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기범

아이들과 함께 나눈 평화, 저 땅의 피흘림

아이들과 함께 나눈 평화, 저 땅의 피흘림

잠이 깰 무렵 무슨 소리인가에 눈을 떴다. 수사님이 일어나는 소리. 잘 주무셨냐고 묻고 다시 돌아눕는데 창 밖으로 두둑두둑 무언가를 두들기는 소리가 났다. “수사님, 비와요?”, “어, 비가 오네.” 비가 오면 어떻게 하나 하는 걱정을 하다가 또 돌아누웠다. 수사님이 얼굴이 좋지 않아 보여서 몸이 안 좋으신지 물으니 자는데 허리가 배겨서 그렇다 하신다. 전에도 종종 그런 말씀을 하시곤 했다. 자동차를 오래 타거나 깔고 눕는 이불이 얇을 때. 몸이 마르게 되니 오래 앉거나 눕는 일로도 뼈가 배겨 힘이 든다. 그리고 나는 다시 잠에 들었는데 잠결에 아는 분 목소리가 들린다. 수사님은 아마 책상에 앉아 컴퓨터로 일기를 쓰고 계셨는지 누군가 문을 열고 들어오니까 “어, 어떻게 여기를 왔어?” 하는데 그 대답을 들으니까 함양의 이주미 선생님 목소리이다. 차를 타가지고 왔다고 한 잔씩 들라면서 얘기를 나누는 소리가 들렸다. 그래서 나는 자리에서 일어나지도 않은 채 “이주미 선생님 오셨어요?” 하고 인사를 건넸다. 그러니까 내가 누운 쪽으로도 이주미 선생님이 가까이 오셨고, 차 드시겠느냐고 물었다. 아직 눈도 제대로 못뜨고 있는 터라 차를 마실

그럴 때 평화는 저절로 올 거야

그럴 때 평화는 저절로 올 거야

춘천가는 길 (2004년 9월 16일) 어린이신문에 이어 쓰는 글을 쓰느라 새벽에야 잠이 들었다. 오늘부터 춘천, 시흥, 인천, 임진각, 서울, 청와대로 날마다 옮겨 다니는 일정을 생각하면 미룰 수가 없었다. 그리고나서 자고 일어나 원고를 보낸 뒤, 옷가지며 짐가방을 챙기고 나니까 어느 새 기차 시간이 되었다. 순례단원들은 어제 하루를 합정동에 있는 수도원에서 묵고 거기에서 순례단 봉고로 출발을 하는데 나는 다시 합정동으로 되돌아갔다가 그 차를 타고 갈 것 없이 바로 청량리에서 기차를 타기로 했기 때문이다. 시간으로 보아도 그게 훨씬 덜 들고, 힘이 드는 걸로 봐서도 그게 훨씬 났다. 그리고 무엇보다 기차가 타고 싶었다. 그런데 이러다 저러다 보니 어느 새 기차 시간에 삼십 분도 남지 않았다. 짐을 짊어지고 부랴부랴 나가는데 이렇게 늦는 날은 흔하던 택시도 보이지 않는다. 큰길까지 나가서야 택시를 잡아탔다. “청량리역까지 가주세요, 거기 길 건너편 말고 미주 아파트 쪽으로 돌아들어가서 계단 앞까지 들어가 주세요.” 자동차에 달린 시계를 보니 간당간당하다. 그런데 자꾸만 빨간 신호등에 걸린다. 기사 아저씨가 어디를 가느냐고, 무엇하러 가느냐고 하는 걸 물어서 이러이러한

