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코뮌영상] 오세철 선생 고희 출판기념회 북토크 - 김진업, 오세철

『술, 학문, 예술, 혁명의 사중주』

『비판적 교양인을 위한 오세철 강의록』


북토크: 오세철, 김진업
일시 및 장소: 2012. 11. 17(토) 16시 연세대 상경대 상경관 B120호
주최: 연세대 오세철 교수 제자들





『술, 학문, 예술, 혁명의 사중주』
(오세철 지음, 도서출판 빛나는 전망, 2012)

  자서전을 언제쯤 쓸까 하는 생각을 한 적이 있다. 일흔이면 너무 이르다고 생각했다. 아직 건강에 큰 문제가 없으니 앞으로 십년 더 열심히 학문과 예술과 혁명운동에 헌신하다가, 팔순이 돼서 살아온 과정에 대한 기록을 남기겠다고 작정했다. 그렇다면 그런 글을 쓰기 전에 지금쯤 중간점검을 하는 것이 순서라고 보았다. 「술, 학문, 예술, 혁명의 사중주」를 연주할 만큼 여러 경험과 만남이 있었고, 진솔하게 그런 이야기를 엮어 내보이고 싶었다.

  술에 관한 한 주위에서 심각한 충고를 받을 만큼 여전히 술을 마시고 있다. 아직도 이 나이에 다음날 아침까지 마실 때가 종종 있다. 물론 술을 마시기 위해서가 아니다. 공식 회의를 끝내고 동지들과 뒤풀이에서 못다한 이야기를 나누기 위해, 연극 공연 후 관람 온 사람들과 새로운 만남과 관계 지속을 위한 흥겨운 자리를 하다 보니 시간이 가는 것을 잊는다. 나를 아끼는 모두는 앞으로의 활동을 위해 혁명의 무기인 신체를 잘 돌봐야 한다고 걱정이 태산 같다. 그런데 술자리가 활동의 중요한 부분이니 어쩌랴.

  학문도 그렇다. 연세대 명예교수는 만 칠십 세까지 강의를 할 수 있다. 이 글이 나오면 1년 정도 남았다. 요즈음 학생들은 설익은 운동권보다 머리가 굳어 있지 않다. 맑스주의 심리학, 사회주의 혁명과 공산주의를 다루는 글과 책들을 진지하게 받아들여 토론하고 고민한다. 대학교에서의 학생과의 만남도 중요하지만 노동자들과의 토론은 더 소중하다. 여전히 번역해야 할 값진 글과 책들이 산더미처럼 쌓였고, 연구해야 할 주제도 많다. 학자와 연구자로서 특히 맑스주의자로서 할 일이 많다. 나 혼자 감당 못할 일들을 젊은 연구자 동지들과 함께 감당해야 한다. 중간 점검은 반드시 필요하다.

  연극운동에 대한 관심과 실천은 늦깍이로 시작되었다. 배우로서 무대에 서는 일 뿐 아니라 사회주의 연극운동의 기틀을 다지는 일, 보다 넓은 사회주의 문화예술 운동을 깊이 있게, 폭넓게 전개하는 것도 중차대한 일이다. 사회비판적이고 혁명적인 관점과 이론을 지닌 젊은 예술가의 양성도 시급한 문제다.

  그러나 모든 것은 혁명운동으로 귀결된다. 혁명적 맑스주의 운동의 실천으로 부르주아 법정에서 국가보안법으로 유죄판결을 받고 대법원 판결을 기다리고 있지만, 이 실천은 하나의 조직사건으로 끝나지 않고, 죽을 때까지 이어질 물질적 필연성을 지닌 혁명운동이므로 지금까지 내가 걸어온 역정을 중간점검하고 미래를 계획하고 결단하는 것이 이 시점에서 필요하다.

  이 글은 3부로 구성된다.
  제1부는 내가 살아온 길을 반추하며 술, 학문, 예술, 혁명에 얽힌 이야기를 담는다. 개인사를 중심으로 하지만 내가 본 운동의 역사이기도 하다.
  제2부는 술, 학문, 예술, 혁명운동 속에서 만난 동지들에 대한 이야기다. 어느 한 가지 영역에서의 만남을 제외한다. 실제 이름을 쓰겠다.
  제3부는 제2부에서 밝힌 동지들에게 내가 쓴 내용을 보내서 그들이 나와의 만남을 어떻게 기억하고 평가하는지를 알아보는 과정이다. 답변을 주는 글들만 모아서 실으려고 한다.

