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상과 같은 유전자 검사로부터 유용한 정보를 획득할 수 있는 과학적 근거는 분자유전학(생물학)이다. 오늘날 분자유전학을 대표한다고 할 수 있는 것이 바로 인간게놈프로젝트이다.
현대 자연과학에 있어서 하나의 첨단 분야로서 급속히 성장하고 있는 분자유전학 혹은 분자생물학의 발전과정을 살펴보면, 광업과 화학공업의 급속하고 광범위한 발전이 하나의 논리적 과학으로서의 화학성립의 필수 전제조건이었듯이327) 분자생물학 역시 자본의 이해관계와 밀접한 관련을 맺고 있음을 알 수 있다.
여기에서는 분자생물학의 탄생에 있어서 원동력이랄 수는 없으나 중요한 역할을 수행한 록펠러재단, 그 중에서도 1931년부터 재단의 자연과학부의 최고책임자였던 여류 수학자이자 물리학자였던 W.위버의 생각을 검토하고자 한다.
록펠러재단은 1929년 대공황에 직면해서 심각한 반성을 했다. 재단의 책임자들은 위기의 기원을 생산력― 지난 수 십 년 간 부단히 성장해옴―에 대한 지식과, 인간― 진보가 없음―에 대한 지식 사이의 간격에 있다고 보았다. 이러한 발본적이고 장기적 안목에서 위기상황을 타개할 수 있는 방향을 위버는 다음과 같이 설정했다.
“무생물의 제반 힘에 대한 우리의 이해력과 통제력은 생물의 제반 힘에 대한 우리의 이해력과 통제력을 앞질렀다. 이런 상황이 이제 생물학과 심리학, 그리고 그 두 학문의 근본을 이루는… 수학, 물리학, 화학의 발전에 각별한 노력을 기울일 것을 강요하고 있다.”328)
분자생물학이 대략 유전학과 생화학이 수렴되면서 탄생한 분야임을 생각할 때 그녀의 통찰력을 이해할 수 있다.
“인간은 자신의 고유한 능력을 합리적으로 통제할 수 있을까? 우리는 정말 확실하고 완전한 유전학을 발전시킴으로써 미래에 우수한 인간들을 낳을 수 있다는 희망을 가질 수 있을까? 우리는 성의 생리학과 심리학의 지식을 충분히 얻음으로써 너무도 중요하고 위험한, 물밀듯이 밀려오는 생명의 이 분야를 합리적 통제 아래 둘 수 있을까? 우리는 내분비선(필자: 호르몬을 분비)관련 문제들을 해결해서 너무 늦기 전에 내분비교란으로 말미암는, 무시무시한 신체적・정신적 질환들에 대한 치료법을 개발할 수 있을까? 우리는 여러 가지 서로 다른 비타민들이 제기하는 불가사의한 의문들을 해결할 수 있을까? 우리는 심리학을 혼란과 현재의 비효율성으로부터 해방시켜서 개개인이 일상생활에서 활용할 수 있는 수단으로 변형시킬 수 있을까? 인간은 합리적인 행동에 필수적인, 자신의 고유한 과정에 대한 충분한 지식을 획득할 수 있을까? 요컨대, 우리는 인간에 대한 새로운 과학을 창조할 수 있을까?”
‘인간에 대한 새로운 과학’에의 모색. 1870년대 이래 자본주의의 역사가 시작되어 제국주의 단계에 접어든 이래 최대의 위기국면에서 자본가계급의 엘리트들은― 우생학적인 반동적 경향을 수반하는 한편― 인간행동에 대한― 환원론적이고 기계론적 경향329)을 수반하는 한편― 유물론적 반성을 본격화했던 것이다.
다음 2회분과 3회분에서 개관하겠지만 1930년대부터 1960년대 초까지, 스탈린주의시대 소련에서는 유물론이 형해(形骸)화되고 이데올로기가 과학에 대해서 귀머거리 3년・눈멀어 3년 정도가 아니라 귀머거리 30년・벙어리 30년・눈멀어 30년을 강요했던 것이다.