이 엄마 가슴을 시커멓게 태우게 한

이 엄마 가슴을 시커멓게 태우게 한

자꾸만 먹는 것 생각 (2004년 9월 14일) 여수에서 두 밤을 자고 공주로 떠나는 길, 아쉽긴 하지만 김진영 선생님을 비롯한 몇 분 선생님들은 20일에 서울에서 있을 전범 민중재판 발기인 총회에 꼭 올라오시겠다고 약속을 했다. 순례 기간 들은 말 가운데 무엇보다 가장 힘이 된 말. 여수에서 공주, 그 길 또한 만만치 않다. 일찍 움직여야 했기 때문에 아침을 서둘러 단원들이 묵고 있는 쪽으로 갔다. 단원들은 이틀을 머무는 동안 계속 여수의 순례 프로그램을 준비한 모임의 한 분이 하는 식당에서 밥을 먹는다 들었다. 우리가 너무 일찍 서둘렀는지 수사님과 내가 짐을 챙겨 그 식당으로 갔을 때 단원들은 아직 아침 식사를 하기 전이었다. 상에 둘러 앉아 기다리고 있는데, 밥을 들고 오는 건 식당 부엌이 아니라 바깥으로 난 문이었다. 동화읽는 어른 모임 선생님 한 분이 밥솥에 반찬 보따리를 들고 들어왔다. 아아, 아침은 이렇게 집에서 지어서 가지고 왔구나. 신부님이 묵은 김치를 좋아한다는 얘기를 들었다고 지난겨울에 묻은 독에서 김치를 퍼왔다고 했다. 일부러 상 쪽으로 눈을 돌리지 않는데, 그런 소리만으로도 입에

바그다드의 하늘

바그다드의 하늘

여수, 전쟁반대 이야기 (2004.09.12) 여수는 이번이 두 번째이다. 지난여름 바그다드 함락으로 이라크에서 한국으로 돌아온 뒤 전국으로 전쟁 이야기를 하러 다니던 때 처음 다녀갔다. 그 때는 함께 다니는 팀도 없었고 혼자 손수 운전을 해서 다녔는데 지금보다 일정이 더 빡빡해서 열심히 자동차를 몰고 다음 장소로 움직여도 강연 시간에 늦곤 했다. 여수에도 늦어 도착한 기억이 난다. 그리고는 세 시간 가까운 이야기, 이야기 한 번 하고 나면 몸에 기운이 다 빠지곤 했다. 이야기를 마치고 나서 따로 자리를 마련해준 분들하고 밥 한 끼 하지 못하고 다음 도시로 이동. 그 때는 그렇게 전쟁 이야기를 가지고 몇 시간 다녀갈 뿐이었다. 그리고 이번에 다시 왔다. 이번에도 그 때처럼 전국으로 도는 길에 들른 길이고, 그 때처럼 전쟁 이야기를 하러 온 것이다. 지난번과 다르다면 이번에는 밥을 먹지 않는 몸으로 왔다는 것, 그리고 함께 하는 식구들과 같이 왔다는 것. 여수 바다도 참 예쁘다고 하던데 바다가 보고 싶었다. 조금 시간이 한가하다면 바다에 나가봤으면 했다. 몸 뿐 아니라 머리도, 마음도 쉬게 하면서 한

[동화작가 박기범의 단식일지] 내가 저지르는 폭력, 그리고 전쟁

[동화작가 박기범의 단식일지] 내가 저지르는 폭력, 그리고 전쟁

남원, 실상사 작은학교에서 비가 오지 않았으면 좋았을 걸. 얇은 비옷을 걸치긴 했지만 우산을 제대로 챙기지 못하는 바람에 움직일 때마다 짐 가방이며 옷이 추적추적 젖었다. 하루 이틀 볼 일을 보고 집에 들어가고 하는 거라면야 그깟 비 좀 맞는 게 문제도 아니겠지만 계속 움직여 다녀야 하니 이 비는 그리 반갑지가 않았다. 게다가 아무리 몸이 괜찮다, 좋다고야 말하곤 하지만 그런 말이야 크게 아프지 않다는 뜻이지 기운이 없다. 오히려 평소처럼 그대로 기운이 있다고 하면 그게 이상한 말이다. 그래서 아쉬웠다. 절 안을 잘 둘러보고 싶었는데, 절 뿐 아니라 절 둘레 마을과 산도 천천히 거닐고 싶었는데 그런 것을 못했다. 나중에는 우산을 빌려 쓰고 나가도 머리와 어깨 정도만 겨우 가릴 뿐 바람 섞인 비에 온 몸이 다 젖을 정도였다. 우리는 함양에서 아침 일찍 떠나 실상사로 왔다. 다 젖은 채로 짐을 풀어 놓고 바로 큰 법당으로 옮겨 실상사에 있는 작은 학교 아이들을 만났다. 오늘은 토요일이어서 오전 공부만 있는데 그 가운데 세 시간 동안 우리 순례단과 함께 하는 시간으로

