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형록 에세이] 장정에 나선 중국의 과학자 그리고 장자의 꿈

최형록(인문학자)

"‘냉전’을 정말 한방에 ‘지옥 불’로 만들어버릴 수 있는 ‘공포의 핵 균형’이 끝났으나 제국주의는 너무나 짧은 인생들을 급행으로 오락하듯 절멸시키고 있으며 그토록 그리스도교인-불교도-이슬람교도가 많아도 수십억 명이 밥에 눈멀지 않으면 안 되는 세계. 정보의 바다에서 익사하는 머저리들과 무지의 고원에 방치되어 있는 사람들이 공존하는 세계.."

  나폴레옹은 ‘동양에 잠자는 사자가 한 마리 있다. 이 사자는 언젠가 깨어나 세계에 포효할 것이다’라고 자신의 예감을 말한 바 있습니다. 이 사자란 인간의 권력과 부에 대한 놀라운 욕망을 상징하는, 실물과 같은 용마병을 자신의 무덤의 부장품으로 만든 시황제의 나라, 진(불어로 Chine), 중국입니다.

‘개와 중국인 출입금지’라는 모멸을 받으며 홍구 공원을 바라보아야 했던 중국은, 윤봉길 의사의 의거에 놀라기만 하던 그 중국은 상해를 비롯해서 ‘포동포동(浦東浦東 : 포동은 상해의 경제특구 중심지)해지면서 그 정력적인 모습으로 오늘날 세계를 놀라게 하고 있습니다.

  세계적으로 널리 인용되는 과학논문의 97.5%는 31개국에서 생산되는데 이 중 개발도상국으로는 인도, 브라질, 이란, 남아프리카공화국, 그리고 중국이 있습니다. 중국은 인용빈도에 있어서 1.56%를 차지하고 있을 뿐입니다. 벨기에 정도 수준에 그치는 것입니다.

주목해야 할 것은 이 사자의 엄청난 잠재력입니다. 중국의 과학기술 인력은 3,200만 명으로 단연 세계 1위입니다. 우리나라에서도 점점 늘어가는 당뇨병 환자들에게 필수적인 성분이 인슐린입니다. 이 인슐린을 화학적으로 합성하는 데 중국은 미국과 유럽을 앞질렀는데(1965년) 이것은 한 가지 예에 불과합니다.

  미국이 이라크에 제국주의적 침략전쟁을 감행한 중요한 이유는 석유의 탐욕스런 확보입니다. 그런데 이 석유시추 기술의 원천을 역사적으로 추적해 보면 고대 중국 기술자들의 공로를 인정하게 됩니다.

어디 그 뿐일까요? 영국이 ‘인도와도 바꾸지 않을 것이라는 셰익스피어’ ― 지극히 유럽, 특히 앵글로색슨 중심주의의 발상 ― 라고 오만하게 말할 수 있는 역사적 맥락에는 중상주의로부터 본격화된 비 유럽세계의 잔학한 정복, 해외원정이 있었는데 그것은 항해술이라는 기술적 뒷받침이 있었기에 실현되었던 것입니다. 많은 사람들이 모르고 있는 것은 이 항해술의 필수적인 부분들이 인도와 아랍세계, 그리고 중국으로부터 전파된 것이라는 역사적 사실입니다.


      


이 중 나침반은 중국의 발명품입니다. 최근 연구에 따르면 컬럼버스가 1492년에 아메리카 대륙을 발견하기 전, 1421년에 명나라의 정화가 이끈 ‘문화적 원정함대’가 이미 그것을 발견하였다는 것입니다. 영국적 경험주의 철학의 초석을 놓은 베이컨이 지적한 ‘세계 3대 발명품’은 이것과 인쇄술, 화약을 포함하는데 이 모든 것이 중국인의 노력으로부터 비롯한 것입니다.

  오늘날 세계는 과연 원효대사의 시대, 공자의 시대, 북아프리카 아시시의 성 프란체스코의 시대보다 얼마나 질적으로 평화스런 삶의 조건과 내용을 누리고 있을까요?

