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8년 평택 소재 민주성노동자연대(민성노련)에서 열린 6.29 성노동자의 날 3주년 집회 모습. 민성노련이 주최한 이날 대회에는 사회진보연대, 여성문화이론연구소, 한국인권뉴스 등이 함께 했다.
그러나 세상사가 원래 그런 건지, 엉뚱한 이유로 오해가 첩첩산중인 경우가 생기곤 한다. 내가 경제 여건상 아무리 기자들과 사무실을 정리하고 집에서 일할지라도 이해관계(혹은 이견)와 유관한 일부 혹자들의 의혹은 여전하다.
"무슨 돈으로 저렇게 버틸까?“
“뭔가 있을 거야, 어디서 월급 받는 거 아냐?"
본의와 무관하게, 운동이 커지면 사람들이 모이게 되는 건 기정사실, 내가 무슨 돈이 있어 이익집단의 정치인들처럼 밥 사고 술 사줄 수도 없고.. 더욱이 운동에서 활동비 주고 일 시킬 상황은 도저히 아닌지라 ‘기대가 없으면 동지들이 스스로 판단하겠지’라는 생각으로 (옆지기의 양해를 구해) 문을 열곤 했다.
"그래, 내 삶이 담긴 집을 있는 그대로 공개하면 상호 이해에 도움이 되겠지"
해서, 활동가들이나 운동을 배우려는 이들이 집을 드나들었고 어느덧 이제 강산이 한번 바뀔 정도의 세월이 흘렀다. 그러나 요즘은 피로감이 가중돼 더 이상 견디기 힘든지 옆지기가 분노하며 제지한다.
"그만 해요. 그 사람들, 당신이 누울 공간만 있어도 그것도 커보일 겁니다."
사실 이렇게 저렇게 오간 사람들 중에는 뭔가 못미쳤는지 황당하게 배신 때린 경우가 많아 옆지기의 이러한 항변에 나도 할 말이 없는 지경이다. 다 부덕의 소치다. 운동도 자본으로 소비되지 않는가. 내가 여건이 안되면 사람들이 아무리 운동을 자원해도 들어오지 말라고 말렸어야 하는데 그걸 못한 대가를 혹독하게 치루고 있는 상황까지 왔다.
공식적으로는 1985년 5월《민중교육》 사건과 87년 6월항쟁(국본 경기남부 사무국장)에서 시작된 나(와 관련된)의 운동이 돈 문제로 기로에 서 있다.
얼마 전까지만 해도 옆지기와 함께 경제행위를 하며 미디어 운동(웹2.0)을 추진하다 운동의 확대로 전업이 된 지 5년째다. 이제는 고마우신 몇분의 약간의 후원과 비정규직 노동자인 옆지기의 절대적인 지원에 힘입어 버티고 있는 중이긴 하지만 그래도 경제적 미래는 여전히 불투명하다.
공황기 자본주의에서 어지간한 개인사업은 살아남기 어렵고, 해서 얼마 전 구직활동을 시작했다. 돈 없어 운동을 중도 포기하거나 누구처럼 허무하게 죽을 수는 없는 일이기에 나선 일이다. 보다 못한 옆지기가 안타까웠던지 한마디 한다.
"벌여놓은 운동은 대체 어떻게 하려고 그러시는 거예요? 그럴 바엔.. 아예 시골 갈래요?"
(아니.. 이 사람은 시골이 뭔 애 이름인줄 아는감..^^)
[한국인권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