[동화작가 박기범의 단식일지] 또다시 어제오늘 죽어간 이들 앞에서

[동화작가 박기범의 단식일지] 또다시 어제오늘 죽어간 이들 앞에서

전쟁 안하고 얘기로 하면 안 돼요? 오전에는 수사님과 울진 초등학교 어린이들이 만났다. 수사님은 학교에 들어서면서부터 가방에서 사진기를 꺼내어 사진을 찍느라 교실까지 가는 길이 더디고 더뎠다. 수사님은 이라크에 함께 있을 때도 언제나 사진을 찍느라 바빴고, 특히 아이들 사진을 찍는 걸 좋아했다. 다만 그 때하고 지금 바뀐 게 있다면 그 때는 렌즈가 두꺼운 필름 사진기였는데 지금은 바로 볼 수 있는 디지털 카메라라는 것뿐이다. 그런 수사님이 초등학교에 들어왔으니 얼마나 바빴겠는가? 복도마다, 계단마다 아이들이 만들고 그린 것들로 전시해 놓은 게 가득했는데 수사님은 그것들이 너무 예뻐 하나도 놓치고 싶지 않은 모양이었다. 몇 걸음 움직이는 게 더디다. 2층, 3층 계단으로 올라가면서는 더했다. 쉬는 시간이라 쏟아져 나오는 아이들, 계단 쪽 복도 끝에 서서 가위바위보를 하고 말뚝박기를 하는 아이들, 복도마다 발 딛을 틈 없이 셋씩 넷씩 앉아 공기놀이를 하는 아이들. 꼭대기 층 5학년 4반 교실까지 가는 길은 유난히 멀었다. 교실에는 책상을 모두 뒤로 미루고 바닥에 아이들이 앉아 있었다. 아이들 수가 좀 많다 싶어 보니까 일다 님네 반인 5학년

[동화작가 박기범의 단식일지] 우리들의 하느님

[동화작가 박기범의 단식일지] 우리들의 하느님

김재복 수사님과 문정현 신부님은 오전부터 잇달아 성당에 가서 미사 시간에 성당의 신도들과 만났다. 열 시 반 울진 성당, 그리고 바로 이어서 열한 시 반 북면 성가정 성당. 울진에서는 미사 시간을 아예 두 분과 함께 하는 시간으로 대신했고, 북면 성당에서는 미사를 마친 뒤 바로 이어서 하기로 한 거였다. 두 곳 성당 모두 신도가 가장 많은 시간에 수사님과 신부님을 모시고 싶다 하여 그렇게 무리한 일정을 잡은 것이다. 그래서 울진에서 수사님이 먼저 말씀을 하고 나면 신부님이 말씀하시는 동안 수사님은 북면으로 옮겨가 있고, 북면 성당에서 수사님이 말씀을 하고 있는 사이에 신부님도 그쪽으로 옮겨와 수사님 이야기에 뒤이어 이야기를 하기로 했다. 나는 수사님이 북면 성가정 성당으로 옮겼을 때 그 때부터 함께 했다. 북면 성당 앞은 자주 오갔지만 안으로 들어가보기는 처음이었다. 참 예뻤다. 아담한 정원에 예쁘게 지은 건물. 들어가는 길에 가톨릭 단체에서 일을 하는 안원영 선생님께 성당은 다 이렇게 예뻐요? 하고 물었더니 웃으시며 예뻐서 그게 문제지요 한다. 그래, 옳다. 너무 예뻐서 문제, 너무 멋있어서 문제, 너무 커서

[동화작가 박기범의 단식일지] 평화의 바람, 철군의 바람!

[동화작가 박기범의 단식일지] 평화의 바람, 철군의 바람!

문정현 할아버지와 어린이들 맑은 토요일 아침. 오늘은 모두 부구에서 일정이 시작한다. 울진읍에서 자동차로 이십 분쯤 올라가는 곳. 오전 일찍부터 부구 중학교에서 김재복 수사님과 햇살님네 반 학급 아이들과 만남, 그리고 부구 초등학교에서 문정현 신부님과 어린이들의 만남이 계획되어 있었다. 그런데 그게 모두 같은 시간에 하는 거여서 함께 가는 사람들도 두 패로 나누어 가야 했다. 나는 문신부님과 함께 초등학교 교실로. 교실에 들어서니 아이들이 줄을 잘 맞추어 앉아 있다. 아마 담임 선생님이 아이들에게 귀한 손님이 오니까 떠들지 말고 말씀 잘 들으라 일러 놓았나 보다 싶었다. 신부님은 그 동안 억울한 처지에 놓인 사람들, 빼앗긴 사람들을 위한 일들로 살아왔다며 이야기를 시작한 뒤 군산의 미군 비행장에 대한 이야기부터 해서 미선이, 효순이 이야기까지, 그리고 도룡뇽과 지율스님, 천성산에 대한 이야기부터 시작해서 새만금 갯벌에 대한 이야기까지 그것들을 엮어 아이들에게 들려주었다. 모두 작고 약한 것에 대한 이야기였고, 결국은 생명과 자연, 평화로 이어지는 얘기였다. 그리고 나서 신부님은 이라크 전쟁을, 우리 나라 군대의 파병에 대한 이야기를 들려주었다. 주제만 놓고 보면 하나 같이 아주

