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클라호마주 털사대학교가 새로운 이단적 경제학 센터(Center for Heterodox Economics, CHE)를 설립했다. 클라라 마테이(Clara Mattei)가 센터장으로 이끄는 이 센터는 “경제적 정의와 더욱 인간적인 사회를 이루기 위한 중심지가 되는 것을 목표로 한다”고 발표했다. 센터의 사명문에는 다음과 같이 명시되어 있다. “CHE는 경험을 통해 얻은 전문성과 학문적 엄격함에서 비롯된 전문성을 유기적으로 결합하는 것을 지향한다. 주류 경제학의 지배적 서사를 반박하고, 이를 대신할 강력한 이론적 도구를 제공함으로써 상식을 강화하고 날카롭게 만드는 것을 목표로 한다. 또한, 이단적 경제학의 폭넓은 전통 속에서 젊은 학자들을 양성하고, 이들이 실생활의 문제에서 배우며 주변 세계와 적극적으로 소통하도록 독려하고자 한다.”
새로운 센터의 출범을 기념하기 위해 CHE는 지난 주말 털사에서 개막 콘퍼런스를 개최했다. 콘퍼런스의 주제는 "자본주의에 무슨 일이 벌어지고 있는가?"였다. 이 행사에는 잘 알려진 급진적 경제학자들이 다수 참여했다. 세션들은 온라인으로 생중계되었고, 이를 통해 일부 토론을 직접 시청할 수 있었다. 그러나 모든 세션을 다 보지는 못했고, 여러 연사의 발표를 놓쳤기 때문에 일부 발표에만 집중하고자 한다.
첫 번째 세션은 보지 못했지만, 연사 중 한 명이 제임스 갤브레이스(James Galbraith)라는 점을 확인했다. 그는 20세기 미국의 가장 중요한 좌파 경제학자 중 한 명이었던 J.K. 갤브레이스(JK Galbraith)의 아들이며, 주류 경제학을 지배하는 신고전파 일반균형 이론에 대한 강한 비판자로 잘 알려져 있다.
제임스 갤브레이스는 징 천(Jing Chen)과 함께 《엔트로피 경제학》(Entropy Economics)이라는 신간을 출간했다. 이 책은 신고전파 일반균형 경제학을 물리학과 생물학의 법칙을 기반으로 비판한다. 갤브레이스는 한 인터뷰에서 다음과 같이 설명했다. “이것은 복잡한 개념이 아니지만, 세상이 공급과 수요라는 거대한 힘 사이에서 균형을 이루려 한다는 주류 경제학의 관점과는 근본적으로 대립한다.” 대신, 그는 자본주의가 엔트로피, 즉 무질서와 불확실성이 가득한 상태에 놓여 있다고 주장한다.
책의 소개문에서는 “갤브레이스와 천의 가치 이론은 희소성에 기반을 두고 있으며, 독점의 힘을 설명한다”고 서술하고 있다. 이는 갤브레이스가 모든 가치가 인간 노동력에서 비롯된다고 보는 마르크스의 가치 이론을 지지하지 않는다는 것을 의미한다. 마르크스는 자본이 생산 수단을 소유함으로써 노동 착취를 통해 잉여가치를 착취한다고 주장한다. 반면, 갤브레이스는 자본주의의 ‘엔트로피’를 설명하는 요소로 불완전 경쟁, 독점, 그리고 시장에서의 공급과 수요 불균형을 강조한다. 이는 자본주의를 분석하는 마르크스주의 경제학과 ‘이단적 경제학(heterodox economics)’의 차이점을 잘 보여준다. CHE는 이 두 접근법을 모두 강의에서 다루고 있다.
마르크스 경제학을 다룬 세션에서는 매사추세츠대학교 애머스트 캠퍼스의 경제학 교수인 디판카르 바수(Deepankar Basu)가 발표를 진행했다. 그의 발표 내용은 예상 밖이었다. 바수와 그의 동료들은 자본의 수익성 측정에 관한 중요한 연구를 수행해 왔다. 특히, 여러 국가와 전 세계의 이윤율을 측정할 수 있는 훌륭한 인터랙티브 데이터베이스를 구축했다.