투옥 중에 군주정을 지지하는 우파 반체제인사가 성경 반입을 요구하여 허용된 반면, 마르크스의 저작들은 반입 보류되는 일이 일어난 곳이 다름 아닌 소련이었다니!330)
당시 소련은 새로운 ‘사회주의적 인간형’의 창출에 관심을 가지고 노력하면서도 스탈린주의적 권력정치와 이데올로기가, 인간의 행동에 대한 깊고 폭넓은 비판적 성찰인 유전학과 심리학 그리고 생물학의 발전을 짓밟아버렸던 것이다.
록펠러재단은 1932~1959년의 기간에 많은 연구소에 총 2,500만 달러를 지원했다. 이를테면 캘리포니아공대 폴링 연구소의 장기적 프로젝트를 지원했는데 폴링은 생화학부문에 대한 거금을 지원받았다. 폴링은 코리와 함께 생물학적 합성물질에 대한 연구의 핵심주제로서 단백질(세포, 유전자, 호르몬, 효소의 구성 물질)의 구조연구에 착수하여 분자생물학의 성립에 주된 역할을 수행하였다.331)
다. 인간 유전체 기획(Human Genome Project)
폴링 등에 이어 J.왓슨과 F. 크릭332)이 DNA의 이중나선 구조를 규명하면서 분자생물학의 성장은 박차를 가하게 되었다. 오늘날 분자생물학의 정점이랄 수 있는 인간게놈프로젝트가 규명하려는 것은 무엇인가?333)
인간 유전체 기획은 인체의 유전자 지도를 작성해서 이 지도를 근거로 다양한 질병들 즉 각종 유전질환을 비롯해서 암, 알츠하이머병, 여러 가지 경화증들을 유전자치료법(Gene Therapy)으로 극복하며, 노화의 기제를 규명하고 나아가서는 인간의 행동을 유전자차원에서 설명하고자하는 대단히 야심만만한 연구계획이다.
이 프로젝트는 우선 유전자 지도 작성에서 출발한다. 이 지도를 통해서 염색체에 있는 이미 알려진 유전자표지(marker)의 염기서열(sequence) 수천 개가 어떻게 세대를 이어가면서 분리되었다 재조합하는지를 알 수 있게 된다. 그리고 유전자 지도를 이용해서 일정한 조건에서 일어나는 유전의 형태를 표지의 염기배열의 형태와 비교해서 그 조건을 유발하는 유전자의 위치를 결정한다. 그런 다음 염기배열결정(sequencing)의 자료를 컴퓨터로 처리해서 신체지도(Physical map)를 작성한다.
이 지도를 통해서 질병관련 유전자를 발견해내는 것이다.334) 이 작업을 다른 방식으로 표현하면 이렇다. 유전자 목록작성→아미노산의 배열을 연역→단백질의 3차원구조와 기능이해→세포 내 핵산과 단백질 사이의 상호작용분석→생리적 과정의 세부규명→수정란으로부터 성인에 이르는 분자수준의 작용추적.335)
향후 30년 동안 우리 주변에 흔한 많은 질병들에 쉽게 걸리도록 하는 백여 개의 유전자들을 규명할 것이라고 예상하고 있다. 1997년 말 현재 게놈 연구자들은 약 5천개의 기능을 규명했다. 일단 질병유발 유전자의 위치를 확인해서 그것의 유전암호의 순서를 규명하면 어떤 환자에게 그 유전자의 존재여부를 확인할 수 있는 테스트를 고안할 수 있는 것이다. 그런 까닭에 스탠포드의 유전학자 D.콕스는 “사람들의 유전세포의 순서 중 99.9%는 동일하므로 0.1%의 차이가 의학혁명을 가져올 것이다”336)라고 말한다.
이미 많은 진단용 테스트가 실용화되고 있는데 그 진단에 따른 치료로서 유전자 치료에는 해당 유전자의 규명뿐만 아니라 그것이 암호화하고 있는 단백질의 규명 역시 필요하다. 그리고 유전자 치료가 유효하려면 인간 게놈 지도와 단백질의 규명과 함께 병원체의 DNA암호 역시 해독해야 한다.
게놈 프로젝트의 대표주자 가운데 한 사람인 크레이그 벤터 (Venter)의 연구소는 콜레라와 결핵을 유발하는 병원체의 DNA 암호를 해독함으로써 “마침내 박테리아와의 전쟁에서 승리할 수 있다는 엄청난 희망을 품을 수 있게 되었다.”
