격주간노동자협회

[격주간노동자협회] 김원호 성폭력사건 그 후 3년, 내 이야기(3)

[격주간노동자협회] 김원호 성폭력사건 그 후 3년, 내 이야기(3)

글쓰기를 맘먹으며 쉽지 않으리라는 건 예상했다. 그러나 정말 쉽지 않다. 온갖 생각이 떠다녀 잠을 이루지 못하고 컴퓨터 앞에서 초코렛만 먹어댄다. 지하철 안에서 흐르는 눈물을 주체 못해 당황하기 일쑤고 두통에 시달린다. 가슴에 맺혔던 ‘분노’와 ‘한’이 솟구쳐 올라 눈물이 떨어진다. 이건 내 몫이다. 내가 살기 위해 감당할 몫이다. 김원호 성폭력사건이 보고된 중앙위에서 2차가해자 김상복은 이런 발언들을 했다. “회피노력, 그런 상황은 양성이 다 하는 것이라고 생각한다. 그것에 대해서 피해자는 술에 취해 모른다는 것밖에 없는가? 3차(술집)를 가야할 특별한 이유는 없었는데, 회피노력은 3차부터이다. 이에 대해 피해자의 생각은 어떤지 궁금하고, 물어져야 한다고 본다.”, “술에 취했다고 해도 판단이 물어져야 한다… 오히려 40대 30대 여성의 성적 에네르기의 자제함은 20대와 별 차이가 없다고 본다… 이런 점에서 오히려 더 단호하게 물어져야 한다.”, “…회피의 노력에 대해서는 물어져야 한다고 본다…” 2차가해자 김상복은 ‘회피노력’ 발언이 2차가해라는 제지에도 불구하고 끝까지 자기주장을 굽히지 않고 수 차례에 걸쳐 반복 발언했다. 서기록에 남겨줄 것을 확인까지 했다. 회피노력 했냐고? 그게 그렇게 궁금했나? 대답해주지. 아니. 못했다. 그 당시는 그럴

[격주간노동자협회] 붕어빵엔 붕어가 없고, ‘저출산·고령사회 기본계획’엔 여성이 없다

[격주간노동자협회] 붕어빵엔 붕어가 없고, ‘저출산·고령사회 기본계획’엔 여성이 없다

며칠 전, 고향에 갔다. 오랜만에 만난 부모님과 친척들은 기다렸다는 듯이 “요즘 여자들이 이기적이어서, 우리나라도 이제 저출산, 고령사회에 진입했다”는 둥, “출산이라는 성스러운 책임을 방기하며, 무슨 정치냐”는 공세를 폈다. ‘데모하는 딸년을 거두어줄 건실한 청년’을 바라던 가족들은 ‘출산이 애국인 시대, 여성의 제 1 책무는 출산’이라는 사상적 무기를 얻은 것이다. 저출산·고령화라는 국가적 재앙이 내 삶에 침투하게 됐다. ‘저출산·고령사회 기본계획’에 여성은 없다! 지난해, 한국여성단체협의회 전국여성대회에서 “출산율 감소는 퇴폐적 상황이고, 결혼이 선택이 될 수 없고, 출산은 여성의 창조적 의무”임을 강조했다. 출산율 저하와 상관없이 과학기술과 의학의 발달로 고령사회에 이미 진입되었음에도, 마치 이기적인 요즘 여자들 때문에 국가적 위기가 초래한 것처럼 호들갑을 떨고 있다. 저출산·고령화 ‘위기’론은 가족과 국가의 위기를 우려하는 목소리에, 대통령이 손수 해결하겠다며 나섰다. 지난 6월 7일 발표된 [저출산·고령사회 기본계획]은 출산과 양육에 유리한 환경조성 고령사회 삶의 질 향상 기반 구축 미래 성장동력 확보를 3대 중점 추진분야, 70개 이행과제, 230여개 세부사업으로 구성된다. 출산의 최대 걸림돌인 일·가정 양립의 어려움을 해소하기 위한 여성노동자의 권리와 관련된 시책과 돌봄노동을 사회화한다는 긍정성에도, 여성의 삶에