(서문 중에서)



            


『비판적 교양인을 위한 오세철 강의록』
(오세철 지음, 도서출판 빛나는 전망, 2012)

   파시즘도 대중의 사회주의적 열망에 부응하기 위하여 계급타파를 주장했다. 여기서 우리는 맑스주의가 그 당시 독일 사회에서 실패한 이유를 조금 더 설명할 필요를 느낀다. 맑스주의는 심리학이 아니기 때문에 인간의 불안과 고통의 사회적 기원에 대한 이론을제시하지 못했으며, 모순의 구조를 갖는 비성숙한 대중의 성격구조의 특성을 이해할 수 없었다. 곧, 사회적 생산수단의 사회화는 대중이 심리 구조적으로 성숙한 후, 스스로 자신을 관리하는 책임에 대한 의식이 있을 때까지는 성공할 수 없다는 사실을 내다보지 못했던 것이다.

  성격구조는 자본가에게만 국한되지 않는다. 자유주의적 자본가도 있고 반동적 노동자도 있다. 존재가 의식을 결정한다는 맑스의 명제는 두 가지 질문을 남기고 있다. 첫째, 그것이 어떻게 일어나며 인간의 두뇌에 무엇이 일어나는가 하는 것과, 둘째, 그렇게 형성된 의식(성격구조)이 어떻게 다시 경제과정에 반응하는가이다.

  라이히는 소련에 진정한 사회주의가 존재하지 않았다고 보았다. 엄격한 의미의 맑스의 개념으로 보면 소련은 경직된 국가자본주의일 따름이다. 한 마디로 그것은 사용경제가 아닌 교환경제, 임노동, 잉여생산으로부터 나온다. 그 잉여가 진정한 사회가 아닌 국가에 귀속되거나 개인에 귀속된다면 그것은 모두 자본주의이다. 따라서 소련은 대중이 ‘비합리적’으로 유린되고 권위에 대한 갈망이 존속하는 한 파시즘 구조로 남아있게 된다.

  사회주의는 국제적 규모에서만 그 의의가 있다. 파시즘 또는 스탈린주의 같은 이른바 ‘국가사회주의’는 넌센스이며 대중기만이다. 국제적 차원에서 경제의 흥성도 있었으나 이에 상응하는 인간의 성숙한 성격구조나 이념을 수반하지 않았기 때문에 독일의 히틀러, 이탈리아의 무솔리니, 프랑스의 도리오와 라발, 러시아의 스탈린, 핀란드의 아네르하임, 헝가리의 호시 같은 민족주의적 독재자를 양산한 것이다. 붉은 파시즘으로서의 스탈린주의는 조직화된 정서적 전염병(emotional plague)이며 인간의 행복과 복지를 파괴한다. 진정한 맑스주의는 ‘사회’라는 말이 ‘국가’로 대체되고 국제적 인류가 민족적 애국으로 대체되었기 때문에 이미 죽은 것이다.

  프로이트는 본능이 승화되지 않으면 문명 발전이 없다고 했다. 그에 있어서 문명은 인간을 자연에 대립시켜 보호하고 그 상호관계에 적응하게 하는 기관으로 보고 그를 통하여 인간성을 예술적이고 이념적인 보다 높은 심리적 활동으로 향할 수 있다고 보았다. 그러나 라이히는 프로이트나 신프로이트학파를 넘어서서 사회와 인간의 깊은 구조를 발견하는 데서 그 해답을 찾고 있다. 그는 맑스주의 의식의 개념을 따랐으나 거기에 그람시의 문화적 헤게모니 이론, 곧 지배계급의 이념이 사회기관에 의해 전수됨으로써 지배이념이 되는 선진자본주의 사회에서의 심리적 억압을 다루고 있다.
  
  그가 보는 역사, 사회, 인간에 대한 생각을 정리하면 다음과 같다.

