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AGA(Make America Great Again, 미국을 다시 위대하게)는 온통 헛소리로 가득 차 있다. 만약 이를 아직 모르고 있다면, 당신은 주의를 기울이지 않은 것이다. 그들은 우왕좌왕하며 민족주의적 포퓰리즘 전략을 가리키는 멍청한 말과 행동을 한다. 하지만 그들의 발언 대부분은 정책인 척하는 난잡한 말의 조합에 불과하다. 이것이 2025 프로젝트 관계자들이 위험하지 않다는 것을 의미하는 것은 아니다. 그들은 위험하다. 일론 머스크도 마찬가지로 위험하다. 하지만 정치적 수장들은 다른 게임을 하고 있으며, 그 게임은 주로 우익, 민족주의, 인종차별적 분위기에 관한 것이다.
지난주 유럽은 뮌헨 안보회의(Munich Security Conference)에서 MAGA의 기운을 직접 경험했다. 이 회의는 대서양주의 안보 정책 엘리트들이 매년 모이는 자리다. 부통령 J.D. 밴스의 연설이 심각한 충격을 주었다는 사실은 유럽 정치계가, 특히 독일의 정치계가 얼마나 의도적으로 눈을 감고 있었는지를 보여주는 신호다.
<파이낸셜 타임스>에 따르면, 뮌헨에서 한 유럽 관리는 미국에 대해 이렇게 말했다.
“그들은 적이 아니다. 하지만 오늘 우리가 들은 것을 고려할 때, 우리는 미국을 외국으로 간주해야 한다.”
… 흠 … 맞다! … 최근에 미국에 가본 적이 있는가?
J.D. 밴스는 그의 상사보다 더 논리적이며 더 매력적이다. 하지만 그의 사고방식과 연설에서도 세계의 실제 문제들과 그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표면적으로 제시되는 정책들—관세, 달러 가치, 정부 관료제 축소, 대규모 강제추방 및 추가 관세—간의 관계는 애매하다. 핵심은 실제로 정책을 목적에 맞추는 것이 아니라, 기본적인 정치적 기능을 수행하는 것이다. 즉, 선을 긋고, 적대를 유발하고, 누가 친구이며 누가 적인지 규정하는 것이다.
밴스는 멍청하지 않으며, 그의 연설문 작성자들도 마찬가지다. 그래서 그들은 뮌헨 회의를 뒤흔들기 위해 영리한 논객의 자세를 취했다. 안보에 관해 이야기하지 마라. 실제 위협에 해 이야기하지 마라. “우리가 무엇을 방어하는가”에 대해 이야기하고, 대서양 동맹이 숭배하는 “민주주의”라는 개념을 들이밀어라. 그리고 MAGA식 쐐기를 한두 개 박아 넣고, 도화선을 붙인 뒤 뒤로 물러나 불꽃놀이를 구경하라. 약간의 국제관계(IR) 지식을 갖춘 영리한 로스쿨 팀이라면 누구나 선택할 법한 접근 방식이다. 그리고 이것만으로 뮌헨 회의를 뒤흔들고, 푸틴이 2007년에 했던 훨씬 무게 있는 연설과 비교될 정도가 되었다는 사실은 지금의 시대상을 보여준다.
사실, 트럼프 행정부의 가치관과 정치적 이해는 중도 성향의 유럽인들과 극도로 다르다. 독일에서 밴스에 해당하는 정당인 독일을 위한 대안당(AfD)은 뮌헨 안보회의 같은 행사에서 배제되며, 독일 의회는 그들을 막기 위한 방화벽을 구축해 왔다. 밴스는 유럽 정치 문화를 경멸하는 선동가일 뿐이다. 그가 최근 일론 머스크의 지지를 받은 AfD의 앨리스 바이델(Alice Weidel)과 만났다 점은 놀랍지 않다. 반면, 그는 독일 총리 올라프 숄츠(Olaf Scholz)와 밋밋하고 무의미한 대화를 피했다. 숄츠는 이미 레임덕 상태이며, 2월 23일 선거에서 먼 3위로 밀려날 가능성이 크다.
