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형록 에세이] 노병은 사라지지 않고 여명으로 인도한다

최형록(인문학자)

故 하종구 선생님의 靈前에

決氣 어린 눈빛, 다부진 앉음새. ‘南部軍’을, 그 화신들 중 한분을 대면하고 있습니다. 1992년 사회민주주의 청년연맹 강당 뒤편 조그만 방에서. 사민청 정치학교의 강의를 끝낸 직후 열기가 가시기 전, 하 선생님과 대화하면서 혁명을 향한 열정은 한여름 태양 같이 고조됩니다.

남한 변혁운동의 투사로부터 생생한 체험을 전수받으면서 소중한 교훈을 얻겠구나라는 기대감은 지리산 천왕봉처럼 솟구칩니다. 나의 “역사의 광장”에서 “자각한 민중”의 목소리가 메아리치는 것입니다. 정정당당한 혁명의 고동이 以心傳心 되는 것입니다. 혁명투쟁의 뇌성벽력이 뇌신경세포를 통해서 전신 구석구석 강렬한 충격파를 보냅니다.

5.16 쿠데타 45주년을 생각하며 하산 중 선생님의 訃音을 들었습니다. 바로 어제 불현 듯 선생님 모습이 떠올랐는데 그렇게 가셨습니다. 결기 어린 모습과 함께 카랑카랑한 목소리, 천진스런 미소, 할아버지의 자상함. 이 모든 것이 이제 지인들의 가슴 속 사진첩 속에나 남아있게 되었습니다.

지난 일들이 떠오릅니다. 어느 더운 여름날 어떤 운명의 전조를 얼핏 보았던 날입니다. 저는 몇 번 그랬듯이 목욕을 하고 정다운 할머니와 함께 선생님께서 준비하신 맥주를 마시며 정국에 관한 의견을 나누었습니다. 대화가 오가던 중 선생님께서는 어떤 서류를 제 앞으로 밀어내놓으셨습니다. 직관적으로 위험한 문서가 아닐까라는 생각이 전광석화처럼 스쳐지나갔습니다. 순간 사법고시를 준비 중이던 까닭에 선택의 고민에 빠졌습니다.

그런 순간 “同志的 義理”의 손길을 뿌리치지 말아야 한다는 결단을 내렸습니다. 그 문서는 선생님의 생명만큼이나 소중한 <<투쟁의 기록>> 이었습니다. 당시는 김일성 주석 조문사건으로 정국이 초긴장 국면에 돌입하던 전후였습니다. 가까운 시일 내에 간절한 출판 희망을 실현시켜드릴 수는 없으나 상황이 지금보다 민주화되면 책임지고 그 소망을 ‘제가 비용부담을 하더라도’ 실현시켜드리겠다고 언약을 하자 선생님께서는 흡족해 하셨습니다.

얄궃게도 내가 본 운명의 전조는 허깨비가 아니었습니다. 그로부터 얼마 지나지 않아 불가항력적으로 ‘남산’에 가지 않을 수 없었고 꿈속에서가 아니라 현실의 서초동 법정에 서게되기에 이르렀습니다. 저는 법정에서 비록 현 체제가 용인할 수 없는 기록이나 역사적 의미가 있는 문서인 만큼 파기하지 말고 보관하였다 이 사회가 보다 민주화될 때 빛을 볼 수 있도록 해주기 바란다고 진술했습니다.

“志士不忘在溝壑하고 勇士不忘喪其元”
“지사는 구렁텅이에 버려질 수도 있음을 잊지 않고 용사는 목이 달아날 수도 있음을 잊지 않는다”라고 맹자는 갈파했습니다.

선생님의 삶이 이러했습니다. 20대 청년기에 민중이 당당하게 살아가는 새로운 사회의 건설이라는 꿈을 선택하셨습니다. 꿈을 꿈 아닌 꿈으로 변모시키고자 지리산 푸른 하늘 구름을 벗 삼으셨습니다. 그 꿈은 순간순간 삶과 죽음이 교차하는 가운데 키워나가야 했습니다. 만물이 소생하는 봄 어제 밤 함께 꿈을 애기하던 동지가 방금 시든 진달래처럼 떨어지는 가운데 키워나가야 하는 꿈 이었습니다.

여름 아침 뭉게구름 같은 꿈을 품고 시작했다 늦은 밤 폭우 같은 슬픔을 가슴 속에서 흘려보내며 키워나가야 하는 꿈 이었습니다. 누런 결실을 바라보다 낙엽처럼 지는 동지의 때 이른 영별을 거름 삼아 차곡차곡 쌓으며 키워나가야 하는 꿈 이었습니다. 꿈 조각 같은 눈이 산하를 고요히 덮는가 하면 눈보라를 호령하는 동장군과 사투도 벌이면서 키워나가야 하는 꿈이었습니다.