[격주간노동자협회] 산별노조 건설은 이제 진검승부이다

[격주간노동자협회] 산별노조 건설은 이제 진검승부이다

6월 30일 금속산별 동시총회 결과를 매일경제신문은 1면 특별기사에서 이렇게 평가했다. “6월 30일은 한국 노동운동사에 길이 남을 커다란 전환점이다. 연봉 5,800만원의 현대자동차를 비롯한 금속연맹 다수 노동조합이 산별노조로의 전환을 결의했다.” 물론 뒤이어 금속노조로 전환되면서 임단협이 비정규직 문제, 한미FTA 등 정치투쟁의 장으로 변할 것이라고 걱정했다. 보수언론의 이러한 호들갑은 일면의 진리를 담고 있다. 그것은 산별전환 총회결과가 갖고 있는 가능성을 주목하고 있다. 87년 노동자대투쟁이후 조직적 과제로 제기되었던 산별노조 전환 1단계는 이제 금속연맹의 산별전환으로 가속화될 것이다. 아래 표와 같이 금속연맹의 산별동시총회에는 20개 사업장, 10만 명이 참가했다. 13개 노조 86,985명이 산별노조 전환을 결정했다. 금속연맹은 10월 해산하고 가칭)통합대의원대회에서 통합금속노조를 출범한다. 이를 위해 7월부터 연맹, 가결사업장, 금속노조가 모여 규약(조직체계 등), 예산, 교섭 및 2007년 투쟁과제, 조합원교육 등 소위원회를 가동하여 통합노조의 상을 만들어간다. 실질적인 내용은 이제부터다. 말하라 외쳐 불려라 민중의 선봉에 서서 노동자 해방의 나라 건설하리라 금속노조가의 한 구절이다. 우리가 금속산별에 관심을 갖는 이유도 이 노래와 같을 것이다. 금속연맹은 2000년, 2003년 산별전환 동시총회를 실시했다. 그러나 그 결과는 초라했다. 이번 산별전환

[격주간노동자협회] 연극 코뮌

[격주간노동자협회] 연극 코뮌

87년 노동자 대투쟁도, 89년 현실사회주의 국가의 몰락도, 96년 학생운동 탄압도, 노동악법 날치기도 직접 경험하고 고민하지 못한 2000년의 대학시절을 보낸 나에게 연극은 과거의 경험을 이양시키는 역할을 해냈다. 하지만 그건 말 그대로 이양이고 나에겐 운동의 역사와 함께 내가 이어나가야 할 운동의 일상을 어떻게 창조할 것인가에 대해 숙제를 남겼다.

[격주간노동자협회] 김원호 성폭력사건 그 후 3년, 내 이야기(2)

[격주간노동자협회] 김원호 성폭력사건 그 후 3년, 내 이야기(2)

<box 연재 순서> 1. 김원호 사법처리 2. 2차 가해자 박장근, 대표되다 3. 2차 가해를 인정하느니 차라리 운동을 접은, 2차 가해자 김상복 4. 2차 가해 & 조직적 해결 5. 이야기해 그리고 다시 살아나 <box 끝> 성폭력 피해를 당했을 당시 피해자들은 분노를 경험하지도, 표현하지도, 그리고 행동에 옮기지도 못했다. 어쩌면 분노할 권리가 있다는 것조차 알지 못했을 것이다. 그리하여 가해자에게 분노하기보다는 자신의 분노를 부정하고 왜곡시켰다. 그러나 치유과정이 진행되면서 분노의 대상을 정확히 할 수 있었다. 피해자들은 자신이 당했던 피해를 책임져야 한다는 부담감에서 벗어난 다음 명확하게 가해자에게 책임과 분노를 돌렸다. 그리고 정서적인 지지가 함께 곁들여질 때 자신의 존재가 소중하다는 것을 깨달았다. “성폭력피해 치유의 관점과 방법론” 변혜정(한국성폭력상담소 부설 성폭력문제연구소) 노힘 여성활동가들과 함께 여성세미나를 한다. 세미나 장소를 정하며 그녀들은 나를 배려해 늘 노힘 사무실을 제외했다. 나는 노힘 사무실 근처에도 가기 싫어했다. 그리고 특정인물 몇몇에 대해 강한 알레르기 반응을 보였다. 그러나 어느 순간 나는 노힘 사무실에 들락거리는 게 괜찮아졌다. 왜 그럴까. 무슨 변화일까. 대표가 바뀌었다. 2차 가해자 박장근에서 내

[격주간노동자협회] 김원호 성폭력사건 그 후 3년, 내 이야기 (1)

[격주간노동자협회] 김원호 성폭력사건 그 후 3년, 내 이야기 (1)

