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떤 날은 하루 두 시간, 어떤 날은 반나절 이상의 시간을 쓴다. 집에서 도보로 15분 거리에서부터 지하철로 2시간이 넘는 거리의 동네까지. ‘별이’를 떠나보내고, 내가 동물 돌봄이란 세계로 다시 초대된 것은 2년 전 초여름이었다. 늘 운동을 하러 가던 공원에서 만난 고양이를 통해서였다. 그에게 음식을 챙겨주기 시작했고, 고양이 급식소의 존재를 알게 된 건 조금 더 시간이 지나서였다. 매일 그 급식소에 밥과 물을 채워주는 중년의 주민이 있었다. 나는 그와 돌봄을 나누고 싶었고, 번갈아가며 격일로 돌봄을 시작하게 되었다. 그렇게 두 명의 작은 돌봄 공동체가 시작되었다. 그것의 이름은 ‘커먼즈(commons)'다.
책 ⟪커먼즈란 무엇인가⟫(한디디) 에서는 지속가능한 살림살이의 양식을 재발명하기 위한 키워드로 커먼즈를 이야기한다. 커먼즈는 공유지나 마을 숲에서 얻는 땔감, 열매와 같은 어떤 자원일 수도 있지만, 그것으로 한정되지 않는다. 오히려 자원으로만 커먼즈를 바라보는 것은 커먼즈를 오해하는 것이다. 커먼즈는 공동으로 소유하는 것이나 일정 기준에 따라 분배하는 것과는 다르다. “어떤 것을 ‘공유’하는 것이 아니라, 무언가를 ‘나누는’ 것”으로, “함께 섞고 나누는 활동, 즉 커머닝(공통하기)”이다. 우리가 다른 이들과 함께 하는 대화나 생각, 우정과 같은 활동 속에서 만들어지거나 나뉘는 것, 또는 그런 관계이기에 공평하게 나누어 가질 수 있는 것이 아니다. 내가 하고 있는 돌봄도 마찬가지다.
새벽이생추어리의 거주 동물이 먹을 환삼덩굴과 낙엽을 모으는 중. 사진: 혜리
고양이 돌봄을 시작하고 얼마 후, 나는 또 다른 돌봄 공동체에 속하게 되었다. 하나는 재개발 구역에 거주하는 고양이 수 십 명, 또 하나는 ‘새벽이생추어리’에 사는 돼지 새벽과 잔디를 돌보는 것이었다. 크게 다를 것은 없었다. 누가 언제 돌봄을 할 것인지 자신의 사정에 따라 정하고, 해당 날짜에 돌봄을 했다. 개인적인 일정이나 몸이 아파 돌봄을 못할 경우, 다른 사람이 대신 돌봄을 해주었다. 고양이와 돼지가 굶지 않도록 돌봄은 쉬지 않고 이루어졌다. 모든 돌봄이 야외에서 이루어졌으므로 혹한기, 혹서기엔 더 힘들다는 것 역시 비슷했다. 돌봄이라는 활동 속에서 동물과 관계를 맺고, 연결되고, 돌보는 이들과 보태고 나누었다.
새벽이생추어리를 지탱하는 세 역할
공동의 동물 돌봄은 커먼즈의 여러 감각을 기반으로 이루어진다. 우리 정서에는 두레, 품앗이, 계가 있고, 이 위에서 동물 돌봄은 지속 가능하다. 두 명의 돼지, 새벽과 잔디가 살고 있는 ‘새벽이생추어리’의 돌봄이 4년 넘게 이루어질 수 있는 것은 단체를 후원하는 매생이(후원 활동가), 보듬이(돌봄 활동가), 새생이(운영 활동가), 그리고 단체와 연대한 이들의 존재가 있기에 가능하다. 많은 사람들이 모은 재정적 기반을 바탕으로, 여러 사람들이 공동으로 돌봄을 하는 형태. 만약, 개인 혼자 돌봄 노동과 돌봄 비용을 모두 떠안는 방식이었다면, 새벽과 잔디는 지금쯤 어떻게 되었을까?
두레
: 농민들이 농번기에 농사일을 공동으로 하기 위하여 부락이나 마을 단위로 만든 조직.