밴스는 “내부의 적“이라는 표현을 사용했다. 그의 공격 대상은 자유주의자들이었지만, 그가 진정으로 말하고자 한 바는 유럽 주류 여론의 관점에서 보면, 그와 트럼프 행정부야말로 바로 그 ‘적’이라는 것이다. 그럼에도 그들은 미국 헌법상 민주적으로 정당성을 가진 존재다. 그들은 민주적 위임을 받았다. 단순다수대표제(first-past-the-post system)는 독일 정치인이 아데나워(Konrad Adenauer, 독일 정치에서 강력한 대중적 지지를 받았던 마지막 지도자) 전성기 이후로 누리지 못한 명확한 정당성을 부여한다.
게다가, 뮌헨 안보회의에 참석한 모든 이들이 뼈저리게 인식하고 있듯이, 이 “외국”인 미국은 여전히 유럽의 안보 제공자다. 지난 10년간 수많은 경고 신호가 있었음에도, 유럽은 독립을 위한 실질적인 조치를 거의 취하지 않았다.
그 결과는 딜레마였고, 밴스는 이를 기꺼이 이용했다.
뮌헨 안보회의에 참석한 유럽 엘리트들은 자신들이 구축한 방화벽을 유지할 수 있다. 그들은 독일이 "방어적 민주주의(wehrhafte Demokratie)"라고 부르는 개념—지배적인 정치 세력이 민주주의의 적이라고 규정하는 요소를 배제하고 억압하는 것을 두려워하지 않는 민주주의—을 고수할 수 있다. 하지만 그렇게 한다면, 트럼프 행정부와의 차이를 인정하고 감당해야 할 것이다. 이는 서방 동맹에 엄청난 부담을 줄 것이다.
만약 밴스가 전통적인 국제 관계에서 국내 정치와 국제 정치를 구분하는 경계를 존중할 의향이 있었다면, 이러한 긴장은 이토록 폭발적이지 않았을 것이다. 하지만 그는 굳이 민주주의를 언급해야 했을까? 영국의 반낙태 운동가들, 루마니아 선거, AfD를 주변부로 밀어내려는 움직임을 이야기해야 했을까? 이러한 주제들은 국제 관계와 외교의 영역에 속하지 않는다고 주장할 수도 있다.
그러나 밴스의 목표는 도발이었으며, 국내 정치와 국제 정치의 경계를 모호하게 만드는 것은 유럽과 미국 모두가 기꺼이 감수해 온 일이었다. 바이든 행정부의 핵심 대서양주의자들만큼 이를 적극적으로 활용한 세력도 없었다. "민주주의 정상회의"와 그 기묘한 초청 명단을 떠올려 보라. 나토는 이러한 가치 기반 동맹의 전형적인 모델이다. 나토는 항상 민주적 가치에 대한 깊은 합의를 기반으로 설립되었다고 주장해 왔다. 따라서 민주주의와 표현의 자유에 대한 논의를 단순히 배제할 수는 없다.
만약 밴스가 정치적 차이를 무시하고 단순히 군사비 지출 같은 현실적인 문제에 집중했다면 상황은 훨씬 단순했을 것이다. 그러나 그의 뮌헨 연설에서 가장 미묘하면서도 강렬한 부분 중 하나는, 그가 국방비 지출 문제를 가볍게 치워버린 점이었다.
대신, 그는 정곡을 찔렀다. 밴스가 사실상 선언한 것은, 그가 대표하는 미국의 우익 세력은 유럽이 우파 민족주의적, 보수적 의견을 검열하고 배제한다면 유럽의 방위를 위해 돈을 지불할 의사가 없다는 것이다. 그는 유럽 엘리트들이 자신의 민주주의와 표현의 자유 개념을 받아들이고, 기존의 방화벽을 허물며, 우익 포퓰리즘의 홍수를 받아들인다면, 우익 미국은 유럽 방위에 기여할 것이라고 주장한다. 하지만 그가 진심이라고 믿을 이유는 거의 없다. 밴스(그리고 머스크)가 유럽 엘리트들을 공포에 빠뜨린 것은, 미국의 우익 세력이 단순히 이탈리아나 헝가리 같은 특정 국가에서만 영향력을 행사하는 것이 아니라, 유럽 전역으로 MAGA식 정치 물결을 확산시키려 한다는 가능성 때문이다.
뮌헨에서 밴스가 보여준 난처한 순간은, 민주주의적 정당성을 주장하려면 결국 정치에 관해 이야기해야 한다는 점을 분명히 한 것이다. 결국 승자와 패자에 대해 이야기해야 하고, 2024년 11월 미국 대선에서 누가 승리했는지를 인정해야 한다.
그러니 이건 심각한 문제 아닌가?
