느닷없이 옷만 갈아입은 생소한 이름의 정당이 등장하는가 하면, 너도나도 ‘통합’이란 단어를 들이댄 정당들이 우후죽순처럼 솟아난다. 게다가 여야를 불문하고 ‘여성’을 다수 전면에 배치해 핑크빛으로 유혹하고, 여전히 이룰 수 없는 공약(空約)에 그칠 공산이 큰 선거용 공약(公約)만 무성한 가운데 온갖 위선으로 가득한 혹세무민 권력형 인간들의 행진이 가관인 시절이다.
그러나 이들의 실체는 블랙홀에 잘도 은폐된다. 삶이 고달파 신경 쓸 겨를 없는 다수의 노동자민중들은 소통부재의 언론으로 인해 이들이 기댄 구조와 실체에 접근할 수 있는 기회를 놓치기 쉬운 까닭이다. 그러나 노동자민중들이 현명해진다면 얘기는 달라진다. 여기서 우리는 자본가들을 추종하고 방어하는 학교가 아닌 노동자민중들이 주인인, 부담 없이 배울 수 있는 진보교육의 장을 요구하게 된다.
몇몇 단위에서 그런 성격의 강좌들이 열리고 있다. 다중지성의 정원, 노동해방실천연대 노동자정치학교, 사회실천연구소, 코뮤넷 수유너머, 프레시안·한국철학사상연구회, 전국학습지노조 재능지부 투쟁승리를 위한 공동대책위원회, 노동사회과학연구소, 레프트119 (준) 그리고 노동계 등에서 주최하는 강의들이 그것이다.
이들 단체는 사회과학과 다양한 형태의 인문학 강좌를 통해 대중과 만나려 하지만 문제는 내용이 아닌 다른 곳에서 발생한다. 수강료다. 7만원에서 30만원에 이르는 적지 않은 금액의 수강료를 지불하고 강의를 들을 수 있는 사람들의 범위는 애초부터 극히 제한적이기 때문이다. 정작 학습을 필요로 하는 돈 없는 노동자민중들의 접근이 어렵다면 이런 강의는 취지와는 별개로 효과적인 프로그램이라고 할 수 없다.
△ 재능시청농성장 거리특강 - 안재성 선생(소설가)의 "2012년 경성트로이카"
사회변혁을 지향하는 모든 강좌는 원칙적으로 무료로 진행되며 활짝 열리는 게 기본이다. 물론 단체들의 적자 구조와 임대료 등 경비지출이 큰 고민이긴 하지만 이 경우 돈을 낼 수 있는 사람들에 한해 스스로 후원금 등으로 낼 수 있게끔 다른 방안을 강구하는 게 바람직하다. 단체나 강사진들도 형편이 어렵지만 결의한 마음으로 노동자민중들의 삶을 염두에 둔다면 그 정도는 감내할 수밖에 없다.
좋은 사례가 있다. ‘전국학습지노조 재능지부 투쟁승리를 위한 공대위’가 매주 화요일 저녁 7시에 주최하는 거리특강「학습지 선생님들의 투쟁, 재능농성장에서 세상을 말한다!」는 벌써 13회나 진행됐다. 무료로 진행되는 이 현장 강의는 강사들이 길거리에서 장기투쟁으로 고생하는 특고노동자들·연대하는 노동자민중들과 나눔의 장을 펼치며 살을 에는 모진 추위를 이겨냈다.
사회실천연구소는 매주 금요일 저녁 7시에 주최한 ‘김수행과 함께하는 자본론’ 강좌는 총 7강중 3강을 마친 시점부터 매주 공개하고 있다. 이 강좌는 지난주에 마쳤으며, 강좌 전체를『레프트119(준) - 활동가 정신건강 긴급시스템』가 동영상으로 제작해 매주 1회 배포하고 있는 중이다. 사회실천연구소는 오프 강좌는 유료로 진행했지만 일정한 기간이 경과하면 온라인에서는 사실상 무료로 전환한 형태로 볼 수 있다. 레프트119(준)도 얼마전 "오세철과 함께하는 빌헬름 라이히" 영화 ‘유기체의 신비’(WR: Misterije Organizm) 무료강좌를 개최한 바 있다.
사상·정치 분야의 무료·공개강좌는 ‘서클주의’를 해체하는 부수적인 효과가 있어 즐겁다. 노동자민중들에 다가가는 열린 강좌·토론을 통해 사상의 시장에서 행해지는 선의적인 경쟁 앞에서는 자신들만의 음습한 분위기와 자족적 이론이 들어서기 어렵다. 그리고 이러한 운동의 소통 과정을 거치면 이런저런 단위들이 자연스럽게 재편되는 성과도 기대해 봄직 하다.
‘함께 가자 우리 이 길을’.. 노래만 부르고, 각자의 공간에 갇혀 서로 노려보면서 ‘돈 내고, 내 것만 들으러 와라’.. 라는 투의 고압적 자세를 지닌 강좌는 진보도 시대정신도 아니다. 지금 우리에겐 변혁을 향해 참여구조를 극대화 할 수 있는 웹2.0도 있다.
최 덕 효 (대표겸기자)
[한국인권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