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와서 찍는 사람들: 노들장애인야학 영화반

'우리의 영화는 우리가 만든다'

2022년 여름, ‘나와서 찍는 사람들’은 노들장애인야학의 자조모임으로 시작해 2023년부터 특활반으로 매주 목요일 저녁 수업을 하고 있다. ‘나와서 찍는 사람들(이하 나찍사)’과 처음 만났을 때 학생들에게 물었다. 어떤 영화를 만들고 싶은지. 세 분 모두 막연하지만 자신이 찍고 싶은 영화들을 갖고 있었다. 대부분 기획 단계였지만 영화를 만들고 모임을 함께 하고 싶다는 바람이었다.

노들장애인야학 영화반 '나와서 찍는 사람들'. 출처: 이영욱

그렇게 1년 반 정도의 시간이 지난 후 2024년 서울장애인인권영화제에서 기획작으로 5편의 영화가 상영되었다. 돌아가신 어머니를 그리워하며 만든 <그리운 어머니>(김홍기)와 권리중심공공일자리 해고 투쟁의 기록인 <해고 노동자 이야기>(박지호), 하늘을 날고 싶은 마음을 담은 <4월 어느날 패러글라이딩>(오지우), 권리중심공공일자리와 야학에 대한 감상을 음악에 실은 <나의 오후는>(서호영), 장애인거주시설의 인권 유린 상황을 탈시설한 당사자들의 목소리로 증언한 <우리는 말하고 싶다>.

학생들이 만든 이 5편의 영화들은 만든 시기와 제작 기간, 그리고 함께 참여한 사람들도 모두 다르지만, 자신이 직접 출연한다는 것과 노들장애인야학 소속이라는 공통점을 갖고 있다.

감독 자신이 주인공으로 나오는 것은 저예산 독립영화(특히 다큐멘터리)에서는 흔한 일일 수 있지만, ‘나찍사’ 작품에서 보이는 감독 자신의 모습과 목소리는 조금 특별한 의미를 갖는다. 배우로 연기를 하거나 인터뷰이로 자신의 이야기를 말하는 것보다 감독이라는 역할을 갖고 전체 과정을 기획하고 촬영을 준비하며 편집을 마무리한다는 것은 분명히 쉬운 일이 아니라고 생각한다. 콘티를 짜거나 구성안을 만드는 것은 야학 교사들과 활동지원사들의 조력이 필요한 일이었고 특히 후반 편집 작업은 감독 스스로 하기에 힘든 일이기도 했다. 많은 과정에서 조력자들이 필요한 일이었지만, 감독이라는 역할을 맡는 것은 자신이 하고 싶은 이야기를 ‘영화’라는 방식으로 책임을 지는 것이다. 여기서 ‘영화’는 내용뿐만 아니라 과정도 포함하고 있다.

노들장애인야학 영화반 '나와서 찍는 사람들' 상영회. 출처: 이영욱

그리고 이 모든 것들은 노들장애인야학이라는 공간이 있었기에 가능한 일이었다. 노들장애인야학의 학생이기도 한 ‘나찍사’의 감독들은 이 곳에서 만나는 다양한 사람들과 일상을 나누고 공부하며 투쟁의 현장에 함께 참여한다. 많은 사람들과 관계를 맺고 경험하면서 자신을 만들어가고 있는 것이다. ‘나찍사’의 작품들도 야학의 교사분들과 학생들의 도움으로 제작이 되었고 서로에게 좋은 자극이 되기도 하였다.

올해 ‘나찍사’는 새로운 학생들과 수업을 하고 있다. 처음에 함께했던 학생들도 참여하고 있으며 작년과는 다르게 공동작업 방식으로 한 편의 영화를 만드는 것이 목표다. 지금은 시나리오를 쓰고 구성안을 짜고 있어서 어떤 작품이 나올지는 시간이 지나봐야 알 수 있을 것 같다. 영화반 교사를 하고 있는 나는 장애인야학을 모르고 살아왔었다. 하지만 이곳에서 잘 살아남고 싶어 야학 학생들을 만났다. 학생들도 이 영화반에서 잘 살아남기를 바라는 마음이다.