[동화작가 박기범의 단식일지] 침략군대를 보낸 나라의 백성이 걷는 길

[동화작가 박기범의 단식일지] 침략군대를 보낸 나라의 백성이 걷는 길

파병연장동의안 예상 못한 바 아니었지만 국방부가 파병연장 방침을 확정했다는 보도가 나왔다. 그리고 바로 열릴 정기 국회에서 연장 동의안을 처리하기 위한 준비에 들어갔다 한다. 지난 해 12월 연장 동의안을 낼 때 제안 이유를 살펴보면 도무지 말도 되지 않는 소리들만 늘여 놓았다. “평화애호국가로서 테러행위 근절을 위한 미국의 행동을 지원하는 국제적 연대에 동참함으로써 세계평화와 안정에 기여함은 물론, 한-미 동맹관계의 공고한 발전을 도모하고자 파견된 국군부대의 파견기간을 1년 연장하려는 것임.” 반박의 가치도 느끼지 않는다. 테러행위 근절을 위한다니? 결혼 잔치를 하는 자리에 폭탄을 쏟아 붓고, 어린아이까지 조준 사격을 하는 일보다 더 끔찍한 테러라는 게 어디 있나? 한 마을의 물과 전기를 다 끊어 놓고, 집 밖으로 나오는 사람이면 누구를 막론하고 다 죽여대는 짓보다 더한 테러가 도무지 어디에 있다는 말인가? ‘테러행위를 근절’하기 위한 거라면 미국의 침략행위에 맞서야 한다. ‘세계평화와 안정에 기여’하려면 점령군을 당장 떠나게 해야 한다. 이라크는 평화로운 나라였다. 평화를 깬 것은 침략군이고, 평화가 오지 못하도록 하는 것은 점령군이다. 결국 ‘동의안 제안 이유서’에서 밝힌 내용 가운데 말이 되는

“수천 수만의 희망을 안고 다시 청와대로 올 것”

“수천 수만의 희망을 안고 다시 청와대로 올 것”

지난 7월 26일 단식기도를 시작해 9월 3일로 단식 40일을 맞은 김재복 수사가 단식을 계속하면서 전국을 도는 단식평화순례를 한다고 밝히고 더욱 강도높은 투쟁에 나선다. 단식평화순례는 울진에서 단식 26일을 맞고 있는 동화작가 박기범 씨와 함께 진행된다. 단식평화순례는 울진을 시작으로 전국을 돌아 다시 서울 청와대 앞으로 온다는 계획이다. 김재복 수사는 3일 오전 기자회견을 통해 “노무현 정부가 도둑 파병을 강행함으로써 우리국민을 전범 국가의 국민으로 전락시키고 말았다”면서 ” 비생명적이며 반평화적인 추가파병은 돌이킬 수 없는 재앙이 되어 노무현 정부에게 부메랑으로 돌아올 것”이라고 밝혔다. 그러나 김재복 수사는 파병철회 투쟁을 통해 많은 가능성과 희망을 보았다고 전했다. 김재복 수사는 “단식 41일째의 첫 걸음은 모든 생명과 평화를 위하여, 두 번째 걸음은 한국군의 완전한 철군과 이라크 평화를 위하여, 세 번째 걸음은 단식평화 순례길에서 만나게 될 모든 평화의 고리들을 위하여 내딛을 것이며 수천 수만의 희망을 안고 다시 이곳 청와대로 돌아올 것”이라고 밝히고 “생명평화의 길에 여러분을 초대한다”고 밝혔다. 이번 단식평화 순례에는 평화유랑단, 천주교 제단체, 평화를 바라는 여러 시민사회단체와 개인들이 순례에 함께 한다. 김재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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