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당의 기이한 전당대회가 끝났다. 보수언론을 포함한 보수 논자들이 연일 한탄할 정도의 퇴행적 경쟁 끝에 나온 결과는 예상대로였다. 윤석열 대통령-한동훈 국민의힘 대표 조합은 그 자체로도 초현실적이다. 전 정권 끝 무렵만 해도 이런 조합을 예상한 사람은 거의 없었을 것이다. 서로 대립할 일만 남았다는 사실까지 생각해보면 이 초현실의 심도는 더 깊어진다. 초-초현실이랄까?
먼저 이 진기한 전당대회가 무엇을 남겼는지부터 짚어볼 필요가 있다. 이념이나 정책은 언급도 되지 않았으니 논할 게 없다. 거의 유일하게 확인한 것은 ‘검사 정신’이다. 한동훈 후보가 나경원 후보에게 제기한 ‘공소 취소’ 요구 문제가 대표적이다. 이 문제 제기는 나경원 후보가 ‘법무부 장관이던 시기 이재명 전 더불어민주당 대표 구속에도 실패하지 않았느냐’고 공격한 걸 한동훈 후보가 받아치면서 시작됐다. 그런 지적은 법무부 장관은 개별 사건에 관여할 수 없다는 걸 모른다는 걸 방증하는 것 아니냐는 취지인데, 그 예로 나경원 후보가 이른바 ‘패스트트랙 재판’에 대한 공소 취소를 요구한 일이 있다는 폭로를 하게 된 거다.
전당대회의 마지막 국면 내내 나경원 후보는 억울하다는 투로 주장했다. 당시의 요구는 정치적 요구였으며 그것은 법적인 차원에서의 청탁과는 다르다는 거다. “개인적인 것을 부탁한 게 아니잖느냐”는 나경원 후보의 항변은 그런 맥락이다. 국민의힘이라는 집단의 입장에서 2020년 총선을 앞둔 당시 선거법 개정안에 대한 대응은 진영 대 진영의 싸움이었다. 한동훈 후보가 ‘법무부 장관의 권한’을 언급하기 위한 예로 이걸 든 것은 그 집단의 수장이 되겠다는 사람이 가볍게 꺼낼 수 없는 얘기였다. 한동훈 후보도 그걸 알기 때문에 사과했을 거다. 사과 메시지를 내는 걸로 방침이 정해지면서 사건은 그렇게 해프닝으로 마무리 되는 듯 했다.
그런데 사과를 해놓고 직후 진행된 토론회에서 한동훈 후보는 이 문제를 재차 거론했다. 정확히는 이 문제를 공격의 포인트로 삼는 다른 후보들의 공세에 대해 앞서와 같은 방식으로 반격을 했다고 말하는 게 맞을 것이다. 처음에는 재차 사과하는 듯 했던 한동훈 후보는 “이 사건 기소한 게 윤석열 대통령인 것은 아느냐”고 쏘아 붙이는가 하면 여전히 “똑바로 말해보라, 내가 개인적 차원의 청탁을 했다는 것인가”라고 묻는 나경원 의원에게 “네”, “네”라고 연이어 답하는 모습을 보였다.
이러면 사과는 아무런 효과도 없는 게 된다. 어쨰서 이런 일이 일어나는 것일까? 정치인이 아니라 검사의 태도로 전당대회에 임했기 때문이라는 지적을 하지 않을 수 없다. 상대의 주장을 반박하기 위해 사안의 성격을 새로 정의하고 본질적으로 맥락이 다른 근거를 들어 반박을 하면서 논지를 이끌어 가는 것은 전형적인 특수부 검사의 논법이다. ‘어대한’으로 치러진 전당대회에서 보수의 혁신이나 재건을 둘러싼 의제가 아닌 ‘상명하복’의 맥락을 연상시키는 대통령과의 관계, 야당이 이용하기에 알맞은 법적 리스크를 전제할 수밖에 없는 댓글팀, 청탁 등이 주요 이슈였던 것은 결코 우연이 아니다.
출처: 대한민국 대통령실
이런 식의 ‘검사 정신’은 윤석열 대통령의 통치 스타일에 있어서도 그대로 드러난다. 윤석열 정권은 보수우파 정권이지만, 자세히 보면 보수우파로 보일 만한 외피를 두르고 이들이 좋아할만한 의제를 던지고 있을 뿐이다. 정파적 차원에서 그랜드 디자인을 갖고 그에 맞춰 전략적으로 움직이고 있다고는 전혀 볼 수가 없다.
