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록으로 본 대선 주변 스타들 & 씨 뿌리는 사람들
시시각각으로 다가오는 선거시즌. 대한민국 국민들은 지난 실망에서 경험한대로 말은 “그 놈이 그 놈”이라고 욕하면서도 몸은 TV등 대중매체에 갇혀 선거라는 블랙홀에 여지없이 빠져든다. 특히, 대선을 만나면 사람들은 대권을 쥔 대통령이 마치 이조시대 임금님의 권력인 양 온갖 기대로 충만한데 이른바 오피니언 리더로 불리는 스타급 인물들도 오십보백보인 경우가 많다. 그 중 18대 대선 주변에서 눈에 띄게 흥미로운 캐릭터 세 사람은 단연 김지하, 김용옥, 진중권이다.
여성대통령
첫 번째는 ‘여성대통령론’을 주장한 김지하의 최근 어록.
“박정희 대통령이 돌아가셨다는 발표를 듣고 ‘인생무상’ ‘안녕히 가십시오’ ‘나도 곧 뒤따라갑니다’ 세 가지 생각이 들었다. 미움은 그날로 다 풀었다.. 부모님 둘 다 흉탄에 잃고 18년 동안 얼마나 큰 내면의 성장을 이루었는지 잘 알 수 있다.. 집사람이 ‘여자 몸으로 태어난 사람은 엄마, 부인 노릇 다 할 수 있다’라고 했다”, “여성 리더십이 필요한 시대.. 무엇보다 이 시절이 여성의 시대.. 박 후보는 아버지 박정희 대통령보다 어머니 육영수 여사를 닮은 부드럽고 따뜻한 정치를 해야 하며, 여성 대통령론을 내세워야 한다” (동아일보 12.15, 조선일보 11.8)
김지하는 시인으로 지난 시절 잘 알려진 민주인사였으나, 1991년 조선일보에 쓴 '젊은 벗들! 역사에서 무엇을 배우는가:죽음의 굿판을 당장 걷어 치워라'라는 글로 진보진영에서 발생한 분신자살을 강하게 비판, 결과적으로 노태우 정부를 도왔다. 이후 2007년에는 대선 전 손학규를 한나라당에서 탈당하도록 권유해 민주당에 입당케 하는 역할을 했으며, 2012년 대선에서는 '여성주의'를 내세워 박근혜 새누리당 후보를 지지한 셈이 됐다. 생명사상에 경도된 김지하가 단학에 빠져 단학선원의 창시자 이승헌과 사제관계를 맺었다가 악연으로 끝난 이유에 대해서는 아직도 논란이 많다.
용비어천가
두 번째는 ‘정권교체’를 지상명령으로 앞세운 김용옥의 기고문(일부).
“깨어난 4천만의 유권자들이여, 남녀노소 한 사람도 남김없이, 모두 투표장으로 가라!.. 남김없이 혁명의 대오에 어깨를 엮어라!.. 기업과 정부권력의 유착, 자본의 끝없는 폭리확대와 공무행정의 부패의 연환(連環)은 대중민생의 희생을 담보로 하는 것이다. 이 희생에는 이제 부르죠아와 프롤레타리아의 구분도 의미가 없다. 자산가, 임금노동자를 불문하고 모든 대중이 기만당하고 있는 것이다.. 더 이상 속지 말자! 민생이 아닌 도덕의 기강을 바로잡자! 그리하면 민생은 저절로 해결된다.. 그렇다면 도덕을 어떻게 바로잡는가? 그 너무도 쉬운 해결방안이 그대 손에 쥐어져 있다. 부패와 사악의 정권을 바꾸면 된다.” (프레시안 12.17)
김용옥은 고려대 재임 당시인 1986년 ‘한국의 오늘을 사는 한 지성인의 양심선언’으로 교수직을 사퇴했다. 1990년에 ‘노태우 대통령께 아뢰옵니다’(신동아 1월호)에서 “나는 나의 아내를 사랑한다. 그런데 나는 이순간 노태우를 더 사랑한다.. 사랑하는 나의 셋째형 뻘 노태우대통령 형님이시여!.. 민중과 학생의 욕을 얻어먹더라도 저는 당신의 '아름다운' 6공의 신화를 만드는데 일조를 하고 싶습니다.”라고 했고, 2003년에는 ‘도올기자가 만난 사람-노무현 대통령(문화일보 4.15)에서 “노대통령을 사랑하고 지원하는 많은 보이지 않는 목소리가 있습니다. 그리고 저 자신도..”라며 용비어천가를 왕복했다.
변 신
세 번째는 문재인 선거유세에서 ‘인품론’을 주장한 진중권의 찬조연설(일부).
