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형록(인문학자)
살아가면서 누구나 여러 가지 ‘충격적인 사건’을 접하게 마련입니다. 당신에게는 2003년 10월 현재 어떤 사건이 뇌리를 떠나지 않는가요? 나에게는 세 자식과 젊은 엄마가 자살한 사건이 거머리처럼 망각의 흐름 속에서 버티고 있습니다.살려달라고 절규하는, 산고(産苦)와 희열 그 자체인 어린 자식 둘을 차례로 자유(?)낙하시키고 막내와 동반 투신한 여인. 이 여인의 행위를 두고 비정한 여자, 자식을 자신의 소유물로 생각하고 어린애의 인권을 전적으로 무시하는 여인이라고 평가하기도 합니다.
이런 판단은 일리 있는 한편 다른 중요한 차원, 자살이라는 선택의 자유의 이면인 ‘사회적 타살’의 차원을 놓치고 있는 것은 아닐까요. 약 1,350년 전의 계백장군의 비장(悲壯)한 행동이 생각납니다.
그는 나당 연합군과 황산벌에서 백제의 존망이 걸린 결전을 앞두고 패배를 예감했던지 자신의 칼에 자신과 동고동락했을 아내와 자식들의 피를 묻힙니다. 자신이 전사한 후 처자가 굴욕당하도록 내버려두고 가느니 차라리…. 황산벌과 ‘신자유주의의 내침(來侵)’, 포로가 될 처자와 유연한 노동시장거리에 내동댕이쳐질 자식들, 칼을 치켜든 계백장군의 눈동자와 자식을 치켜든 그녀의 눈동자….
그녀의 남편, 그녀의 형제자매들, 그녀의 동무와 친구들, 그들은 그녀에게 어떤 인정(人情)을 베풀고 사회는 어떤 인권을 베풀었을까요?
프랑스에서는 매년 16만 명에 이르는 사람들이 자살을 시도하며 이 가운데 남자 약 8,000명, 여자 약 3,000명이 ‘슬픈, 완전한 자유’에 이른다고 합니다. 자살자들은 대체로(약 80%) 우울증이나 정신분열증의 병력(病歷)을 지니고 있습니다.
인간에 대한, 인간의 정신―특히 감정―에 대한 배려에 있어서는 ‘절약정신’을 유감없이―이성적으로!― 발휘하는 당신과 나의 조국에서 우선적인 문제는 ‘우울증’일 것입니다. 프랑스에서 이 사회 병리적 증상이 노동을 할 수 없게 되는 제1의 의학적 원인들 중 한 가지라면 ‘배 째라!’고 시위하는 화물연대 노동자들의 ‘조국’에서도 대체로 그럴 것입니다.
프랑스의 DSM(정신병에 대한 통계학적 진단) Ⅳ(4)에 따르면 ‘우울증’의 주된 증상들은 다음과 같습니다.
― 사실상 항상 의기소침하며 경우에 따라서는 초조해함
― 사실상 항상 만사에 거의 혹은 전적으로 무관심해짐
― 식이요법을 하지 않음에도 체중이 감소함
― 거의 항상 불면증이거나 정반대로 지나친 수면
― 피로감 혹은 무력증
― 자기비하, 지나친 죄의식
― 되풀이되는 죽음에 대한 생각
― 직무수행에 있어서 사회적 기능의 동요
이중 최소 다섯 항목에 자신이 해당된다면 ‘우울증’으로 진단할 수 있습니다.
오늘날 첨단과학의 한 영역인 신경생물학에서는 뇌의 생화학적 변화, 그리고 유전학적 차원에서 우울증을 연구하고 있습니다. 우울증과 지나친 흥분(기쁨)이 교대로 나타나는 조울증과 관련해서 염색체 11번 그리고 최근에는 염색체 18번과 21번―인간에게는 염색체가 23쌍 있음―을 연구하고 있습니다.
생화학적 변화와 관련해서 주목받고 있는 것이 이른바 ‘HPA 축’이라고 불리는 뇌의 ‘시상하부―뇌하수체―부신’ 축 규제기능의 난조(難調)입니다. 이 체계는 스트레스에 대한 신체의 반응을 조절하는 것입니다. 즉 뇌의 시냅스(신경세포의 연접부)에 신경전달물질인 세로토닌이 감소, 고갈됨으로써 우울증이 유발된다는 것입니다.
이런 인과관계에 입각한 치료방식이 정신의약학적 처방이며 유명한 예가 Prozac 입니다. 그런데 프로작과 같은 의약품에 의한 화학요법에는 한계가 있습니다. 따라서 우울증과 정신분열증의 치료에는 정신의학과 정신분석학적 접근을 병행하는 경향이 뚜렷해졌습니다.
정신의학과 정신분석학적 접근에서 연구의 각광을 받고 있는 것이 바로 가족입니다. 한국에서도 자본주의체제가 심화되면서 대가족 제도가 붕괴되고 핵가족이 최초의 교육·문화적 단위의 중심이 되었습니다.
서구나 미국의 예에 비춰볼 때 전통적인 ‘엄한 아버지와 자애로운 어머니’형 가정교육이 해소되어 가면서 가부장적 억압에 따른 정신적 상처보다는 자아 이미지에 관련된 사랑이 받는 상처, ‘나르시시즘(자기애)적’ 상처가 우울증을 유발하게 될 것 같습니다. 요컨대 부부 간, 부모·자식 간의 민주적 대화와 애정의 관계를 형성하는 것이 중요하며 이런 관계가 결여될 때 아동과 청소년의 자아정체성의 건전한 형성에 장애가 초래되며 이들은 폭력적 충동이나 자살충동에 쉽게 영향을 받을 것입니다.
세계적으로 높은 이혼율, 입양아 ‘수출’ 세계 1위, 미국·호주·캐나다·뉴질랜드로의 ‘원정출산’, 제8학군과 관련된 강남 부동산 가격의 폭등, 세계 최대의 장시간 노동, 돈 100만 원을 사업상 푼돈으로 뿌리고 다니는 치외법권적 강도의 횡행, 민주를 교살해온 파시스트들의 광태, 이런 사회현상들이 상호 별개로 일어나는 것일까요? 이런 ‘아비규환’의 세상에서 인간이 취해야 하는 삶은 무엇일까요?
투자이민이나 기술이민으로 사회적 단물만 빨고 살아가려는 인간들이 적지 않은 듯합니다. 아니면 생존권이 위협당하면서 미래에 대한 불안감에서 게임중독이나 도박중독, 마약중독 속에서 ‘강제된 우울증’에 수동적으로 굴복하고 마는 삶일까요? 거의 모든 경우에 자살은 ‘치외법권적 타살’이며 그 범인은 자살자가 결코 선택한 적이 없는, 당대 사회가 아닐까요?
[최형록의 과학에세이] 36호(2003 송년호)
본지는 재야 인문학자 최형록 선생의 양해 아래 그의 에세이를 매주 토요일 시리즈로 싣는다. 에세이는 최 선생의 책 『이 야만의 세계에서 어린시절의 꿈나무를 키워나간다』(도서출판 다올 정문사)에서 옮긴 것으로 그의 철학, 역사, 과학, 정치에 관한 세계관을 접할 수 있다. 최 선생은 서울대 인문대학원에서 수학했으며 민중당 국제협력국장, 사민청 지도위원, 진보평론 편집위원을 지낸 바 있다. ‘모든 노동자의 건강할 권리를 위하여’를 영역했다. [한국인권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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