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레프트119 소개글]
『레프트119 준비위 결성을 위한 모임』(레프트119)은 정파·소속·입장의 차이를 넘어 변혁활동가들의 정신건강에 대한 문제점을 함께 깊이 고민하고 해결책을 모색하는 주체를 건설 중에 있다.
레프트119는 그간 활동가들의 경제적·심리적 요인에 기인한 트라우마 등 질환과 이와 유관한 죽음이 기본적으로는 자본주의의 억압과 착취에 기인한 것이지만, 특히 심리적인 측면에서는 파시즘의 자장(磁場) 아래 놓인 활동가 자신의 의식과 무의식 작용이 큰 영향을 미치고 있는 것으로 이해한다.
따라서, 레프트119는 파시즘 연구에 탁월한 업적을 이룬 빌헬름 라이히 자료를 통해 이에 대한 해법에 접근해보고자 한다. 레프트119 운영위원 오세철 선생은 좌파진영에서는 매우 드물게 사회심리학을 공부한 특별한 이력의 사회학자이며 독보적인 빌헬름 라이히 연구가로, 지금도 변혁운동의 발전을 위해 헌신하고 있는 혁명가이다. 다음은 오세철 선생의 글 『계급의식과 파시즘의 계급무의식의 대립구조』중 1/2회분이다.
『레프트119 준비위 결성을 위한 모임』(레프트119)은 정파·소속·입장의 차이를 넘어 변혁활동가들의 정신건강에 대한 문제점을 함께 깊이 고민하고 해결책을 모색하는 주체를 건설 중에 있다.
레프트119는 그간 활동가들의 경제적·심리적 요인에 기인한 트라우마 등 질환과 이와 유관한 죽음이 기본적으로는 자본주의의 억압과 착취에 기인한 것이지만, 특히 심리적인 측면에서는 파시즘의 자장(磁場) 아래 놓인 활동가 자신의 의식과 무의식 작용이 큰 영향을 미치고 있는 것으로 이해한다.
따라서, 레프트119는 파시즘 연구에 탁월한 업적을 이룬 빌헬름 라이히 자료를 통해 이에 대한 해법에 접근해보고자 한다. 레프트119 운영위원 오세철 선생은 좌파진영에서는 매우 드물게 사회심리학을 공부한 특별한 이력의 사회학자이며 독보적인 빌헬름 라이히 연구가로, 지금도 변혁운동의 발전을 위해 헌신하고 있는 혁명가이다. 다음은 오세철 선생의 글 『계급의식과 파시즘의 계급무의식의 대립구조』중 1/2회분이다.
[사회심리학 강좌]
계급의식과 파시즘의 계급무의식의 대립구조
오세철
나는 ‘계급의식, 계급무의식 그리고 혁명’이라는 이론적 도입 글에서 계급의식에 대한 긍정적 확신을 통한 혁명의 필연성을 일방적으로 주장하거나 자본주의의 가치법칙에 종속되어 그 형식을 뛰어넘는 혁명의 불가능성을 말하는 비관론적 접근 모두의 한계를 지적하였다.
그리고 맑스가 ≪요강≫에서 정치경제와 의식의 통합을 말했음을 상기시키면서 맑스 이후의 조야한 경제결정론과 그에 대한 왜곡된 반작용으로서의 자발성주의는 맑스주의에 대한 잘못된 해석임을 지적했다.
또한 글을 마무리하면서 “맑스, 트로츠키, 라이히 등 계급 조건화된 계급무의식에 대한 이해를 통해 맑스주의와 정신분석학의 올바른 관계를 정립하고 프롤레타리아트의 욕망과 그 억압, 그 구체적 형태에 대한 인식이 자본주의 철폐뿐만 아니라 공산주의 사회건설의 계획의 일부임을 확인해야 함을” 제안하였다.
두 번째 글에서는 라이히를 통해 맑스주의 심리학의 의미를 재조명하고 역사적 사건으로서의 파시즘분석을 통해 노동자대중의 계급무의식의 억압구조와 혁명의 반혁명화의 위험성을 경고하고자 한다.
1. 계급의식에 대한 라이히의 문제의식
맑스주의의 혁명적 실천을 위한 성정치 운동을 전개한 라이히는 1930년 11월, 맑스주의 노동자학교에서 ‘맑스주의와 심리학’, ‘성학’을 가르쳤는데 그 당시 성개혁 단체는 80여개가 있었고 회원은 3만5천명 정도였다.
