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우근의 들꽃이야기

[강우근의 들꽃이야기] 억새

[강우근의 들꽃이야기] 억새

억새, 정겨운 풀이름이 너무 억세고 거칠다. 하지만 습기 없는 팍팍한 땅에서도 억척스럽게 살아가는 그 습성이 이름 그대로이다.

[강우근의 들꽃이야기] 쥐방울덩굴

[강우근의 들꽃이야기] 쥐방울덩굴

몇 해 전, 귀농을 한 이가 사는 집엘 갔다가 그 집 마루에 걸린 이상하게 생긴 열매를 보았다. 꼭 낙하산을 거꾸로 매달아 놓은 것처럼 생긴 모양이 어떤 식물의 열매인지 도무지 알 수 없었다. 잎이 진 초겨울 집 가까운 둘레 여기저기엔 그 열매가 조롱조롱 매달려 말라가고 있었다. 그리고 한 해가 더 지난 뒤에야 그 열매가 쥐방울덩굴 열매라는 걸 알았다. 시골에서도 그 열매를 알고 있는 이를 만나기 힘들게 되었다. 그런 풀일랑은 알 필요가 없어진 것이다. 하기는 농약 치고 제초제 치고 때깔 좋은 상품을 만들어 내는 게 농사가 된 지 이미 오래다. 씨로 삼을 종자까지 다 팔아 넘기고 유전자 조작된 씨를 뿌리게 되었다. 그 유전자 조작된 감자고 옥수수는 이미 감자도 옥수수도 아니다. 엄연히 저작권 등록된 살충제이다. 살충제를 재배하는 게 오늘의 농사다. 그래도 요즘은 ‘웰빙’ 바람을 타고 유기농 상품이 인기다. 그렇지만 이것 역시 믿을 수 없는 게 많다. 자칫하면 농사꾼들을 고급 사기꾼으로 전락시키는 게 아닌지 우려된다. 생각이 바뀌지 않고 사회가 바뀌지 않고 삶이 달라지지 않았는데

[강우근의 들꽃이야기] 돼지풀

[강우근의 들꽃이야기] 돼지풀

쓸모 없는 식물’이 어디 있겠는가. 그 쓰임을 모를 따름이지. ‘쓸모 없는 식물’이라고 쓰여진 식물 도감이야말로 다시 쓰여져야 할 쓸모 없는 것이 아닐까.

[강우근의 들꽃이야기] 괭이밥

[강우근의 들꽃이야기] 괭이밥

대체 저 작고 여린 풀 어디에서 그런 힘이 솟아나는 것일까? 부드러우면서도 강할 수 있다는 것을 괭이밥을 보면서 배운다.

[강우근의 들꽃이야기] 고마리

[강우근의 들꽃이야기] 고마리

고마리는 시궁창 속에서 찾아낸 녹색 희망이고, 콘크리트 도시에서 찾아내야 할 또 하나의 미래일 수 있다.

[강우근의 들꽃이야기] 쇠무릎

[강우근의 들꽃이야기] 쇠무릎

노동자에게도 머물러 있거나 안주할 곳이 없다. 낡은 세상을 박차고 나가는 것 그것이 노동자의 삶이다. 노동자에게 잃을 것은 오직 쇠사슬뿐이다.

[강우근의 들꽃이야기] 쇠비름

[강우근의 들꽃이야기] 쇠비름

제초제를 뿌린 곳에서 자라난 쇠비름은 먹을 수 없다. 그것은 이제 음식도 약도 아닌 것이다.

