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도덕을 팔아먹고 사는 사람들을 증오한다. 그런 자들은 정권의 추이와도 상관없이, 그리고 그들 스스로의 기회주의적 변신이나 어용적(御用的) 행태와도 상관없이, 늘 사회적 기득권과 권세, 그리고 부(富)까지 누리고 있기 때문이다.
그런 자들은 언제나 권력에 초연한 체하면서 오히려 권력의 주변에 포진한다. 이른바 관변교수로 불리는 이들중 상당수가 여기에 해당되는데,그들은 또한 매스컴의 구미에 맞는 양비론적 발언을 잘하는 재주를 지니고 있어 '오피니언 리더' 로서의 역할까지 해낸다. 그들은 언제나 도덕을 팔아먹으며 스스로의 속악(俗惡)한 기회주의와 천박한 출세주의를 감춘다.
경제가 잘 돼도 도덕타령이요, 경제가 무너져도 도덕타령이다. 정치가 잘돼도 도덕타령이요, 정치가 흔들려도 도덕타령이다. 그들은 대개 자유주의적 문화나 예술에 대해서 부정적인 입장을 견지하고 있다. 그리고 옛날 조상타령을 해가며 전통윤리를 들먹이길 좋아하고, 애국애족으로 포장된 문화적 국수주의를 내세운다.
이들은 내가 보기에 우리 사회의 적(敵)이다. 그러나 이들은 '군사독재' 나 '부정부패' 같이 분명히 드러나는 악을 행하는 게 아니라 보이지 않는 악, 심지어는 선으로 보일 수도 있는 악을 행하고 있으니 문제다. 이처럼 적성(敵性)을 분명히 드러내지 않기 때문에, 그들을 식별해내기도 어렵고 없애버리기도 어렵다. 말하자면 그들은 도덕의 이름으로 개인의 자유를 억압하고 사회발전에 쐐기를 박는 부도덕을 행하고 있는 것이다.
물론 우리가 지켜야할 도덕은 많다. 살인을 해서는 안된다는 도덕이나 남의 물건을 훔쳐서는 안된다는 도덕은 상식적인 도덕이요, 대중적 통념으로 합의된 도덕이다.
그러나 개인의 욕망을 억압하는 것이 선이라고 가르치는 금욕주의적 도덕이나, 케케묵은 교훈주의적 문학이나 예술만을 좋다고하고 다른 것들은 다 없애버려야 한다는 식의 독선적 도덕은 도덕이 아니다. 그것은 오직 사디스틱한 광분일 뿐이다. 우리나라의 교육은 이런 위선적 도덕만을 가르쳤기 때문에 썩어무너질 수 밖에 없었다.
도덕을 팔아먹고 사는 자들은 일종의 강박신경증 환자들이다. 그래서 그들은 종교적 광신도와도 같다. 광신도들은 선과 계율에 강박적으로 집착하며 내세의 쾌락을 이기적으로 추구한다. 반면에 도덕을 팔아먹고 사는 자들은 실현불가능한 정화와 금욕에 집착하며 현세에서의 출세를 꿈꾼다. 아니, 반드시 금욕에 집착하는 것도 아니다. 그들중 상당수는 이중적 처신을 해가며 파렴치한 욕구를 발악적으로 추구하고 있다.
정신분석학자 빌헬름 라이히는 처음엔 프로이트 좌파(左派) 이론가로 출발했다. 그러나 소련정부가 동성애를 금하는 법률을 제정했다는 소식을 듣자, 소련에의 희망을 버리고 소련이 망할 것을 예언했다. 프랑스 대혁명이 실패한 것도 로베스피에르 등이 내세운 극단적 도덕주의 때문이었고, 조선이 망한 것도 유교적 도덕 독재 때문이었다.
조선조의 양반들은 대개 도덕을 팔아먹고 사는 자들이었고, 그래서 사회의 발전적 변화를 가로막았던 것이다. 그들은 대개 친일파로 전신(轉身)했고, 도덕적 자성(自省)운동을 빙자한 친일행위를 했다.
어쨌든 한국에서 앞으로 전개될 세상은 무언가 달라진 것이어야 한다. 그럴 경우 내가 간절히 바라는 것은 도덕을 팔아먹고 살면서 안전하게 호의호식하는 문화계, 학계. 법조계. 언론계의 기회주의자들에게 본때를 보여주는 것이다. 그리고 쇄국주의적 문화관을 고수하며 '세계화' 를 가로막는 수구적 통제주의자들 역시 이 땅에서 몰아내는 것이다.
도덕을 없애야 도덕이 선다. 아니 위선적 도덕을 없애야 진짜 도덕이 선다. 도덕적 테러가 환영받는 사회는 민주국가가 아니다.
(에세이집 <자유에의 용기> 중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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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인권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