이는 그가 독일 공산당 집행위원회에 공산주의 기초 위에서 성정치적 대중조직의 창설을 제안한 성과였다. 그는 분산된 성정치 운동을 조직적으로 전개할 것을 촉구하면서 자본주의 경제 질서의 필수적인 요소인 성억압과 성빈곤에 주목했다.
그는 히틀러의 프로그램이 보통 인간의 성격구조의 반영이라고 보았고, 성행복과 자유를 향한 대중의 갈망과 두려움의 대립 속에서, 대중 스스로 삶을 책임지려는 투쟁으로부터 벗어나게 해 주었던 히틀러에게 의존하게 된 파시즘의 심리구조를 깊이 있게 분석하였다. 그리고 1932년 그의 가장 유명한 저서 ≪파시즘의 대중심리≫를 쓴다. 그는 1933년 11월, 독일공산당에서 제명되었고, 1934년 ≪계급의식이란 무엇인가≫를 발표한다.
그 글에서 그는 ≪파시즘의 대중심리≫ 후에 제기되어온 몇 가지 질문에 대한 응답이라 말하고 독일에서의 사회주의 운동의 심각한 패배가 다른 나라에 불리한 영향을 미쳤으며, 파시즘이 오늘날 도처에서 혁명운동에 대해 빠르게 우세를 점하고 있다고 진단한다.
자본주의의 멍에로부터 해방을 투쟁 목표로 삼는 세계인구의 대다수는 혁명가들의 노력이나 고통, 의도를 아예 모르거나 조금밖에 모르는데, 이는 예속된 그들 자신들의 존재를 점점 더 무의식적으로 이끌어가며, 그러한 방식으로 자본의 지배를 위한 지지대가 된다고 보았다.
≪계급의식이란 무엇인가≫의 글은 비정치적이고 평균적인 사람들이 혁명의 미래지도자들에게 하는 호소라고 하면서, “‘역사적 과정’에 대한 파악을 적지 않게 고집하면서 더 잘 이해하라는, 그들의 현실문제들과 욕망들을 더 적절하게 밝히라는, 역사에서 ‘주체적 요소’에 대해 좀 덜 이론적으로 파악하라는, 대중의 삶에서 주체적 요소가 나타내는 것들을 더 잘 이해하라는 호소”임을 강조한다.1)
그는 가까운 미래에 독일에서의 예측할 수 없는 봉기의 가능성을 내다보면서도 노동자 운동이 이론과 조직 면에서 한 번 더 결집하려면 몇 년이 더 필요하다는 것과 새롭고 훌륭하며 신뢰할만한 지도부 아래 노동자 운동의 결집이 빠르게 이루어지지 않거나 아예 이루어지지 않을 수도 있다는 절박한 정세 인식을 하고 있었다.
그는 그 당시 맑스주의자(공산주의자)가 주체적인 요소들의 실천을 관념론자들에게 맡겨두었고, 기계론적이고 경제적인 유물론자들처럼 행동했다고 비판하면서 한 걸음 더 나갈 것을 요구한다.
“우리는 노동하는 인간을 위한 진정한 민주주의를 원하고 권력을 투표소에서가 아니라 무기를 가지고 장악한다는 것을 알고 있다. 우리는 이 모든 것을 알며, 그 이상을 알고 있다. 이 모든 것을 다시 한 번 공표하고 이를 강령 속에 고정하는 것은 이전에 모두 시도했었기 때문에 별로 가치 없을 것이다.
중요한 질문은 왜 인민이 우리의 말을 듣지 않았는가, 왜 우리의 조직은 동맥경화증에 걸렸는가, 왜 대중 스스로를 우리의 관료제에 의해 질식되도록 내버려두었는가, 왜 대중은 진정으로 자신들의 이익과는 반대될 히틀러가 권력을 획득하도록 했는가. 이다.”2)
노동자 계급은 자신의 계급 상황으로부터 ‘의식’을 불러내고 그 의식은 사실이지만 자본의 지배를 뒤흔들기에는 충분하지 않다. 자본의 지배를 뒤흔들기 위해서는 견고하게 조직된 당이 필요하다고 보면서, 그 당시 독일 노동자의 상황을 설명한다.