마르크스의 이윤율 저하 법칙은 자본의 유기적 구성(즉 자본 스톡 C를 노동력 가치 v로 나눈 값)이 상승하면, 잉여가치율(즉 이윤 s를 임금 v로 나눈 값)이 일정하거나 증가 폭이 낮을 경우 이윤율이 하락한다고 설명한다. 공식으로 보면 다음과 같다.
만약 C/v 값이 상승하고, s/v 값이 일정하거나 C/v 보다 적게 증가한다면, 이윤율은 반드시 하락하게 된다. 그러나 바수 교수는 발표에서 1960년대 일본의 마르크스주의 경제학자 오키시오 노부오가 제시한 가설을 지지하는 듯했다. 오키시오는 마르크스가 틀렸다고 주장하며, 어떤 자본가도 이윤율을 증가시키지 않는 새로운 기계(C)에 투자하지 않을 것이라고 논증했다. 따라서 이윤율이 하락하는 유일한 이유는 임금 상승이 이윤을 압박할 때뿐이라고 보았다.
오키시오의 가설은 이후 많은 마르크스주의 경제학자들에 의해 반박되었으며, 오키시오 자신도 나중에는 이를 철회했다. 여기서 오키시오에 대한 반론을 다루지는 않겠지만, 흥미로운 점은 바수 교수가 오키시오의 주장을 경험적으로 입증하려 했다는 것이다. 그는 대학원생의 도움을 받아 자본가들이 노동 생산성을 높이는 신기술에 투자할 경우, 이윤율은 임금 몫(wage share) 또는 총임금 지출(wage bill)이 증가할 때만 하락한다는 증거를 제시했다. 반대로, 임금 몫이 감소하면 이윤율은 상승한다고 주장했다.
만약 바수 교수의 주장이 사실이라면, 이는 마르크스의 일반적 축적 법칙, 즉 자본의 유기적 구성이 시간이 지남에 따라 증가하면서 이윤율이 하락하는 경향을 보인다는 주장을 무효화하는 것이 된다. 대신, 이윤율 하락의 원인은 생산 과정에서 이윤과 임금의 몫이 어떻게 변화하는가에 달려 있다고 보아야 한다. 이러한 관점은 본래 19세기 초반 데이비드 리카도의 이윤율 하락 이론에서 비롯되었으며, 리카도는 이윤율 하락의 원인을 임금 상승에서 찾았다. 이러한 맥락에서 현대 경제학에서 이윤 몫(profit share) 이론은 신(新)리카도 학파(neo-Ricardian) 이론으로 불리기도 한다.
나는 바수 교수팀이 사용한 데이터를 직접 확인하지는 못했지만, 그의 결론은 다소 의아하게 느껴진다. 바수 교수의 이윤율 데이터베이스를 확인하고, 그가 사용한 것으로 보이는 미국 기업 부문의 이윤율 데이터를 분석했다. 이를 통해 미국 기업 부문에서 부가가치 내 이윤 몫의 변화와 이윤율 간의 높은 상관관계(+0.63)를 확인했으며, 이는 바수 교수의 결론을 뒷받침한다. 그러나 동시에 자본 스톡(capital stock) 투자 변화와 이윤 간의 상관관계가 더욱 높게 나타났다(+0.83). 이는 마르크스의 축적 법칙이 여전히 이윤율과 밀접한 관련이 있으며, 이윤/임금 몫 변화보다 더 중요한 요인일 가능성이 크다는 것을 시사한다. 실제로, 나는 바수 교수의 데이터를 마르크스주의적 범주로 변환하여 분석한 결과, 자본의 유기적 구성 변화는 이윤율과 음의 상관관계(-0.53)를 보였으며, 잉여가치율 변화는 이윤율과 양의 상관관계(+0.62)를 나타냈다. 이는 내가 여러 논문에서 수년간 입증해 온 바와 일치한다.
또한, 바수 교수는 2008-2009년 금융위기가 이윤율 하락과는 무관하며, 적어도 간접적인 원인조차 될 수 없다고 주장했다. 왜냐하면 2008년까지 이윤율이 상승하고 있었기 때문이라는 것이다. 그러나 이는 사실이 아니다. 바수 교수의 데이터에 따르면, 미국 기업 부문의 이윤율은 2006년 17.5%에서 2008년 13.5%로 하락했다. 2001년부터 2006년까지 이윤율이 상승한 것은 맞지만, 그 수준은 여전히 1997년 신자유주의 시기의 전환점이었던 1997년의 이윤율보다 높지 않았다.