당연히 그렇다. <파이낸셜 타임스>는 독일과 밴스의 연설을 다루면서 로버트 하벡(Robert Habeck)의 발언을 인용하며 기사를 마무리했다.
독일 부총리이자 녹색당 소속인 로버트 하벡은, 이 연설이 유럽과 미국 관계의 “전환점”이라고 말했다. 그는 미국 정부가 “수사적으로나 정치적으로 독재자들 편에 섰다”고 평가했다. 그는 뮌헨에서의 주말 동안 “서방의 가치 공동체가 여기서 종료되었다”고 말했다.
하지만, 이 소란에서 잠시 한 발짝 물러서서 두 가지 점을 기억하자.
첫째, 대서양을 가로지르는 균열은 새로운 것이 아니다. 논란의 여지는 있지만, 이는 2003년 이라크 전쟁까지 거슬러 올라가며, 최소한 트럼프 1.0 시절부터 확연해졌다. 만약 이 사실을 몰랐다면, 당신은 주의를 기울이지 않은 것이다.
둘째, MAGA가 저버린 중요한 가치 중 하나는, 중요한 정치적 논의는 최소한 말이 되어야 한다는 점이다.
다시 한번 기억하라. MAGA는 무엇보다도 온통 헛소리로 가득 차 있다.
그렇다면, 밴스는 실제로 무엇을 말했는가?
밴스가 제시한 유일한 구체적인 정책 제안은 이민 문제였다. 그는 더 강력한 이민 제한과 전면적인 이슬람 혐오 정책을 추진하고 싶어 한다. 그는 유럽 정치인들이 유권자들의 목소리를 듣지 않고 있으며, 두려움 속에서 민주주의를 방어하기 위한 방화벽을 구축하고 있다고 주장한다.
그러나 밴스가 상상하는 세계는 어떤 모습인가? 그가 만들어낸 "자유주의적 다문화주의 유럽"은 허수아비일 뿐이다. 유럽 전역에서 우리는 외국인 혐오, 인종차별, 배제의 수치스러운 확산을 목격하고 있다. 포퓰리즘적 아첨은 결코 억눌려 있지 않다. 오히려 그것은 현재 대세다. MAGA가 늘 그렇듯이, 밴스는 이미 활짝 열린 문을 부수려 하고 있다. 그는 다수의 의견을 문제 삼는다. 그리고 이는 분명히 중요한 지점이다. 하지만 현실에서 우리가 보는 것은 무엇인가? 유럽의 정치인들은 밴스가 말하는 바로 그 방식으로 외국인 혐오적 다수를 찾아 헤매고 있다. 그리고 문제는, 그 방식이 실제로 효과적이지 않다는 점이다. 완고한 자유주의 엘리트들이 대중의 거대한 여론을 가로막고 있다는 가정과는 달리, 유럽 유권자들은 이민 문제를 복잡하고 난처한 문제로 여기며 분명한 견해 차이를 보인다.
밴스의 극우 성향 지지자들에게 이민 문제는 최우선 과제다. 하지만 그들은 다수가 아니다. 독일에서는 이민 위기에 대한 논의가 특히 격렬하지만, 설령 그곳에서도 이 문제가 최우선 의제라고 생각하는 유권자는 겨우 3분의 1에 불과하다.
이는 여론조사와 선거 결과에도 반영된다. 현재 혐오스러운 AfD는 21%의 지지를 받고 있다. 최근 방화벽을 허물려 시도한 프리드리히 메르츠(Friedrich Merz) 하의 기독교민주연합(CDU)과 합하면 겨우 50%의 과반을 간신히 넘길 뿐이다. 미국의 조야한 단순다수대표제 민주주의에서는 이것이 정당성을 부여할 수도 있다. 하지만 독일 연방공화국의 정교하게 균형 잡힌 비례대표제에서는 그렇지 않을 가능성이 크다.
이민 "위기"에 대해 가혹한 조치를 요구하는 거대한 침묵하는 다수가 존재한다는 주장은 명확한 정치적 현실이 아니다. 이는 미국과 유럽 모두에서 MAGA식 헛소리에 불과하다.
그리고 이것이 밴스가 강조한 단 하나의 주요 주장이다.