10월 말부터 찬바람이 불고, 밤에는 입김이 나온다. 겨울을 준비할 시기가 된 것이다. 돌보미들의 마음은 급해진다. 작년에 사용했던 ‘겨울 집’을 손보거나, 필요에 따라 새로 만들기 위해 깨끗한 스티로폼 박스를 찾아다닌다. 쓸 만한 것을 구하면, 안에 신문지와 새 지푸라기를 넣어 사람들의 눈에 띄지 않는 곳에 둔다. 한파와 눈을 견딜 수 있도록 방풍 비닐을 달기도 한다. 이 ‘겨울 준비’는 매년 비슷한 시기에 자발적으로 진행된다. 어느 날 가면, 스티로폼으로 만든 집이 놓여 있기도 했고, 내가 둔 집을 누군가 보완해주기도 했다. 여러 사람의 도움을 거치면, 한파에도 버틸 수 있는 고양이 보금자리가 완성된다. 최근, 주민 2명과 함께 겨울 준비를 마쳤다. 각자의 스케줄에 따라 누군가는 낮에, 누군가는 밤에. 누군가가 지푸라기를 채워 넣어주면, 누군가는 그 위에 담요를 올려 두었다. 각자 할 수 있는 만큼 일손을 도왔다.
품앗이
: 힘든 일을 서로 거들어 주면서 품을 지고 갚고 하는 일.
재개발 구역의 고양이 돌봄은 ‘동동재’라는 이름의 공동체로 굴러간다. 6년 간 홀로 돌봄을 하던 이를 돕고자 만들어진 이 작은 공동체는, 초등학생부터 어른까지 여러 동네 주민이 거쳐 갔지만 보통은 분기 별 세 명 내외의 조촐한 인원으로 운영된다. 담당 돌보미가 평일을, 주민들이 주말이나 공휴일 돌봄을 하는 방식이다. 돌봄을 한 날에는 현장에 대한 정보와 고양이들에 대한 기록 등을 간단하게 일지로 작성한다. 나는 이 동동재를 통해 2년 넘게 재개발 구역을 오갔다. 그곳은 언제나 사건, 사고가 끊이지 않는 일종의 재난 지역이었기에 갈 때마다 한숨이 푹푹 나왔다. 상시적으로 진행되는 공사와 아무렇게나 버려진 흉기와 같은 폐기물에 고양이들이 다치는 일은 빈번했다. 다친 고양이를 납치하여 동동거리며 병원에 동행하는 일부터, 밥과 물을 챙기는 기본적인 돌봄까지, 그곳의 거주 동물뿐만 아니라 돌보는 이와도 많은 시간들이 쌓였다.
재개발 구역. 사진: 혜리
종종 가던 타 지역의 고양이를 결국은 치료하겠다고 마음먹었을 때, 재개발 구역 돌보미는 포획을 위한 틀을 대여해 와 먼 거리의 현장에 동행했다. 잠복 끝에 얼렁뚱땅 납치에 성공한 우리는 병원에서 함께 마음을 졸였고, 퇴원 후 그를 풀어주는 순간에도 함께했다. 그는 ‘동동재’라는 공동체가 생긴 후에 달라진 점에 대해 말했다. “돌봄 대상에 대해 얘기할 수 있는 사람이 있기에 감정적인 저에게는 든든해요. 아파도, 피곤해도 돌봄을 해야 돼서 체력적으로 버티기 어려운데, 나눠서 하니 훨씬 안정적이에요. 돌봄에 관해 같이 고민하고 의논할 수 있어요.” ‘품앗이’는 혐오 속에서 돌봄하는 이들에게 노동으로의 연대다.
계
: 주로 경제적인 도움을 주고받거나 친목을 도모하기 위하여 만든 전래의 협동 조직.