[강우근의 들꽃이야기] 아까시나무

[강우근의 들꽃이야기] 아까시나무

숲은 또 한 차례 흰 꽃 사태로 덮일 것이다. 5월 숲에서는 팥배나무, 노린재나무, 때죽나무, 찔레와 산딸기 그리고 아까시나무 따위 흰 꽃들이 줄줄이 피어날 테니까 말이다. 게다가 아까시나무 흰 꽃 사태는 그야말로 봄의 절정이다. 아까시나무 하면 한 번쯤 꽃을 훑어서 먹고 잎을 따며 놀았던 경험이 모두들 있을 게다. 아마 어린 시절 추억 속에 등장하는 가장 친근한 나무가 아닐까 싶다. 그러나 한편 아까시나무는 끊임없이 구설수에 오르고 많은 오해를 받아온 나무이기도 하다. 아까시나무는 이름조차 제대로 불려지지 못하고 있다. ‘아까시나무’는 잘 몰라도 ‘아카시아’라 하면 모르는 사람이 없다. 하지만 이것은 잘못된 것이다. 아카시아는 아프리카나 오스트레일리아 등지에서 자라는 다른 나무 이름이다. 아까시나무와 같은 콩과식물에 속하지만 속(屬)이 서로 다른 나무이다. 아까시나무 학명이 ‘수도-아카시아(Pseudo-acacia)’인데 이 뜻은 ‘가짜아카시아’란 뜻이다. 아마도 아카시아처럼 가시가 있고 또 작은 잎이 여러 장 모여서 달리는 게 닮아서 그렇게 이름 붙여진 것 같다. 그런데 가짜 아카시아가 이 땅에 건너와서 그냥 진짜 아카시아로 불려지고 있는 것이다. 그러고 보면 아까시나무는 우리나라 근현대사의 한 결을 고스란히 간직한 나무이기도

[강우근의 들꽃이야기] 뽀리뱅이

[강우근의 들꽃이야기] 뽀리뱅이

담 너머로 뜰보리수나무 꽃이 소리 없이 폈다가 간 밤 내린 봄비에 젖어 골목길로 꽃잎을 소복하게 떨구었다. 골목길 여기저기 뽀리뱅이가 한창 꽃 피고 있다. 뽀리뱅이는 보리뱅이라고도 불리는데 보리뱅이가 뽀리뱅이로 바뀐 것 같다. 그러고 보면 보리수나무나 뽀리뱅이 이름에는 모두 ‘보리’가 들어가는 셈이 된다. 아마도 두 가지 다 꽃 피는 시기가 보리 농사와 관련이 있을 게다. 요즘 다시 보리밥이 건강식으로, 별미로 인기를 얻어서 보리 심는 데가 늘어나고는 있다지만 보리가 주식이었던 예전과는 비길 수 없다. 3, 4월은 모든 식량이 동나서 보리 수확을 애타게 기다리는 보리 수확 시기였다. 산과 들로 다니며 나무 껍질을 벗기고 나물을 뜯어 연명할 때 뽀리뱅이는 나물 바구니에 담기던 풀이었다. 보리 수확이 시작되어 보릿고개가 끝이 나고 나물 뜯기가 멈출 때쯤 뽀리뱅이는 기다렸다는 듯 길게 꽃대를 내고 다투어 노란 꽃을 피워 냈다. 그러나 삶이 바뀌고, 먹을 게 바뀌면서 뽀리뱅이도 잊혀졌다. 뽀리뱅이는 두해살이풀이다. 이미 지난 해 가을 싹 트고 잎을 내어 방석 식물로 겨울을 난 것이다. 잎을 땅에 바짝 붙이고 자라는 모습이 불상을 얹어

[강우근의 들꽃이야기] 서양민들레

[강우근의 들꽃이야기] 서양민들레

황사가 심하던 날 시장 골목 귀퉁이에서 노랗게 꽃을 피우고 있는 서양민들레를 보았다. 꽃대가 거의 없이 땅바닥에 바짝 붙어서 꽃을 피우고 있다. 힘껏 목을 빼고 듬뿍 햇볕을 받으며 꽃 피우고 싶을 텐데 그러기엔 아직 때가 일렀던가 보다. 솜털 달린 씨앗이 다 날아가 버린 빈 꽃대를 보니 이 꽃이 처음은 아닌가 보다. 겨울에도 양지바른 곳에서는 꽃을 피우기도 하니까 이 꽃이 그다지 이른 것도 아니다. 꽃송이를 싸고 있는 총포가 뒤로 훌렁 젖혀 있는 걸 보니 확실히 서양민들레다. 서양민들레는 이름에서 알 수 있듯이 유럽에서 건너온 풀이다. 일제 시대 때 들어왔다니 우리 땅에서 삶이 채 백 년이 되지 않은 것이다. 하지만 그 사이 서양민들레는 우리 토박이 민들레가 뿌리내리고 있는 영토 대부분을 차지해 버렸다. 민들레는 이제 시골에서조차 쉽게 찾아볼 수 없다. 민들레는 봄 한철 꽃을 피우지만 서양민들레는 늦은 가을까지 쉬지 않고 꽃을 피운다. 서양민들레는 꽃가루받이가 되지 않아도 자기 복제 종자를 만들어 낼 수 있다. 그러니 한 포기만 떨어져서 자라도 열매 맺고 번식할 수 있는 것이다. 그렇지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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