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리고 다시 티 없는 명경지수(明鏡止水) 같은 눈망울의 아기를 다시는 볼 수 없는, 황병기의 소엽산방(산방에서 낙엽을 빗질하다)에 다시는 귀 기울일 수 없는 세계로 간 ‘이한열들’의 결의를, 그런 결의를 잠 속에서 불러낸 ‘박종철’열사의 한을 새삼 가슴에 조각해야 할 또 하나의 시점을 맞이하고 있다.
‘물’은 가슴 설레게 하는 연두 빛은 물론 모든 생명체의 화학작용에 대단히 중요한 용매의 일종이다. 자연스런 물은 인위적으로 사용될 때 ‘금강산 댐’처럼 국민에게 공포감을 조성하는 한편, ‘고문의 도구’로부터 ‘6월 항쟁’과 같은 군부파쇼세력에게 공포감을 초래하는 건설적 파괴력으로 전환되기도 한다.
‘낫 놓고 기역자도 모른다’라는 격언은 여전히 인간의 어리석은 일면을 일깨워주는 교훈적 효과를 지니고 있으나 ‘물 쓰듯이 쓴다’는 일상적 표현은 ‘땅 짚고 헤엄치기’(부력 때문에 사실은 쉽지 않은)라는 일상적 표현처럼 이제 그 적실성을 상실하게 되었다.
세계보건기구(WHO)에 따르면 10억 명 이상의 사람들이 깨끗한 물을 마실 수 없는 처지에 있으며 물 부족과 비위생성에 따른 수인성(水因性) 질병으로 매년 340만 명이 목숨을 잃고 있다.1)
또한 영국의 개발기구 티어펀드의 보고서에 따르면 2025년경에는 세계적으로 3명에 2명꼴로 물 부족 사태가 일어날 것이라고 한다. ‘희소자원화’하고 있는 물 자체의 확보와 함께 중요한 것이 안전한 식수의 확보이다. 통계에 따르면 물의 안전성을 4등급으로 나눌 때 남한은 안전한 식수에의 접근 가능성이 인구의 1~25% 이내에 해당하는 1등급 국가군에 분류되어 있다.2)
그런데 향후에도 이런 안전성을 계속 유지할 수 있을까?
수질의 청정도 혹은 오염은 물 자체에 대한 오염은 물론 대기오염, 토양오염과 밀접한 관련을 맺고 있다. 1차적 오염경로는 가정의 생활하수, 축산업자의 더러운 물, 공장의 오폐수를 통한 것이다. 2차적 오염경로에도 몇 가지가 있다.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중 에너지 사용 증가율이 가장 급속도인 나라가 남한이다.
에너지 가운데 대기오염과 관련되는 것이 공업화 그리고 역시 급속도로 증가한 자동차 보유율이다. 이로부터 화석연료의 연소에 따른 탄소화합물, 황 화합물 등 오염물질이 발생한다. 이와 함께 무시할 수 없는 것이 봄철 황사와 함께 그리고 겨울철 북서계절풍과 함께 오는 중국산 대기오염물질이다.
환경문제는 개개국가 수준에서만이 아니라 국제적 차원에서 접근해야 할 것임이 분명하다. 중국산 오염물질은 계절풍과 같은 자연적인 대기 순환의 문제일 뿐만 아니라 중국 사회주의의 성격문제, 사회주의와 생산력주의의 문제와 관련해서 파악해야 할 문제이다.
2차적 오염 가운데 일반적으로 지나치기 쉬운 것이 토양오염을 통한 수질오염이다. 토양오염은 공업적 중금속 폐기물뿐만 아니라 농약 등 농업관련 오염물질 그리고 산성비 등으로 발생한다.
10년 전 유럽에서 낯설게 느껴졌던 광경이 사람들이 플라스틱 물병을 들고 다니던 것이었다. 당시 남한의 경우에도 정수기를 쓰는 경우가 있었지만 오늘날처럼 대중화되었다고 할 수는 없었다. 이제 수질오염은 수돗물에서 ‘바이러스’가 검출되는 상황에까지 이르렀다.
바이러스란 무엇인가? 그다지 낯설지 않은 각종 질병과 관련된 세균(박테리아)보다 더욱 유해한 것이다.
