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형록 에세이] 학생운동의 과제와 전망

최형록(인문학자)

구국의 강철대오 이 Chimera 같은 명사구가 1980년 광주민중항쟁 이래 남한학생운동의 정체성(identity)을 지칭해 주는 것이다. ‘구국’이 학생운동의 지향점으로써 민족주의적 경향성을 띠는 것이라면 ‘강철’은 Bolshevik Revolution을 지도한 조직의 Metaphor이다. 이것이 과연 ‘민족모순’과 ‘계급모순’의 ‘중층결정’(overdetermination)을 과학적으로 표현한 것인가?

‘4·19혁명’ 이래 남한학생운동은 변혁운동에 있어서 선도적 역할을 수행해왔다. 그런 과정에서 1987년을 하나의 전환점으로 민중운동의 자발성이 폭발적으로 급성장한 결과 각 부문운동의 조직화가 진전되면서 학생운동은 ‘위상의 재정립’이라는 과제에 직면하고 있다. ‘구국의 강철대오’라는 것이 이러한 과제에 적합한 것인가? 여기에서는 이런 문제의식을 지니고 ‘한총련 총 노선’을 검토하면서 학생운동의 위상과 과제를 생각해보고자 한다. 일단 ‘한총련 총 노선’은 지난 2월 24일 제4기 한총련 상반기 중앙위원회에 제출된 ‘가안(假案)에 근거한 것이다.


  


‘총력을 통일구국투쟁으로’
        - “하반신은 유물론, 상반신은 관념론” -


‘가안’에 따르면 3기 한총련 운동의 교훈으로서 ④ 총체화된 자주·민주·통일투쟁을 벌여 낼 것(46면)을 지적하고 있다. 관점의 ‘총체성’을 어떻게 확보할 것인가? “자주, 민주, 통일강령을 고도화시켜 낸다는 것은 자민통에 대한 추상적 구호에서 민중의 삶과 연관되어 있는 문제로 더욱 구체화하고 그 영역을 확장해…”라고 하면서 반미 자주화를 투쟁의 중심축으로 삼고 있다. (76년) 자-민-통의 과제가 추상적(관념론적이라는 표현이 보다 적확할 것이다.) 구호가 아니라 (유물론적) 구체성을 지니려면 자-민-통의 ‘내적 관련성’이 규명되어야 할 것이다. ‘가안’에서 지적하고 있듯이 그것은 ‘기계적 결합의 문제’가 아닌 것이다.

반외세 자주화 투쟁의 대상인 미-일 제국주의의 정체는 무엇인가? 미국인과 일본인인가? 그것의 정체는 ‘미-일의 독점자본’외 다른 무엇이 아니다. 그리고 통일운동의 근원인 분단의 성격은 무엇인가? 한반도의 분단은 2차 세계대전 후 세계 자본주의 질서를 주도하게 된 미국의 독점자본이 ‘스탈린주의적’ 소련과 냉전으로 대치하는 상황 속에서 ‘민족국가의 성격’을 둘러싸고 발발한 한국전쟁의 결과인 것이다.

‘민족국가의 성격’ 문제는 ‘사회구성체’의 문제이며 ‘사회적 생산관계’의 문제이다. 분단 상태의 남한사회는 남한 독점자본이 삶의 조건을 규정하는 사회이다. 그리고 남한의 독점자본은 세계 자본주의 질서 내에서 ‘반주변부’(Semi-Periphery)의 위치를 점하면서 미-일과 유럽의 독점자본, ‘핵심 국가들’(Core-States)에 종속되어 있으면서 동시에 경쟁관계에 있는 것이다. 독점자본은 상호 ‘경쟁적 주종관계’에 있으면서도 ‘반(反)자본주의 경향’에 대해서는 동일한 이해관계를 가지는 것을 정확히 통찰해야 한다. 달리 말하자면 ‘민족의 계급적 구성’에 각별히 유념해야 한다. 따라서 통일운동의 근본문제는 ‘통일된 사회의 계급적 성격’의 문제인 것이다.

