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우근의 들꽃이야기

[강우근의 들꽃이야기] 생강나무

[강우근의 들꽃이야기] 생강나무

숲은 아직 겨울옷을 벗지 못하고 겨울잠에 취해 있다. 진달래꽃이 피려면 보름은 기다려야 한다. 잠이 덜 깬 청띠신선나비가 바위에 나와 앉아 날개를 펼치고 햇볕을 쪼이고 있다. 짝을 찾는 박새 소리가 숲을 깨우고 있다. 그 소리에 놀란 듯 생강나무 가지에 노란 꽃이 터지면 비로소 숲 속의 봄은 시작된다. 생강나무는 소박한 나무다. 키도 크지 않고 가지도 촘촘하지 않으니까 평소에는 눈에 잘 띄지 않는다. 그에 걸맞게 꽃에는 변변한 꽃잎조차 없다. 그러나 이 골 저 골에서 노랗게 모습을 드러낼 때면 숲은 온통 생강나무 차지가 된다. 등산복 차림을 한 아주머니 한 분이 지나며 ‘생강나무’를 보더니 ‘산수유’라고 한다. 그럴 만도 하다. 이 때쯤 산아래 마을에서는 꽃 모양이 비슷한 ‘산수유’도 꽃을 피우기 때문이다. 꽃을 달고 있는 꽃자루가 길면 ‘산수유’이고, 꽃자루가 거의 없어 그냥 가지에 바짝 붙어 있으면 ‘생강나무’이다. 나무줄기 껍질이 너덜너덜하면 ‘산수유’, 반질반질하면 ‘생강나무’다. 그냥 산에서 피면 대개 ‘생강나무’이고, 마을에서 볼 수 있는 건 ‘산수유’라고 보면 된다. 꽃이 지고 나면 잎이 나오는데 소박한 꽃과 달리 잎은 제법 공을

[강우근의 들꽃이야기] 냉이

[강우근의 들꽃이야기] 냉이

겨울 추위를 견디며 봄을 준비해온 것들이 있다. 알집이나 고치도 없이 낙엽 밑이나 바위 아래에서 맨 몸으로 겨울을 버텨낸 네발나비와 멧노랑나비 따위 곤충들과 땅바닥에 바짝 엎드려 찬바람을 피하면서 태양열 집광판처럼 잎을 펼쳐 좀더 많은 햇볕을 모으려 안간힘 쓰던 로제트 식물이 그것들이다. 이른봄은 이들의 몫이다. 일찍 찾아온 봄기운에 멋모르고 싹을 낸 것들이야 꽃샘추위에 곤욕을 치르지만 겨울 추위를 가로질러온 전사들에게 꽃샘추위쯤은 위협이 되질 못한다. 그늘 진 곳엔 여전히 잔설과 얼음이 그대로 남아 있는 2월초부터 네발나비는 짝을 찾아날고 꽃다지는 노란 꽃을 피워내며 봄의 영토를 넓혀간다. 겨울은 모두에게 위기이지만 이것들은 오히려 이 위기를 기회로 삼은 것이다. 냉이에게도 참고 견디며 기다려왔던 때가 왔다. 땅바닥에 붙어 있던 잎들이 일제히 일어선다. 꽃을 달고 있는 줄기가 가운데서 쑥쑥 자라 올라온다. 땅속뿌리에 겨울 동안 쌓아왔던 힘을 한꺼번에 토해내듯 자라난다. 겨울을 견뎌낸 대가를 톡톡히 받아 내려면 서둘러야 한다. 밭을 갈아엎고 씨를 뿌리기 전에 냉이는 서둘러 꽃을 피우고 열매를 맺고 씨를 뿌려야 한다. 들은 한순간 냉이로 덮여버린다. 겨울 동안 준비해온 것을 모르는

