환영과 우려를 함께 표합니다
성노동자권리모임 지지(持志ㆍGGㆍGiant Girl)는 이번 위헌제청 판결(서울북부지법 2012.12.13 선고 2012고정2220)에서 성노동자를 처벌하는 법률 조항은 그 보호법익이 모호하며 성노동자의 권리를 침해하여 위헌소지가 있다고 판단했다는 점에서 매우 의미 있는 판결이라고 생각합니다.
성노동은 범죄가 아니라 성적 서비스를 제공하는 ‘노동’이며, 성노동자는 범죄자가 아니라 ‘사회적 소수자’입니다. 오늘날 우리 사회의 많은 여성들이 사회구조적인 제약 아래서 조금 더 나은 삶의 조건을 마련하고자 성노동을 선택하고 있습니다. 그리고 여성의 성적 서비스를 매개로 한 산업은 이미 다양한 부문에서 다양한 형태로 존재하고 있습니다. 이러한 가부장적 자본주의 체제의 구조가 변화하지 않는 상황에서 오직 성노동의 직접적인 거래만을 문제 삼는 것은 성노동자의 권리를 제약하고 성노동자의 존재를 거짓으로 숨기는 결과를 낳을 뿐입니다. 성매매에는 많은 구조적인 문제들이 얽혀있는데, 성매매를 개인의 문제로만 보고 성노동자를 형사처벌하는 방식으로는 그러한 문제들을 해결할 수 없습니다.
성노동은 범죄가 아니라 ‘노동’이며, 성노동자는 범죄자가 아니라 ‘사회적 소수자’입니다.
성노동자는 차별과 비난의 대상이 되고, 폭행, 협박, 살인 등 혐오범죄의 대상이 되기도 합니다. 그런데도 우리나라 법은 성노동의 존엄과 권리를 보호하기는커녕, 성노동자에게 형사적 제재를 가하며 이러한 혐오범죄에 동참하고 있습니다. 현행 성매매특별법은 성노동자의 지위를 자신의 권리를 정당하게 주장할 수 있는 주권자로부터 범죄자로 강등시키고 있습니다. 그리하여 우리사회의 성노동자는 열악한 환경 속에서 상시적인 폭력의 위협을 받으며 피폐한 삶의 조건을 감수해야 하는 처지로 내몰리고 있습니다.
이에 성노동자권리모임 지지는 성매매처벌법이 성노동자의 권리를 침해한다는 주장으로 헌법소원과 국가인권위원회 진정을 준비해왔습니다. 이번 성매매처벌법 위헌심판제청으로 인하여 성노동자의 권리 침해 문제에 대해 사회적으로 논의할 기회가 열린 점에 대해 기쁘게 생각하면서도, 위헌제청 판결문이 가지는 한계 두 가지를 우선 지적하고자 합니다.
위헌제청 판결문에서 성매매금지 입법목적이 정당하다고 본 부분은 잘못입니다.
위헌제청 판결문은 “성매매 목적 인신매매를 방지하고, 성매매행위의 강요·착취 등 행위를 근절하며 피해자를 보호하기 위한 이 사건 법률 제정 경위를 살펴보면, 성매매행위를 전면적으로 금지하고자 한 입법목적은 일응 정당하다고 판단할 수 있다.”고 적고 있습니다.
그러나 ‘강요된 성매매’를 금지하는 것과 성매매 자체를 금지하는 것은 분명히 다른 문제입니다. 우리나라가 가입되어 있는 유엔에이즈계획(UNAIDS)은 2011년 12월에 성노동을 비범죄화하고, 남성/여성/트랜스젠더 성노동자가 다른 노동자처럼 노동현장에서 차별과 착취, 폭력으로부터 보호 받을 수 있도록 필요한 모든 조치를 취하여야 한다고 권고한 바 있습니다. 그리고 법과 HIV에 관한 국제 위원회(Global Commission on HIV and the Law)는 2012년 7월에 인신매매방지법이 동의 있는 성인 간 성노동(consensual adult sex work)에 적용되어서는 안 된다고 정부와 시민사회에 강력하게 요청하였습니다. 국제노동기구(ILO)도 성노동이 직업으로 인식되어 노동자와 고객을 보호하는 방향으로 규제될 수 있어야 한다고 권고해 왔습니다.
판결문은 성노동자의 권리 침해 문제를 축소하여 보고 있습니다.
판결문은 성매매처벌법으로 인한 성노동자의 자기결정권과 평등권 침해를 협소한 의미에서 파악하고 논하고 있는데, 실제로 성노동자가 침해당하고 있는 권리들은 훨씬 더 중대한 것들입니다. 성매매 불법화는 사회적 낙인과 공모하여 성노동자의 사회적 인격권을 침해할 뿐 아니라, 성노동자가 가지는 평등하게 대우받을 권리에 기초한 자기결정권과 도덕적 자율성에 대한 권리들도 침해하고 있습니다. 또한 성매매처벌법은 성노동자의 사회적 기본권, 즉 근로의 권리, 환경과 안전에 대한 권리, 보건에 관한 권리, 사회보장과 복지제도의 보호를 받을 권리 등을 포함하여 생존권과 인간다운 삶을 영위할 권리를 근본적으로 박탈하고 있습니다.
성노동자는 다른 시민들과 평등하게 대우받을 권리를 갖습니다. 성노동자는 주체적으로 삶을 꾸릴 수 있는 시민으로서 존중받아야 합니다. 성노동자는 더 나은 조건에서 안전하고 건강하게 노동하고, 그 수고에 대해 정당하게 보상받을 권리를 갖습니다.
성노동자들은 성노동을 직업으로 인정할 때에 비로소 자신들이 ‘낙인과 오명을 벗고’, 고용주와 고객, 경찰 등과 대등한 위치에 서서 ‘권리 주장’을 할 수 있으며, ‘생계 수단’을 잃지 않고 생활을 유지할 수 있다고 주장합니다. 우리에게는 성노동자의 목소리를 듣고, 당사자들의 경험과 욕구에 대해 관심을 갖고 새롭게 알려는 노력이 필요합니다.
성매매는 성범죄를 줄이기 위해서가 아니라, 남성의 어쩔 수 없는 성욕을 위해서가 아니라, “성노동자의 존엄과 권리를 위해” 비범죄화되어야 합니다. 이번 위헌제청 판결을 계기로 우리 사회에서 성노동과 성노동자의 권리에 대한 논의가 활발하게 진행되어 성노동자가 시민으로서 평등한 대우를 받고, 성노동자의 수고가 노동으로 인정되는 계기가 되기를 간절히 바랍니다.
2013년 1월 14일
[한국인권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