이 근본문제와 관련해서 우리에게 타산지석(他山之石)이 되는 것이 ‘통일독일의 사회상’이다. 독일통일은 1970년대 초 W. Brandt의 사회 민주주의적 ‘동방정책’이 여타 ‘국가사회주의’ 사회에서 간섭하지 않겠다는 소련의 Breznev Doctrine 포기라는 맥락 속에서 동독의 ‘인민혁명’과 결합되고, 그 위에 서독의 선거가 개입하면서 이루어졌다. 노벨 문학상 수상작가인 서독의 Gunter Grass는 1990년 “뿌리 없는 세계주의자의 짤막한 연설”에서 이렇게 말했다. “다른 모든 종류의 이데올로기적 00주의의 절멸을 목표로 삼고 있는 서방의 자본주의의 이데올로기는 마치 동독인들의 머리에 총구를 들이대듯이 시장경제냐 다른 것이냐를 강박하고 있다.”134)

또한 PDS(독일 민주사회주의자 당)는 통일 5주년을 맞이하면서 이렇게 언명했다. “오늘날 서독 시민들은 1990년 이래 지도적 정치서클들 그리고 자본과 기업의 대표자들이 단계적으로 독일연방공화국의 성격을 변화시키려고 시도하고 있는 것에 주목해야 한다. 강대국으로서 독일의 역할, …, 망명권의 사실상 폐지, 항상적인 대량실업, 단체교섭권에 대한 공격, 사회적 퇴락의 차원, 민주적 제반 권리의 제약, 교육·문화·보건체제에 대한 평등한 접근권의 해체, 부정부패·범죄의 증가와 도덕적 쇠퇴, 그리고 극우세력의 극단주의는 이런 현실의 풍부한 증거들이다”.135)

다른 한편으로는 노동청에 등록한 새 연방주의 실업자 수는 백만 명 이상(실업률 14%)인데 사실상 200만 명으로 추정되며 통일 당시 동독 취업자의 연평균 근로시간은 1,520시간으로 서독에 비해 10시간 적었으나 1994년에는 서독보다 120시간이 많은 1,700시간이나 되었고 1995년 「Spiegel」지의 조사에 따르면 생활수준과 과학기술을 제외한 사회적 안정, 치안, 주택사정, 의료제도, 학교교육, 직업교육, 그리고 여성권리에 있어서 옛 동독이 더 나았다고 대답했다.136)

요컨대 서독의 독점자본이 주도한 통일이 통일독일의 민중에게 민주주의의 진전을, 평등과 자유를 가져다주지는 않았다는 것이다. 달리 말해서 ‘통일된 사회의 계급적 성격’은 남북한 민중이 각각 반민중적 지배세력에 대한 민주화 투쟁의 성과에 좌우된다는 것이다. 따라서 “반미자주화투쟁을 중심으로 하는 자주·민주·통일투쟁을 본궤도에서 전개하는 것이 절박한 과제”(41면)가 아니라 ‘민주화의 새로운 전진’을 향한 투쟁의 동심원적 파장 속에서 반외세 자주적 통일운동을 전개시켜야 한다. 자신의 현실에 발 딛고서 “학우들의 민중성, 계급성을 고양해야”한다면서 ‘반미자주화투쟁을 중심축’으로 사고하는 것이 바로 “하반신은 유물론, 상반신은 관념론”인 것이다.

항일유격대식과 대 공업적 정치 사업방식 그리고 PC통신망 건설

“민중운동을 창조적으로 전개하는 것”(38면)은 중요하다. 한총련은 그러한 ‘창조적’ 방식으로서 ‘광장식 사업방식’(75면)을 제시하면서 역사적 선례로서 ‘항일유격대’를 들고 있다. 무리는 아니지만 적절한 것일까? 이것과 관련해서 부조화를 이루는 것이 ‘대 공업적인 정치 사업방식’(68면)이다. ‘대공업’과 관련되는 것이 ‘강철’이라는 Metaphor가 아닌가?  

