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동자혁명당추진모임(노혁추) 임천용 동지의 글에 답한다
1.
먼저, 재능지부 투쟁 관련 온라인 토론의 목적은 전환기 운동의 지속가능한 발전을 전제로 해야 하며, 이 토론으로 말미암아 ‘어떤 경우에도’ 그동안 온몸으로 헌신한 기존 재능지부 투쟁 활동가/조합원들에게 돌이킬 수 없는 상처를 남겨선 안 된다는 점을 밝힌다.
임천용 동지가 문제 삼은 운동과 트라우마 관련 지적은 필자의 의도와 전혀 다른 층위의 이야기이기에 약간의 부연설명이 필요할 듯싶다.
필자가 ‘[운동평론] 재능지부 투쟁에서 보는 운동의 어려움 & 극복하기(2)(3)’에서 언급한 사회심리학(부르주아 심리학이 아닌)에 기반한 트라우마 문건과 운동에의 적용은, 오랜 기간 투쟁으로 과부하 우려가 높은 동지들의 자기 점검을 위한 기본적인 정보 제공이었다고 보면 된다. 참고로, 트라우마에 걸린 사람들은 대부분 스스로의 증세를 인정하지 않는 경향이 있다.
그리고 이는 필자가 재능지부 관련 문건을 제출한 직접적인 이유이기도 하다. 온오프라인을 통해 만난 다수의 재능지부 양측 동지들에게서 전형적인 트라우마 증세를 읽을 수 있었기 때문이다. 동지들의 아픔은 깊었다. 필자를 신뢰하며 대화 중 자연스레 보여준 비난, 욕설, 분노, 눈물, 집착 등은 오늘 이 쟁점에 개입하게 된 중요한 단초가 되었다. 필자는 운동의 정의를 세우기 위한 이번 여정에 함께 하게 된 것을 활동가의 당연한 의무로 받아들이며 매우 기쁘게 생각한다.
2.
토론을 지켜보는 동지들을 위해서 가장 중요한 쟁점부터 먼저 보기로 한다. 필자는 ‘[운동평론] 재능지부 투쟁에서 보는 운동의 어려움 & 극복하기(3)’ 결론부에서 다음과 같이 두 가지 질문을 한 바 있다.
1) 그렇다면, 문제의 직접적 발단이 된 2월 6일 재능지부 조합원 두 명이 종탑에 오르기 전까지의 재능지부 5년간의 투쟁은 어떤 의미를 지닌 것일까?
2) 만약, 대의원대회에서 구 지도부가 다시 선출되었다면 <입장서>와 같은 내용의 문제 제기가 이처럼 거칠게 던져질 수 있었을 것인가?
이에 대해 임천용 동지는 이렇게 답했다.
“누구도 배제되지 않고 투쟁을 마무리해야 한다는 비없세와의 합의 내용을 인정하고 지금이라도 합의의 정신이 지켜진다면, 전열을 정비해서 단일한 깃발을 들고 재능자본에 맞서 투쟁할 수 있을 것이다. 이 단일한 깃발은 당면한 재능 자본에 맞선 투쟁을 전개하기 위한 것이다. 하지만 단일한 깃발을 가지고 투쟁한다는 것이 비대위측과 재능자본에 대한 당면의 요구투쟁 이외의 문제, 즉 종탑농성과 동시에 비대위에서부터 학습지노조를 장악해가는 과정의 반동적이고 퇴행적인 행위라는 정치적 성격규정을 면죄받는 것은 아니다.
그럼에도 지난 5년간의 투쟁은 학습지 조합원들과 재능 공대위, 기독대책위 등 사회적인 유무형의 연대 속에서만 가능했기 때문에 그것의 해결 또한 운동진영의 합의속에서만 가능하다고 믿는다.“
그러나 이 글에서는 ‘재능지부 5년간의 투쟁 의미’ 관련 질문 1)에 대한 아무런 언급이 없다. 또한 ‘구 지도부 선출을 가정한 <입장서>’ 관련 질문 2)에 대해서도 역시 묵묵부답이다. 따라서 이는 답변의 성격을 지니지 못한 전혀 다른 글이라고 봐야 한다. 대신, 시청쪽의 임천용 동지는 종탑쪽을 상대로 ‘비없세와의 합의 내용을 인정할 것’만 강력하게 주장했다. (*편의상 재능지부 투쟁 관련 양측을 시청쪽과 종탑쪽으로 부르기로 한다.)
