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성해방에 대해 지금까지 줄곧 서로 다른 두 가지 접근방법-‘여권운동’(feminism)과 혁명적 사회주의-이 존재해 왔다.
‘여권운동’은 1960년대와 1970년대에서 선진 자본주의 국가에서 일어난 여성운동에 지배적인 영향력을 행사했다. ‘여권운동’은, 남성은 언제나 여성을 억압한다는 관점, 그러니까 남성의 생리구조와 심리구조에는 여성을 열등한 존재로 대하게 만드는 어떤 것이 있다는 관점에서 출발한다.
이러한 주장은 오로지 여성이 남성으로부터 독립함으로써만-“해방된 생활방식”을 추구하는 ‘여권운동’가들이 따로 조직을 만드는 식의 완전독립이건, 아니면 여성위원회나 여성간부회의, 여성문제 전담기구 식의 부분적인 독립이건-여성해방이 가능하다는 결론을 이끌어 낸다.
후자의 부분적인 독립을 지지하는 많은 사람들이 자신들을 사회주의자 ‘여권운동’가(socialist feminists)라고 부른다. 그러나, 최근에는 완전독립을 주장하는 ‘급진 여권운동’론이 여성운동 내부에서 주도권을 장악하고 있다. 완전독립론은 줄곧 약간 진보적으로 사회봉사를 하는 진영 정도에 머물러 왔다. 체제에 도전하는 것과는 거리가 먼, 여성들의 이러한 도피는 체제를 유지하는 데 도움이 되고 있다.
이러한 체제 도전의 회피는 더 많은 ‘여권운동’가들이 다른 방향으로-보수 야당으로-몰려가게 했다. 적합한 자리-국회의원, 노동조합 간부, 지방의회 의원-를 올바른 의식을 가진 여성들이 차지하는 것이, 모든 여성들이 남녀평등을 추구하는 데 도움을 줄 것이라고 그들은 믿고 있다.
혁명적 사회주의의 전통은 매우 다른 이념체계에서 시작된다.
이미 1848년 저술에서 마르크스와 엥겔스는, 우선 여성에 대한 억압은 남성들의 머릿속 관념으로부터가 아니라 사유재산의 발달과 이에 따른 계급에 기초한 사회의 출현으로부터 나타났다고 주장했다. 마르크스와 엥겔스는 해방을 위한 투쟁이 모든 계급사회를 종식시키기 위한 싸움-사회주의-의 실현을 위한 투쟁과 분리될 수 없다고 보았다.
마르크스와 엥겔스는 또한 공장제도에 기초한 자본주의의 발전은 민중의 생활, 특히 여성들의 생활에 중요한 변화를 가져왔다는 점을 지적했다. 여성들은, 계급사회의 발전과 더불어 점차 그들을 배제시켜 왔던 사회적 생산의 장(場)으로 되돌아왔다.
이러한 현상은 여성들에게 그들이 이전까지 결코 가져본 적이 없는 잠재력을 부여했다. 집단으로 조직되었기 때문에, 노동자로서 여성들은 자기들의 권리를 위해 싸울 수 있는 상당한 능력과 독자성을 갖게 되었다. 이러한 사정은, 가족관계를 통해 이루어지는 생산활동에서 여성의 역할 때문에 여성이 가장-그러니까 남편이나 아버지-에게 완전히 종속되었던 이전의 생활과 크게 대조되었다.
이로부터 마르크스와 엥겔스는 가족의 물질적 기초, 그러니까 여성을 억압하는 물질적 기초는 더 이상 존재하지 않게 되었다는 결론을 내렸다. 여성이 사회적 생산에 참여하는 것에서 오는 이익을 여성들 자신이 차지하지 못하는 이유는, 재산이 소수의 사람들의 수중에 있다는 사실 때문이었다.
오늘날 여성들의 억압을 유지하는 것은, 자본주의가 조직된 방식-특히 노동자들로 하여금 그 자식들을 다음 세대의 노동자가 되도록 부양하는 것을 보장하기 위해 자본주의가 가족이라는 특정한 틀을 이용하는 방식-때문이다.
자본주의가 남성들에게-때때로 여성들에게도-노동에 대해 지불하는 반면, 여성들은 아무런 대가도 없이 그들의 남편이나 아버지가 공장에서 일할 수 있도록 뒷바라지하고 그들의 자식들이 노동자로서 같은 일을 하도록 양육하는 데 그들의 삶을 바칠 것이라는 사실은(자본가 계급으로서는) 커다란 이익이다.
