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리센코주의’, 스탈린주의 그리고 21세기 마르크스주의
1. 머리말
아이 둘이서 나란히 걸어가네 하나는 사내 하나는 계집애
“아비는 진작 집을 나가고 울 엄니 알 품은 새가 되었지요.
쌀독이 바닥나니 사흘 내내 굶주리고,
어린 동생 젖을 찾아 빠나 젖은 이미 말라붙은 걸 어찌하지요?.
.....
해 저물어 어두컴컴 새들도 집을 찾아 날건만
외로운 이 오누이 아무데도 갈 곳이 없구나.
애닮다, 가난한 이 백성들 타고난 마음마저 잃었단 말인가.
제 짝을 끝까지 사랑하지 못하고 어미도 자식을 버리다니!”1)
19세기 조선의 ‘인텔리겐챠’(Intelligentsia),2) 실학파의 거두, 다산 정약용은 1809년 (순조 9년)3) 흉년으로 가정이 해체되는 당시 상황을 이렇게 읊었다. ‘신분에서 계약으로’, 역사적 진보가 이뤄진 한편, 오늘날 임금노예제 아래에서 실직한 아비는 자식의 손가락을 자르는 등 핵가족 역시 분열되고 있다.
다산은 당대의 사회상황을 “인민들은 흙을 밭으로 삼고 있는데 관료들은 인민을 밭으로 삼아서 살과 뼈를 긁어내는 것으로 농사를 하고 있으며 백성의 재산을 수탈하는 것으로 추수를 한다. 이것이 습성이 되고 당연한 것으로 인정되고 있다”4)면서 분노했다.
오늘날 사법고시를 합격한 자들 가운데 과연 몇 사람이나 돈의 액수를 재는 저울이 아니라 ‘정의의 저울’을 자신의 ‘양심의 법정’에 품고 있을까?5)
다산은 당대의 봉건적 착취와 억압에 대해서 “큰 도적놈들을 없애버리지 않으면 백성들은 모두 멸망 한다”, “양떼에 달려드는 호랑이는 잡아죽여야하며 모판에 번식하는 잡초는 뽑아버려야 한다”6)고 민중의 염원을 대변하였다. 그리고 이런 절망 속의 희망이 1894년 동학농민전쟁으로 폭발하였던 것이다.
19세기에 민중의 삶을 피눈물로 적시는 상황은 멀리 프랑스에서도 마찬가지였다. 프랑스의 문호, 빅토르 위고는 『레미제라블』의 머리말에서 이렇게 말했다.
“법과 관습의 이름으로, 문명의 한복판에서 인위적으로 지상에 지옥을 만드는 사회적 단죄가 존재하는 한, 금세기의 세 가지 문제 노동착취에 의한 인간의 타락, 굶주림으로 인한 여성의 파멸, 신체적・정신적 고통으로 인한 아동들의 위축이 해결되지 않는 한, 어떤 지역에서 사회적 가사(假死)상태가 가능한 한, 무지와 비참함이 지상에 남아있는 한, 이런 책은 필요하기 마련이다”7)
(1862년 오르빌 하우스).
프랑스 민중은 1871년 봉기하였다. 신분에서 계약으로, 인류의 역사는 진보하는 한편, 다산이 증오했던, 큰 도적놈들 그리고 위고가 느꼈던 사회적 지옥은 오늘날에도 여전히 다른 형태로 존속하고 있다. 이에 더해서 인류사상 유례없는 자연과학과 기술의 발달과 함께 한국 민중을 부분집합으로 하는 세계민중은 지구 생태계의 심각한 위기에 처해있으면서 당장 ‘밀레니엄버그’ 앞에 당혹스러워하면서 21세기로 향하고 있다.
새로운 세기를 절망적 삶의 조건을 최소한이라도 개선하고자 할 때 우리는 ‘20세기의 밀린 역사적 숙제’를 해결해야 할 것이다. 그 숙제란 지구를 벗어난 우주공간에 인류 역사상 최초로 인공위성, 스푸트닉 1호를 발사한, ‘과학적 사회주의’의 원리에 입각해서 사회를 새롭게 조직하려한, 그 수많은 ‘오스트로프스키와 파벨의 어머니’8)가 건설한 소련이 붕괴한 원인을 해명하는 것이다.