해서, 필자는 당시 어떤 상황이었는지 이와 관련한 종탑쪽의 견해를 전화 인터뷰를 통해 들어보기로 했다. 종탑쪽의 증언(유)을 정리한 결과는 다음과 같다.
1) 누구도 배제되지 않고 투쟁을 마무리해야 한다는 비없세와의 합의 내용은 맞다.
2) 비없세(김, 박)에서는 회사와의 교섭 책임자로 (강)을 내정할 것을 사실상 강요했다.
3) 종탑쪽은 (강)을 내정하고 갈 수는 없다고 그 뜻을 분명히 밝혔다.
4) 비없세의 제안으로 대의원대회에서 직무대행을 선출하기로 결정했다.
5) 대의원대회를 열기 위해 임기가 남은 대의원 4명을 소집했다.
6) (강)과 (황)이 추천 받아 경선에 나섰고, 투표 결과 1: 3으로 (황)이 선출됐다.
[참조]“기존의 (강) 위원장이 투쟁 마무리때까지만 직무대행을 유지하기로 비없세와 양자간 합의한바가 있다”라는 등의 시청쪽의 주장에 대해
(유)의 말
“비없세와 합의한 바는 한번도 없다. (비없세)는 그렇게((강)을 내정) 하는 게 좋지 않겠냐고 했지만, 우린 ‘내정할 순 없다’고 분명하게 밝혔다. 비없애는 (종탑쪽이 집행회의까지 들어갔다) ‘명시적으로 구조적으로 합의한 바 없지만 그래도 계속 그런 얘기를 했고 그렇게 할 줄 알았다’고 했다. 이는 비없세의 자의적인 생각이었다.”
“대의원대회(2.24) 선거결과는 아무도 몰랐다. 개인적으로는 (강)이 투쟁을 잘해왔기에 그가 될 줄 알았다. 대의원 중에서 두 명은 투표 성향을 짐작했지만, 시청쪽에서 문제 삼은 나머지 두 명은 어떤 의견인지 알 수 없었다. 그리고, 만약 (강)은 자신이 안될 것을 미리 알았다면 선거에 나오지 않았을 것이라는 생각이 든다.”
임천용 동지의 답변 아닌 주장에 대해, 이상의 사실관계 증언으로 대신하면서, 다시금 필자의 질문2)을 상기해보기를 임 동지에게 권한다.
“만약, 대의원대회에서 구 지도부가 다시 선출되었다면 <입장서>와 같은 내용의 문제 제기가 이처럼 거칠게 던져질 수 있었을 것인가?”
3.
<입장서>에 나오는 개별적인 재능동지들에 대한 저격 행위는 잔인했다. 사적 공간에서도 하기 힘든 진위가 불분명한 이야기들을 적들이 뻔히 내려다보고 있는 공적 공간에서 마구잡이로 난사했다는 것은 <입장서>와 관련한 시청쪽이 공격 방향에서 피아식별 능력을 완전히 상실했음을 반증한다. 동시에 , 새로운 조직을 기정사실화하기 위한 정치적 포석으로 종탑쪽 동지들을 완전히 망가뜨리려는 의도로도 읽을 수 있다.(일반사회라면 즉시 ‘사이버 명예훼손’으로 난리가 났을 것이다.)
우리는 해방운동을 하는 것이지 부르주아 도덕운동을 하는 게 아니다. 운동의 대의를 외면한 채 적들 앞에서 그런 식으로 동지들 한사람한사람을 도덕적으로 미주알고주알 트집 잡아 마녀사냥에 나선다면 아마도 살아남을 자가 아무도 없을 것이다. 이는 양파를 깨끗이 한다며 강박적으로 껍질을 계속 벗기다보니 결국에는 남은 게 없더라는 얘기와 같은 이치다. 우리는 이런 유형의 터무니없는 논리를 ‘순혈주의’라 부른다.