성폭력 생존자들이 자신의 피해경험을 ‘말하는 것’은 상처의 치유과정이다. 그동안 억눌렀던 감정을 쏟아냄으로써 생존자들은 자신을 찾아가는 첫걸음인 것이다. 생존자의 말하기는 성폭력을 당하고 난 뒤의 혼란과 치욕의 과정에서 자신을 다시 사랑하게 되고 스스로를 채워나가는 과정이다. 또한 생존자로서 당당하게 설 것이라는 선언의 의미도 있다. 2003년 3월, 노동자의 힘에서 처음으로 성폭력 대책위가 꾸려졌다. 당시 노동자의 힘은 큰 혼란에 휩싸였다. 처음으로 공식화된 ‘성폭력 사건’이 가져다주는 혼란함과 이에 대해 어떻게 대응하고, 어떻게 봐야하는지, 무엇이 문제인지 회원들은 고민하기 시작했다. 그 가운데 2차 가해가 발생하기도 했고, 조직문화를 혁신하기 위한 움직임도 생겨났다. 그러나 그 사건을 해결하는 것에 있어 대책위의 힘만으로는 부족했다. 결국 가해자는 ‘가해자 프로그램 이수’를 거부했고, 노동자의 힘에서 제명되었다. 생존자는 노동자의 힘을 탈퇴했다. 그로부터 3년이 지났다. 김원호성폭력사건의 피해자는 「노동자의 힘」을 통해 ‘말하기’ 시작했다. 3년이라는 기간동안, 노동자의 힘이 침묵하는 동안 생존자는 표현할 수 없는 고통에 시달렸을 것이다. 그 고통의 상처를 이제 노동자의 힘을 향해 말하기 시작했다. ‘생존자의 말하기’는 치유의 과정이지만, 그녀가 「노동자의 힘」을 통해 쉽지 않은 ‘말하기’를 선택한 것은

[격주간노동자협회] 한미FTA저지투쟁 = 반자본계급투쟁 전선의 교란?

[격주간노동자협회] 한미FTA저지투쟁 = 반자본계급투쟁 전선의 교란?

지난 4월 17∼18일 미국에서 열린 한미FTA 2차 예비협상은 한미FTA의 실체를 더욱 가시화하고 있다. 5월 19일까지 양측은 초안을 상호 교환할 것이고, 6월 워싱턴에서 열리는 1차 본협상에서 쟁점을 정리하고 7월 서울에서 열리는 2차 본협상에서 쟁점에 대한 타협안을 상호제출하기로 했다. 더불어 17개항에 이르는 협상분과를 확정했다. 다른 한편, 협상의 4대 전제조건과 관련하여 수세적 대응으로 일관했던 노무현 정권측도 공세적 논쟁에 돌입했다. 또한 그동안 다소 방관자적 태도를 유지하던 보수언론 역시 한미FTA 대세론=국익론에 힘을 실으면서, 한미FTA체결의 기정사실화에 힘을 싣는 보수대연합의 구도를 완성시키고 있다. 그러나 문제는 한미FTA저지투쟁에 나선 노동자·민중진영의 태도와 정치조직적 역량이다. 지난 3월 28일 전체 민중·사회·시민운동 진영의 총결집체로서 출발한 범국본은 4월 15일 1차 범국민대회를 무난하게(?) 개최함으로써, 한미FTA저지투쟁의 대중적 서막을 열었다. 그럼에도 범국본은 그 외형과는 달리, 현 수준에서는 민중연대 플러스 알파의 수준에 머물고 있고, 대중운동의 지도부는 이 투쟁에 대한 확신도, 뚜렷한 전략도, 명확한 목표도 제출하지 못하고 있다. 그동안 이 투쟁에 결합한 좌파단위들 역시 전민중적 투쟁을 가능케 할 구체적 계획을 제출하지 못하고 있다. 그런데, 이와 같이 한미FTA저투쟁의 주객관적 조건이

[격주간노동자협회] 평택투쟁, ‘주한미군 확장이전 저지’의 깃발 아래, 노무현 정권에 대한 총반격 투쟁을 조직하자!

[격주간노동자협회] 평택투쟁, ‘주한미군 확장이전 저지’의 깃발 아래, 노무현 정권에 대한 총반격 투쟁을 조직하자!

대추분교 폭력침탈, 96년 한총련 사태 이후 최대의 침탈 5월 4일 노무현 정권은 15,000명의 경찰과 군대, 용역을 동원해 평택투쟁의 거점이었던 대추분교를 폭력침탈했다. 3월 6일 대추분교에 대한 강제 행정대집행 시도, 3월 15일, 4월 7일의 대추리, 도두리 지역에 대한 농로 차단작업 시도가 무산되자, 급기야 군병력까지 동원한 침탈을 자행한 것이다. 그것도 4월 30일, 5월 1일 국방부와 평택미군기지확장저지범국민대책위원회(아래 평택범대위)·팽성주민대책위원회 간의 대화가 이뤄지고 5월 8일 세 번째 대화를 앞둔 시점에서 이뤄진 폭력침탈이라는 점에서, 5월 초 폭력침탈은 기만적인 기습침탈이라 할 수 있다. 5월 4일의 폭력침탈에 항의하는 5월 5일 투쟁(‘군부대 투입 규탄 및 생명과 평화의 땅 사수 범국민대회’)에 대해서도 노무현 정권은 주민 집안까지 뒤지는 수색과 폭력진압을 자행했다. 그 결과 양일간에 걸쳐 치료받은 부상자가 160명, 연행자가 625명, 구속자가 16명이나 나왔다. 더욱이 증거불충분으로 무더기 구속영장 청구기각사태가 발생하자, 검경은 보완조사를 통해 구속영장을 재청구하겠다는 강경기조로 나오고 있다. 4,5일의 폭력침탈 및 진압 이후 윤광웅 국방부장관이 민간인 시위자에 대해서도 군형법을 적용하겠다는 엄포를 놓은 것에서도 보이듯이, 국방부, 경찰, 검찰은 한통속이 되어, 평택투쟁의 불씨를 아예 꺼버리려