[강우근의 들꽃이야기] 새포아풀

[강우근의 들꽃이야기] 새포아풀

겨우내, 골목길 담장 아래에서 작은 풀 무더기가 자라고 있다. 냉이며 개망초처럼 규칙적인 모양을 지니지 못하고 마른 잎과 푸른 잎이 엉겨 아무렇게나 자란 듯해서 그냥 풀이라고 불리기에 가장 적당한 모습을 하고 있다. 빈터나 길가 보도블록 틈에서 흔히 자라는 한두해살이 벼과식물인 새포아풀이다. 새포아풀은 냉이나 별꽃 따위처럼 농작물과 함께 한반도에 들어와 자라나기 시작한 풀이다. 새포아풀은 비슷하게 들어와 터 잡고 살아가는 냉이나 별꽃 따위와는 달리 이름도 생소하고 어떤 풀인지 아는 이도 적다. 두드러진 특징이 없고 나물로 먹을 만한 것도 아니기 때문이리라. 새포아풀은 대개 가을에 싹이 터서 겨울을 나고 이듬해 봄에 이삭이 나와 꽃을 피운다고 한다. 그렇지만 담벼락 밑에서 자란 새포아풀을 헤쳐 보니 이미 이삭이 나와 있다. 저만치 축대 아래 새포아풀에도 역시 이삭이 나와 있다. 이번 겨울이 너무 따뜻했기 때문일까? 잡초가 땅에 떨군 씨앗은 쉽게 싹을 틔우지 않는다. 여러 조건을 따져가며 긴긴 세월 신중하게 기회를 엿보다 가장 좋은 조건에서 싹을 틔운다. 그렇게 싹 트고 나면 그때부터는 태도를 바꾸어 조건을 따지지 않고 후회도 미련도 없이 쭉쭉

[강우근의 들꽃이야기] 회양목

[강우근의 들꽃이야기] 회양목

거리에서 가장 흔히 보는 나무가 회양목이다. 회양목은 대개 여러 그루로 어떤 모양을 만들어 심는데 그래서인지 사람들은 회양목이 만들어 낸 모양은 기억해도 회양목 자체는 별 생각 없이 지나치게 된다. 회양목은 이 땅에서 자생하는 나무라는 느낌보다 중국이나 일본쯤에서 가져다 심었을 것으로 생각하기 쉽다. 보통 정원수로 심는 나무가 다른 나라에서 도입한 게 많기도 하려니와 이름도 친근감이 없고 또 산에서 스스로 자라는 회양목을 보지 못했기 때문일 것이다. 그러나 회양목은 경상도, 충청도, 강원도 등지 석회암 지대에 자생하는 나무고, 옛날부터 여러 가지 용도로 쓰임이 많았던 나무다. 화단 가장자리나 거리에서 보아왔던 모양의 회양목을 산에서 보지 못했던 것은 산에서 자라는 회양목은 생김새가 다르기 때문이다. 거리의 회양목은 계속 전정을 해서 둥글둥글하거나 판판하게 다듬기 때문에 자연 상태의 모습이 아니다. 하지만 그대로 자라게 놓아두면 그런 대로 사람 키만큼 자라고 훨씬 성긴 모양을 하게 된다. 이름도 강원도 ‘회양’ 지방에서 많이 나기 때문에 ‘회양목’이라 불리게 되었다니 그리 낯선 이름은 아닌 것이다. 학명에도 그 원산지가 이 땅임이 밝혀져 있다. 회양목은 꼭 쌀을 튀겨 놓은

[강우근의 들꽃이야기] 개쑥갓

[강우근의 들꽃이야기] 개쑥갓

들풀 가운데는 봄여름가을 동안 쉬지 않고 꽃 피고 지는 풀들이 제법 많다. 그러나 제 아무리 강한 들풀이라도 겨울엔 씨를 남기고 말라 버리거나, 땅속뿌리로 버티거나, 땅바닥에 잎을 바짝 붙이고 겨우겨우 겨울을 날 뿐 꽃 필 엄두를 내지 못한다. 그런데 한겨울에조차 꽃을 피우는 풀이 있다. 그야말로 일 년 내내 사계절 꽃 피는 풀이다. 쑥갓을 꼭 빼 닮아서 개쑥갓이라 불리는 풀이다. 개쑥갓은 손바닥보다 좁은 땅과 햇볕 한줌 만 있으면 길가 빈터나 밭둑, 어디서나 자라나 아무 때나 꽃 피는 풀이다. 매서운 겨울바람 속에서도 잎을 땅에 붙이지 않는다. 그냥 땅위로 겁 없이 자라나 열매 맺고 씨를 날려보낸다. 국화과에 속한 꽃은 작은 꽃들이 뭉쳐서 한 송이 꽃처럼 피는데 개쑥갓 역시 국화과로 작은 꽃들이 모여 한 송이 꽃을 이룬다. 그러나 보통 국화과에 속한 꽃처럼 둘레에 돌려 핀 설상화가 없고, 가운데 술처럼 뭉쳐 있는 관상화로만 이루어져 꽃 모양이 소박하고 볼품 없다. 이렇게 볼품 없는 꽃이지만 가을을 지나 한겨울에도 꽃이 피고 있는 걸 보면 그냥 쉽게 지나칠 수 없다.