2024 서울장애인인권영화제 기획전 소개

22회 서울장애인인권영화제 기획상영, 마로니에 공원(2024.04.20.) 출처: 미디액트

인권평(프로그램 소개)

서울장애인인권영화제 기획전_나와서 찍는 사람들

(노들야학 영화반 | 이영욱, 박정수)

그간 서울장애인인권영화제에 장애인 당사자가 감독으로서 만든 영화가 출품되지 않은 건 아니었으나, 비장애인 감독이 장애인 출연자를 담은 영화가 훨씬 더 많았다는 점은 늘 아쉬움으로 남았다. 올해로 어느덧 22회를 맞이한 서울장애인인권영화제에 노들장애인야학 영화반 학생들이 감독으로 들고 온 다섯 편(무려!)의 영화를 소개할 수 있어 그 아쉬움을 조금이라도 달래본다.

다섯 편의 영화를 다섯 명의 감독이 만들었기에 이들 영화가 담은 주제는 모두 다르다. 어머니의 무덤을 찾아가는 여정을 다룬 영화 '그리운 어머니'(감독 김홍기)는 그리움이라는 아주 보편적인 감정을 다루고 있으나 휠체어를 타고는 진입할 수 없을 정도로 풀이 무성한 무덤가로 향하는 과정 자체의 어려움을 담기도 한다. 영화 '4월 어느 날 패러글라이딩'(감독 오지우)에서도 패러글라이딩을 통해 느끼는 (찰나의 해방감과 같은) 감정을 다루지만 역시나 그 찰나에 닿기 위해 겪을 수밖에 없는 과정을 무척 자세하게 보여준다. 물론 그중에는 중증장애인의 노동을 반기지 않고 손쉽게 해고하는 차별적인 사회를 담아낸 영화 '해고 노동자 이야기'(감독 박지호)나 시설에서 경험한 삶을 나누고 비오는 날 우비를 쓴 채로 다시 시설에 찾아가 보는 영화 '우리는 말한다'(감독 조상지)처럼 뚜렷한 주제 의식을 갖고서 보다 직접적으로 장애인 당사자가 처한 현실을 말하는 작품도 있다. 또한 직접 그린 그림과 사진 등을 통해 담담하고 짧게 일상을 담은 '나의 오후는'(감독 서호영)에서는 긴 설명 없이도 장애인의 시선으로 세상을 보는 일을 말한다. 비장애인 중심의 사회에서 장애인의 시선으로 세상을 바라본다니, 일단 그것만으로도 재미는 보장돼 있다. 특히 장애인 당사자가 인터뷰 진행자가 돼 비장애인을 인터뷰하며 촬영하는 장면이나 전동휠체어에 탑승해 촬영한 덕에 등장할 수밖에 없는 흥미로운 앵글에서 의도하지 않은 전복이 가져다주는 즐거움을 느낄 수 있을 것이다.

장애인들이 노들야학 영화반의 영화를 서울장애인인권영화제 스크린을 통해 보는 장면을 잠시나마 상상해 본다. 그야말로 ‘우리의 영화는 우리가 만든다’는 말에 걸맞는 일이 될 것이다. 그리고 누군가에게는 이들 영화를 보는 ‘일’이 하나의 ‘사건’이 돼, 영화를 만드는 계기로 피어날 수 있기를 소망해 본다.

* 노들노래공장의 ‘우리의 노래는 우리가 만든다’(만수)는 문장을 단어만 ‘영화’로 바꿔서 사용했음을 밝힌다.