이상과 같은 문제의식을 염두에 두면서 본고에서는 인간에 대한, 인간의 행동에 대한 이해의 한 가지 접근방법인 ‘환경결정론’과 관련해서 소련의 ‘리센코주의’의 논지, 그 역사적 맥락, 그것에 대한 평가와 교훈을 간략히 설명할 것이다.
2.‘리센코주의와 스탈린주의’
1) 리센코주의의‘과학적’주장
리센코주의의 출발점은 소련의 농업생산력을 높이기 위해서 리센코가 연구개발한 ‘춘화처리(La Vernalisation)’ 였다. 그 기술은 환경을 조작하고 접붙이기를 함으로써 식물, 특히 겨울 밀을 봄밀로 변종시키는 것이었다.9) 이 ‘춘화처리’기술의 의미를 생물학의 일반원리의 수준으로까지 격상시킨 것이 ‘리센코주의’ 이다.
이것의 이론구조의 근간은 무엇인가?
무엇보다도 그 핵심은 ‘획득형질의 유전’ 이다. 유전은 ‘생리학적 과정’으로서 생물의 본성의 발전에 관한 유물론적 이론은 획득형질의 유전을 인정하지 않고서는 생각할 수 없다는 것이다.10) 그것의 기제는 생물이 환경의 제반조건을 ‘동화’ 한다는 것이다.
리센코에 따르면 유전이란 “대대로 선대로부터 전해진 외부조건의 집중적 작용이 생물에 의해서 동화된 것”이다. 그는 생물의 생존과 도태에 대해서 이렇게 주장한다. “보수적인 생물은 일반적으로 자신의 본질에 낯선 조건들을 수용하지 않고 그것을 동화하기를 거부한다. 동요하는 성향을 지닌 생물은 달리 행동한다. 그것은 동화의 조건과 관련해서 상수를 가지고 있지 않다. 우리는 그것이 특히 특정조건들을 선호하는 경향을 지니고 있음을 알 수 있다.”11)
리센코의 생물학적 이론은 ‘영양물이론’ 이다. 그에 따르면 ‘영양물’에는 햇빛, 기온, 습도, 토양, 유기물음식, 대기 중의 가스의 화학원소들과 같은 환경의 제반조건이 포함된다.12) 그리고 “생물에 의해서 동화된 외부 조건들은 생물의 입자들(Chastitsaml)이 되고 그것들의 성장, 발전을 위해서 이번에는 그것들이 과거에 바로 그것들 자신이었던 음식, 바로 그 외적 환경조건을 요구하게 된다.”13) 그는 유전 기제(mechanism)의 단위에 대해서 “유전의 기초는 세포다”라고 말하는 한편 “우리는 당신(학술원 회원 세레브로스키)이 쓰는 유전자라는 용어의 개념이 옳다고 인정하지 않는다.”고 말한다.
둘째, 유전의 안정성을 교란시켜서 변화를 초래하는 요인에는 세 가지가14) 있다. 리센코가 개발한 ‘춘화처리’의 경우처럼 물리적 환경의 변화, 그리고 접붙이기와 이종(異種)교배이다. 이 두 가지 방식은 리센코가 존경했던 소련의 종묘학자이자 원예학자인 미추린이 개발한 까닭에 ‘리센코주의’가 소련에서 ‘미추린주의’라고 불렸던 것이다. 뒤에 논하겠지만 미추린은 스탈린주의의 추종자들의 눈에는 ‘새로운 유형’의 과학자, 그 자체였다.
즉 그는 아무런 실용적 성과도 낳지 않는 대학교수들의 연구소를 경원(敬遠)시하면서 현장에서의 작업을 중시했고, 외국학계의 동향에 무관심한 민족적인 과학의 기초를 놓으려한 독학자였다. 리센코를 사로잡은 것은‘헐벗은’학자로서 자신의 힘과 능력을 다해서 인민에게 봉사하려는 그의 이미지였다.15)
△ 안드레이 사하로프 "리센코는 소비에트 연방 생물학, 특히 유전학의 부끄러운 후진성에 대한 책임과 사이비 과학을 유포시킨 것, 모험주의, 학문의 격하, 그리고 수많은 진짜 과학자들의 명예를 훼손하고 해고하고 체포하고 심지어 죽인데에 대한 책임이 있다."(위키)
2) ‘리센코주의’와 라마르크의 학설, 다윈의 진화론 그리고 현대 유전학
‘리센코주의’의 과학성을 전체적으로 평가하기에 앞서 그의 이론을 생물학과 유전학의 역사적 맥락에서 간단하게 살펴보자. 우선 그의 ‘춘화처리’는 얼마나 실효성이 있었는가? 그라햄은 ‘춘화처리’로 소련의 곡물생산고가 증가했는가라는 문제는 논의의 여지가 있다고 말한다.
