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필자 주] 반올림은 반도체 노동자의 건강과 인권을 지키기 위해 활동하는 시민단체입니다. 반도체 직업병 피해자들의 산재를 신청하면서 기록의 필요성을 절감해 생애사 기록을 시작했습니다. 아픔과 고통뿐만 아니라 개인의 꿈과 행복에 대해 인터뷰했고, 재해경위서, 진술서가 아닌 삶을 담은 글을 적었습니다. 2026년 매월 한 명씩 총 12명의 삶을 전해드리겠습니다.
포토 설비를 바라보는 현재의 유하나 ⓒ박정원
2025년 12월 23일 병점역 인근에서 유하나를 만났다. 하나는 이틀 뒤인 크리스마스, 항암치료를 받기 위해 입원한다고 했다.
이번 연도에 마지막 (항암). 따져 보면 지금 거의 4년이니까 12번씩 한 45회? 40차 좀 넘은 것 같아요. 생명 연장이기는 하지만, ‘그냥 한 달에 한 번씩 영양제 맞으러 간다.’ 좋게 긍정적으로 생각하고, ‘또 삶을 부여받았구나’ 이렇게 생각해서. 받고 오면 막 기진맥진하는데 그러고 나서 또 갈 때 되면 ‘괜찮나. 또 전이된 건 아닐까’하는 걱정도 해요. 근데 항암하고 오면 ‘또 살았네.’
연예인 따라다니던 사서함 삐삐 시절
연예인을 엄청 좋아했어요. 저랑 친구들이랑. 그때 아마 신성우, 서태지와 아이들 때였을 걸요, 중학교 때가. 그리고 제 기억에는 뉴 키즈 온 더 블록이 내한 공연하고 김원준도 인기였고. 그리고 한창 틴틴파이브라는 개그맨들이 앨범 내던 그 세대예요. 신동엽, 최양락, 이봉원... 그분들이 청소년들 불러다가 주말에 대결시켜서 춤 잘 추면 뽑는 오디션 같은 걸 해가지고 저희가 맨날 카세트 테이프 들고 다니면서 춤추고 그랬던 기억이 있고. 제가 가요 톱텐, 인기가요 50이나 라디오에 관제엽서도 보내고, 음악 듣는 걸 되게 좋아했어요. 라디오 공개 방송 좋아하고. 중3 때 절정이었고, 고등학교 입학해서도 이어졌어요.
어떤 연예인이 공개홀에서 방송한다고 하면 그때는 전화사서함 메시지에 스케줄을 남겨놔요. 전화사서함, 삐삐 시절이라서 사서함에서 들은 스케줄 받아적고 따라다니는 거지. 그리고 그땐 잡지나 노래 가사집에 연예인들 집 주소가 적혀 있었어요. 그래서 집으로 편지나 인형 선물을 보냈고요. 그런데 어느 잡지 몇 월호에 김원준 오빠 이사한 집 사진이 실렸거든요? 침대 머리맡에 쌓인 인형 중 하나가 내가 보낸 인형인 거야. 그 잡지를 샀죠.
몇 월 며칠 TV 방송국 공개홀에서 티켓 배부한다고 하면, MBC는 경비실이 있어요. 거기서 쭉 줄을 서요. 그리고 KBS도 마찬가지로 거기에 티켓을 쌓아놔요. 그럼 이제 줄 서서 배급을 받고. 만약에 박수 부대가 동원된다고 하면 거기도 선착순으로 줄 서서 들어가. 그러면 앉아서 1시간 반 정도 박수를 쳐요. 그러면 봉투에 7천 원씩 넣어서 줘. 그 돈으로 햄버거를 사 먹는다든지 하고. 시간이 좀 어정쩡할 땐 MBC 식당 식권을 사서 밥 먹고요. 기자나 뭐 이런 사람들이 인터뷰한다고 기다리다가 교복 입은 우리에게 말을 걸기도 했어요. “무용단 있어, 너네도 해봐.” “우리는 그런 거 안 해요.” 괜히 튕기고 그랬던 기억도 있죠.