이 정권이 그나마 열심인 것은 국가 기관을 장악하는 것과 각종 현안에 대해 법적 논리를 자기들에 유리할대로 주장하는 것 정도이다. 의도적 오류와 왜곡으로 점철된 특검 거부권 행사 논리와 같은 것들을 보면 특수부 검사의 무리한 공소장을 보는 느낌이 들 때가 많다. 대통령이 검찰총장 출신이고 정권의 요직에 영향력을 행사하는 이들 역시 특수부 검사에 가까운 사람들이니 이것도 이상한 일이 아니다.
이렇게 보면 윤석열 대통령이나 한동훈 신임 대표나 ‘검사 정신’이라는 비슷한 리더십의 소유자이므로 일견 충돌할 이유는 없어 보인다. 그럼에도 양쪽이 갈등하는 건 물론 어느 만화의 등장인물이 한 대사처럼 ‘서는 곳이 달라졌기 때문’일 거다. 하지만 윤석열 정권에서는 이걸로 전부를 설명할 수 없다.
그간의 보도에 의하면 한동훈 신임 대표가 용산의 눈 밖에 난 것은 비대위원장을 맡기 직전부터다. 비대위원장을 맡겠다고 하기 직전 기자들의 김건희 특검에 대한 질문에 ‘법 앞의 평등’ 같은 원론적 얘기를 한 걸 조선일보를 비롯한 보수언론이 ‘조건부 수용론’으로 포장을 하면서 이미 ‘0차 갈등’(일반적으로들 말하는 1차 갈등은 비대위원장 취임 후 1달이 채 안 된 시점이었다)이 발발했었다는 거다. 비대위원장을 하라고 권유한 것은 윤석열 대통령 본인인데 김건희 여사에 대한 언급을 했다는 이유만으로 이미 이때 충돌이 일어났었다니, 황당하다. 한동훈 대표의 김건희 여사 메시지 무시 사건은 이 맥락에서 벌어진 일이다. 이게 ‘마리앙투아네트’ 발언의 당사자인 김경율 당시 비대위원의 출마설로까지 번지면서 용산은 다음과 같은 확신을 갖게 됐다고 한다. ‘차기 대권 주자인 한동훈이 살아있는 권력을 제물로 자기 정치를 하려고 한다.’
용산의 이러한 의심은 검찰 조직에 대해서도 같은 방식으로 제기되고 있다. 지난 1월 김건희 여사에 대한 소환 조사의 필요성을 언급했다는 이유로 이미 당시 서울중앙지검장의 교체가 시도됐다는 얘기가 있었다. 윤-한 갈등이 심화되던 시기 공석 상태가 장기화되리라 예상됐던 법무부 장관 후보자가 갑작스럽게 지명된 예도 있다. ‘한동훈 자기정치설’은 검찰 내부 이러한 움직임과 엮여 ‘한동훈-이원석(검찰총장) 동맹설’로 확대됐다. 그 결과가 지난 5월 이원석 검찰총장의 참모진이 사방으로 흩어지고 ‘윤가근 한가원’이란 평가를 받던 이창수 검사가 서울중앙지검장이 된 것은 이 때문이다.
애초에 이원석 검찰이 김건희 여사에 대한 소환조사 필요성을 언급하기 시작한 이유는 무엇이었나? 이 역시 용산의 압박 때문일 수 있다는 게 언론의 분석이다. ‘한동훈 자기정치설’과 ‘한동훈-이원석 동맹설’이 나오면서 용산은 이원석 검찰을 압박하기 시작했다고 한다. 이재명 전 더불어민주당 대표에 대한 구속영장이 기각된 이유에 대한 책임을 뒤늦게 거론한다든가, 도이치모터스 주가 조작 사건 관련 김건희 여사 고발건에 대한 처분이 지금까지 이뤄지지 않고 있는 배경에 대한 의심을 한다든가 하는 식이다.
구속영장 기각은 이제 와서 어쩔 수 없으니 그렇다쳐도, 도이치모터스 주가 조작 사건 관련 대목에 대한 결론을 내리려면 김건희 여사에 대한 직접 조사가 불가피하다는 게 당시 수사팀의 판단이었다. 대통령은 “전 정권이 탈탈 털었다”고 했지만, 이후 재판 과정 및 언론 보도 등을 통해 새롭게 제기된 의혹들이 있다. 이런 의혹은 김건희 여사가 이전에 서면 등으로 해명한 것으로는 충분히 설명되지 않는다. 그러니 ‘불기소장’을 쓴다고 해도 조사는 필요한 것이다.