“독일에는 대략 3천만 명의 반(反) 자본주의적인 노동자들(사회혁명을 일으키기에 숫자로서는 충분한)이 있었다. 그러나 바로 그 가장 완강한 반자본주의적인 심성의 도움으로 파시즘은 권력을 장악하였다. 반자본주의적인 심성은 계급의식인가? 아니면 단지 계급의식의 시작일 뿐인가? 계급의식이 만들어지는 전제조건일 뿐인가?”3)
사회주의는 사회적 생산력이 모든 나라의 가장 광범위한 대중에게 사회의 평균적 문화에 상응하는 삶을 확보해주도록 충분히 발전되어 있다는 것을 확신하면서 정치적 반동이 설파하는 체념의 원리에 대항하여 지상에서의 풍요로운 행복의 원리를 세워야 한다. 그런데
“정점에 파시즘과 교회를 두고 있는 정치적 반동은 대중이 현세에서의 행복을 거부해야 한다고 요구한다. 정치적 반동은 정조(순결), 복종, 자기부정, 민족과 인민의 조국을 위한 희생을 요구한다. 문제는 반동들이 이것을 요구하는 것이 아니라 대중이 이런 요구에 순응함으로써 그 반동들을 지지하고 반동들이 살찌도록 하여 그들의 힘을 키우도록 허용하고 있다는 것이다.”4)
그는 부르주아 질서에 모순되는 것은 무엇이든, 전복의 싹을 포함하고 있는 것으로 무엇이든 계급의식의 요소로 보면서 부르주아 질서와의 유대를 창출하거나 유지하고 부르주아 질서를 지지하고 강화하는 것은 무엇이든 계급의식의 방해물이라고 말한다.
보기를 들어 1919년 11월 독일 혁명기간 동안 대중이 베를린에 있는 동물원에서 시위를 하면서 시위자의 대부분이 잔디를 밟지 않으려고 한 행동이 혁명 담지자들의 부르주아지화의 모습이라고 비판하고 있다. 5)
특히 계급의식의 구체적 요소를 청소년, 여성, 성인 남성 노동자, 어린이의 특성에 따라 구분하는 시도는 눈여겨 볼만하다. 청소년의 경우 권위주의적 억압, 국가 권위의 집행인들의 부모에 대한 반항을 정치적인 좌익의 흐름으로 보는 반면, 스포츠에 대한 열광, 군복을 입은 남성과 행진곡을 좋아하는 것은 반혁명적인 요소로 본다.
그리고 여성의 경우는 경제적 독립, 남성으로부터의 독립, 그리고 성적 독립을 중요한 계급의식의 요소라고 주장한다. 성인 남성 노동자의 경우에는 집합적 산업노동이 계급 감정의 가장 중요한 원천이지, 공장에서 일한다는 것과 노동조합원이라는 사실이 계급의식을 높인다고 보지 않는다.
노동의 ‘명예’, 노동자와 고용주의 ‘평등’, 공장과 민족의 통일 등에 대한 나치의 선전은, 평균적인 노동자가 사회민주당의 ‘산업평화론’을 흡수한다면 그들을 눈멀게 하여 파시스트로 만들 수 있음을 경고하면서, 관념의 물질적 힘이 물질적 빈곤의 힘보다 더욱 강하다는 것을 다시 한 번 강조한다.
어린이의 경우에 배고픔, 영양부족은 그 자체로 혁명적이지 못하며, 자산가에 대한 증오를 불러일으키기 보다는 오히려 질투, 비굴함과 절제를 가져온다고 보고 혁명적 감정의 발전에 제동을 걸기 때문에 어린이에게 ‘착하다’고 하는 이데올로기에 맞서는 투쟁이 프롤레타리아 전선의 중요한 과제임을 말하고 있다.
노동자 운동과 사회주의 운동에서의 개량주의와 관료주의를 무조건 비판하는데 그치는 것이 아니라 왜 노동자들이 개량주의와 관료주의를 받아들였는가를 따져야 한다.
사회주의 운동의 지도부의 과제는 ‘공산주의 강령을 대중에게 전달하는 것’이나 ‘대중을 계급의식 있는 투사로 만드는 것’이 아니라, 객관적인 역사적 과정을 연구하는 것과 더불어 이미 거기에 있는 혁명적 본능을 발전시키는데 있으며, 동시에 이러한 혁명적 본능을 프롤레타리아와 소부르주아 그리고 농민층에서 발전시키는데 있다.