상대적으로 대중에게 알려진 바이러스를 든다면, 생물학적 무기로 한국전쟁 당시에 미군에 의해서 살포된 의혹이 짙은 2중 나선 구조를 지닌 DNA 종류인 천연두 바이러스, 홍역과 감기를 유발하는 단일나선구조를 지닌 RNA 종류 바이러스, 에이즈의 원인 바이러스인 단일나선구조를 지니되 DNA를 합성하는 RNA 종류 레트로 바이러스 등이 있다.
바이러스의 이런 분류는 바이러스의 게놈(생명체의 유전물질)에 따른 것이다. 바이러스는 세포가 아니고 캡시드라는 단백질 껍질을 지닌 핵산으로만 구성되어 있다. 이것의 본질은 진정(obligate) 기생성이다.
즉 이것은 숙주세포의 효소, 리보좀(세포질에서 단백질을 합성하는 세포 소기관), 미세분자들을 이용함으로써만 비로소 자신을 복제할 수 있는 생물과 비 생물의 경계적 존재이다. 이런 점만 놓고 본다면 노동자계급의 잉여노동을 착취함으로써만 비로소 자신을 복제할 수 있는 자본가 계급은 ‘사회적인 지능형 바이러스’다.
반윤리적인 남한의 의사와 약사들 탓에 남한에서 세계 제일로 남용되고 있는 항생제는 바이러스에 무용지물이다. 항생제는 질병의 원인이 되는 세균(박테리아)에 특유한 효소나 생(生)합성 과정을 억제함으로써 세균을 죽인다. 그런데 기생적인 바이러스에는 자신의 고유한 효소가 전혀 없거나 거의 없기에 그렇다.
하지만 최근 수년에 걸쳐 몇 가지 항바이러스 약제가 개발되어 왔다. 바이러스와 관련해서 특히 주목할 수 있는 사실에는 두 가지 차원이 있다. 인간을 비롯한 여러 생명체의 게놈지도 작성에 기초한 가공할 생물무기의 제조문제라는 차원 그리고 국내 일간지에는 거의 취급하지 않은 제약 특허권 분쟁으로서 남아공화국이 에이즈 치료제의 가격・물량 확보를 위해서 39개 거대 제약회사들과 다툰 사건이다.3)
수돗물에서의 ‘바이러스’ 검출과 관련해서 우선 두 가지를 지적할 수 있다. 수질의 개선, 마실 수 있는 물의 확보와 관련해서 우선 상하수도관의 점검과 교체가 필요하며 사용한 물의 재처리를 입법, 시행해야 한다.
일본의 대도시들에서는 물의 재처리가 시행되고 공업계에서는 사용한 물의 75%를 재처리하고 있는데 이것은 그 비율에 있어서 세계 최고라고 한다. 동경의 경우 인구가 서울보다 훨씬 많은 2천만인데 정수장이 12군데가 있다. 이 자치 시는 내부면적이 3만㎡가 넘는 건물에는 사용한 물을 재처리할 수 있는 시설을 갖추도록 규제하고 있다.4)
둘째, ‘수돗물 바이러스’ 검출은 이미 서울대 김상종 교수가 3년 전에 보고했음에도 당시 행정당국에서 묵살했다는 것이다. ‘호미로 막을 일을 가래로 막아야’ 하도록 방치하는 어리석음은 어제오늘의 일이 아니다. 이승만 파쇼정권 이래 고질적인 공무원 사회의 권위주의와 무사안일을 본질로 하는 관료주의는 민중의 복지와는 너무나도 먼 당신, 복지(伏地)행정을 낳아왔다.
이런 병폐를 반드시 퇴치하기 위해서 공무원들은 공무원노조를 결성하여 새로운 전통을 수립해 나가야 한다. 이런 어리석음의 다른 한편에 있는 것이 관변 과학자들이다. 이런 먹물들은 이미 전두환 파쇼정권 아래서 ‘금강산 댐’의 과학성을 옹호한 전례가 있다.
이런 먹물을 재처리할 수 있는 주체가 민주적 교수노조일 것이다. 교수노조는 노동계급의 중요한 일부분으로서 자신의 교육・연구노동의 적정조건을 확보하는 한편 인텔리로서의 사회적 책임이라는 점에서 파쇼세력 혹은 진정한 자유의 확대를 저지하는 자기기만적 자유주의적 세력인 먹물들에 대항하여 과학뿐만 아니라 사상과 문화의 모든 영역에서 여타 진보적 노동운동세력과 연대하여 투쟁해야 할 것이다.