레닌은 혁명 권력을 장악한 후 ‘철강 산업과 전력화사업’(Electrification)을 독려했는데 이러한 Metaphor들은 암암리에 Bolshevik Revolution을 ‘Model화’하는 사고방식의 소산이 아닐까? Lenin 자신이 그런 사고방식을 경계했던 점을 상기해야 한다. 차라리 Computer Science와 Nano(10억분의 1m) Technology의 시대인 만큼 ‘Cybernetic' (인공두뇌 공학적) Metaphor가 보다 적합하지 않을까? ‘PC통신망 건설’(87면~92면)은 이러한 관점에서 매우 시급하고 적절한 사업이라고 할 수 있다.

정세전망과 시기규정 그리고 과제

민주화투쟁을 중심축으로 하여 통일투쟁을 전개하고 할 때 우리는 미국 독점자본의 세계전략의 긴밀한 일부로서 동북아 전략의 구도 내에서 남한독점자본이 어떤 위상을 점하려 하는지를 성찰해 보아야 한다. 망각하지 말아야 할 것은 남한 독점자본이 미국의 기본구도에 적응해 들어가는 것은 남한 독점자본을 비롯한 남한자본과 ‘총자본’으로서의 국가 그리고 노동자계급을 비롯한 남한민중의 세력관계에 좌우되며 그러한 세력관계의 파장은 또한 국제관계의 역동적 지형의 반작용을 받는다는 것이다.

국제정세와 국내정세의 역동적 연쇄성의 초점은 남한 내 자본과 임노동 사이의 관계이다. ‘가안’에서는 ‘권력 재편기’라고 시기규정을 하면서 ‘김정권의 부패와 독재’를 지적(59면)하고 있는데 중기적 전망은 ‘보수대연합’으로 규정할 수 있다. ‘보수대연합’이란 자본주의적 세계체제의 팽창-‘국가사회주의’ 사회들이 체제붕괴를 통해서 혹은 체제유지를 위해서 능동적으로 자본주의적 세계체제 내로 편입되고 편입한 결과-속에서 남한 독점자본이 ‘반주변부’적 위상을 유지·강화하기 위해서 필요한 ‘자본주의적 합리화’를 수행할 수 있는 정치적 지배형태이다.

그것의 구체적 형태는 신한국당, 국민회의, 자민련 그리고 민주당이 어떠한 합종연형(合從連衡)을 취하는가에 그리고 그에 따라서 현행의 단임 대통령중심제의 유지, 경우에 따라서는 개헌을 통한 대통령 중임제나 개헌을 통한 내각책임제,  이원집정부제의 형태로 나타날 것이다. 최근 ‘보수원조’ 세력인 자민련의 소장파가 당 이념의 극우보수성을 비판하면서 “보수층의 광범위한 지지를 확보하기 위한 합리적 보수론의 정립이 시급하다‘고 주장하면서 복수노조 반대를 반대하는 것137)은 바로 ’보수대연합‘이라는 지배적 경향을 예시해 주는 것이다.

자본주의적 합리화는 본질적으로 ‘노동계급에 대한 실질적 포섭’을 기조로 삼으면서 ‘제한적 개혁’과 물리적 탄압을 적절히 구사하면서 민중세력을 ‘분할’하는 것이다. ‘실질적 포섭’이란 자본이 ‘노동과정’에 있어서 노동자계급의 자율성을 박탈하여 전제적 지배를 하는 것이다. 현재 우려되고 있는 노조에 의한 ‘현장 장악력’의 쇠퇴는 바로 이러한 포섭과정의 결과이다. ‘자본주의적 합리화’는 세 가지 각도에서 살펴볼 수 있다.