흘러 흘러 삼성으로
고등학교 입시도 내신 성적을 봐서 점수대로 진학했어요. 근데 인문계 갈 점수가 안 되는 거야, 공부를 너무 안 해가지고. 공부를 했으면 삼사십 등이라도 했겠는데 그 정도도 안 한 거죠. 노느라 바빠가지고 학원도 안 다녔거든요. 엄마한테 학원 보내달라고도 안 할 정도로 노는 게 너무 좋았어요.
고등학교 때 2학년 때까지 그렇게 생활했고, 고3 때는 취업 면접을 봐야 하는데 그동안 공부한 게 없으니 이제 공부를 시작해요. 쬐끔 하기 시작하는데 운이 좋게 방배동에 있는 무슨 무역회사에 취직을 했어요. 거기서 3개월 수습만 하고 다시 학교에 복귀해서 그대로 졸업했죠. 졸업하면서 친구 한 명이, '제도 샤프'라고 하나? 그때 '마이크로'라고 만년필 되게 유명한 문구 회사가 있었거든요. 거기에서 1년 3개월인가 일했는데 퇴직금 없이 잘렸어요. 부도 나가지고.
삼성에 들어간 계기가 IMF였어요. 97년도가 IMF 터진 그때인데 사원 추천이라는 게 있어요. 그 회사를 다니는 사람이 채용할 사람을 추천하는 거예요. 지인의 딸이라든지 아니면 친척 동생이라든지... 이력서 추천인 란에 재직자 이름을 적어요. 어떤 부서의 인사과장 누구 이름을 적었는데 난 모르지. 왜냐하면 친구 따라 강남 간 거니까. 이력서조차 쓸 수 없을 정도의 성적이었지만, 추천인 이름을 받아서 운이 좋게 사원 추천 제도에 뽑힌 거예요. 그리고 IMF 때라서 많이 뽑았어. 2주에 200명씩 막 뽑았어요. 99년도까지 계속 뽑았던 것 같아.
문제의 신입사원: 난 좋지 일 안하니까
21살에 입사했는데 처음엔 되게 생소했죠. 영어도 겁나 많아. 시작부부터 로딩, 언로딩 적을 때도 영어 철자로 써야 해요. 그러니 배우는 것도 회사도 재미가 없는 거야. 그리고 낮엔 매일 놀러 다녔으니 야간 근무 때 얼마나 졸렸겠어요? 늘 조는 거야, 애가. 선배 언니들이 “쟤 뭐야? 전라도 애들만 많은 데서 쟤는 서울 애라더니, 뭔데 일도 안 하고 맨날 졸아?” 문제아였던 거야. 선배 언니들이 볼 때 용납이 안 되는 거죠. 일을 해야 하는데 애가 졸고 있으니. 앉아서 공부하라고 하면 자고, 일 시키면 실수하고요. 말도 안 되게 실수를 많이 하니까 맨날 혼나는 거야. 당시엔 복도에 세워 두고 그랬어요. 매일 듣는 말이 “너 오늘 하루 종일 일하지 마.” 난 좋지, 일 안 하니까. 욕은 욕대로 먹지만.
그러다가 이제 딴 데로 유배를 당했어요. 근데 거기서 만난 언니가 너무 유한 거야. 그 언니는 책상 앞에서 아주 느긋했고 마음의 여유가 있었어요. 책자를 보면서 뭔가 하더라고요. “언니 뭐해요?” 물었더니 수화를 배운다는 거야. “수화를 왜 배워요?” “그냥... 그냥, 그냥.”
언니가 “하나야, 나랑 같이 놀러 갈래?” 묻길래 “어디로요?” 했더니 정동진을 가고 싶대. 그때 정동진 배경의 무슨 드라마가 있었던 것 같아요. 둘이 갔어. 전철 타고, 새벽에 눈 맞으면서. 그 기억이 아직도 나네요. 거기서 유배 생활을 몇 년 했죠. 세정 설비 있는 데서, 또 포토 설비에서 몇 년. 거기서부터 한 1, 2년 방황했죠. 근데 거기서 내가 일을 너무 잘하는 거야. 이 언니가 너무 느긋하니까 안 할 수가 없었어요. 막 튀어나오면 내가 다 담아. 땀 삐질삐질 흘리면서.