‘냉전’을 정말 한방에 ‘지옥 불’로 만들어버릴 수 있는 ‘공포의 핵 균형’이 끝났으나 제국주의는 너무나 짧은 인생들을 급행으로 오락하듯 절멸시키고 있으며 그토록 그리스도교인-불교도-이슬람교도가 많아도 수십억 명이 밥에 눈멀지 않으면 안 되는 세계. 정보의 바다에서 익사하는 머저리들과 무지의 고원에 방치되어 있는 사람들이 공존하는 세계.

  중국의 과학과 문명이라는 방대한 저작을 남긴 영국의 좌파 생화학자이자 과학사가인 ‘조셉 니덤’은 유럽을 신학적 정신주의와 기계론적 유물론 사이에서 우왕좌왕하는 정신분열증 환자라고 규정하면서 중국 문화에서 교훈을 찾습니다. 그가 동서양의 대화에 긴요한 사상으로 손꼽는 것은 도교와 유교의 전통입니다.

  장자는 “소유 없는 생산, 인격적 권위를 주장하지 않는 행동, 지배 없는 발전”을 대안으로 제시했습니다. 지식기반 사회의 개 충신이 될 잔꾀 ― 보통 궁리(窮理)라는 말을 쓰는데 이 단어는 글자 그대로 사물의 뿌리를 캐어 생각해 본다는 지극히 진지한 태도입니다. ― 만 부릴 것입니까? 왜 창조적 파괴자가 될 배짱을 튕기지는 않습니까?

이 경우에도 돈에 귀신이 붙은 베팅(betting)이라는 말을 잘 쓰는데  논리·언어지능은 좀 높으나 그 됨됨이가 ‘돈 파리’ 같은 놈들의 경제 ‘발전’ 논리 때문에 뿌리혹박테리아와 같은 미생물이 죽어 둔한 인간의 오감으로는 포착할 수 없는 생태계의 균형이 서서히 파괴되는 발전은 도대체 누구를 위한 것일까요?

  니덤은 왜 1세기~15세기 사이에 중국 문명은 자연 지식의 획득 그리고 인간의 실용적 요구에 그것을 적용하는 데 있어서 서양보다 훨씬 더 능률적이었는데 서양과 같은 근대과학이 발흥하지 못 했는가 라고 묻습니다. 그의 답은 중국적인 ‘관료제적 봉건주의’라는 것입니다.

여기서 이것을 논할 수는 없습니다. 다만 미국 캘리포니아 주립대 버클리 분교의 신경생물학 교수이자 중국 과학아카데미의 상해 소재 신경과학연구소장인 ‘무 밍포’가 과학 발전에 장애인 것이 경제적인 것이라기보다는 ‘지식 그 자체의 추구, 문제제기의 습관’이 부족한 것이라고 강조하고 있음에 주목할 필요가 있습니다. 한국은 어떨까요?

  아인슈타인은 자신의 남다른 점이 지능이 아니라 ‘호기심’이라고 말하고 있습니다. 남한사회의 부모들은 아동들의 ‘호기심 어린 눈동자’를 얼마나 존중하고 있을까요?


[최형록의 과학에세이] 41호(2004-10/11월)  

본지는 재야 인문학자 최형록 선생의 양해 아래 그의 에세이를 매주 토요일 시리즈로 싣는다. 에세이는 최 선생의 책 『이 야만의 세계에서 어린시절의 꿈나무를 키워나간다』(도서출판 다올 정문사)에서 옮긴 것으로 그의 철학, 역사, 과학, 정치에 관한 세계관을 접할 수 있다. 최 선생은 서울대 인문대학원에서 수학했으며 민중당 국제협력국장, 사민청 지도위원, 진보평론 편집위원을 지낸 바 있다. ‘모든 노동자의 건강할 권리를 위하여’를 영역했다. [한국인권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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