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형록 詩] 모가지가 비틀려져 슬픈 짐승이여




옛날 옛적 노자가 이르기를
道라고 말할 수 있는 것은
常道가 아니며
名이라고 이름붙일 수 있는 것은
常名이 아니다
그런데 옛날에 수탉 한 마리가
大道無門을 입버릇처럼 말했다.
시간이 흐르자 그것은
상도가 아님이
맑은 물에 비친 그림자처럼 드러났다.

새마을의 어두움 속에서
그 수탉은 민주주의 꼬끼오하다가
배신을 모이로 먹고 자란 칠면조에게
모가지가 비틀렸다
그래도 새벽은 온다 꼬끼오하면서
닭 모가지를 비틀었던 칠면조는
믿었던 도끼에 아예
목이 잘려버렸다

목멱산 아래에서 소동이 벌어져도
라일락 향기 날리고
호랑나비 팔랑거리는 봄은 왔다
자욱한 안개 속에서
팔공산 쪽에서 온 까마귀가
북한산 주변을 돌아다녔다
이내 진한 붉은 냄새가
라일락 향기를 쫓아버렸다

봉황이 되는 꿈을
모이로 먹고 자란
모가지가 비틀려진 수탉은
마음을 비웠다 그럴수록
봉황이 되고자하는 식욕이
허전함을 먹어치워 나갔다.
봉황이 눈앞에서 아른아른
아지랑이처럼 잡힐락 말락

마음은 못비우면서
쓸개만 비운
모가지가 비틀려진 수탉은
새끼 닭들을 이끌고
봉황이 되는 꿈길을 떠났다
새벽을 영원히 잊어버린 수탉이 되어
大道(盜)無門
큰 도둑이 못 넘을 문이 있으랴

옛날옛적 노자가 이르기를
그런 까닭에
항상 욕심이 없으면(無慾)
사물의 오묘함을 볼 수 있고
항상 욕심을 부리면(有慾)
사물의 그 겉보기만을 볼 수 있다.


본지는 재야 인문학자 최형록 선생의 양해 아래 그의 에세이를 매주 토요일 시리즈로 싣는다. 에세이는 최 선생의 책 『이 야만의 세계에서 어린시절의 꿈나무를 키워나간다』(도서출판 다올 정문사)에서 옮긴 것으로 그의 철학, 역사, 과학, 정치에 관한 세계관을 접할 수 있다. 최 선생은 서울대 인문대학원에서 수학했으며 민중당 국제협력국장, 사민청 지도위원, 진보평론 편집위원을 지낸 바 있다. ‘모든 노동자의 건강할 권리를 위하여’를 영역했다. [한국인권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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