첫째, 경제적으로 그것은 ‘산업구조재편’으로 나타난다. 그것은 외연적(extensive)성장정책으로부터 내포적(intensive) 성장정책으로-단위자원·노동력의 투입에 따른 산출의 비율을 높이는 방식-전환하는 것이다. 공장·사무자동화를 통해서 절대적 착취방식으로부터 상대적 잉여착취방식으로 이행함으로써 실업의 증가와 고용불안·노동 강도의 증가와 stress의 증가 그로 인한 산업재해의 증가를 초래할 것이다. 그렇다고 해서 절대적 잉여가치의 착취방식이 조만간 소멸하는 것은 아니며 일부 부문은 해외노동력으로 충당하거나 아예 해외로 이전하기도 하는 것이다. 그리고 ‘반주변부’의 위상에 조응해서 연구개발에 역시 중기적 투자를 하는 것이다.

둘째, 냉전적 반통일론으로부터 미-일의 新안보선언을 축으로 하는 ‘점진적 흡수통일론’에 입각해서 통일정책을 전개할 것이다. 지배적 보수 세력의 합리성은 ‘통일비용’에 민감하며 ‘북한정권의 붕괴’라는 ‘유사시’에 초래될 ‘사회적 통제’를 경계하지 않을 수 없을 것이다.

미-일 독점자본의 합리성 역시 동일한 현실인식과 전망을 하고 있을 것이다. 그렇기에 미-일의 독점자본은 이미 작년에 ‘북한정권의 붕괴 가능성’에 대비해서 정보수집과 분석을 하면서 대처방안을 마련 중이며 최근에는 한국정부도 참여시켰다.138)

최근 주한 미 대사에 이어 미 의회조사국의 전문가 역시 한국정부에  북한에 대한 유연한 자세를 촉구한 것은 이러한 정책기조를 예시해 주는 것이다. 한편 북한은 소련의 자본주의화와 중국공산당의 강령에서 ‘프롤레타리아 국제주의를 폐기’ 하고 경제특구를 통해서 ‘자본주의적 실험’을 행하는 것을 보면서 체제유지를 위해서 주체노선으로부터 ‘자본주의 기업방식’을 도입하여 ‘세계시장 자본주의로 통합’하는 유연한 노선을 채택했다.

이러한 노선전환을 대외적으로 공표하기 전부터 북한은 나름으로 생존을 위한 ‘합리적 선택(?)’을 준비해 왔는데 1991년부터 중국과 서방에 일명 ‘붉은 자본가들’을 파견했었고 최근 그들의 귀국을 명령했다는 것이다.

그리고 중국 역시 등소평의 ‘4대 현대화’를 성공적으로 추진하기 위해서 북한이 자신의 경제특구와 유사한 방식을 통해서 대외개방정책을 통해서 체제를 유지시킬 수 있기를 바랄 것이다. 이상을 고려할 때 남한 독점자본 그리고 미-일 독점자본에 의한 ‘점진적 흡수통일’에 민중운동이 어떻게 대응하느냐가 핵심과제인데 그것의 기본방침은 이미 독일통일의 교훈을 일별했듯이 ‘자본에 대한 민중통제력의 제고’이다.

이와 관련해서 한총련은 반외세 자주화투쟁의 과제로서 “주한 미군기지 주둔협상에 맞춰 기지반환, 이전 투쟁을 통해 주한미군 철수투쟁을 대중적이고 지속적으로 전개”할 것(80면)을 제시하고 있는데 이것은 불가능하거니와 역량을 현명하게 배치하는 것도 아니다. 미국 독점자본의 합리적 think tank인 카네기 평화재단의 수석연구원인 셀리그 해리슨에 따르면 북한이 주한미군의 필요성을 밝혔음에 주목해야 한다.“

북한의 이러한 ‘현명한(?)’ 입장은 점증하는 일본의 군사대국화 등을 고려한 것이다. 한총련 스스로 반성하고 다짐하고 있듯이 “냉엄한 현실에 대한 솔직하고 진지한 분석이 이루어질 때만 발전의 전망이 나올 수”(48면) 있는 것이며 (민중이 해방되는) “조국의 운명과 우리의 운명을 일치”시킬(46면)수 있을 것이다.