이번 재능지부 투쟁 관련 사태에서 불현듯 지난 2006년의 악몽이 되살아났다. 당시 필자는 한 철거민단체가 내홍을 겪는 상황에서 중재를 서는 역할을 자임했었다. 분란은 표면상으로는 상공철거민을 ‘쁘띠’로 간주한 측이 상공을 받아들인 중앙을 공격하는 이념투쟁의 모양새였지만, 조직 내부를 촘촘히 들여다보면 실은 헤게모니 싸움이 더 큰 이유였다. 어쨌든 한쪽의 거부로 중재는 실패했고, 딴살림 차린 철거민단체는 잠깐 동안 ‘주거세입자’로만 구성된 새로운 깃발로 활동하다 사라졌다.
필자는 임 동지와 페친이기도 해서, 그의 견해를 페이스북에서 메시지로 혹은 댓글로 접할 수 있었다. 공개 댓글로 본 동지의 지적은 이번 글에서 종탑쪽을 “반동적이고 퇴행적인 행위로 규정”한 연속선상에서 또 다른 조직의 탄생을 전망케 한다.
“.. 특고 투쟁에 관한한 자본과 싸울 의지만 서로 간에 있다면, 다른 깃발을 들고 자본에 맞서 투쟁할 수 있다고 봅니다. 이미 이 투쟁은 비대위 결성 때부터 필패로 전환되었고, 이 흐름을 저지하는 것이 지금의 중차대한 시점에 도달했다는 결론입니다..”
설마, 임 동지가 새 조직의 준비를 위하여 종탑쪽이 ‘필패’가 되어야 한다고 한 것은 아닐 테지만 거침없이 ‘다른 깃발’을 전제함으로써, 오해?를 낳으며 동시에 발빠른 행보가 아닌가 우려하게 한다. 이는 특히 임 동지가 주요단체의 활동가로서 그리고 재능투쟁 연대단위에서 조직적인 역할을 해 온 내력이 있기 때문에 개인에 국한된 사고로 단정하기에는 석연치 않아 보이는 대목이므로 더욱 그렇다.
필자는 여기서 종탑쪽이 전 지도부 당시와 같은 요구를 걸고 싸우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임 동지로부터 왜 ‘반동’과 ‘퇴행’이라는 비난을 받아야 하는지 그 이유를 도무지 이해할 수 없다. 임 동지는 비대위 결성을 주요한 원인으로 지목하고 있지만 비대위가 조직 내 소통의 부재에서 비롯된 결과임은 이미 드러나 있지 않은가. 또한 그러한 현상을 원인에서 찾는 게 과학적인 관점 아니겠는가. 소통 부재는 개별적으로 접근하기 보다는 조직 역량과 리더십 모두에서 찾는 게 합리적이다.
필자는 처음에는 중립적 입장에서 양측의 주장을 듣는데 집중하면서, 하나의 투쟁을 만들어 갈 수 있도록 온오프라인 작업에 관심을 기울였다. 그래서 분란을 키우는 상호 비난이 발생하지 않도록 페친인 시청쪽 (Y)동지와 종탑쪽에 주의를 당부했다. 그러나 어느 날부터 시청쪽에서 종탑쪽을 향해 상상 이상의 모욕성 비난들이 쏟아지기 시작했다. 종탑쪽 동지들은 몹시 힘들어했지만 감정적인 대응을 자제했으며, 그 중에는 오히려 (Y)동지를 걱정하는 성숙한 모습을 보여준 동지도 있었다.
