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운동권’들이 서로를 의심하는 광경은 익숙하다. 글이나 발언의 사소한 구절을 들어 이게 개량주의자 혹은 자유주의자의 단서인지 아닌지를 두고 논쟁을 벌이는 것은 결코, 결코 생소한 광경이 아니다. 반드시 이런 방식이 아니더라도, 이 비슷한 무언가의 여러 변형(가령 ‘개량주의자’, ‘자유주의자’ 대신에 ‘NL’, ‘PD’, ‘국민파’, ‘중앙파’, ‘현장파’… 그도 아니면 당장 떠오르는 아무 현장조직의 이름을 넣어도 좋다)은 실제로 존재해왔고 어떤 의미에선 현재에도 진행형이다. ‘운동권’들의 이러한 행태는 국경을 넘는 유구한 전통이다.
내전에 비유할만한 이러한 일들은 이제 ‘운동권’만이 아닌, 정치 전반의 일반 문법이 된 것 같다. 한국의 통치를 책임지고 있는 집권 여당에서 벌어지고 있는 일만 봐도 그렇다. 한동훈 국민의힘 대표와 그 가족을 둘러싸고 있는 이른바 당 게시판 의혹은 적어도 여당 구성원과 그 핵심 지지층에게는 그 무엇보다도 중요한 의제로 다뤄지고 있다.
의혹의 핵심은 한동훈 대표의 가족 명의로 당 홈페이지 게시판에 한동훈 대표를 추켜 올리면서 대통령과 그의 배우자를 모욕하는 글이 대거 올라왔다는 거다. 국민의힘 당원 게시판은 실명 인증을 해야 글을 쓸 수 있는데, 한동훈 대표를 칭찬하고 대통령과 김건희 여사를 깎아내리기 위해 동원된 ID는 한동훈 대표의 장인, 장모, 배우자, 딸 등의 명의로 되어 있다. 문제를 제기하는 쪽에선 이게 한동훈 대표 일가가 ‘가족 드루킹’으로서 여론을 조작한 증거라고 주장하고 있다.
출처: 국민의힘 공식 홈페이지
초기에는 해프닝 같은 얘기로 받아들여졌지만 논란이 길어지면서 사태는 뜻하지 않은 방향으로 이어지는 것 같다. 동아일보 등의 보도를 보면 한동훈 대표 가족 명의로 게시판에 올라간 것과 같은 내용의 글이 포털 뉴스 댓글에서도 발견됐다고 한다. 이 댓글들은 ‘좋아요’ 클릭 수도 높다고 한다. 같은 내용의 글들은 인터넷 커뮤니티에서도 발견됐다. 이른바 ‘여론조작’이 국민의힘 당원게시판 뿐만이 아니라 인터넷 전반에서 이뤄진 게 아닌가 하는 추정이 가능한 대목이다.
용산의 복심 중 하나로 간주되는 장예찬 전 국민의힘 최고위원은 한동훈 대표의 배우자인 진은정 변호사를 ‘몸통’으로 지목하고 있다. 장예찬 전 최고위원은 진은정 변호사가 한동훈 대표가 국정농단 특검에 몸 담았던 시절 인터넷 커뮤니티에서 신분을 감추고 꽃바구니 보내기 운동을 하다가 들통이 나 망신을 당했다고도 주장했다. ‘이 ID와 저 ID가 같다’는 주장인데, 여기에 이 논란이 커지는 진짜 이유가 숨어 있다.
용산의 공감대가 있는 게 거의 분명해보이는 친윤 인사들의 메시지는 분명해보인다. 눈에는 눈, 이에는 이! ‘김건희 리스크’ 문제를 제기하며 ‘차별화’를 시도한 한동훈 대표에게 ‘진은정 리스크’를 만들어 주겠다는 거다. 윤석열 대통령이 배우자 문제에 대해 단호하지 못하다는 비판을 받게 만들었으니, 어디 똑같이 한 번 당해보라는 식이다.