셋째, 교육정책은 절대적 잉여가치의 착취방식에 조응하는 노동집약적 노동자의 양성으로부터 과학기술혁명의 시대와 상대적 잉여가치의 착취방식에 조응하는 ‘지식·기술집약적 노동자’의 양성에 초점을 맞추게 될 것이다. 한총련의 ‘95년 투쟁과제’에는 교육운동이 누락되어 있었으나 ‘가안’에는 학원 자주화투쟁의 과제로서 “교육재정투쟁에서 한총련 차원의 연대투쟁을 새롭게 모색해야한다”고(43면) 명언하고 있다. 대학교육을 비롯해서 교육은 자본주의적 노동 분업에 순응 할 수 있는 ‘예비노동자를 이데올로기적으로 그리고 기술적으로 준비시키는 기능을 수행한다. 따라서 학원의 자유, ’학문·사상의 자유‘를 ’자본의 지배와 억압‘으로부터 최대한 확보하는 일은 대단히 중대한 과제이다.

‘교육재정을 GNP의 5%까지 확보’한다는 사업은 이러한 기조에서 추진되어야 한다. 학습능률 나아가 ‘전인교육’이라는 관점에서 과밀학급 해소가 관건이라 할 수 있는데 약 6년 전의 통계이기는 하지만 학생 1인당 월 경비가 1천원이었다는 현실이 아마 크게 개선되지는 않았을 것이다. 교육운동은 ‘예비 노동자의 노동현장’에서 비롯된다는 점에서 그리고 우리 국민의 관심사가 물가문제 다음으로 교육(혹은 주택)문제라는 사실에서 대중 투쟁의 핵심적 영역들 가운데 하나이다. 학생들은 ‘담배세에 교육세를 부과하는 민중의 세 부담 증가를 통해서 교육재정을 확보하려는 책동’(82면)을 단호히 저지해야 한다.

수해에 의한 심각한 식량난-형편 나은 평양도 하루 식량배급이 100g이며 이런 식량난은 이미 1989년 무렵부터 시작되었다.-그리고 에너지난을-1991년 초 모스크바는 최저가격으로 기름을 공급해 오던 관행을 중단하면서 국제적 경화, 달러로 국제가격 수준으로 지불할 것을 요구했고 북한은 연간 350만 톤의 석유가 필요한데 1992년 현재 150만 톤으로 버티고 있다.- 겪고 92년 현재 공장 가동율이 50%수준인 ‘이적단체’가 도대체 무엇이 무서워서 내년에는 1위가 될 정도로 미제무기를 구매하고 향후 5년 간 67억 달러나 되는 미제무기를 구입한다는 것인가?


      


북한이 ‘노동 2호’라는 미사일을 개발하는 것을 상호 군비증강의 상승작용이라고 보는 것이 무리일까? 남북한 민중이 왜 미국의 ‘군-산-연복합체’의 이윤극대화를 위해서 ‘공포의 Escalator'를 타야만 하는가? ‘군축운동’을 전개함으로써 국방비의 삭감을 통해서 교육재정을 확보해야 할 것이다.

그리고 대학교육의 커다란 부분을 담당하고 있는 ‘전국강사 노조협의회와 연대’하는 방식으로 교육재정 확보운동을 전개해야 할 것이다. 요컨대 학생운동은 민주화운동의 일환인 교육운동, 현안인 ‘교육재정확보투쟁’을 통해서 계절을 타지 않는, 통일운동을 할 수 있는 것이다.
  