‘목적이 수단을 정당화하는 건 매우 위험하다’는 신념을 갖고 운동에 임해 온 필자는 이번 사태에서 시청쪽의 움직임에 실망했다. 운동은 논리에는 논리로, 비논리에도 논리로 대응하며 만들어가는 것이라고 배웠다. 또한 운동은 지성의 꽃이라고 여겼다. 해서 무엇이 옳고 그른지 진실을 찾아 나섰고 동지들을 만나 대의원대회 선거과정을 구체적으로 청취할 수 있었다. 그리고 퍼즐조각을 맞추어 본 결과 새 지도부의 ‘정당성’을 확인했다. 그것이 필자가 종탑쪽을 엄호하게 된 결정적인 이유이다.
5년이 넘는 세월동안 그 험한 길바닥 투쟁을 함께해온 동지들 앞에 던지는 시청쪽의 무모한 혐의 부여가 참으로 초라하다. 운동은 동지를 배려함으로써 성장한다. 어떤 연대단위나 조합원 상호간이나 비판을 빌미로 상대에 오만하게 군림하려는 자세는 반드시 운동을 해치게 돼있음은 삼척동자도 알만한 사실인데 시청쪽은 해선 안 될 악수(惡手)를 두었다.
휴전선에서 철책 지키는 군인들도 6개월이면 후방으로 배치한다. 주야 경계근무로 정상적인 생활이 불가능해 사고 발생 우려가 높기 때문이다. 재능지부 동지들은 무려 5년이 넘는 세월동안 농성천막 보초와 그 험한 투쟁을 버텨내고 있으니, 철책 경계근무 병사와 단순 비교해도 약 10배 이상의 과부하가 걸린 혹독한 생활을 하고 있는 것이다. 게다가 다수 조합원은 여성들이 아닌가.
필자는 재능동지들에 대한 고마움을 지난 글(2)에서 이렇게 적은 바 있다.
“우리들의 제사회·노동운동 진영이 비정규직/특고투쟁에 헌신하고 있는 재능지부 동지들에게 큰 빚을 졌다는 생각을 늘 하고 있다. 노동자성 인정도 받지 못한 채 개별자본과 자본가권력으로부터 온갖 핍박을 받아온 재능동지들이 단사투쟁을 뛰어넘는 자본과의 거대한 싸움판을 만드는데 지대한 역할을 다하고 있기 때문이다.”
진보좌파운동이 노조운동을 만났을 때 필연적으로 발생하는 긴장이 있다. 좌파활동가들은 노조운동이 당연히 진보적인 정치운동으로 발전하기를 기대하며 연대에 힘을 쏟지만, 그 힘에 추가동력을 얻은 노조는 언젠가는 조합원들의 총의로 자신들의 진로를 결정할 수밖에 없는 상황과 마주하기 때문이다. 그렇다고 해도 오늘 재능지부 투쟁에서 이를 미리 예단하고 비판하는 것은 적절치 않다.
재능동지들은 여전히 전 지도부와 마찬가지로 ‘단체협약 체결’과 ‘해고자 전원 원직 복직’이라는 요구를 걸고 싸우고 있기에 그러한 비판은 시의적절하지 않다. 따라서 현 시기 투쟁의 주체인 재능동지들에 대한 연대단위 일부의 입김이 과도하게 작용하고 있다면 이는 더 큰 연대운동의 원칙으로 적절하게 경계/조율해야 할 필요가 있다.
이제 운동공간에서 재능지부의 내/외부 투쟁 현장은 진보진영의 리트머스 시험지처럼 돼버린 형국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시청쪽 동지들이 민주적 절차를 거친 2.24 대의원대회 선거결과를 겸허히 수렴할 수 있다면, 그리하여 대승적 차원에서 하나의 깃발 아래 뭉칠 수 있다면, 그 단결투쟁의 힘으로 최종 승리를 향해 나아갈 수 있을 것이다.
이를 통해 재능동지들은 이 땅의 어떤 노동조합보다도 진보적인 노동운동 세력으로 그리고 정치적으로 더욱 성숙해진 조직의 구성원으로서 연대단위와 활동가 동지들의 더 많은 기대에 부응할 것이라고 감히 예감해본다.
2013. 3. 11
최 덕 효 (한국인권뉴스 대표, 코뮌영상)
[한국인권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