정치 권력적 차원에만 집착하는 꿈을 품은 ‘정치위원’이라면 그는 결코 훌륭한 정치위원, 진정한 “革命의 鬪魂”을 품은 勇士가 아닙니다. “眞正한 勇士”의 꿈은 “오래된 미래의 꿈”을 품은 인물입니다.

“오래된 미래의 꿈”은 봉오동 전투에서, 1871년 PARIS COMMUNE에서, 1848년 PARIS의 BARRICADE에서, “布德天下 廣濟蒼生-천하에 덕을 펼쳐 널리 민중을 구한다-의 기치를 드날린 우금치 전투에서, 독일농민전쟁에서 그리고 멀고 먼 SPARTACUS봉기의 꿈입니다. 그 ”오래된 꿈“의 정수는 ”生命에의 畏敬心“입니다.

핏빛 노을이 온 천지를 물들이는 것과 같은 감동의 기억이 남아있습니다. 시간의 홍수가 떠내려 보내버릴 수 없는, 시간의 결빙이 그 숨을 끊어 버릴 수 없는 감동. 언젠가 선생님께서는 지리산의 격전지 중 한곳에 전몰군경을 위한 십자가를 세운 일을 들려주셨습니다.

나와 동지의 목숨을 앗아가려는, 청운의 꿈을, 민중의 꿈을 산산조각 내려했던 적들의 십자가를. 삶과 죽음을 시시각각 교환해야하는 원수들의 생명을 생각하는 십자가를. 어머니의 産苦로 얻게 된 그 어떤 것보다 소중한 생명을, “오래된 미래의 꿈”을 걸고 투쟁한 혼을 지닌 용사가 아니라면 생각할 수도 나아가 실천할 수도 없는 “容恕”를 하신 것입니다.

그것이 불의에 대한 두려움에서 비롯한 거짓용서가 아님은 분명합니다. 그런 “용서”는 눈앞의 적, 그 다수가 역시 민중, 민중의 아들-딸임을 통찰한 것으로부터 비롯한 것이며 “오래된 미래의 꿈”의 이정표를 세운 순간이기도 합니다.

오랜 느티나무는 <<삼국지>>의 赤壁大戰에 등장하는 조조의 화살처럼 많은, 한 여름의 햇살을 맞으며 뭇사람들에게 시원함을 선사합니다. 복숭아나무는 다만 복숭아를 뭇 생명에게 선사할 뿐 자신이 거두지는 않습니다.

하 선생님은 이런 느티나무들, 이런 복숭아나무들 가운데 제가 잊을 수 없는, 사회민주주의 청년연맹(사민청)의 후배들이 잊을 수 없는 소중한 나무입니다. 이제 “오래된 미래의 꿈”을 품었던 이 꿈나무는 스스로 깨닫고 실천한 召命을 다하고 어머니 대지로 영원한 歸鄕을 했습니다.

이 자리에 모인, 남아있는 산자들은 결코 사유재산이 될 수 없는 “오래된 미래의 꿈”을 호흡하던 이 꿈나무의 공동 유산상속인들입니다. 세기가 바뀐 오늘날 남아있는 “꿈나무들”은 우리시대의 역사적 과제에 勇猛精進함으로써 그 遺志의 결실을 후대에 물려주어야할 것입니다.

우리는 “오래된 미래의 꿈”의 유언장을 집행할 것을 엄숙히 言約합니다.

“오래된 미래의 꿈”을 담은 決氣어린 눈매를 지닌 꿈나무,
하종구 선생님!
영원한 어머니 품에서 편히 쉬소서.

2006-05-17

본지는 재야 인문학자 최형록 선생의 양해 아래 그의 에세이를 매주 토요일 시리즈로 싣는다. 에세이는 최 선생의 책 『이 야만의 세계에서 어린시절의 꿈나무를 키워나간다』(도서출판 다올 정문사)에서 옮긴 것으로 그의 철학, 역사, 과학, 정치에 관한 세계관을 접할 수 있다. 최 선생은 서울대 인문대학원에서 수학했으며 민중당 국제협력국장, 사민청 지도위원, 진보평론 편집위원을 지낸 바 있다. ‘모든 노동자의 건강할 권리를 위하여’를 영역했다. [한국인권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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