[강우근의 들꽃이야기] 달맞이 꽃

[강우근의 들꽃이야기] 달맞이 꽃

겨울이 너무 따뜻해졌다. 그렇지만 거리에서 노숙을 하며 싸우는 이들에겐 여전히 너무나 추운 겨울이다. 추위를 모르는 개구쟁이들이야 눈이라도 내리면 얇은 옷만 입고도 온몸이 동태가 되도록 신나게 뛰어 놀 테지만 말이다. 아이들이 뛰어 노는 공터 구석에서 겨울 추위를 이겨내며 겨울을 나는 풀들이 있다. 냉이나 망초와 같은 두해살이풀들이다. 이것들은 지난 해 가을 이미 싹이 터서 뿌리를 내리고 겨울을 난다. 그리고 봄이 되면 꽃대가 자라나 꽃대 끝에 꽃을 피우는 것이다. 두해살이풀은 힘들게 겨울을 나야 하지만 봄이 되어서야 싹트는 풀보다 먼저 자리를 차지할 수 있기 때문에 자라는데 훨씬 유리하다. 두해살이풀이 겨울을 날 때는 뿌리에서 바로 자라 나온 잎이 땅바닥에 바짝 붙어서 추위를 피하고 체온을 유지한다. 그 모습이 꼭 바닥에 깔아놓은 방석 같아서 ‘방석 식물’이라고 한다. 그리고 추위에 빨갛게 얼어버린 아이들 볼처럼 잎사귀들이 빨갛게 물들어 있는데, 이런 모습이 꼭 장미꽃이 핀 것 같아서 ‘로제트 식물’이라고도 한다. 이런 두해살이풀 가운데서도 달맞이꽃은 정말 아름다운 모습으로 겨울을 난다. 그래서 달맞이꽃은 여름과 겨울, 두 번에 걸쳐 꽃을 피우는 것 같다.

[강우근의 들꽃이야기] 소나무

[강우근의 들꽃이야기] 소나무

숲 속에서 잎을 가는 나무들이 잎을 떨구고 나니, 비로소 드문드문 소나무가 드러나 보이기 시작한다. 소나무는 오랜 세월 숲의 주인 행세를 해 왔다. 특히 조선 시대 때에는 우리나라 숲의 70%를 소나무가 차지했단다. 그 당시 사람들은 소나무 집에서 태어나, 소나무 땔감으로 밥해 먹고, 소나무 껍질을 벗겨 먹고, 죽으면 소나무 관에 넣어져 묻혔다. 조선 시대 문화가 소나무 문화였다는 말은 그래서 과장이 아닌 것이다. 소나무가 많은 것은 그 전 시대에 주로 화전으로 농경을 일구어 왔던 결과였다. 버려진 화전 밭은 얼마 가지 않아 소나무 숲으로 바뀌게 된다. 그러나 소나무 숲을 자연 상태로 내버려두면 다시 참나무 숲으로 바뀌게 되는데, 그런 천이가 진행되지 못했던 것은 계속 숲이 훼손되었다는 것이다. 소나무는 스스로 쉽게 자리를 양보하지 않는다. 소나무 숲 아래서는 다른 식물들이 자라지 못한다. 소나무가 다른 식물이 싹트지 못하게 하는 화학물질을 내기 때문이다(타감 작용). 그렇지만 그늘에서도 넓은 잎을 펼치면서 하늘을 향해 힘차게 자라 올라오는 참나무를 막아내기에는 소나무도 역부족이다. 결국 자연의 법칙을 거스를 수는 없다. 요즘 숲은 참나무 숲으로 바뀌어가고

[강우근의 들꽃이야기] 붉나무

[강우근의 들꽃이야기] 붉나무

울긋불긋 물들던 나뭇잎이 늦가을 비 몇 번 내리는 사이 다 떨어져 버렸다. 한여름 짙은 푸르름을 자랑할 때의 숲은 전혀 바뀔 것 같지 않더니, 이렇게 한순간 잎을 떨구고 앙상하게 속살을 드러내고 말았다. 숲은 끊임없이 변화한다. 계절에 따라 변하기도 하지만, 더 큰 주기로 숲은 새로 만들어지기도 하고 또 산불이나 인간의 개발 따위로 사라져 간다. 그리고 폐허에서 다시 숲은 시작된다. 풀씨가 날아와 싹을 틔우고 작은키나무(관목)가 슬금슬금 자라나다가 소나무 숲도 되고 다시 참나무 숲으로 바뀌어간다. 망가진 땅에 처음 들어와서 숲을 개척하는 풀이나 나무를 ‘개척자 식물’ 또는 ‘선구 식물’이라고 한다. 붉나무는 대표적인 선구 식물이다. 그래서 붉나무를 만나게 되는 곳은 등산로 바로 옆이나 밭이 끝나고 숲이 시작되는 경계 지점이다. 버려진 산밭은 몇 년 뒤엔 붉나무 밭으로 바뀌어 버린다. 그리고 소나무 같은 큰키나무(교목)에게 자리를 양보할 것이다. 붉나무는 다른 나무 아래서는 잘 자라지 못하는 양지식물이기 때문이다. 가을 산에서 가장 붉게 물드는 게 붉나무다. 오죽 했으면 이름조차 붉나무겠는가. 붉나무는 옻나무와 비슷하게 생겨서 그걸 구별 못하는 사람들을 간혹 놀라게 한다.