  첫째, 객관적 사회과정과 그 과정의 주체적 경험은 분리되어야 하며 각각의 과정은 스스로의 법칙에 따르고 다른 에너지 원천을 가지고 있다.

  둘째, 지도자는 항상 대중의지, 곧 평균적 인간 구조의 반영이다. 진보적인 동시에 반동적인 구조를 가진 평균적 인간의 모순과 마찬가지로 지도자의 사고와 행동은 자기모순적이다. 이러한 구조는 가족 속에서 준비되고 국가구조 속에서 그 효과가 지속된다. 그리고 가족의 문제, 곧 성적 조건의 문제는 기술의 문제보다 모든 면에서 더 오래됐고 중요하다. 이는 가족의 변화가 세계의 인간기술 정복의 변화에 전적으로 의존한다는 사실에도 불구하고 그렇다.

  셋째, 경제와 이념은 단순한 직접적인 관계를 맺지 않는다. 원칙적으로 경제는 이념을 결정하지만 그 반대의 경우도 존재한다. 더 나아가서 그들의 발달 과정에서 서로 모순될 때도 있다.

  넷째, 기술적으로 말해 역사의 원동력은 생물학적 에너지, 오르곤 에너지이다. 이는 성적 감정과 행복을 위한 욕망으로 표현되는데 정치, 사회, 경제적 조건의 제약을 받는다.

다섯째, 공동사회의 생물학적 에너지의 표현이 그 제약을 넘어서면 러시아에서 본 것처럼 퇴행이 불가피하다. 파시즘에서는 대중의 에너지가 정신적, 물질적 참상을 가져올 만큼 퇴행했는데 그 자신의 의도와 목적을 깨닫지 못했기 때문이다.

여섯째, 독일사회에서 진보적 과정에 대한 깨달음이 없었음에도 불구하고 보수주의와 정치적 반동세력이 대중의 에너지를 그들의 이해에 맞게 할 수 있었는데 이것이 파시즘을 구성하였다.

물론 라이히가 파시즘의 비합리성에 대항하기 위하여 대중정치운동 대신 성정치의 실천을 함으로써 깊은 구조의 문제를 해결하는 대신 개인에 초점을 맞추는 안이함을 보인 것은 안타까운 일이다. 그러나 그의 사상과 이론의 공헌은 인간의 생물학적 욕구구조에 대한 깊은 인식, 그것의 억압으로 나타난 대중심리구조의 반역적이고 반동적인 구조, 다시 이와 엇물리는 사회, 경제, 정치구조와 이념의 역동적 체계를 총체적이고 분명하게 제시했다는 점일 것이다. 공산주의를 향한 사회변동이 성숙한 인간구조의 전제 없이는 반동적 파시즘과 반혁명으로 탈바꿈할 수 있다는 사실은 앞으로의 세계혁명의 총체적 전략을 위한 역사적 교훈이 될 것이다.

(‘계급의식과 파시즘의 계급무의식의 대립구조’ 중에서)



[저자] 오세철은?
1943년에 태어나 연세대학교를 졸업했다, 노스웨스턴(Northwestern) 대학교 대학원에서 조직행동, 사회심리학, 사회학 분야의 공부를 하고, 1975년에 조직행동으로 박사학위를 받았다. 현 연세대 명예교수로 있으면서 ‘사회심리학’, ‘한국사회변동과 조직’ 등의 강의를 맡고 있다. 민중회의, 민중정치연합, 정치연대, 노동자의힘(준) 대표, 사회주의노동자연합 운영위원장을 역임했고, 현재 국제코뮤니스트전망, 사회실천연구소에서 활동하고 있다.  
주요 역서로는 「문화사회학방법론」(1984), 「파시즘의 대중심리」(1987), 「조직사회학」(1981), 「자본주의의 쇠퇴」(2009, 「소련은 무엇이었나」(2009)가 있고, 저서로는「맑스주의, 조직의 정치경제학, 그리고 한국사회변혁」(1993), 「21세기 자본주의와 한국사회변혁」(2001), 「사회주의와 노동자정치」(2004), 「다시, 혁명을 말한다」(2009),「좌익공산주의」(편저, 2008) 등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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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인권뉴스 2012.11.18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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