미국 연방준비제도(Fed)의 분기별 데이터를 사용하면, 비금융 기업 부문의 이윤율(ROP)은 2001년 4분기 11.1%에서 2006년 1분기 12.7%까지 상승했지만, 2008년 초 금융위기와 경기침체가 시작되기 직전 10.5%까지 하락했다(추가 데이터 요청 가능). 또한, 2006년 12.7%의 이윤율은 1997년 3분기의 전환점이었던 14.6%보다 여전히 낮았다. 따라서 2008년 금융위기와 경기침체는 마르크스의 이윤율 저하 법칙과 여전히 깊은 관련이 있다고 볼 수 있다.
바수 교수의 논지와 결론을 내가 잘못 전달했을 수도 있다. 그의 논문을 직접 보지 못했기 때문이다. 하지만 마르크스의 정치경제학을 다루는 세션에서, 마르크스의 이윤율 저하 법칙을 연구해 온 주요 학자가 이를 부정하고 신(新)리카도주의적 관점으로 회귀한 것처럼 보였기 때문에 이 문제를 길게 다루었다.
마르크스 정치경제학 세션의 나머지 부분에서는 뉴 스쿨의 경제학 조교수인 니콜라스 차차라키스(Nicolas Chatzarakis)가 흥미로운 발표를 했다. 그는 『자본론』 제2권의 재생산 도식이 상업 자본과 금융 자본의 흐름을 포함할 수 있으며, 따라서 21세기에도 여전히 유효한 개념이 될 수 있음을 보여주었다.
이 세션에서 피에로 스라파의 연구는 마르크스의 연구와 동등한 비중으로 다루어졌다. 이는 이단적 경제학이 다양한 대안을 포괄하는 학문임을 보여준다. 이단적 경제학은 주류 신고전파 일반균형 이론에 대한 여러 가지 대안을 모색하며, 스라파 역시 마셜주의 한계주의(Marshallian marginalism)를 신랄하게 비판한 학자였다. 그는 자본주의 생산에서 균형(equilibrium)이라는 것은 존재하지 않으며, 대신 상품 소유자들에게 잉여(surplus)가 창출된다고 주장했다.
그러나 스라파는 마르크스의 가치 이론을 받아들이지 않았다. 그의 대표작 『상품에 의한 상품 생산』(Production of Commodities by Means of Commodities)은 그의 관점을 명확히 보여준다. 즉, 상품이 노동을 거치지 않고도 더 많은 상품(및 잉여)을 생산할 수 있다고 보았다. 그의 이론은 현실이 아니라 하나의 수학적 모델로 기능한다. 게다가 스라파의 모델에서는 임금이 노동자들이 소비하는 하나의 상품으로 표현되며, 이는 더 많은 상품을 생산할 때 발생하는 잉여(이윤)의 크기를 결정하는 독립 변수가 된다. 즉, 생산 수단에 대한 투자와 그것이 이윤율과 맺는 관계는 무의미해진다. 이는 앞서 언급한 신(新)리카도주의 논점과 연결된다.
그러나 이 세션에서 많은 연구자들은 스라파를 마르크스와 결합하려 했다. 일부는 스라파가 후반기 연구에서 노동가치론에 접근하고 있었다고 주장했다. 그는 실제로 폰 보르트키에비치(Von Bortkiewicz)가 제기한 마르크스의 가치에서 가격으로의 전환 문제에 대한 신(新)리카도주의적 비판을 반박한 바 있다. 또한, 제임스 갤브레이스에 따르면 스라파는 열렬한 공산주의자였으며, 제2차 세계대전이 끝날 무렵 미국에서 이탈리아로 돌아가 공산주의 정부 수립에 참여하려 했다고 한다.
그러나 그가 공산주의자였다고 해서 마르크스주의자였던 것은 아니다. 최소한 정치경제학적으로는 마르크스주의자가 아니었다. 나에게 있어 마르크스 경제학의 핵심은 노동가치론과 잉여가치 이론이지, 희소성이나 물리적 상품에 기반한 가치 이론이 아니다.