한심한 것은 이 뻔한 작전에 말려드는 한동훈 대표이다. ‘가족이 썼다, 쓰지 않았다’를 답하고 수사를 지켜보자고 하면 되는데 사실상 답을 안 해도 되는 이유를 만드는 데만 열중하고 있다. 문제가 되는 글을 전수조사해 ‘수위가 심각한 수준인 것은 12개 뿐’이라고 한다거나, ‘하루에 쓴 글도 평균 2개를 좀 넘는 수준’이라고 하는 게 그 예다.
이런 가운데 이 문제는 결국 최고위원회 자리에서의 공개적인 충돌로 귀결됐다. 계파 문제로 비화되는 모양새가 되니 그동안 말을 아끼던 한동훈 대표도 직접 나서지 않을 수 없게 됐다. 기자들 앞에서 당원 게시판 운용에 있어서 익명성을 지키는 것의 중요성을 역설한 한동훈 대표는 명태균 씨 관련 논란과 김대남 전 행정관 문제 등에 연루된 인사들이 문제를 키우고 있다며 역공에 나섰다.
물론 한동훈 대표의 발언은 사실관계를 따지자면 핀트가 맞지 않는다. 명태균 씨 관련 논란, 김대남 전 행정관 문제 등에 엮인 인물이 구체적으로 누구를 말하는 것인지 쉽게 이해되지는 않기 때문이다. 따라서 한동훈 대표의 발언은 용산을 겨냥한 것으로 해석됐다.
26일 검찰이 명태균 씨 관련 의혹 수사를 목적으로 국민의힘 당사 등을 압수수색했는데, 예상 외로 분위기가 협조적이었던 것을 두고 여러 말이 나오는 건 이 맥락 때문이다. 명태균 씨 관련 의혹으로부터 상대적으로 자유로운 한동훈 대표가 용산 압박을 목적으로 2022년 재보궐선거, 지방선거 공천 등에 대한 수사에 협조하는 것 아니냐는 전망이 나오기 시작한 것이다.
다음달 10일로 예정된 김건희 특검법 재의결 국면이 어떻게 될지 장담할 수 없다는 관측이 나오는 것도 비슷한 맥락이다. 한동훈 대표가 적극적으로 표 단속에 힘을 보태지 않으면 ‘8표 이탈’은 현실이 될 수 있다는 불안감이 증폭되고 있는 것이다.
이러한 불안감에 대한 친윤계의 반응은 다양한 방식으로 표출되고 있다. 대통령 비서실장 등 용산 관계자가 직접 의원들과의 식사 자리를 마련하는 등 스킨십 강화에 나서는가 하면, ‘백지 투표’ 방침과 같은 구체적인 원내 전략을 언급하는 것이다.
특히 ‘백지 투표’ 방침은 참신한(?) 아이디어라고 할만하다. 투표에 참여해 총투표 수는 채우되 기표소에 들어가지 않고 바로 투표함으로 직행하는 방식으로 이탈 여부를 현장에서 확인하겠다는 것이다. 그간 보수정당이 남을 향해 비난을 해온 방식을 그대로 돌려준다면, 이는 북한의 투표 방식이라는 비아냥을 들어도 할 말이 없을 지경이다.
뉴스를 여기까지 따라왔다면 정권 내에서의 ‘내전’이 얼마나 유치한 방식으로, 얼마나 치열하게 진행 중인지 새삼 확인할 수 있을 것이다. 더 이상 이재명 더불어민주당 대표 관련 이슈는 주요 관심사조차 되지 않는다. 그나마 이재명 대표를 간간히 언급하는 것은 한동훈 대표인데, 당 게시판 관련 의혹 제기 이후에는 이조차도 자기를 향한 공세를 방어하기 위해 ‘외부의 적’을 강조하며 단합을 호소하는 화법에 불과해 보인다. 핵심 지지 그룹의 관심사가 무엇인지를 알 수 있는 리트머스 시험지라고 할만한 ‘우파 유튜브’의 경우도 주요 소재는 다 이 문제다. 이재명 대표 관련 사안은 사실상 설 자리가 없다. 현대의 대의민주주의는 상대를 반대하는 논리로 자기 정당성을 확보하는게 기본 문법인데, 정권의 코어 지지층 내에선 ‘반대의 대상’이 이재명, 조국, 전 정권 등에서 ‘한동훈’으로 굳어진 모양새다.