그의 다른 논점들은 터무니없었다. 루마니아 선거는 엉망이지만, 과연 그는 미·유럽 관계가 그것에 달려 있다고 진지하게 기대하는가? 많은 미국 우익들과 마찬가지로 그는 재생산 권리를 제한하고 싶어 한다. 하지만 낙태 문제가 국제 관계, 더 나아가 유럽에서 주요 이슈가 될 것이라고 진지하게 생각하는가? 영국에 대한 공격은 단순히 국내 정치용으로 만들어진 소리조각에 불과하며, 적절한 순간에 <폭스 뉴스>에서 재활용될 것이다.
밴스, 머스크 등이 더 많은 공간을 요구하는 AfD는 극도로 불쾌한 존재이며 트럼프와 밀접한 관계를 맺고 있지만, 그들은 결코 강력한 정치 조직도, 국가 권력을 휘두를 수 있는 도구도 아니다. 밴스는 AfD가 독일 연방의회(Bundestag)에서 더 큰 목소리를 갖게 되면, 어떤 구체적인 정책이 더 나아질 것이라고 믿는가?
냉전이 절정이던 1945년부터 1970년대까지, 기업과 조직 노동, 사회민주주의와 기독교민주주의라는 거대한 정치 세력들은 대서양을 가로질러 협력하며 서유럽 민주주의와 나토 안보 질서를 형성하기 위해 움직였다. 이들 양측의 공동 목표는 공산주의자들을 배제하고 극우 파시스트 세력을—반공 투쟁에 유용할 때 다소 덜한 수준에서—견제하는 것이었다. 이들은 단순한 정치적 책략과 문화 전쟁만이 아니라 지속적인 사회경제적 변화를 통해 패권을 두고 경쟁했다.
하지만 오늘날의 현실은 다르다.
대서양 양측에서 계급 세력과 민주주의 운동의 구도가 훨씬 더 불투명하고 모호해졌다. 미국 정치의 무력감과 독일의 얼어붙은 무능을 마주할 때, 쇠퇴하는 서구의 담론은 피할 수 없어 보인다. 아데나워와 아이젠하워는 차원이 달랐다. 심지어—제발 도와주소서—레이건, 부시, 콜마저도 그러했다. 뮌헨에서 열린 회의의 "엘리트"들이 밴스의 연설에 이토록 동요했다는 사실은 정치 계급이 얼마나 희미해졌는지를 보여준다.
일부에서는 친구와 적의 경계가 흐려졌기 때문이다. 급진적 이슬람, 푸틴의 러시아, 중국공산당이 이른바 "외부의 위협"으로 동원되었지만, 이들 중 어느 것도 냉전 시기의 소련처럼 기능하지는 못했다.
그러나 이러한 변화는 이미 지난 10년 동안 분명히 드러나 있었다. 그리고 해답도 명확하다.
유럽이 밴스 같은 인물들의 유치한 행태를 가볍게 무시하고 싶다면, 유럽 스스로 안보를 책임질 능력을 갖춰야 한다. 유럽은 자체적인 방위를 위해 비용을 지불하고 조직해야 하며, 그에 따르는 정치적, 외교적, 재정적, 사회적 결과를 감수해야 한다. 이를 위해서는 추가적인 국방 예산, 강력한 산업 정책, 그리고 무엇보다도 공통된 유럽 안보 체제와 안보 정책을 구축하려는 진지한 노력이 필요하다. 과연 워싱턴이 유럽의 완전한 군사적 독립을 환영할 것인가? 이는 미지수다. 미국이 선호하는 시나리오는 의심할 여지 없이 유럽이 대규모 군대를 유지하되, 미국 무기로 무장하고, 철저히 나토의 지휘 체계 아래 놓이는 것이다.
이처럼 명백한 문제를 해결하지 못하는 유럽의 무능은, 실로 민주주의의 심각한 실패다. 이는 "자초한 미성숙(selbstverschuldete Unmündigkeit)"(칸트)이며, 그 대가로 유럽은 MAGA의 헛소리와 그로 인한 현실적 결과를 심각하게 받아들여야만 하는 상황에 놓이게 되었다.
[출처] Chartbook 353 How Munich got Maga-ed, or Vance, bull**** & the European furore.
[번역] 이꽃맘
- 덧붙이는 말
-
애덤 투즈(Adam Tooze)는 컬럼비아대학 교수이며 경제, 지정학 및 역사에 관한 차트북을 발행하고 있다. ⟪붕괴(Crashed)⟫, ⟪대격변(The Deluge)⟫, ⟪셧다운(Shutdown)⟫의 저자이다. 참세상은 이 글을 공동 게재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