이상과 같은 성과를 바탕으로 유전자 치료를 할 수 있는데 유전자 돌연변이를 보완하는 치료법에는 세 가지가 있다. 유전자 돌연변이 즉 단 하나의 암호가 생략되거나 변화되어 유발되는 질환들은 결함이 있는 단백질에 기인한다. 따라서 제약회사들은 제 기능을 발휘하지 못하는 단백질의 기능을 대신할 수 있는 합성분자, 화학 합성물질들을 개발하고 있다.337)
치료법 세 가지는 첫째, 유용한 유전자를 세포 속으로 운반해서 상실되었거나 비효율적인 유전자를 보완하거나 전적으로 새로운 속성들을 주입하기,
둘째, 암세포로 하여금 특정 단백질을 생산하도록 해서 면역체계가 그것을 공격하도록 유도하거나 종양이 성장하는 데 필요한 혈액의 공급을 차단시키기,338)
셋째, 파괴적 단백질을 생성하는 유전자 돌연변이를 보상하는 방식이다.339)
유전자 치료법은 기술적인 면에서 마치 핵무기 개발에 있어서 운반체의 개발이 돌파해야 할 중요한 난관이듯이 치료용 유전자를 세포막(아무 물질이나 통과하는 것이 아니다)을 통해 세포 내로 운반하는 기술의 개발이라는 난제를 아직 해결하지 못했다.
공인된 최초의 유전자 치료는 1990년 면역결핍증으로 고통 받는 4세 소녀에게 미 국립보건연구원에서 시도한 것으로 그녀는 현재 비교적 정상생활을 영위하고 있다. 하지만 현재까지 전 세계적으로 유전자 치료를 받은 2천명 가운데 단 한 사람의 건강도 결정적으로 개선시키지 못했다고 한다.340) (계속)
주(註)
327) J.버날, 『역사 속의 과학』, MIT출판부, 1979년 판, 617면~634면.
328) R.콜러, 「과학의 경영: 분자생물학에 있어서 w.위버의 경험과 록펠러재단의 프로그램」, 『미네르바』, 제14호, 290면,M. 모랑주, 『분자생물학의 역사』, 파리, 데쿠베르트출판사, 1994년, 107면에서 재인용. 모랑주는 파리 고등사범학교의 분자생물학 연구원으로서 파리 제6대학에서 생화학을, 제7대학에서 과학사를 가르치고 있다.
329) 모랑주는 환원론(reductionism)의 의미를 존재론적인 것, 인식론적인 것, 훨씬 실용적이고 과학의 실제작동에 직결된 것으로서 방법론적 환원론, 세 가지로 구별하면서 분자생물학의 환원론적 접근방법에 대한 지나친 ‘형이상학적’공론(speculation)을 하지 말 것을 충고하고 있다. 필자는 근본적으로 Varela, Changeux의 인지・신경과학적 입장을 지지하는 한편 환원론적 접근방법의 대단한 성과를 적극적으로 올바르게 수용해야 한다고 생각한다. 모랑주의 앞의 책, 320면~325면.
330)「소련의 신좌파: 카갈리츠키와의 대담」 카갈리츠키, 『생각하는 갈대:1917년부터 현재까지 지식인들과 소련국가』, 베르소 출판사, 1988년, 348면. 한국의 행형제도의 개혁 과제중 하나는 재소자들에게 눈 가리고 아웅 식의 집필권이 아니라 실질적 집필권을 부여해야한다는 것이다. 수감생활 중 사색한 성과를 본인이 가지고 출소하는 것을 금지하는 것은 야만적인 탄압이다.
331) 모랑주의 앞의 책, 108면~109면. 테드 괴르첼과 벤 괴르첼, 『라이너스 폴링:과학자로서의 삶과 정치활동』, 베이식북스출판사, 1995년, 86면~89면. 폴링은 미국 하원 반미행동조사위원회로부터 ‘공산주의적 평화운동’의 지지자로 낙인찍혔고 네루가 중재에 나서 한국전쟁을 종식시킬 것을 촉구하는 성명서에도 서명하는 등 활발한 정치적 참여를 했다. 앞의 전기, 123면, 185면.