보수언론이나 식자층은 한탄한다. 집권세력이 책임지고 풀어야 할 문제들이 만만찮기 때문이다. 당장 트럼프 시대를 어떻게 대비할 것인가? 쉽지 않다. 얼마 전 대통령은 양극화 해소와 중산층 강화를 말하며 적극적인 정부의 역할을 언급했는데, 일각에선 내년 초 추경 편성 가능성을 검토하고 있다는 얘기도 나왔다. 이건 어쩔 건가?
특히 이 대목은 명백하게 이상한 얘기로 받아들여질 수밖에 없는데, 정부는 이미 재정건전성을 지킨다는 기조로 ‘짠물예산’을 국회에 제출한 상태고 국회는 아직 예산을 심의하는 중이기 때문이다. 내년 예산이 통과되지도 않았는데 대통령이 지출의 기조를 바꾸자는 취지의 얘기를 하고 심지어 추경 편성 검토까지 말한다면 이는 최소한 국정이 즉흥적으로 변덕스럽게 이뤄진다는 점을 부인할 수 없게 만든다.
냉정하게 말하면 이는 리더의 캐릭터 때문에 빚어지는 리스크이다. 이럴 때 여당이 역할을 해야 한다. 말이 안 되는 얘기도 되게 만드는 완충 역할을 하면서 정책적 연착륙을 유도하는 거다. 그런데 이러한 역할은 당정관계가 정상적이면서 여당의 상황이 안정적일 때 가능하다. 지금처럼 당정이 모두 ‘내전’에 휩쓸려 가는 상황이면 약점은 약점대로 드러나고 정부는 정부대로 움직이지 않는 최악의 상황이 된다. 지금 그 광경이 펼쳐지고 있다. 그런데도 집권 세력은 이런 문제들은 다 내팽개치고 오로지 ‘내전’에 몰두한다.
이런 현상이 일어나는 근본적 이유는 뭘까? 얕게 보면 ‘검사 정치’에서 이유를 찾을 수도 있다. 현대 정치에서 ‘내전의 논리’가 각광받는 가장 큰 이유는 ‘내전의 논리’가 가장 쉽기 때문이다. ‘내전’을 구성하는 것은 뒷통수, 배신자, 색출, 복수, 응징과 같은 우리의 일상을 구성하는 키워드다. 어느 조직에나 있는 문제이며 이해가 쉽고 응용하기에 좋다.
검사들은 통치에 대한 비전을 갖고 있지 않고 정치 경험도 없다. 그러한 상태로 현실 정치에 곧바로 진입했다면 무엇을 해야 할지 잘 모르는 처지에 놓이기 십상이다. 그러나 동시에, 그들은 사회 지도층으로서 현실 정치와 그것을 이루는 인간과 사회 공동체의 제문제에 대하여 통달해 있다고 착각한다. 따라서 현실정치와 통치의 문제를 남에게 맡기지 않고 과감하게 스스로 키를 잡는데, 그 결과가 바로 누구나 접근하기 쉽고 어렵지 않은 ‘내전’으로 귀결되는 것은 어찌보면 전혀 이상한 일이 아니다. 일부만 이해하는 복잡한 지식이 필요한 통치 현안보다는 모두가 참여할 수 있고 즉각적 반응을 이끌어 낼 수 있는 ‘내전’이 여러모로 쓸모가 있다는 차원도 있다. 즉, 초보-통치자와 수사 전문가이자 엘리트로서의 검사 정체성, 그리고 선거에서의 당선이라는 정치적 정당성과 지위에서 비롯된 오만의 결합이 집권 세력의 오늘을 만든 것이다.
유사한 현상이 이른바 ‘팬덤 정치’에서도 목격된다. 여기서는 엘리트가 아니라 일반 대중이 주체로서 등장한다. 과거의 엘리트 정치에서 일반 대중은 수동적 주체에 불과했다. 그러나 현대 정치에서 대중은 정당의 주인이자 민주주의의 담지자로서 새롭게 태어났다. 세계 각국에서 벌어지는 일을 보면, 정당의 실제 형태와 관계 없이 대중은 정당의 구성과 결정 과정에 실질적으로 관여하고 개입한다.
