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치

[사회당 기관지] 민주노동당, 돌아오지 못할 강 건너나

[사회당 기관지] 민주노동당, 돌아오지 못할 강 건너나

김덕수/사회당 기관지위원장

[민주노동당 기관지 진보정치] 쉽게 사그러지는 바람이 아닌 이유들”

[민주노동당 기관지 진보정치] 쉽게 사그러지는 바람이 아닌 이유들”

노무현 현상 어디까지?

[민주노동당 기관지 진보정치] 지지정당에도 투표…5% 이상 득표시 의석 할당

[민주노동당 기관지 진보정치] 지지정당에도 투표…5% 이상 득표시 의석 할당

‘1인 2표제’ 아직 몰라요?

[민주노동당 기관지 진보정치] 참여사회연구소 토론회, “노풍 어디서 왔는지보다 무엇을 담을지가 더 중요”

[민주노동당 기관지 진보정치] 참여사회연구소 토론회, “노풍 어디서 왔는지보다 무엇을 담을지가 더 중요”

한국사회 지각변동, 노무현 현상을 어떻게 볼 것인가

[민주노동당 기관지 진보정치] [후보열전-울산 편]북구 기초의원 후보 신정순” 신랑 표밖에 못 얻어도 ‘돈’ 선거 절대 사절”

[민주노동당 기관지 진보정치] [후보열전-울산 편]북구 기초의원 후보 신정순” 신랑 표밖에 못 얻어도 ‘돈’ 선거 절대 사절”

홍기표/울산 현장기자 hongjaru@hanmail.net 노동자의 도시 울산에 출마한 36명의 후보자들 중에 유일한 여성 후보가 있다. 농소1동 구의원 후보 신정순(41·사진) 당원이 바로 그 사람이다. 신정순 당원은 시골에서 6남매의 장녀로 태어나 어렵게 살았다. 중학교를 졸업한 뒤로는 돈을 벌기 위해 산업체 부설 고등학교를 다녔다. 한일합섬에서 설립한 한일여고 1기 졸업생이다. 졸업 후에도 전화 교환원, 보험설계사 등 여러 직업을 가져 보았다. 처음부터 사회봉사 활동에 관심이 많았던 신정순 당원은 울산에서 부녀회장을 하면서 처음 사회활동의 보람을 느꼈다고 한다. 그 뒤로 자연보호회, 부정선거 감시단, 녹색주민회 등을 거쳤다. 신정순 후보가 처음 민주노동당에 대해 호감을 갖게 된 것은 바로 그 부정선거 감시단 활동을 하면서였다. ‘바른선거시민모임’ 등의 활동을 하다보니 선거판이 얼마나 추잡한지 적나라하게 볼 수 있었다. 동네 어머니들은 선거철마다 무슨 선거브로커라도 된 듯이 사람들 모아서 밥 사 먹이는 게 관례처럼 되어 있었다. 제대로 된 선거문화를 한번 만들어보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런데 이 때 보았던 민주노동당은 신선한 충격이었다. 거의 모든 선거운동을 자원봉사에 의존하는 모습을 보며 ‘저거 너무 괜찮은 방법’이라고 여기게 되었다. 물론 선거

[민주노동당 기관지 진보정치] [후보열전-울산 편]남구청장 후보 김진석, “내 모든 행동의 기준은 노동자”

[민주노동당 기관지 진보정치] [후보열전-울산 편]남구청장 후보 김진석, “내 모든 행동의 기준은 노동자”

허석/남구지구당 사무국장 김진석(39·사진)은 대학 안에 경찰이 상주하던 80년초 사회 전반에 판쳤던 독재와 비민주적 사회현실에 항거했던 정의감이 강한 청년이었다. 85년 학도호국단체제를 끝장내고 학생들의 힘에 의거해 학생들을 자주적 조직인 총학생회 부활 추진위원회를 건설해냈고 위원장으로 당선됐다. 이후 각종 시위를 이끌다가 수배됐다. 87년 6월 항쟁 7, 8월 노동자 대투쟁의 성과로 다시 학교로 돌아왔으며 이때 이미 김진석은 노동자 민중을 위해 평생살기로 결심하는 인생의 항로를 결정했다. 김진석은 무엇을 하든 늘 그 기준이 ‘노동자 서민의 이익을 위한 것’이라는 것을 자신의 정치철학으로 뚜렷이 새긴 사람이다. 김진석은 노동자의 투쟁이 있는 곳이라면 때와 장소를 가리지 않고 함께 투쟁해온 사람, 언제나 투쟁의 현장에서 볼 수 있는 사람이다. 2001년 그 뜨겁던 화섬투쟁에서도 그는 효성공장에서 파업대오와 함께 밤을 세우고 거리에서 노동자들과 함께 달린 구의원이다. 태광이나 고합 노동자들의 투쟁에서도 항상 함께 했던 투사다. 중소상인들이 대형할인마트의 등쌀에 가게 문을 닫으며 눈물을 흘릴 때 그 눈물을 닦아주고 살 길을 찾아주면서 더 이상 길거리로 나앉는 상인들이 없도록 하기 위해 의회에서, 반대투쟁의 집회장에서 함께 싸웠던 사람이다. 그는 오늘도