대조적으로, 사회주의는 여성들의 어깨를 무겁게 짓누르고 있는 가족 안의 많은 역할(가사노동)을 사회가 떠맡게 되는 것을 보여줄 것이다. 이것은 마르크스와 엥겔스와 그들의 계승자들이 ‘가족제도 폐지’를 설파하려 했다는 것을 뜻하는 것은 아니다.
가족제도 지지자들은 언제나 가족제도 속에서 가장 억압당하는 여성들을 자신들의 지지자로 동원할 수 있었다. 그것은 여성들이 ‘가족제도 폐지’가 그들의 남편에게 자식에 대한 책임을 방기할 수 있다는 면책권과 자신들을 버릴 수 있는 면죄부를 부여하는 것이라고 여기기 때문이다.
가족 철폐론자들과는 달리, 혁명적 사회주의자들은, 더 나은 사회주의 사회에서는 어떻게 해서 여성들이 오늘날의 가족제도가 부과한 비참하고 답답한 생활을 강요당하지 않게 되는가 하는 것을 보여주려고 항상 노력해왔다.
‘여권운동’가들은 언제나 이러한 식의 분석을 거부해왔다. 그들은 세계를 변화시키고 여성들에 대한 억압을 끝장낼 수 있는 힘을 가진 곳-노동 속에서 집단적으로 강한 힘을 가진 곳- 에 있는 여성들에게 접근하지 않고, 피해자로서 여성들에게 접근한다.
예컨대, 1980년대 초의 캠페인은 매춘, 강간 또는 에이즈와 핵무기가 가족과 여성에게 가하는 위협과 같은 문제에 초점을 맞추었다. 이러한 것들은 여성들이 약자라는 입장에서 출발한다.
‘여권운동’은 성적 억압이 계급분화에 우선하며 계급적 구분을 초월한다는 가정에서 시작된다. 이러한 가정은 일부 여성들-소수-의 지위를 개선하는 반면, 계급사회는 그대로 남아있게 하는 결론들에 도달한다. 그리하여 여성운동은 “신 중간계급” 여성들-언론인, 작가, 강사, 상층 화이트칼라 노동자-이 주도하는 경향이 있었다. 타이피스트, 서류정리원, 기능사원들은 배제되었다.
여성해방 문제가 단지 소수를 위해서가 아니라 모든 노동계급 여성들을 위해 현실화되는 것은 급진적 변화와 혁명적 봉기의 시기에 비로소 그렇게 된다. 1917년 볼세비키 혁명은 여성들한테 그전까지 세계에 알려진 것보다 훨씬 더 커다란 평등을 가져다주었다.
이혼, 낙태, 피임이 자유로워졌다. 육아와 가사노동은 사회의 책임이 되었다. 여성들이 더 넓은 선택 기회를 누리고 자신의 생활을 관리할 수 있도록 보장하기 위해 공동식당, 세탁소, 탁아소 등이 문을 열었다.
물론 이러한 진보의 운명이 혁명 그 자체의 운명과 분리될 수는 없었다. 굶주림과 내전, 이로 인한 노동계급의 대량 사망, 국제혁명의 패배는 결국 러시아 자체 안에서조차 사회주의의 실패를 뜻했다. 그러나, 소비에트 공화국 초기는 가장 불리한 조건 속에서도 사회주의 혁명이 이룩할 수 있는 것이 어떤 것인가 하는 것을 보여주었다.
오늘날, 여성해방의 전망은 훨씬 더 밝다. 영국에서는-다른 선진 자본주의 국가에도 마찬가지로 적용되는 얘기이지만-5명의 노동자 가운데 2명이 여성이다. 여성해방은 노동계급의 집단적 힘으로만 이룩될 수 있다.
이것은 여성들만의 독립된 조직이라는 ‘여권운동가’의 관념을 거부하는 것을 뜻한다. 통일된 혁명운동의 일부로서 함께 행동하는 여성ㆍ남성 노동자만이 계급사회를 타파하고 그와 더불어 여성에 대한 억압을 끝장낼 수 있다.
▒ 크리스 하먼 (Chris Harman)
영국 사회주의노동자당(SWP) 중앙위원이며 <사회주의 노동자> 편집자. <저서> 세계를 뒤흔든 1968, 신자유주의 경제학 비판, 동유럽에서의 계급투쟁, 알기 쉬운 마르크스주의, 오늘의 세계경제: 위기와 전망, 마르크스주의와 공황론, 민중의 세계사 외.
[한국인권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