‘학생운동의 영역의 다변화’(48면)와 관련해서 주목해야 할 것이 ‘한의-약재분쟁’이다. 이 분쟁은 단지 한의대생과 한의사들 그리고 약대생과 약사들의 밥그릇 싸움이 아니라 민중의 의료복지, 예방의학적 관점에서 접근해야 하고 상반기 주요사업으로 선정된 ‘남북공동 World Cup(유치)투쟁’보다 훨씬 더 민주화운동의 본질에 가깝고 중차대한 과제이다.

왜 “학원이 사회변혁을 위한 권위주의에 대한 저항문화와 민족문화 창달과 보급이라는 자기정체성이 해체되고 있으며…전반적인 공동체주의의 붕괴와 개인주의, 이기주의 등…가치관이 역수입되는 현상을 낳고”(61면)있을까? 자본주의 사회에서 개인은 노동 분업적 사회 제 관계 속에 처함으로써 의식이 ‘분절화’(分節化)되는 까닭에 현실에 대한 총체적 인식에 이르기 어렵다. 그런 만큼 ‘원자화된 개인’으로서 상호 ‘사물적 관계’를 맺게 됨으로써 ‘정체성’(identity)을 확보하기도 쉽지 않다.

개개인은 사회적·역사적 모순으로부터 연유하는 ‘계급관계’ 속에서 비로소 자신의 ‘정체성’을 자각할 수 있다. ‘정체성’의 ‘계급성’은 사회적 생산관계와 문화적(의식적)관계에서 어떠한 위상을 가지느냐에 좌우된다. 한 세대가 획득한 계급의식은 다음 세대에 ‘유전적으로’ 계승되지 않는다. 오직 역사적 학습과 현실적 투쟁을 수행함으로써만 그것은 계승되는데 이것은 ‘인간존재의 근본적 한계’라고 할 수 있다. 이러한 ‘정체성’의 확립과 과학적 대중노선의 정립을 위해서 우리는 ‘인지과학’의 성과를 수용해야 한다.

노동운동의 경우와 마찬가지로 학생운동에 있어서도 ‘경제주의’는 물론 ‘민족주의’와도 사상투쟁을 해야 한다. 한민족의 민족주의는 19세기 말 일본제국주의와 대결하면서 생성되었다고 할 수 있다. 오늘날 그리고 향후 그것은 형성 중인 남한 부르주아지가 다른 국민국가의 자본과 경쟁을 하는 데 그리고 국내 정치와 사상·문화에 있어서 Hegemony를 장악·유지하는데 유용한 무기가 될 수 있다. 민족과 민족문화는 정당하나 ‘민족주의’는 극복의 대상이다. 대학생들은 자본주의 문명이 성장해온 이래 목하(目下)전개되고 있는 생태계의 불균형, 핵무기 등 대량살상무기의 지속적 개발, 비참한 빈부의 격차 등을 직시하여야 한다. 그것은 협애한 ‘민족주의’를 넘어서 ‘동서 문화의 융합’이라는 폭넓은 전망에 입각한 ‘민중적 국제주의’에 의해서만 극복할 수 있을 것이다.

1938년 8월 B. Brecht가 그랬던 것처럼 “좋은 옛날 것 위에 건설하지 말고 나쁜 새로운 것 위에 건설하라!”


주(註)

134) 필자의 시평,  “독일노동조합 파업과 통일운동”, 『민중회의 소식』, 제 15호, 1992년 5월 21일자.
135) PDS의 『Newsletter』, 1995년 10월의 제 5호, 2면.
136) 「한겨레신문」, 1995년 9월 29일자와 9월 30일자.
137) 『한겨레신문』, 1996년 5월 15일자.
138) 신문에 보도되었으나 일자미상

본지는 재야 인문학자 최형록 선생의  철학, 역사, 과학, 정치에 관한 세계관을 접할 수 있는 에세이를 매주 토요일 시리즈로 싣는다. 최 선생은 서울대 인문대학원에서 수학했으며 민중당 국제협력국장, 사민청 지도위원, 진보평론 편집위원을 지낸 바 있다. ‘모든 노동자의 건강할 권리를 위하여’를 영역했다. [한국인권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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