발언하는 이영욱 교사(좌), 관객 질의에 답변하는 김홍기 감독(우) 출처: 미디액트 
자신의 연출작 '우리는 말한다'를 보고있는 조상지 감독. 출처: 미디액트

상영작 소개

4월 어느 날 패러글라이딩

2024 | 8분 49초 | 다큐멘터리 | 오지우

4월 어느 날, 나는 패러글라이딩을 한다. 

그리운 어머니

2024 | 16분 20초 | 다큐 | 김홍기

오래전 부모님과 함께 살았을 때의 꿈을 꾸었다. 올해는 비가 와서 어머니 산소가 걱정이 되어 가보고 싶었다. 야학에 가서 어머니 산소에 같이 갈 것을 부탁드렸다. 우리는 다 같이 묘지에 수북이 자란 풀을 뽑았다. 모두 땀을 많이 흘렸다. 우리들이 와서 어머니가 기뻤으면 좋겠다. 나를 위해 같이 와준 사람들에게 너무 고마웠다.

나의 오후는

2024 | 3분 52초 | 다큐 | 서호영

마로니에공원을 산책하며 ‘하늘’ 사진을 많이 찍는다. 언어로 소통하는 어려움과 일자리가 불투명해져서 속상한 마음에 하늘을 보면 답답한 마음이 풀어진다. 나의 오후 중심에는… 노들이 있다.

우리는 말한다

2024 | 20분 7초 | 다큐 | 조상지

우리는 시설에 살았던 사람들이다. 철원에 있는 장애인거주시설 문혜·은혜 요양원. 그곳은 장애인거주시설이라는 이름을 내건 사실상 감옥이었다. 500명이 넘는 장애인들은 시설이 정해 준 시간 외에는 방 밖으로 나올 수 없었고, 제대로 된 프로그램 없이 방에서 갇혀 있어야 했다. 수용인들은 밥양이 너무 적어 늘 배가 고팠고, 물도 제대로 제공되지 않아 목이 말라도 참아야 했다. 장애인이기 때문에 참고 살아야 한다고, 그렇게 사는 게 맞는 거라고 생각했다. 그곳을 나온 네 명의 생존자인 우리들은 과거와 현재를 넘나들며 장애인거주시설이라는 곳이 어떤 곳인지, 그리고 인간이 가진 기본적인 권리가 어떻게 침해되고 유린되었는지를 세상에 알리고 싶다.

해고 노동자 이야기

2024 | 19분 28초 | 다큐 | 박지호

2024년 1월 1일, 오세훈 서울 시장이 권리중심 일자리를 통해 노동하던 400명의 중증장애인을 해고한다. 노들 장애인야학의 장애인들은 권리중심 일자리를 되찾기 위한 투쟁을 지속한다. 일자리를 통해 자립을 꿈꾸고, 좋아하는 가수의 콘서트를 예매하고, 가끔씩은 여행도 다니며 사람다운 삶을 누릴 수 있다고, 그리하여 중증장애인을 위한 일자리가 꼭 필요하다고 이야기하는 이들의 이야기를 들어본다.

22회 서울장애인인권영화제 기획전 관객과의 대화 속기록

[편집자 주] 위 속기록은 서울장애인인권영화제에서 장애친화 서비스를 위해 제공한 문자 해설의 원본입니다. 인디&임팩트미디어에서 장애 당사자 감독들의 생생한 목소리 전달을 위해 '나와서 찍는 사람들' 관객과의 대화 속기록 전문을 제공합니다.


관련 자료

서울장애인인권영화제

노들장애인야학

덧붙이는 말

이영욱은 노들장애인야학 교사다. 전국장애인야학협의회 영상활동가로 활동하면서 장애인권에 관심을 갖기 시작했다. 현재 노들야학에서 영화반 교사로 활동하면서 장애인권과 사회적 소수자에 대한 기록을 이어가고 있다. 작품으로는 <삼투압>, <여름, 캠프 그리고 넝쿨어린이작은도서관> 등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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