, 행동에 나서라는 아래로부터의 압력에 노조 지도부들이 굴복하면서 대중적인 노동계급 저항이 거듭 터져 나왔다.
독일을 예로 들어보자. 독일사민당의 슈뢰더는 1998년 녹색당과의 연립내각을 통해 총리 자리에 올랐다. 16년 동안 권력 밖에 있었던 사민당이 이제 개혁조치들에 다시 착수할 것이라는 희망은 산산조각 났다. 반대로 슈뢰더는 2003년부터 “아젠다 2010”이라는 이름으로 연금과 실업급여를 낮추고, 노동시장을 유연화하는 일련의 공격에 착수했다. 슈뢰더 집권 당시에 실업자가 400만 명이나 됐다. 그리고 집권 말기인 2005년에는 그 수가 500만에 이르렀고, 실질임금은 멈춰 섰다.
2005년 9월 총선 패배 이후에도 독일사민당은 앙겔라 메르켈이 이끄는 중도우파 기민당과 연립정부를 지속했다. 2009년에는 1백년 내에 가장 낮은 23% 특표율을 기록하며 마침내 연립정부에서도 쫓겨났다. 사민주의가 독일 자본주의에 지대한 공헌을 했지만, 그 대가는 자신의 지지 기반을 까먹는 것이었다.
대가를 치르다
2007년 위기가 처음 출현한 때부터 지금까지 유럽의 사민주의 정당들은 패배에 패배를 거듭했다. 2008년 4월 이탈리아 사민주의 정당인 민주당(구 이탈리아공산당)은 부패한 언론 재벌 베를루스코니에게 또 다시 굴욕적인 참패를 맛보아야 했다. 무솔리니 시절 이후 처음으로 이탈리아 의회에 스스로를 공산주의자라고 말하는 의원이 한 명도 없었다. 복지국가 모델로 유명한 스웨덴 사민주의도 만년 집권당의 지위를 마침내 잃어버렸다. 사상 처음으로 보수당이 2006년에 승리하였고, 2010년에는 더 큰 표차로 연임에 성공했다.
2006년 총선거에서 네델란드 노동당의 핵심 지지층 1/4이 이탈하면서 간신히 20%대 득표를 넘겼다. 2010년 4월 헝가리에서 신자유주의 우익정당인 피데쯔(청년민주동맹)이 2/3라는 압도적인 득표로 헝가리 사회당을 몰아냈다. 2006년 42% 득표에 190석을 차지했었던 헝가리 사회당이 2010년 19.3% 득표에 58석으로 쪼그라든 것이다. 파시스트당인 조빅스당의 16.6% 득표, 47석에 근소한 차로 겨우 앞선 것이다.
최근에 독일사민당 당수인 시그마르 가브리엘은 슈피겔지와의 인터뷰에서 다음과 같이 말했다.
“우리 사민주의자들은 자본주의가 다시 한 번 길들여질 필요가 있다고 확신한다. 첫 번째는 우리는 독일에서 수십 년 동안 사회적 시장경제를 통해 그것을 이룩해냈다. 그것으론 더 이상 충분치 않다. 이제 우리는 그것을 유럽 전체에서, 나아가 전 세계에 걸쳐 해내야 한다. 이것은 공산주의라는 사이비 대안을 부활시키는 것이 아니라 사회적 시장경제를 다시 전취하는 것이다.”
그가 어떻게 글로벌 자본주의 호랑이를 길들이려고 하는지 - 그것도 장기호황기도 아닌 “긴축시대”에 - 에 대해서는 아무 이야기를 하지 않는다. 실제로 지금 유럽의 사민주의 정당들은 현 위기가 터지기 전 신자유주의가 창궐했던 당시 철저히 자본에 굴종하여 부역했던 경력이나 이념적 해체 상태(영국에서 블레어, 독일에서 슈뢰더, 프랑스에서 조스팽 시절)를 근본적으로 되돌려 놓고자 하는 그 어떤 기미도 보이지 않는다.
신용경색과 은행권 위기, 그리고 이어서 국가부채 위기 등 자본주의의 역사적 위기의 초입 국면에서 진행되고 있는 현재의 사태들은 “유럽 사회모델”이 더 이상 고쳐 쓰는 것이 불가능할 만큼 망가졌다는 것을 보여주고 있다. 이러한 상황이 선거에서 사민주의 정당에 대한 지지도를 떨어뜨리고 정치 일반에 대한 환멸 - 하락하는 투표율과 냉소주의로 표현되고 있는 - 을 낳고 있다. 이는 그리스와 이탈리아의 젊은층들 사이에서 아나키즘과 자율주의가 세를 키워나가는 것으로 드러나고 있다.
사민주의가 살아남을 수 있을까?
어쨌든 이후에도 사민주의는 지속할 것인가? 현재로선 그렇다. 여전히 사민주의는 그 과거의 헤게모니로부터, 그리고 노동조합 및 지방정부에 내린 그 물질적 뿌리들로부터 유래하는 거대한 권력의 비축고를 아직 가지고 있다. 특히 무엇보다, 대다수 나라들에서 사민주의 정당을 대체할 진지한 선거 대안이 부재하다는 점을 상기해야 한다. 그러나 그렇다고 해도 사민주의가 다시 집권할 수 있을까? 역설적으로 이것은 그들 지도부가 정색하며 싫어하는 것 - 전투적인 계급투쟁 - 에 달려 있다.
노동자계급이 쟁취한 지난 60년간의 사회적 성과물을 되빼앗고 파괴하려는 자본의 기도에 맞선 저항이 솟구쳐 이것이 지속가능한 총파업들 - 지난해 이집트와 튀니지에서 일어난 것과 같은 - 로 나아간다면 유럽의 보수우파 정부들을 끌어내릴 수 있을 것이다. 그 때, 노동자들에 의존하면서 자본가계급에 봉사하는 당들이 제 역할을 다시 한 번 수행하도록 호출될 것이다. 자신들의 노동계급 지지자들의 힘을 분산시키고 사기저하로 몰아넣어 자본주의 체제를 방어하는 그 역할 말이다. 또 한 번 배신당하지 않으려면 다른 대안을 찾아 나서야 한다. 투쟁 속에서 만들어지고 투쟁을 위한 대안인 사회주의 혁명정당 건설의 길로 나서자.
▒ 글: 김병효 (노동자혁명당 추진모임 회원)
[한국인권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