[격주간노동자협회] 근로자의 날에서 4.30, 메이데이로

[격주간노동자협회] 근로자의 날에서 4.30, 메이데이로

‘근로자의 날’에 대한 추억 – 기념식, 표창장, 타월, 체육대회… 1970∼80년대 메이데이는 없고, 오로지 근로자의 날만 있었죠. 일반대중은 메이데이에 대한 어떤 정보도 없었어요. 80년대 초중반 광주항쟁 이후 현장 물밑에서 민주노조투쟁이 터져나오면서 3월 10일의 의미에 대해 생각하기 시작했어요. 근로자의 날은 당시 한국노총이 자본과 권력에 의해 탄생한 것을 기념하는 날이었죠. 그래도 3월 10일은 나름의 의미(?)는 있었어요. 노동자의 날로서의 의미가 아니라, 지역의 상층노조 간부들과 경찰서, 시청 간부들이 모여서 기념식을 하는 날이었죠. 보통 극장을 빌려서 모범근로자 표창을 했어요. 표창을 받으면 여러 혜택이 있는데, 대표적으로 택시 노동자는 개인택시를 받는 지름길이었어요. 표창에는 여러 가지가 있는데, 노동부장관상, 경찰서장상, 시장상 등등. 표창은 한 20명한테 주는데, 규모있는 노조들이 주로 받았죠. 거기에서 조합원이 표창을 받으려면 지부장이나 분회장에 잘 보여야 되고, 지부장이나 분회장은 지역협의회 의장에게 잘 보여야 됐어요. 그렇지 않으면 특혜가 전혀 없으니까 로비로서 이루어지는 행사였어요. 그래도 노조간부들이 상을 받으면 가문의 영광으로 여기는 게 그 당시 분위기였어요. 또 지역의 한국노총 지역협의회는 나름대로 자신들이 노동운동(?)을 한다고 과시하는 장이었어요. 시장이 나왔다, 서장이 나왔다고 하면서

[격주간노동자협회] 노동운동에 침투한 프락치를 척결해야 노동운동이 바로 선다

[격주간노동자협회] 노동운동에 침투한 프락치를 척결해야 노동운동이 바로 선다

계급적 원칙을 이탈한 노동운동 비판 팔순의 나이답지 않게 정정하신 선생은 메이데이를 맞는 소회를 묻자, 민주노총과 현 노동운동에 대한 쓴소리부터 날리신다. 민중연대의 건설과정에 참여했지만, 민주노총 변절, 어용화를 충실히 추종하고 노동운동의 진정한 뜻을 대변하는 것 같지 않아 관여하지 않습니다. 해방직후 민전(민주주의 민족전선)과 같이 민중세력이 자본과 권력에 투쟁하는 그런 방향이 아니어서, 변질된 민주노총을 추종하며 노동자 대중의 조직과 투쟁의 원칙을 저해하고 있어요. 그래서 참여하지 않고 있고, 잘못을 누차 지적했어요. 노동자계급의 투쟁이 노동운동의 출발인데, 시카고의 피맺힌 투쟁으로 노동운동을 국제적으로 확인한게 메이데이죠. 그러나 오늘날 메이데이 정신에 이탈된 기만적인 노동운동이 주류를 이루고 있어요. 메이데이 정신에 의거해서 잘못된 것을 바로 잡는 것을 당면과제로 삼아야 합니다. 민주노총에 쓴소리를 해야겠는데, 언론이 만들었다고 하지만 민주노총 상층은 파벌로 구성되어 있어요. 이 파벌이 노동운동의 현실인양 되어 있는데 이를 타파해야 진정한 노동운동이 될 수 있습니다. 중앙파, 국민파, 현장파 등 파벌은 원래 존재할 수 없는 것이예요. 노동자계급이 투쟁으로 자본가계급을 깨부수는 게 노동운동인데, 노동운동의 본령에서 계급전선에서 이탈한 분자들이 노동운동을 개량화해서 파벌로서 존재하는 거예요. 노동운동에서 파벌은 자본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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