CHE에서는 마르크스의 정치경제학이 고전파 정치경제학 또는 스라파의 이론과 조화될 수 있다고 주장하는 이들도 있었다. 하지만 나는 그렇게 생각하지 않는다. 마르크스는 고전파 정치경제학을 강하게 비판했으며, 『자본론』의 부제도 “정치경제학 비판”이다.
마르크스는 애덤 스미스와 데이비드 리카도가 노동을 가치의 원천으로 보고 노동 시간으로 가격을 측정하려 했지만, 자본주의적 생산 방식의 본질을 제대로 이해하지 못했다고 보았다. 즉, 자본주의의 핵심은 노동 착취를 통한 잉여가치의 획득이며, 자본은 단순한 생산 요소가 아니라 사회적 관계라는 점을 간과했다. 자본주의에서 소수만이 생산 수단을 소유하고 대다수는 오직 자기 노동력만을 판매할 수 있는 구조가 형성되며, 이는 단순한 시장 교환이 아니라 계급 착취의 문제라는 것이다.
경제사 세션은 매우 활발한 논의가 이루어졌다. 휴스턴대학교의 역사 및 경영학 교수인 데이비드 맥낼리는 자신의 최신 저서를 바탕으로 자본주의가 점진적이고 평화로운 방식으로 봉건제를 대체한 것이 아니라, 전쟁과 패배한 자들에 대한 잔혹한 착취, 그리고 수백만 명을 노예화하는 과정에서 등장했다는 점을 강조했다.
그는 주류 경제학이 애덤 스미스의 『국부론』을 기반으로 자본주의를 상업 교환을 통한 자연스러운 발전의 결과로 묘사하는 것과 달리, 실제로는 폭력과 억압이 핵심이었다고 주장했다.
뉴욕주립대학교 코틀랜드 캠퍼스의 경제학 조교수이자 『미국 금융의 추락과 재건』(Fall and Rise of American Finance) 공동 저자인 스티븐 마허는 금융과 금융화(financialisation)가 자본주의의 활력을 저해한다는 일반적인 견해에 반대했다.
반대로, 마허 교수는 금융이 자본주의에 해로운 것이 아니라 오히려 유익하다고 주장했다. 그는 금융과 산업은 항상 밀접하게 연결되어 왔으며, 산업 부문에는 진보적인 자본가가 존재하는 반면 금융 부문은 노동의 유일한 적이라는 생각은 잘못되었다고 보았다. 노동의 적은 금융이 아니라 자본주의 자체이며, ‘진보적 자본주의’에 기반한 개혁주의적 선택지는 존재하지 않는다고 강조했다.
나에게 이것은 야니스 바루파키스와 마이클 허드슨이 주장하는 ‘봉건적 자본주의(feudal capitalism)’ 개념을 지지하는 현재의 이단적 경제학(Heterodox Economics) 관점에 대한 강력한 반론으로 보였다.
샘 살로르(Sam Salor, 정확한 이름인지는 모르겠다)는 마르크스주의 경제사학의 거장인 로버트 브레너를 대신해 발표를 진행했다. 그는 경험적 연구가 세부적인 데이터에 매몰되어 전체적인 흐름을 놓칠 수 있으며, 이론이 반드시 역할을 해야 한다는 점을 강조했다.
브레너는 자본주의를 계급투쟁이 아니라 사회적 관계로 정의해야 한다고 주장해 왔다. 즉, 자본주의의 본질은 생산수단의 소유와 노동 착취에 있으며, 계급투쟁 자체는 항상 존재해 왔지만, 마르크스가 고전파 정치경제학을 비판하며 보여준 것은 자본주의의 ‘가치’ 형식이었다는 것이다.
엘렌 우드도 주장했듯이, 시장과 화폐는 자본주의 이전에도 존재했지만, 자본주의에서는 시장과 화폐가 가치 생산을 위한 필수 조건이 된다.
내가 참석한 또 다른 세션은 확률적 정치경제학(Probabilistic Political Economy)을 다루는 발표였다. 이는 자본주의의 본질을 분석하는 데 통계적 기법을 적용하는 접근 방식이다. 발표자들은 주류 경제학의 계량경제학(econometrics)이 실패했음을 강조하며, 대안으로 베이지안 분석(Bayesian analysis)을 사용할 것을 제안했다.