동물 돌봄을 시작하며 가장 걱정했던 것 중 하나는, 언젠가 나에게 닥칠 엄청난 비용의 병원비 청구서였다. 재개발 구역 돌봄을 하면서 그것은 나에게 실질적인 두려움으로 다가오기도 했다. 2년 동안 내가 보았던 사례는, 몸이 관통 당했던 오잉이, 교통사고로 다리가 골절된 초코, 오랜 구내염으로 전발치를 해야 했던 얼룩과 카레, 교상으로 얼굴에 농이 차올랐던 까미까지. 최소 50만 원에서 많게는 몇 백만 원의 치료비가 들어가는 중환자였다. 재개발 구역이 아니어도 돌보미 혼자 다수의 고양이를 돌보는 일이 흔하기에, 치료비는 언제나 가장 큰 부담으로 다가온다. 경제적인 어려움으로 치료를 하지 못했을 때, 아픈 동물을 방관한다는 죄책감 역시 돌보미 개인의 몫이 되어버린다.
연대자들의 모금을 통해 다리 수술을 받은 초코. 사진: 혜리
결국 사람들의 연대가 필요하다. 함께 돌봄을 하는 이들이 조금씩 몫을 보태고, 또 그들의 지인들과 그 지인들까지 크고 작은 몫을 보태면 어느새 병원비에 가까워진다. 이렇게 받은 도움은, 누군가가 ‘치료비 모금'을 열면 보태는 방법으로 연결된다. 치료비에 대한 부담을 덜어주고자 지역 별로 운영되는 돌봄 커뮤니티에서 치료비의 일부를 지원하기도 한다. 이 치료비의 출처 역시 돌보미 또는 지역 주민이 대부분이다.
하지만 나와 같이 공동의 돌봄을 하는 경우는 드물다. 2022년 동물권행동 카라에서 1,500명 이상의 돌보미를 대상으로 실시한 설문조사에 따르면, 돌보미의 95.7%가 여성이며, 대부분 개인적으로 활동하고 있다. 또한 돌봄 활동 기간은 2년 이하가 34.6%로 가장 많았다. 돌봄에 소요되는 비용은 평균적으로 월 16만 원이며 돌봄을 하면서 가장 어려운 점으로, 1위가 ‘사람들의 부정적인 시선’, 2위가 ‘부상, 질병 등 치료비에 대한 부담’으로 조사되었다. 여성 홀로, 월 16만 원을 지출하며, 사람들의 부정적인 시선을 견디고, 치료비에 대한 부담을 지는 것이 한국의 동물 돌봄 현실이다.
개인 혼자 돌봄을 감당하게 될 경우, 정신적·체력적 소진으로 인한 어려움 또한 겪게 된다. 몸이 아플 때도 돌봄을 쉴 수 없다. 무엇보다, 대부분의 동물 돌봄이 가정이나 시설 내에서 ‘감금’ 형태로 이루어지는 것과 달리, 실외에 살아가는 비감금 상태의 고양이를 돌보는 일은 돌보미로 하여금 많은 어려움으로 다가온다. 집이나 보호 센터라는 ‘돌보미에게 안전한 공간’에서 돌봄을 수행하는 것이 아니라, 돌봄 대상이 있는 곳으로 돌보미가 이동해야 한다. 이 거리는 집 앞이 될 수도, 몇 시간이 걸리는 타 지역이 되기도 한다.
본격 철거가 진행된 재개발 구역. 사진: 혜리
예기치 못하게 바뀌는 돌봄 환경과 사람들이 돌봄을 어렵게 하기도 한다. 돌봄의 공간이 개발을 위해 사라지기도 하고, 돌보미와 동물이 혐오자로부터 위협을 받기도 한다. 동물들이 다치고 병드는 일도 흔하며, 이때 치료를 할지 말지를 결정하는 것, 그리고 병원비와 이후의 삶까지 감당하는 것도 돌보미의 책임이 된다. 홀로 돌봄을 감당하는 이들이 지쳐 그만두는 것은 어쩌면 당연하다. 돌봄 활동 기간이 ‘2년 이하’가 가장 많은 것은 무시할 수 없는 수치다. 그렇게 떠나간 돌보미는 생명을 포기했다는 죄책감과 비난을 전부 짊어지게 된다. 열악한 노동 환경과 빈곤 속에서 돌보미들은 서로를 탓하는 상황에 놓이기도 한다.