"문재인 후보 참여정부시절에 저한테 욕많이 먹었습니다. 하지만 인품에 반해 지지하러 나왔습니다.. 5년동안 행복하셨습니까? 1% 그러신분 계셨지요. 1번찍으세요. 5년동안 힘드셨습니까? 2번 문재인 99%를위한 후보 찍으십시오" “(지난 16일 대통령 후보 TV토론을 언급하며) 1등은 문재인, 2등은 의자, 3등은 말 안 하겠습니다.. 내가 이 자리에 설 줄은 몰랐습니다. 나는 1987년 단일화 실패 이후로 단 한 번도 민주당 후보를 찍은 적이 없습니다. 하지만 문재인 후보는 민주당만의 후보가 아닙니다. 국민후보입니다”
진중권은 2003년 8월 7일 포천지역에서 훈련을 하고 있던 미군의 신속기동여단 스트라이크 부대의 훈련을 저지하기 위해 한총련 소속 학생 12명이 태극기를 두르고 미군탱크에 오르자 “왜 인공기를 걸지 못하느냐!”며 감옥 가는 학생들에게 부적절한 비난을 퍼부은 사람이다.
2005년 12월 6일에는 SBS전망대 칼럼을 통해 “성매매 행위를 금품수수가 있었거나 도덕적 판단에 따라 처벌하는 것은 논리적 근거가 없다”는 판결(수원지법 성남지원 형사2단독 정종관 부장판사)에 대해 "성매매에 금품수수가 수반된다는 것은 그 행위가 경제적 필요에 의해 여성에게 강요된 것임을 함축하고, 성매매의 불법화는.. 성매매를 사실상 강요된 성행위로 간주하자는 새로운 사회적 합의"라고 비판하면서 금지주의인 성매매 특별법에 적극 동의했다. 이에 대해서는 2004년 10월 15일 서프라이즈 지승호의 인터뷰를 보면 그의 해바라기형 말 바꾸기가 그대로 드러난다.
(지승호): 유시민씨도 “성매매 자체가 불법이다 보니 매춘여성들이 ‘정당한 노동의 대가’를 받도록 경찰이 도와주는 것도 불법일 수밖에 없다”고 말하고 있습니다. 김강자씨도 ‘제한된 공간에서 매매춘을 인정하고 관리하는 규제주의’라고 강조하면서 공창이란 단어가 잘못된 것이라고 말하기도 하는데요.
(진중권): 깊게 생각해보지 않았습니다. 둘 다 논리가 맞고, 장단점이 있다고 봅니다. ‘도덕적 명분이냐? 현실이냐?’겠죠. 전 양쪽에 ‘대안을 갖고 있느냐?’ ‘규제주의로 착취를 없앨 수 있느냐’고 묻고 싶습니다. 개인적으로는 그것이 가능한, 하나의 고려해볼만한 해결책이라고는 봅니다.
그는 또 2008년 4월 제18대 총선 직후 “서울에서는 진보신당의 정당투표가 앞섰고, 동시 출마한 곳에서도 진보신당의 후보들이 대부분 더 많은 표를 받았더군요. 이것이 미래의 경향을 보여준다고 봅니다. 게다가 다 아시겠지만, 풍향계와 비슷한 역할을 하는 지식인 사회의 여론도 이미 진보신당 쪽으로 기울었습니다.”라며 입당, 활동하다가 2010년 6.2지방선거 후 ‘민주대연합’을 위해 중도 사퇴한 심상정에 대한 당내 비판과 관련 탈당했다. 그의 이러한 행보는 시류(여론)에 영합하는 나약한 지식인의 전형으로 문재인과의 만남 또한 같은 맥락에서 이해 가능하다.
계 산
그래도 얼핏 괜찮은 지식인인 것 같은 김지하, 김용옥, 진중권이 왜 이렇게 변덕스럽게 갈짓자 걸음을 하고 있는 것일까. 이들이 판단을 잘못해서? 그건 아닌 듯하다. 이들은 그냥 오락가락하는 게 아니라 대선을 계기로 재편되는 권력의 향배에 맞추어 자신의 어떤 목적을 위해 나름 합리적인 관계(배팅)를 맺고 있는 게 아닐까(그게 아니라면 다중인격처럼 정신감정이 필요할 수도 있다). 사실 이 세 사람 외에도 선거시즌에 그럴 가능성이 있는 인간/단체들은 권력 언저리에 무수히 많다. 따라서 이들이 딱히 비난받아야 할 이유가 있다면 그것은 여론에 특정 후보에 대한 영향력을 행사하는 데 비중이 상대적으로 크다는 정도쯤이 될 것이다.