[민주노동당 기관지 진보정치] [후보열전-울산 편]울주군수 후보 김종길,”공장ㆍ논밭 누비는 가난한 장남”

[민주노동당 기관지 진보정치] [후보열전-울산 편]울주군수 후보 김종길,”공장ㆍ논밭 누비는 가난한 장남”

이상윤/울주군지구당(준) 사무국장 범서읍 천상리에서 태어난 김종길(사진) 후보는 우리나이로 마흔둘이다. 살아온 날을 한마디로 표현하면 ‘고생바가지’가 딱 맞다. 육남매 장남이 겪어야했고 감당해야할 일은 고생바가지가 산더미라 해도 지나치지 않다. 농협에서 일하며 확인한 농민의 삶과 현실은 어릴 적 자신이 겪었던 일보다 훨씬 더 어렵고 잔인했다. 농협구조조정이니 농가발전대책이니 떠들어대도 농민과 아무런 인연 없음을 누구보다 잘 알게 되었고 수입개방으로 농민의 삶과 농촌붕괴를 초래하는 정책에 맞서 농협노동자들이 앞장서야 함을 절감한 세월이었다. 그래서 농협노동조합 결성에 앞장섰으며 전국농협노동조합 위원장을 맡아 성실하게 활동해 온 것이다. 김종길 후보는 진정한 정치와 행정이 어떠해야 하는가를 노동자 농민, 서민에게 답을 찾는다. 지역주민 누구를 만나도 토씨하나 빼놓지 않고 빼곡이 적는 것이 버릇이다. 이야기하기 부담스러워할 수 있으니 나중에 적자고 해도 오늘도 수첩 빼곡이 무엇인가를 적어온다. 울주군이 생기고 진보정당 후보가 선거에 나서는 것은 이번이 처음이다. 당의 승리를 일구고 17만 울주군민의 승리를 일구기 위해 김종길 후보는 공장이고 논밭이고 가리지 않고 뛰고 있다. 자신보다 당을 앞세워 투쟁하는 김종길 후보는 부정부패와 정리해고날치기 주범인 한나라당을 심판하고 민족농업 말살과 신자유주의 구조조정 저지투쟁에

[민주노동당 기관지 진보정치] 송철호 시장후보 선대위, 당ㆍ민주노총ㆍ시민단체 결합…‘깨끗한 후보 송철호’ 당선 자신

[민주노동당 기관지 진보정치] 송철호 시장후보 선대위, 당ㆍ민주노총ㆍ시민단체 결합…‘깨끗한 후보 송철호’ 당선 자신

오진아 dodani@kdlpnews.org “송철호 변호사야말로 1백만 시민의 여망을 담아 풀뿌리 민주주의를 실천하고 삶의 질을 우선하는 행정을 펴나갈 수 있는 유일한 후보라고 확신하고 있습니다.” 지난 6일 울산지역 종교계와 학계, 교육계, 법조계, 문화계 그리고 시민단체 활동가 2백24명이 송철호 민주노동당 울산시장 후보를 ‘시민후보’로 추대하는 기자회견을 가졌다. 이로써 송철호 후보는 민주노동당 후보이자 민주노총 후보, 시민후보로서 이번 시장선거에 출마, 범진보진영을 대표하는 시장후보가 됐다. 현재 송철호 후보 선거대책위원회는 민주노동당 울산시지부, 민주노총 울산본부 그리고 울산환경운동연합 등 시민단체까지 망라된 2백여명의 울산지역 활동가들이 대책위원으로 참여하고 있다. 장태원 울산환경운동연합 의장을 총괄위원장으로 김창현 민주노동당 울산시지부장, 박준석 민주노총 울산본부장, 안수원 송철호 후원모임 대표, 장남수 울산대 민교협 의장이 공동선거대책위원장을 맡았다. 고문에는 권영길 당 대표와 단병호 민주노총 위원장, 최열 환경운동연합 부대표가 위촉되었다. 실질적인 선거운동을 이끌어나갈 조직위원회는 방석수 울산시지부 선거대책특별위원장, 이재인 울산본부 정치위원장, 심기보 울산민주시민회 사무국장이 공동위원장을 맡아 당, 노동조합, 시민단체 등 각 부문별 조직화를 책임지고 있다. 정책기획위원회는 산하에 ‘정책공약팀’, ‘선거분석팀’, ‘사이버팀’, ‘TV토론팀’, ‘선전홍보팀’, ‘전화홍보팀’을 각각 두어 시민단체 활동가와 전문가, 교수들이 결합, 송철호 후보의 정책과 홍보를