그때 각성하면서 정신을 차렸을 땐 일 욕심이 커져 있었어요. 책임감도 생겼고요. 어쨌든 실적이 우선이니까 인사고과 성적도 잘 나왔어요. 6개월에 한 번, 상반기와 하반기에 고과 평가를 하는데 동료들의 시기를 받기 시작했어요. 망나니였던 신입사원 때 말고는 A나 B를 늘 받았으니까요. 승격하는 해에는 한 번도 누락 없이 따박따박 승격했고. 그래서 쭉 과장까지 단 케이스죠.
유하나와 동료 사원들
준비 없는 퇴직, 그리고 6년 뒤 진단
아무것도 준비가 안 된 상태에서 그냥 그만뒀어요. 그땐 회사에서 직원들에게 퇴직을 권하던 시기였는데 현타가 오더라고요. 관리자로서 퇴직 상담을 맡아 했거든요. 내가 뭐라고 퇴사하라고 하나, 나도 아픈 아이 키우면서 회사 다니는 처지인데 다른 사람을 퇴직시키는 건 아닌 것 같다, 나도 그만둬야겠다고 생각했죠. 그 생각이 들자마자 진짜 딱 그만뒀어요.
저는 기숙사나 집에서 청소라는 걸 한 번도 해 본 적이 없더라고요. 설거지도요. 회사, 집, 회사, 집, 그것뿐이었으니까. 결혼해서도 육아는 친정 엄마가 했고. 퇴사하고 막상 집안일을 하다 보니 전문적으로 배우고 싶더라고요. 그래서 한식, 양식을 배우게 됐고 정리정돈이나 청소법도 배웠는데 그러다 지친 거에요.
계속 허리가 아프고 변비도 생기고 했지만 대수롭지 않게 생각했죠. 주변 사람들이 “언니 아프면 병원 가”라고는 하는데, 어느 과에 가서 무슨 치료를 받아야 할지도 몰랐고. 내과, 정형외과, 산부인과 다 갔어요. 응급실도 가봤고 건강검진도 했는데 아무데서도 이상을 발견하지 못했어요.
근데 그 해에 ‘자궁경부암 6개월 됐으니까 진료를 받으세요’라는 문자를 받았고, 산부인과에 갔는데 난소에 6개월 전에 없던 혹이 생긴 거야. 야구공만한 크기의. 딱 요맘때네요. 방학이 1월 3일이니까 바로 수술 날짜를 잡았어요. 수술하고 보니 상황이 좀 안 좋았나봐요. 조직 검사를 했는데 난소의 혹은 원발암이 아니라 이미 다른 쪽에서 전이된 암 조직이었어요. 대장에서 난소로.
항암치료에 들어가서 12번 항암을 끝내고, 3개월 차에 다시 검진했는데 항암을 계속 해야 할 것 같다네요. 표적 항암으로 바꿔서 지금까지 하고 있어요. 방학 때마다 한 달은 쉬고요.
유하나의 성격을 관통하는 키워드는 명랑함이었다. 공부는 뒤로하고 심장의 소리를 따라 ‘덕질’을 하던 때부터 회사에 들어가 선배 언니들에게 혼나도 그다지 주눅들지 않으며 ‘뭐 어때’라고 넘기던 순간들. 퇴사와 홀로서기 역시 무겁거나 슬프지 않게, 명쾌하게 결정하고, 심지어 암 진단을 받았을 때도 초긍정의 마인드로 할 일을 찾았던 유하나는 누구보다 재미있고 유쾌한 사람이다. 그리고 할 이야기가 많은 사람이다.
[2편에서 이어집니다.]
- 덧붙이는 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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임다윤은 반도체 노동자의 건강과 인권지킴이 반올림에서 활동하고 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