그런데 김건희 여사 측은 대면 조사를 완강히 거부했다. 이 결과가 최근의 ‘검찰총장 패싱’ 및 ‘제3의 장소 조사’이다. 애초 이원석 검찰이 계획한 것은 법적 책임을 묻기 어려운 명품백 수수 의혹으로 김건희 여사를 소환한 후 도이치모터스 주가 조작 관련 조사를 덤으로 진행하는 거였다. 특히 서울중앙지검장이 교체된 이후에는 도이치모터스 주가 조작 사건에 대한 검찰총장의 지휘권이 배제돼있는 상태를 이러한 절충안으로 우회하는 효과를 기대할 수 있었다.
그런데 용산과 사실상 손을 잡은 이창수 서울중앙지검장은 이 아이디어를 역으로 이용했다. 도이치모터스 주가 조작 사건 관련 조사를 하겠다고 김건희 여사를 부른 후 명품백 수수 의혹을 덤으로 조사한 거다. 이러면 검찰총장의 ‘오케이 싸인’ 없이도 김건희 여사를 영상녹화장치도 없고 검사들이 외부와 전화 통화도 할 수 없는 ‘제3의 장소’에서 조사할 수 있게 된다. 명품백 수수 의혹은 즉흥적으로 이뤄진 것으므로 ‘명품백’의 실물은 미리 준비되기 어려웠을 것이다. 검찰은 조사 다음 날 임의제출 받겠다는 입장이었으나 실제 명품백이 예정대로 제출됐는지에 대해선 답을 하지 않고 있다.
윤석열-한동훈 시대의 출범으로 ‘검사 정신’이란 게 대한민국 주류가 됐다는 걸 확인했다고 하면, 적어도 검찰이 범죄 혐의에 대해선 지위고하를 막론하고 엄정하게 수사하는 순기능이라도 기대해봐야 할 것이다. 그러나 앞서 본대로 검찰의 김건희 여사에 대한 태도를 보면 그런 기대는 하기 어렵다. 오히려 권력 핵심부 인사를 방어하기 위해 자기네 수장인 검찰총장을 체계적으로 무력화했다. 그런 점에서 윤석열-한동훈 시대로 실체화 된 ‘검사 정신’이란 오직 ‘정치검사의 정신’에 다름 아니다. 나에겐 관대하고 남에겐 엄정하며, 약자에겐 원칙을 말하면서 강자에겐 무한정의 예외를 허용하는 것이다.
총선 대패에 이어 ‘한동훈 대표’ 체제만은 막아보려던 뜻을 이루지 못한 윤석열 정권의 입장에서 보면 한동훈 대표를 인정하는 등의 수습책 외에 이제 더 꺼낼 수 있는 카드는 없어 보인다. 일각에서 ‘김옥균 프로젝트’ 등으로 언급됐던 지도부 붕괴 작전도 한동훈 대표 측이 선출직 최고위원 5인 중 2인을 확보하는데 성공하면서 실행하기 어려워졌다. 물론 윤석열 대통령이나 한동훈 대표나 양쪽 모두 당분간은 수습과 봉합의 의지를 가질 것이다. 그러나 김건희 여사와 ‘검사 정신’ 때문에 그러한 시도는 실패할 것이다. ‘김건희’ 이름 석 자만 나오면 무조건 감싸는 윤석열 대통령과 차기 대권으로 가야하는 한동훈 대표의 충돌은 시점의 문제일 뿐이기 때문이다. 따라서 윤석열 정권과 검사들의 끝은 불행할 것이다. 이것은 어려운 예언이 아니다. 처음엔 미처 몰랐다는 사람들이 안타까울 뿐이다.
- 덧붙이는 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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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민하는 정치·사회 평론가, 칼럼니스트다. 민주노동당, 진보신당 등에서 일하며 한국의 진보정치가 현실적 대안으로 자리 잡는 데 조금이라도 보탬이 되고자 했으나 무엇이 잘못됐는지 기대만큼 잘되지 않았다. 지은 책으로는 『저쪽이 싫어서 투표하는 민주주의』, 『냉소 사회』, 『레닌을 사랑한 오타쿠』 등이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