그렇기 때문에 맑스주의 과학은 ‘과학’ 위에 ‘계급투쟁’의 구호를 붙임으로써 발전시킬 수 없으며, 오직 과학 자체의 개별분야들의 질문들, 문제들, 발견들로부터만 발전할 수 있다. 따라서 부르주아 과학이 어디서 실패했고, 왜 실패했는가, 부르주아 세계관이 어디서, 어떻게 지식의 장애물인가를 사실적으로 증명해야 한다.6)
보기를 들어 프로이트를 ‘반동’이라고 폭로함으로써 프로이트의 학문적 실수에 대한 ‘맑스주의적’ 공격을 개시하는 것은 어리석은 짓이며, 그보다는 프로이트가 어디에서 천재적인 자연과학자이고, 어디에서 시대에 뒤떨어진 부르주아 철학자인지 객관적으로 증명하면 진지하고 유용한 맑스주의적인 혁명적 작업을 수행할 수 있다고 본다.
또한 그는 혁명에 대한 대중의 불안이 계급의식 발전에 걸림돌이 된다고 지적한다. 광범위한 비정치적 대중은 공산주의자들을 ‘폭력적인 사람들’이라고 보는데 이러한 견해는 공산주의 운동에 결정적인 요소로 작용한다. 왜냐하면 대중은 폭력을 두려워하고 평화와 고요를 원하기 때문이다. 따라서 대중은 공산주의와 아무런 관계도 맺지 않으려고 한다.
민족사회주의(나치)운동의 중요한 힘 가운데 하나는 ‘독일혁명’이라는 환상 위에 비폭력적인 권력 장악을 약속하여 무의식적으로 대중의 혁명적 소망과 평화주의적 소망, 둘 모두에 호소하였다는 사실이다. 혁명운동의 대중적 기반이 넓으면 넓을수록 폭력을 덜 필요하게 되고 대중은 그들의 혁명에 대한 불안을 더욱 더 버릴 것이기 때문이다.
또한 그는 공산당 지도부가 경찰과 군대가 물리적 억압기구임은 사실이나 경찰과 군인이 프롤레타리아, 농민, 그리고 피고용인의 아들임을 잊지 말 것을 환기시키면서 프러시아 경찰의 다수가 사회민주당원임을 지적하고 있다.7)
라이히가 주창하는 성정치 운동은 주관적 욕구로부터 사회혁명의 필요성을 발전시킴으로써, 그리고 대중의 욕구를 ‘과연’ 만족시킬 수 있는지, 그리고 어떻게 만족시킬 수 있는지 하는 모든 정치적 쟁점을 밝힘으로써, 모든 수준에서 정치적으로 가장 혼돈스러운 인민들 사이에서조차 커다란 관심을 불러일으켰다.
그는 강령적 요구도 대중심리학의 측면에서 ‘우리는 대자본가들을 몰수할 것이다’라고 말하는 것과 ‘우리는 우리의 소유를 우리의 올바른 관리 아래 두고 있다’고 말하는 것은 엄청난 차이가 있다고 지적한다.
이는 첫 번째 강령적 요구에 대해 비정치적이거나 정치적으로 왜곡된 평균적인 산업노동자 마치 자신이 남의 소유를 장악한 것처럼 범죄의식과 어떤 금기를 지닌 채 반응할 것이고, 두 번째의 경우에는 자신의 노동에 근거한 자신의 정당한 소유권을 의식하게 되어 ‘사유재산의 불가침성’이라는 부르주아 관념이 힘을 잃게 된다는 것이다.
문제는 지배계급이 자신들의 이데올로기를 퍼뜨리고 방어한다는 것이 아니라 대중이 왜 그것을 받아들이는가이다.
결론적으로 라이히는 계급의식을 다음과 같이 정의하고 있다.
“혁명지도자는 잉여가치가 무엇인지 알아야 하고, 노동자는 자신의 노동으로 생산한 물건이 기업가에게 얼마나 이익이 되는가를 정확히 알아야 한다. 그것이 계급의식이다.
그러면 노동자는 단지 연대의 의미에서나 노조의 직장대표가 자신에게 말하기 때문이 아니라 자신의 이익에서 파업할 것이며, 어떤 노동조합 지도자도 다시는 노동자를 기만할 수 없을 것이다.