단체의 경우도 비슷한 현상이 있다. 이런저런 공익을 내세우지만 사실상의 이익집단이 되기 쉬운 ‘부문운동’의 권력화 현상도 눈여겨 봐야한다. 예컨대 권력에 안착한(하려는) 여성계나 환경운동의 경우, 각종 정책사업을 통해 정부 및 지자체 등에서 받을 수 있는 기본적인 예산은 어느 정도 확보(가능한) 상태이니 어떤 후보가 당선되더라도 별 문제가 없다. 다만, 정책 선호도에 따라 누가 더 많은 돈을 줄 수 있느냐에 관심(사무실 유지비, 상근자 확대, 활동비 등)을 기울일 것이다. 더욱이 정책 또한 후보들에게 이미 경쟁적으로 ‘여성/성’이나 ‘생태/환경’을 크게 부각시켜 놓았기에 ‘여성대통령’이 되건 ‘정권교체’가 되건 이들은 쓴소리 피하고 표정관리만 잘하면 안전하게 내일이 보장된다.
씨 뿌리는 사람들
사실이 이러하니 운동식으로 터놓고 말하자면, 결국 선거는 부르주아들의 ‘이권놀음’ 잔치라는 데 이르게 된다. 민주주의를 표방한 선거가 교묘한 통치메카니즘으로 기능해 벼랑의 민생고에 허덕이는 대다수 노동자민중들은 이룰 수 없는 환상만 간직한 채 습관처럼 표만 찍다 날 새는 ‘1일 주권’ 기계로 전락하고 만다는 얘기다. 그래서 이번 18대 대선에서 ‘노동자대통령 김소연 후보 선거투쟁본부’와 같이 노동자들 스스로가 정치의 주체가 되어야 한다는 대안적 정치운동이 일어난 것은 각별한 의미가 있다. 국내 선거판에서 이렇듯 취약한 조직에다 없는 돈을 십시일반 모은 소수의 현장노동자들과 활동가들이 선거기간 내내 전국의 투쟁현장에 연대하며 앞장서 펼친 ‘씨 뿌리는 운동’은 아마도 이번이 처음이 아닌가 한다.
예전에 진중권과 『아웃사이더』에서 함께 한 박노자와 홍세화는 진씨의 변신과 달리 여전히 ‘씨 뿌리는 운동’에 전념하고 있다. 15일 오후 노동자대통령 김소연 후보 광화문 정치대회 후 청와대 앞 유세가 경찰에 의해 저지당하자 인근 도로에서 행한 두 사람의 발언(요지)을 보면 이들의 일관성과 진정성을 신뢰하게 된다.
[박노자] “아무리 정권교체를 한다고 해도 우리로서 나빠지거나 아니거나 더 나아질 게 없습니다. 정권교체가 아니라 체제교체를 해야 합니다. 노동자 민중이 더이상 정치적 시혜의 대상이 아니라 정치의 주체가 되어야 합니다. 김소연 후보는 노동자의 정치 주체화를 위해 나온 것이고, 후보가 이기고 지는 것과 관계없이 100년이 걸릴 과제인 것입니다. (북유럽의 사례를 들며) 노동자 민중 대통령을 바라는 우리의 요구는 유토피아적인 것이 아니라 극도로 현실적인 것입니다.”
[홍세화] “대선을 맞아 박근혜, 문재인 대통령 등 모두가 민생을 말합니다. 지금까지 민생을 말하지 않은 대선후보도 없습니다. 대선 후보가 될 때만 말하는 민생일 뿐입니다. 노동자가 일터에서도 존엄한 존재일 때 그야말로 인간다움의 완성이므로, 가정과 배움터에는 물론이고 특히 일터에서 끊임없는 불안 속에서 살아가는 우리가 왜 자본주의를 넘어서야 하는지, 왜 정권교체가 아니라 체제를 교체시켜야 하는지, 왜 김소연 후보에게 힘을 실어야 하는지, 그 정당한 물음 앞에 앞으로도 같이 하겠습니다.”
혼돈 극복하기
하나 더 추가하자면, 운동진영을 향해 ‘씨 뿌리는 운동’에 대한 과제도 제출되고 있다. 노동자혁명당 추진모임(노혁추)은 대선특보 6호 <김소연 후보를 지지하는 것은 스스로 투쟁과 정치의 주체로 서겠다는 선언이다> 제하의 글에서 “‘선투본’은 처음부터 기존 부르주아 선거 아래에서 자신을 누군가로부터 선택을 받아야 하는 대상으로 삼기를 거부했”으며 고로 “‘선투본’은 자신이 자기의 대상”이라고 규정하고, 따라서 “단지 둘 중 하나를 고르는 문제를 넘어 스스로 주체로 서겠다는, 주체로 거듭나겠다는 ‘자기 선언’으로서의 선택”일 때 “‘야권연대/후보단일화/정권교체’가 낳고 있는 온갖 혼란과 혼돈을 실질적으로 극복할 수 있다.”고 촉구했다.
*글: 최덕효 (인권뉴스 대표)
[한국인권뉴스 2012.12.18]