한편 소련의 유명한 과학자 J. 메드베데프에 따르면 “그 방법은 수천만 톤의 곡물에 적용될 때 각 집단농장과 국영농장에 지극히 큰 부담(특수 창고의 유지와 일반적인 파종방식에 비해서 비용이 두 배)과 위험을 부과하며 더욱이 어떤 종류의 밀들은 춘화처리에 전혀 반응하지 않았다.” 그러나 르원틴은 리센코주의의 득세 이전과 전성기 그리고 그 이후의 소련 농업생산의 역사를 같은 시기의 미국 농업의 역사와 비교한 결과 긍정적이라고 평가했다.16)
리센코가 득세할 수 있었던 가장 중요한 이유들 가운데 한 가지는 혁명 전 러시아에서 특히 좌파작가들(체르니셰프스키 같은 인민주의자들)이 획득형질의 유전개념을 지지했다는 것이다. 이 획득형질의 유전개념은 라마르크의 학설로부터 비롯된 것이다.
라마르크(1744~1829)의17) 진화론은 이른바‘용불용(用不用)’설이다. 환경에 대처하기 위해서 널리 사용되는 신체의 부위는 갈수록 커지고 강해지는 반면, 사용되지 않는 부위는 갈수록 약화한다는 것이다. 기린의 목은 키가 큰 나무의 잎을 먹으려고 애쓰는 과정에서 길어졌다는 것이 유명한 일례이다. 이 용불용설에 기초한 것이 ‘획득형질의 유전’으로 생물이 일생동안 획득한 변화는 후손에 전달될 수 있다고 주장했다.
이런 라마르크의 학설을 반박한 학자는 독일의 생물학자 A. 바이스만(1834~1914) 이었다. 멘델의 유전법칙을 재발견하기에 앞서 그는 이미 생식세포와18) 체세포를 구별했다. 그는 획득형질의 유전이 불가능한 과학적 근거로서 생물의 발생초기에 생식세포와 체세포는 이미 해부학적으로 분리된다는 사실을 들었다.
그는 전환될 수는 있으나 창조되거나 파괴될 수 없는 불멸의 생식세포를 가정했다. 이것은 변화를 인정하되 어디까지나 표면적인 변화일 뿐 실체는 바뀌지 않는다는 관점이었다. 따라서 이점은 리센코주의자들에게 정치적 현상유지에 충실한 입장과 관련된 것으로 여겨져서 공격대상이 되었다. 이러했기에 리센코주의와 대립적인 입장은 바이스만-모건주의라고 불렸다.
E. 마이어는 다윈의 진화론, 자연선택이론의 논리를 다섯 개의 사실에 기초한 세 개의 추론으로 정리한다.19) (발췌)
사실 1. 태어난 개체 모두가 성공적으로 생식한다면 그들의 인구는 지수적으로 증가할 것이다.
사실 2. 대체로 인구는 계절적 증감을 제외하고는 규모가 안정적이다.
추론 1. 환경이 부양할 수 있는 것보다 많은 개체의 생식으로 말미암아 개체 사이에 생존 투쟁이 유발되어 매 세대마다 오직 후손의 일부만이 생존한다.
사실 4. 집단의 개체들은 형질에 있어서 크게 차이가 있다. 즉 어떤 두개체도 정확히 같지는 않다. (현대 유전학의 유전형과 표현형의 구별-필자)
사실 5. 생존투쟁에 있어서 생존은 되는대로 유지되는 것이 아니다. 그것은 부분적으로 생 존한 개체들의 유전적 구성에 좌우된다. 환경에 가장 잘 적응하도록 하는 형질을 유전 받은 개체들이 그렇지 못한 개체들 보다 더 많은 후손을 남길 가능성이 크다.
추론 3. 개체의 생존과 생식능력이 불균등함으로써 집단에 점진적인 변화가 일어나며 여러 세대에 걸쳐서 유리한 형질들이 축적된다.
마르크스는 다윈에게『자본』제1권을 헌정하고 이에 다윈은 감사의 답장을 보냈다. 여기서 지적할 것은 다윈의 진화론에 있어서 핵심적 개념, 생존투쟁과 자연선택을 마르크스와 엥겔스가 어떻게 이해했는가 하는 점이다.