[강우근의 들꽃이야기] 단풍나무

[강우근의 들꽃이야기] 단풍나무

여름내 푸르름을 자랑하던 나뭇잎들은 소슬바람과 함께 울긋불긋 색을 바꾸기 시작했다. 남쪽에서부터 진달래 꽃물로 붉게 물들었던 산은 이번에는 북쪽에서부터 다시 한번 붉게 단풍으로물들 것이다. 단풍나무는 봄에 꽃이 핀다. 그 꽃은 작고 소박해서 바쁘게 살아가는 사람들이 단풍나무가 꽃 피고 지는 걸 보기가 쉽지는 않다. 그렇지만 붉게 물든 단풍잎은 누구나 한번쯤 책갈피에 끼워 그 아름다움을 간직하려 했을 것이다. 지는 잎이 꽃보다 아름답다. 설악산이나 북한산쯤에서 만나게 되는 단풍나무는 실은 당단풍나무다. 단풍나무는 내장산 아래쪽 남쪽 지방에서나 볼 수 있다. 단풍나무 무리에는 여러 종류가 있는데 봄이면 사람들에게 수액을 수탈 당하는 고로쇠나무가 유명하다. 단풍색은 복자기나무와 신나무가 가장 아름답다. 북아메리카에서 가져 들어와 가로수로 심은 은단풍나무와 여름에도 붉은 색 잎을 달고 있는 일본 원산의 노무라단풍은 굳이 산에 가지 않아도 쉽게 볼 수 있지만 단풍나무 멋이 제대로 드러나지 않는다. 가을 들어 기온이 갑자기 떨어지는 해나 가을 가뭄이 심한 해는 단풍이 덜 아름답다. 채 물들기 전에 잎이 떨어지기 때문이다. 가물지 않고 알맞게 건조하고 햇볕이 많이 비치면서 기온이 천천히 내려가는 해의 단풍이

[강우근의 들꽃이야기] 쑥부쟁이

[강우근의 들꽃이야기] 쑥부쟁이

태풍 ‘매미’가 휩쓸고 간 들녘에서 들리는 늦털매미 소리가 유난히 능청스럽게 들린다. 늦털매미 울어대는 나무 아래에는, 잠시 허리를 펴고 시름을 잊으라는 듯, 온 갖가지 들국화가 꽃피고 있다. 산과 들에서 자라나는 국화과 무리를 묶어서 들국화라 하는데, 구절초, 쑥부쟁이, 감국, 개미취, 벌개미취, 참취 따위가 있다. 도깨비바늘, 가막사리, 진득찰 같이 씨앗이 몸에 달라붙어서 아이들과 친근한 풀도 국화과 무리지만 꽃이 볼품 없어 들국화라 부르지 않는다. 국화과 무리는 대개 해가 짧아지는 가을에 꽃피는 단일식물이기 때문에 가을을 대표하는 꽃이라 할 만하다. 들국화 가운데 벌개미취는 도시 화단에서도 흔히 볼 수 있게 되었고, 구절초도 꽃집에서 쉽게 찾을 수 있게 되었다. 도시를 벗어난 길가 어디서든 눈에 띄는 쑥부쟁이는 그래서 더 들국화답다. 쑥부쟁이에는, 열 명이나 되는 동생들을 먹이기 위해 쑥을 뜯어야 했던 가난한 대장장이 딸에 얽힌 이야기가 담겨 있다. 쑥을 뜯는 불쟁이(대장장이) 딸이라서 ‘쑥부쟁이’라 불렸다는 처녀는 결국 동생들에게 먹일 나물을 뜯다가 벼랑에서 떨어져 죽고 말았는데, 그 자리에 피어난 꽃을 보고 사람들은 ‘쑥부쟁이’라 불렀단다. 수수하지만 은은한 아름다움이 우러나오는 연보라색 쑥부쟁이 꽃을 보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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