털사대학교의 경제학 조교수 브루노 테오도시오와 유타대학교의 경제학 부교수 엘리스 샤르펜에이커는 미국 기업들의 방대한 데이터베이스를 활용해 자본주의적 경쟁에 대한 ‘확률적’ 모델을 제시했다.
이 연구에서 나온 중요한 결론은 두 가지였다. 첫째, 경쟁적 자본주의는 여전히 작동하고 있으며, 자본주의가 ‘독점자본’으로 완전히 변화하여 잉여가치 몫을 둘러싼 경쟁이 사라졌다는 주장은 맞지 않는다는 점이다. 둘째, 자본 간 경쟁은 여전히 평균 이윤율의 하락을 초래한다는 것이다.
내가 덧붙이고 싶은 점은, 자본주의 세계를 단순한 무작위적 혼돈으로 가정할 필요가 없다는 것이다. 마르크스의 축적과 이윤율에 관한 근본 법칙은 자본이 더 높은 이윤율을 찾아 산업 간 이동을 반복하는 과정을 설명할 수 있다. 단일한 이윤율이라는 것은 존재하지 않지만, 자본가들이 새로운 산업에 투자하거나 투자하지 않는 과정에서 끊임없이 변동하는(하지만 측정할 수 있는) 평균 이윤율이 존재한다.
이러한 논점은 1983년 출간된 『혼돈의 법칙』(Laws of Chaos)에서 엠마누엘 파르존과 모셰 마초버가 주장한 바와 관련된다. 그들은 마르크스가 개별 자본의 잉여가치율을 평균 이윤율로 변환해 가격을 결정하는 과정(이른바 ‘전환 문제’)이 불확정적이라고 주장했다. 이에 대해 구굴리엘모 카르케디와 나는 이 문제를 논의한 바 있다.
마지막으로, 두 명의 비(非)학계 인사가 발표를 진행하며, 이러한 논의들이 결국 자본주의를 이해하고 이를 대체할 실천적 프로그램을 마련하는 데 목적이 있음을 상기시켰다.
아이슬란드 VR 노조의 대표 할라 군나르스도티르는 노동조합이 ‘긴축 외에는 대안이 없다’는 기업 측의 논리를 어떻게 반박할 수 있는지에 대한 해답을 찾고자 했다.
또한, ‘애국적 백만장자들’의 일원인 밥 로드는 미국과 전 세계에서 소득 및 부의 극심한 불평등을 해소하기 위한 정책을 촉구했다.
CHE 콘퍼런스 직후, 영국에서 진행한 세계 경제 관련 줌 세션에서 한 참가자가 이렇게 말했다. 그는 잉글랜드 북부에 거주하는데, 그곳에서는 사람들이 저임금 일자리를 전전하며 장시간 노동과 열악한 근무 환경 속에서 생계를 유지하려 애쓰고 있으며, 공공 서비스는 붕괴하고 젊은이들은 미래에 대한 희망을 잃고 있다고 했다. 그러면서 학자들이 가치, 이윤율, 확률 등에 대해 길게 논의하는 것이 이런 현실과 어떤 관련이 있는지를 물었다.
마르크스는 유명한 말을 남겼다. “철학자들은 세상을 단지 다양한 방식으로 해석해 왔다. 그러나 중요한 것은 그것을 변화시키는 것이다.” 이 말은 마르크스의 묘비에도 새겨져 있다. 하지만 CHE의 한 참가자는 이렇게 덧붙였다. "우리는 자본주의가 어떻게 작동하는지(혹은 왜 작동하지 않는지) 해석하지 않고서는 그것을 변화시키거나 대체할 수 없다."
엥겔스 역시 “1온스의 실천이 1톤의 이론보다 가치 있다”고 말했지만, 그 1톤의 이론이 1온스의 실천에 도움이 되는 한, 여전히 필요하다.
미국 오클라호마주 털사대학교에서 ‘이단적 경제학 센터(CHE)’가 설립된 것은 바로 이러한 목표를 실현하기 위한 중요한 진전이다.
[출처] What’s up with capitalism? – Michael Roberts Blog
[번역] 하주영
- 덧붙이는 말
-
마이클 로버츠(Michael Roberts)는 런던 시에서 40년 넘게 마르크스 경제학자로 일하며, 세계 자본주의를 면밀히 관찰해 왔다. 참세상은 이 글을 공동 게재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