“나는 진화론을 수용합니다. 그러나 그의 논증방법은 인정하지 않습니다. (중략) 이 두 가지 개념은 일정한 한계 내에서 일정한 방식으로 정당합니다. 그러나 이 개념들은 똑같이 서로 일방적이며 편협합니다. 자연집단(살아있건 죽었건)의 상호작용은 대립만큼 조화(harmonie)를, 협력(la conjonction des efforts) 만큼 투쟁을 포함합니다. 현명한 체 하는 어떤 사람들은 풍부한 역사발전의 총체성과 다양성을 ‘생존투쟁’이라는 일방적이고 빈약한 공식, 자연의 세계에 있어서도 마찬가지로 반드시 비판적이고 신중하게 수용해야 하는 공식 아래에 둠으로써…”20).
이 서신에 드러난 엥겔스의 관점은 스펜서를 비롯한 사회적 다윈주의의 비과학성과 계급적 반동성을 이해하는 데 그리고 현대 진화론의 논쟁에 대한 이해에 있어서 하나의 지침을 제시해준다.
오늘날 진화론은 생물지리학, 고생물학, 분류학, 비교해부학, 비교발생학, 분자생물학의 성과를 종합하면서 발전하고 있다.21) (계속)
주(註)
1) 정약용, “오누이”, 여유당전서 시문집 제5권, 임형택 편역, 『이조시대 서사시(상)』, 창작과 비평사, 1992년, 260~262면.
2) 인텔리겐챠는 당초부터 지식인(Intellectuals)과는 대척적 개념이었다. 지식인이란 보통 지적 작업에 종사하는 사람, 전문가로서 어떠한 도덕적 혹은 정치적 함의를 가지고 있지 않은 단어다. 이와는 달리 카갈리츠키에 따르면 인텔리겐챠의 행동은 사회적 이해관계보다는 사상에 의해서 결정되었다. 다만 ‘사상을 중시하는 세계관’(Ideologism)은 지식인들에게 전형적이지만 러시아의 사회역사적이고 역사-문화적 특수성들로 인해서 러시아에서 예외적이라고 할 정도로 강력했다. 카갈리츠키, 『생각하는 갈대:1917년부터 현재까지 지식인들과 소련국가』, 베르소 출판사, 1988년, 14-15면.
3) 2년 후 홍경래의 난(당시 봉건적 양반계급의 눈으로 본 성격규정임에 유의해야)이 일어났다.
4) 김광진, “다산 정 약용의 사회, 경제사상”, (북한) 과학원 철학연구소 편, 『정 다산연구』, 한마당, 1989년, 76면.
5) 마르크스주의 변혁운동의 역사에 있어서 횃불과 같은 사건, 1871년 프랑스의 ‘파리 코뮨’ 하에서 단행된 사법개혁의 원리는 무료재판과 재판관의 선거였다. 장 브뤼아 등, 『1871년의 코뮌』,(파리, 에디숑 소시알 출판사), 1960년, 212면. 미국과 유럽에서는 이러한 원리가 어느 정도까지는 제도화되었다. 한국 역시 이런 법조계의 민주화가 박력 있게 단행되어 요설(妖舌)로 착취와 억압을 자행하는 ‘법복귀족’을 근절해야할 것이다.
6) 『여유당 전서』 제1집, 제12권 12면과 제19권 16면, 앞의 『정 다산 연구』 75면.
7)빅토르 위고, 『레미제라블』(가난하고 비참한 사람들), 시그넷 고전, 1987년, 머리말.
8) 오스트로프스키, 『강철은 어떻게 단련되었는가』, 온누리, 1986년, 그리고 막심 고리키,『어머니』, (석탑, 1985), 참고.
9) R. 르원틴과 R. 레빈스, 『변증법적 생물학자』, (하버드대학 출판부, 1985년), 174면. 르원틴은 S. J. 굴드와 함께 E.윌슨이 개척한 ‘사회생물학’에 대해서 ‘사회생물학연구그룹’을 조직하여 날카로운 좌파적 비판을 가했다. 윌슨은 르원틴과 대립투쟁의 관계에 있음에도 불구하고 그가 하버드대 교수가 되는 것에 동의했으며 이 논쟁을 계기로 마르크스주의를 학습했다. 윌슨의 자서전, 『자연주의자』, (민음사, 이병훈 옮김, 1994년), 338~351면 참고, 조엘 코텍과 단 코텍, 『리센코 사건』, (브뤼셀, 에디숑 콤플렉스, 1986년), 30~31면.