332) F. 크릭, 『열광의 탐구: DNA구조 발견의 체험기』, 권태익・조태주역, 범양사, 1988년, J.왓슨, 『이중 나선: DNA구조 발견의 체험기』, 펭귄북스출판사, 1970년 판. 두 사람은 DNA구조 해명의 공로로 노벨생리의학상을 수상했다.
333) 인간게놈프로젝트의 이해를 위해서 최소한 알아야 할 중요한 전문용어들을 정리하면 다음과 같다.
・게놈(Genome):생명체의 유전물질(곧 유전자)의 총체. 분자유전학자들에 따르면 게놈은 종 특이성(species-typical)이 있다. 사람의 게놈과 개의 게놈이 구별된다는 뜻이다.
・유전자(Gene):부모의 형질을 자손에게 유전시키는 물질의 유전자는 염색체 위에 흩어져있는데 보통 DNA의 단편들(예외적인 것이 일부 바이러스의 유전자인데 이 경우 유전물질은 RNA이다)이다. 유전자가 관심의 초점인 근거는 생물현상의 화학적 구성물질인 단백질의, 혹은 일부 경우에는 단백질의 주된 부분들인 아미노산의 유전암호를 지정하는 DNA의 단편들이라는 것이다.
・염색체(Chromosome):세포핵에 있는, DNA를 포함하고 있는 것으로 긴 실과 같은 구조를 가지고 있다. 진핵생물에 있어서 감수분열시 짤막한 막대기모양을 띤다. 인간의 세포(생식세포에는 1쌍)에는 염색체가 23쌍이 있다.
・유전형과 표현형(genotype과 phenotype):유전형이란 생명체의 속성의 표현(곧 표현형)에 책임이 있는 숨겨진 유전정보를 가리킨다. 유전형은 염색체상의 어떤 위치(locus) 혹은 여러 위치에 자리 잡고 있는 대립유전자(alleles)의 조합이다.
・대립유전자(Allele):동일한 유전자의 둘 이상의 형태 가운데 하나.
・Genetic marker:염색체상의 일정지역에 있을 수 있는 DNA의 부분. 이것은 유전자지도작성에 있어서 이정표와 같은 구실을 한다.
염기서열(Sequencing):DNA와 RNA 같은 핵산에 있는 뉴클레오티드의 배열을 결정하는 것. 뉴클레오티드에는 아민(A), 시토신(C), 구아닌(G), 티민(T)이 있는데 이 작업으로 이것들은 긴 줄로 나타난다. 즉 AUG-UUU0CGU…
334) “인간 유전학의 동향”, 앞의 『Scientific America』, 1996년 3월호, 77면.
335) 앞의 필립 키처의 책, 91면.
336)「우리는 지금 생물학의 세기를 시작하고 있다」, 『비지니스위크』지, 1998년 8월 24일~31일자, 44면.
337) L. 자로프, 「왕국에의 열쇠들」, 『타임』지 특별 호, 1998년 1월, 45면.
338) 파리 근처 구스타브-루시 연구소와 그에 앞서 하버드 의대에서 실험에 성공. 『과학과 미래』, 1998년 7월, 9면.
339) "특별보고서: 유전자 치료법", 『Scientific American』, 1997년 6월호, 81면~82면.
340) 앞의 과학 잡지, 80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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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본문은 한국노동운동이론정책연구소(소장 김세균 교수/서울대 정치학과 ) 발간『현장에서 미래를』(1998년 10월호, 제 37호)에 게재된 것임.
본지는 재야 인문학자 최형록 선생의 양해 아래 그의 에세이를 매주 수/토요일 시리즈로 싣는다. 에세이는 최 선생의 책 『이 야만의 세계에서 어린시절의 꿈나무를 키워나간다』(도서출판 다올 정문사)에서 옮긴 것으로 그의 철학, 역사, 과학, 정치에 관한 세계관을 접할 수 있다. 최 선생은 서울대 인문대학원에서 수학했으며 민중당 국제협력국장, 사민청 지도위원, 진보평론 편집위원을 지낸 바 있다. ‘모든 노동자의 건강할 권리를 위하여’를 영역했다. [한국인권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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