지금까지 혁명적 선전은 본질적으로 소극적 비판으로만 이루어져 왔다. 혁명적 선전은 또한 건설적이고 적극적일 수 있는 것을 배워야 한다.”8)
(계속됩니다.)
주)
1) 빌헬름 라이히, 윤수종 옮김, 「성정치」, 중원문화, 2011, ‘계급의식이란 무엇인가?’, 257쪽
2) 윗글, 253쪽
3) 윗글, 257쪽
4) 윗글, 266쪽
5) 윗글, 271쪽
6) 윗글, 332쪽
7) 윗글, 350쪽
8) 윗글, 350쪽
[참고서적] 『비판적 교양인을 위한 오세철 강의록』
(오세철 지음, 도서출판 빛나는 전망, 2012)
성격구조는 자본가에게만 국한되지 않는다. 자유주의적 자본가도 있고 반동적 노동자도 있다. 존재가 의식을 결정한다는 맑스의 명제는 두 가지 질문을 남기고 있다. 첫째, 그것이 어떻게 일어나며 인간의 두뇌에 무엇이 일어나는가 하는 것과, 둘째, 그렇게 형성된 의식(성격구조)이 어떻게 다시 경제과정에 반응하는가이다.
라이히는 소련에 진정한 사회주의가 존재하지 않았다고 보았다. 엄격한 의미의 맑스의 개념으로 보면 소련은 경직된 국가자본주의일 따름이다. 한 마디로 그것은 사용경제가 아닌 교환경제, 임노동, 잉여생산으로부터 나온다. 그 잉여가 진정한 사회가 아닌 국가에 귀속되거나 개인에 귀속된다면 그것은 모두 자본주의이다. 따라서 소련은 대중이 ‘비합리적’으로 유린되고 권위에 대한 갈망이 존속하는 한 파시즘 구조로 남아있게 된다.
(오세철 지음, 도서출판 빛나는 전망, 2012)
성격구조는 자본가에게만 국한되지 않는다. 자유주의적 자본가도 있고 반동적 노동자도 있다. 존재가 의식을 결정한다는 맑스의 명제는 두 가지 질문을 남기고 있다. 첫째, 그것이 어떻게 일어나며 인간의 두뇌에 무엇이 일어나는가 하는 것과, 둘째, 그렇게 형성된 의식(성격구조)이 어떻게 다시 경제과정에 반응하는가이다.
라이히는 소련에 진정한 사회주의가 존재하지 않았다고 보았다. 엄격한 의미의 맑스의 개념으로 보면 소련은 경직된 국가자본주의일 따름이다. 한 마디로 그것은 사용경제가 아닌 교환경제, 임노동, 잉여생산으로부터 나온다. 그 잉여가 진정한 사회가 아닌 국가에 귀속되거나 개인에 귀속된다면 그것은 모두 자본주의이다. 따라서 소련은 대중이 ‘비합리적’으로 유린되고 권위에 대한 갈망이 존속하는 한 파시즘 구조로 남아있게 된다.
[글쓴이 소개] 오세철은?
1943년에 태어나 연세대학교를 졸업했다, 노스웨스턴(Northwestern) 대학교 대학원에서 조직행동, 사회심리학, 사회학 분야의 공부를 하고, 1975년에 조직행동으로 박사학위를 받았다. 현 연세대 명예교수로 있으면서 ‘사회심리학’, ‘한국사회변동과 조직’ 등의 강의를 맡고 있다. 민중회의, 민중정치연합, 정치연대, 노동자의힘(준) 대표, 사회주의노동자연합 운영위원장을 역임했고, 현재 국제코뮤니스트전망, 사회실천연구소, 레프트119에서 활동하고 있다.
주요 역서로는 「문화사회학방법론」(1984), 「파시즘의 대중심리」(1987), 「조직사회학」(1981), 「자본주의의 쇠퇴」(2009, 「소련은 무엇이었나」(2009)가 있고, 저서로는「맑스주의, 조직의 정치경제학, 그리고 한국사회변혁」(1993), 「21세기 자본주의와 한국사회변혁」(2001), 「사회주의와 노동자정치」(2004), 「다시, 혁명을 말한다」(2009),「좌익공산주의」(편저, 2008),「술,학문,예술,혁명의 사중주」(2012),「비판적 교양인을 위한 오세철 강의」(2012) 등이 있다.
『레프트119 준비위 결성을 위한 모임』(레프트119)
http://cafe.daum.net/left119