현실적인 어려움에도, 많은 이들이 돌봄을 장기적으로 이어나간다. 동일한 설문조사에서 5~10년 이상 돌봄을 한 이가 28.7%나 되었다. 이 돌봄은 단순히 불쌍하거나 귀여운 존재에게 시혜적으로 베푸는 선행이 아니다. 가축화되었지만, 그 중 일부는 인간의 소유물로 살아가지 않는다. 법적으로 소유하는 개념인 ‘반려동물’이 아닌 존재와 관계를 맺고, 돌보며, 공동으로 돌보는 이들과 연결된다. 돌보는 대상을 소유하거나 감금하지 않고도 무언가를 나누고, 그에 대한 자본주의적인 결과를 바라지 않는다. “여러 개체의 활동이 계산 없이 섞이며 새로운 것을 만들고 나뉘는 과정”이다. 저자 한디디는 커먼즈의 감각은 완전히 낯선 원리가 아니라는 것, 긴 인류의 역사에서 해오던 것이라는 점을 강조한다. 누군가와 함께하고, 관계를 만들고, 관계 속에서 살아온 감각. 자본주의가 울타리로 단절시킨 커먼즈의 감각이 이 시대에 존재하고, 연약하지만 유지되고 있음에 주목해야 한다.
새벽. 사진: 혜리
책 ⟪세상이 물려준 식사를 끝장내고⟫의 저자 장미경은, 동물 돌봄을 “가성비와 손익 계산에 혈안이 된 시대에 조금의 이윤도 남지 않는 일”이라 말한다. 새벽이생추어리 활동가 시옷은 4년 간 꾸준히 후원한 이들의 “비합리성”을 이야기 한다. “사회가 말하는, 그전까지 옳다고 배워왔던 이해타산에 전혀 맞지 않게 내어주고 뛰어드는 용기”. 또 다른 활동가 구황은 새벽이생추어리의 방식이 “시장의 관점에서 보면 비용이 맞지 않는 노동”, 새벽과 잔디가 가져다 줄 “이윤에 대해서도 따지지 않”는 노동이라 한다.
가축화되었으나 현재는 소유물이 아닌 존재로 살아가는 또 다른 동물인 비둘기.
동물 돌봄은 ‘생태계의 일원’이 되지 못하게 한다는 표현을 통해 혐오를 생산한다. 사진: 혜리
한디디가 지적했듯, 자본주의 사회에서 노동으로 승인되어 임금을 받는 것은 경제적 이익을 증식시키는 것, 공적으로 기여하는 활동뿐이었다. 그렇게 자본주의가 오랫동안 폄하한 수많은 노동 중 하나인 동물 돌봄. 인간의 돌봄보다 가치가 없다고 여겨지는 돌봄. 동물은 의존하지 않고 ‘스스로 먹이를 찾아’ 잘 살아야 한다는 메시지 속에서 혐오가 되는 이 노동이, 대안적 삶의 형태를 찾는 이 시대에는 어떻게 이야기될 수 있을까? 이 노동을 단순히 개인에게 전가하지 않고, 또는 이것 역시 자본 속으로 귀속되지 않고, 누구에게도 소유되지 않는 공동의 관계와 돌봄으로 이어질 수 있기를. 그렇게 모든 종이 자본주의의 울타리를 벗어나 대안적 삶을 살 수 있기를.
“민중의 살림살이에서 중요한 것은 혈통이 아니라 같은 생활권에서 함께 부대끼며 살아가는 동물과 식물을 포함한 이웃들이고 그들과의 관계다.” (채효정_재인용)
자료 출처 및 인용
- 한겨레, <내 돈 들이는 ‘캣맘’들…한 달 16만원 쓴다>, 2022.12.13.
- 동물권행동카라, ⟪길고양이 돌봄 설문조사 결과 발표 및 세미나_자료집⟫
- 구황, <돌봄과 자급 농사로 자본의 착취에 저항하자>, 월간 비건 11월호
- 한디디, ⟪커먼즈란 무엇인가 - 자본주의를 넘어서 삶의 주권 탈환하기⟫
- 장미경, ⟪세상이 물려준 식사를 끝장내고⟫
- 표준국어대사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