물론 이 대중은 통치의 역량을 완벽하게 갖추지는 못한 상태다. 앞서 ‘검사 정치’에서 이 약점을 극복하게 해주는 게 엘리트로서의 정체성과 경험이라면, 여기서는 소비자주의와 결합한 정당민주주의 담론이 이 역할을 대신 한다. 한국적 현실에서 이는 간단한 도식이다. 손님은? 왕이다. 주권자는? 왕이다. 당원은? 왕이다.
이러한 도식은 ‘배신자’를 ‘색출’하고 ‘응징’하는데 있어 정당한 근거로 작용한다. 어느 정치인 혹은 세력이 다수 당원의 의사를 거스르는 정견을 밝히거나 그러한 맥락의 행위를 하는 경우 ‘당원이 왕인데 왜 왕의 명령을 거부하는가?’란 논리가 성립 가능해지는 거다. 이러한 논리는 세력을 막론하고 애용되고 있다. 가령 더불어민주당에는 ‘수박’ 색출 소동이 늘상 있다. 국민의힘의 경우 대통령의 전당대회를 통한 당 장악 시도라는 평가를 받을 당시 ‘당원 100%’ 투표를 도입하면서 유사한 핑계를 댔다.
이런 사고의 경로를 따라가면 결국 엘리트든 대중이든 통치에 관심이 없거나 준비되지 않은 상태로 통치에 참여하는 게 문제의 시작이라는 결론에 이르게 된다. 앞서 국민의힘 당원 게시판 사태를 둘러싼 논쟁에서 명목상 정치학 교수 출신인 김민전 최고위원이 정치학자 제이슨 브레넌의 <민주주의에 반대한다>를 끌고 와 자기 방어에 활용한 것은, 이런 의미에서 필연 같은 우연이면서 우연 같은 필연이라고 말할 수 있다.
<민주주의에 반대한다>는 앞서와 같은 이유로, 그러니까 무관심하거나 왜곡된 정치관을 가진 시민들의 참여로 민주적 제도가 훼손될 수 있다는 이유로 투표권의 차등적 적용까지 고려해봐야 한다고 주장한다. 현행의 민주주의를 통해 시민들의 관심을 환기한다거나 왜곡된 정치관을 교정하는 일은 여러 근거를 들어 볼 때 애초에 불가능 하다는 것이다.
이러한 극단적 주장은 현재의 엘리트주의와 공존하면서, 대중에 기반한 대의민주주의 체제를 전제한 상태에서는 당연한 논리적 귀결일 수도 있다. 이러한 주장의 근거를 반박하기가 쉬운 일은 아니라는 의미다. 애초에 반박하기가 어렵기 때문에 정치적 디스토피아가 지구적 규모로 우리 눈 앞에 펼쳐진 것 아니겠나.
그러나, 다시 말하지만 이는 ‘현재의 엘리트주의와 공존하면서, 대중에 기반한 대의민주주의 체제’를 전제할 때의 일이다. 이 체제를 벗어나는 것에 대한 대중적 갈증은, 분명 있다. 통치에 무관심하지 않고 생산적 정치관을 가진 유권자가 일상적으로 정치에 관여하는 체제는 무엇이며, 그것은 어떻게 만들어가야 하는가? 이에 답할 수 있는 인식의 총체성을 잃은 것이 비극의 가장 중대한 원인이다.
- 덧붙이는 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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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민하는 정치·사회 평론가, 칼럼니스트다. 민주노동당, 진보신당 등에서 일하며 한국의 진보정치가 현실적 대안으로 자리 잡는 데 조금이라도 보탬이 되고자 했으나 무엇이 잘못됐는지 기대만큼 잘되지 않았다. 지은 책으로는 ⟪저쪽이 싫어서 투표하는 민주주의⟫, ⟪냉소 사회⟫, ⟪레닌을 사랑한 오타쿠⟫ 등이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