10) L. 그라햄, 『소련의 과학과 철학 그리고 인간의 행동』, (컬럼비아대학 출판부 1987년), 130면.
11) J.헉슬리, 『소련의 유전학과 세계과학』, 31면. 코텍의 『리센코 사건』, 53면에서 재인용.
12) 그라햄의 책, 127~130면.
13) 리센코의 『농생물학』, 436면, 그라햄의 책, 126면에서 재인용.
14) 그라햄의 책, 127~130면.
15) 코텍의 책, 29면과 51면.
16) 그라햄은 소련농업의 입지조건, 즉 대륙성기후, 흑토대, 경작의 어려움, 경지면적을 미국과 비교하는데 당시 소련의 농업은 미국에 비해서 보다 외연적(extensive)이었다고 평가한다. 그의 책, 171~176면. J. 메드베데프, 『리센코의 영광과 몰락』, (파리, 갈리마르 출판사, 1970년), 43면, 코텍의 앞의 책, 32면에서 재인용. 르원틴의 앞의 책, 189면 191면.
17) E.마이어. “진화의 기제”,『생물학』, 캄프벨 출판사, 1993년 판, 424면. 마이어는 하버드대 교수로서 1930년대와 1940년대에 유전학, 고생물학, 분류학의 새로운 발견들과 진화론을 종합했다. 그리고 진화론 논쟁에 있어서 중요한 S.굴드와 N. 엘드리지의 Punctuated equilibrium 이론에 영향을 주었다.
18) 오늘날 유전공학의 발전은 문자 그대로 혁명적인 것이다. 복제양 돌리(1997년)가 각종 우려에도 불구하고 정상적으로 성장하고 있으며 인간의 복제가능성은 생명과학과 관련해서 이 시대에 가장 복합적인 윤리문제를 제기하고 있다. 복제양 돌리를 탄생시킨 영국의 이언 윌무트의 성공의 의의는 무엇인가? 생명복제 실험자들이 품어왔던 의문, 유전자에 가해진 시간의 가혹한 흔적들을 제거하여 세포를 분화하기 이전의 상태로 되돌려서 세포가 완전히 새로운 생물로 발달하도록 유도하는 것이 가능한가라는 의문을 해결했다는 것이다. 즉 말단분화세포의 핵에 발생한 DNA 상의 변화는 비가역적(非可逆的)인 것이 아니었다. G. 콜라타, 『복제양 돌리』, (사이언스 북스, 이한음 옮김, 1988년), 38면. 그리고 서정선, “생명복제 실험성공의 생물학적 의의” 『과학사상』, (범양사, 1997년) 가을호, 52면. 생물복제 기술의 여러 가지 측면과 최근성과에 대해서는 이언 윌무트의 “의학에 유용한 생물복제”『Scientific American』, 1998년 12월호, 58~63면. 그리고 J. 벵상의 “법칙을 바꿀 수 있는 발견”, 『과학과 미래』, (파리), 1998년 12월호, 10면 참고.
19) E.마이어, “진화의 기제”, 『생물학』, 427~428면.
20) “라보프에게 보낸 엥겔스의 편지”, 런던 1875년 11월 12일~17일,『자연과학에 관한 마르크스와 엥겔스의 서신』, (파리, 에디숑 소시알 출판사, 1973년), 83~84면. 엥겔스의 이론적 입장을 최근의 고고학, 고생물학, 영장류 연구의 성과를 통해서 긍정적으로 확인한 것으로서 C.울프슨의 『문화에 대한 노동이론』 참고, (루틀리지 앤드 케건 폴 출판사), 1982년, 특히 23~33면.
21) 앞의 『생물학』, 431~435면.
1999.2 『현장에서 미래를』
본지는 재야 인문학자 최형록 선생의 양해 아래 그의 에세이를 매주 토요일 시리즈로 싣는다. 에세이는 최 선생의 책 『이 야만의 세계에서 어린시절의 꿈나무를 키워나간다』(도서출판 다올 정문사)에서 옮긴 것으로 그의 철학, 역사, 과학, 정치에 관한 세계관을 접할 수 있다. 최 선생은 서울대 인문대학원에서 수학했으며 민중당 국제협력국장, 사민청 지도위원, 진보평론 편집위원을 지낸 바 있다. ‘모든 노동자의 건강할 권리를 위하여’를 영역했다. [한국인권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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