[민주노동당 기관지 진보정치] [후보열전-울산 편]동구청장 후보 이갑용”최초의 노동자 구청장 되겠다”

[민주노동당 기관지 진보정치] [후보열전-울산 편]동구청장 후보 이갑용”최초의 노동자 구청장 되겠다”

오진아 dodani@kdlpnews.org 그에게는 따라다니는 애칭이 많다. ‘골리앗 전사’, ‘외로운 늑대’, ‘돼지발톱’…. 비타협적이고 꼿꼿한 그의 성격을 드러내주는 애칭들이다. 84년 현대중공업에 입사한 이후 87년 현대중공업노조 초대 대의원, 89년 현대중공업 1백28일 파업 비상대책위 상황실장, 90년 골리앗투쟁 비상대책위 의장, 93년 8대 노조위원장, 94년 현총련 의장, 98년 민주노총 2대 위원장 등 그동안 그에게 붙여진 직책들은 노동자 이갑용(44·사진)의 삶이 어떠했는가를 알게 해준다. 90년 노태우 정권이 ‘범죄와의 전쟁’을 들먹이며 노동자들과의 전쟁을 선포하면서 현대중공업에서도 한판 전쟁이 벌어졌다. 그러나 위원장, 수석부위원장이 구속되고, 뒤이은 비상대책위 의장들이 사퇴하는 등 탄압과 회유로 지도부 전체가 무너졌다. 이때 끝까지 남았던 이가 바로 당시 사무국장이었던 이갑용이다. 그는 조합원들과 함께 1백28미터 고공 골리앗에 올라갔다. 14일만에 통한의 눈물을 흘리며 내려와 2년6개월의 징역을 살았다. 89년 파업 지도부로 구속된 데 이어 두번째 구속이었다. 93년 현대중공업노조는 위원장의 직권조인으로 또한번 고비를 맞는다. 그러나 어떻게 세운 민주노조인가. 이갑용은 홀로 민주노조 사수를 위한 단식에 들어갔다. 22일간의 단식 끝에 조합원들의 열망으로 민주노조가 재건됐다. 복직 후 노조위원장을 맡은 이갑용은 다시 94년 LNG선상에서 두달이 넘는 기간동안

[민주노동당 기관지 진보정치] [후보열전-울산 편]북구청장 후보 이상범”4.13 악몽 떨치고 대중과 함께”

[민주노동당 기관지 진보정치] [후보열전-울산 편]북구청장 후보 이상범”4.13 악몽 떨치고 대중과 함께”

홍기표/울산 현장기자 hongjaru@hanmail.net 한국노동운동사상 학력을 높여 위장 취업한 사례가 있었을까? 성공적인 사례가 있다. 울산 북구에서 구청장 후보로 나선 이상범(45·사진) 후보는 중학교 2학년 중퇴가 학력의 전부다. 중2때 한해 동안 부모님이 모두 돌아가시는 바람에 학업을 더 이상 할 수 없었고 생활을 위해 생업전선에 뛰어들어야 했다. 그리고 나서 노동자의 삶을 시작했으니 현장생활 32년째. 그가 현대자동차에 입사 할 당시 지원조건은 군필, 자격증 소유, 중졸이상이었다. 대기업을 동경하고 있던 이상범은 입사지원서에 중학 2년 중퇴 학력을 중졸로 속여서 지원서를 냈다. 나중에 인사담당자에게 진실을 밝혔지만 회사측의 용인으로 회사생활을 계속할 수 있었다. 바로 이 사람이 나중에 현대자동차노조 창설의 주역이 되었으니, 현대측의 입장에서는 통탄할 일이다. 이상범은 학교를 못 다닌 것에 대한 아쉬움이 컸다. 그래서 책 읽는 것을 좋아하게 되었고 독서 서클을 만들어 사람들과 책 읽고 토론하는 것을 즐겼다. 이때 사회과학을 접하게 되었다. 지금 2만5천 조합원의 거대 노조로 발전해서 우뚝 서있는 현대자동차노조는 87년 처음 결성될 당시 45명이 모여 시작했다. 회사측에서 조합결성 며칠 전에 어용노조를 내세워 먼저 설립신고를 하는 바람에 이상범과 다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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