이상 두 가지와 관련이 있으면서 보다 총체적 관점에서 ‘수돗물 바이러스’ 사태를 접근할 수 있다. 이미 앞서 지적한 바와 같이 수질오염은 단선적 인과론이 아니라 생태계와 인간사회 사이의 상입(相入:Interpenetration)적인, 연기론(緣起論)적 인과론에서 접근해야 한다.
그럴 때 환경파괴라는 거대사태의 본질은 근시안적인 생산력주의적이고 경제주의적인 편협한 ‘합리적 현실주의’ 대 당면상황의 특정국면의 문제를 해결하면서 동시에 그것의 계기적 이행에 유의하는 장기적이고 폭넓은 ‘변증법적 현실주의’의 사활적 투쟁이다. 눈 뜬 장님 코끼리 만지기식과 같은 ‘합리적 현실주의’의 비극적 일례가 사회주의 소련체제 아래에서 진행되어 온 중앙아시아 ‘아랄 해의 변형’이다.
아랄 해는 1960년대 이래 지금까지 계속 줄어들어 원래 크기의 절반에도 못 미치는 바다로 전락했다. 그렇게 된 배경은 스탈린 체제 아래에서 아랄 해의 수원지인 두 강, 아무 다리야와 시르 다리야가 우즈베키스탄의 면화 밭 수백만 헥타르를 수로를 전환시킨 정책이다.
그에 따라 두 가지 재앙이 발생했다. 우선 세계에서 가장 풍성한 내륙어장들 가운데 한군데가 파괴되었다. 더욱이 사라져가는 호수로 유입된 중금속과 살충제 그리고 이것들에 의해서 독성을 품은 먼지폭풍은 쪼그라들어가고 오염된 강물에 창궐하는 질병들과 결합해서 공중보건에 파국을 초래하고 있다.5)
‘수도물 바이러스’가 전자현미경적 세계의 문제라면 ‘새(?)만금 간척사업’은 망원경적 세계의 문제이다. 칠레의 민주선거로 등장한 아옌데 정부를 군부 파쇼세력의 유혈 쿠데타로 파괴하는 데 중요한 역할을 수행한 헨리 키신저에게 노벨평화상이 수여된 것은 노벨상의 추악한 면을 보여주는 것이었다.
사회 제 단체가 극구 우려하는 사업을 강행하는 이 정권의 수반에게 그 상이 수여된 것은 혹 추악한 것은 아니더라도 이상한 일이다. 이 사업의 수혜자는 누가 될까? 정주영이나 김우중처럼 재벌의 꿈을 꾸고 있는 건설업자들 그리고 부패방지법에 면역체계(?)를 전면 가동한 ‘바이러스성’ 국회의원들 등등이 아닐까?
이 정권은 국가보안법의 개선은 고사하고 허울뿐인 국가인권위법에 권위를 부여했다. 애초에 이 정권에 대한 짝사랑을 했던 유권자들이 환상에서 깨어나고 있다. 민중의 지극히 정당한 비판정신과 저항행위를 ‘현명하게’ 조직하여 ‘사회적 바이러스’에 대해서 ‘면역조직’을 강력하게 발동하여야 할 때가 아닌가?
주
1) http://www.planetark.org/dailynewsstory, 2001년 3월 23일자.
2) http://www.worldwater.org
3) 이 두 가지 문제는 다른 문제들과 함께 필자가 『진보평론』 2001년 가을 호에서 생명공학 관련 글에서 다룰 것이다.
4) 『과학과 미래』(파리), 1998년 5월호, 44면.
5) 『타임』, 환경문제 특별 호, 2000년 4~5월호, 68면. 이 기사에서는 필자가 초등학교 시절부터 주입되어 온 유익한 ‘다목적 댐’의 신화로서 미국의 후버댐과 그랜드 쿨리 댐의 환경파괴성 역시 지적하고 있다. 필자는 이런 허구를 10년 전 인도의 민중운동가로부터 깨닫게 되었다.
본지는 재야 인문학자 최형록 선생의 철학, 역사, 과학, 정치에 관한 세계관을 접할 수 있는 에세이를 매주 토요일 시리즈로 싣는다. 최 선생은 서울대 인문대학원에서 수학했으며 민중당 국제협력국장, 사민청 지도위원, 진보평론 편집위원을 지낸 바 있다. 저서: 이 야만의 세계에서 어린 시절의 꿈나무를 키워나간다, 영역: 모든 노동자의 건강할 권리를 위하여. [한국인권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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