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기범

[동화작가 박기범의 단식일지] 내 안의 미국, 우리 안의 미국

[동화작가 박기범의 단식일지] 내 안의 미국, 우리 안의 미국

바빴다 바빠졌다. 어제 회의에서 짠 울진 순례 일정을 준비하는 데 해 놓을 일이 많다. 햇살 님이나 일다 님은 고장 안에 있는 학교 선생님들께 연락을 해서 수사님이나 신부님이 아이들과 어느 날, 몇 시에 만날지를 확정지어야 했다. 그리고 성당 쪽에 알아보아 성당을 찾는 군민들과 만나 이야기를 나누는 자리 또한 그게 가능한지, 날짜와 시간들을 알아봐야 했다. 그 밖에 다른 작은 모임들. 일다 님이 함께 하는 엄마들 동화 모임이랄지, 바라 님이 강습하는 어머니들 풍물패랄지, 순례단이 울진에 머무는 동안 그런 크고 작은 모임들과 어떻게 만나게 해주고, 어떻게 평화 이야기를 나누어갈지에 대해 하나 하나 다 짜야 했다. 그런데 적어도 내일부터는 현수막이며 초대장, 포스터 따위 홍보도 나가야 하고, 미리 집회 신고도 내 놓아야 서둘러 알아보고 확정을 지어야 했다. 그러면서 동시에 평화바람 쪽 분들, 수사님, 민중법정 제안팀과도 준비하고 있는 내용을 수시로 소통하면서 공유해야 했다. 바쁘지만 바빠도 일이 되어 가는 모습이 눈에 보일 때는 마음이 한결 좋다. 몸이 바쁘고, 손이 바빠야지 그게 아니라 무얼 할지 몰라하면서 마음만 바쁠 때는

[참세상사람] “철군은 항의가 아닌 이기려고 달려드는 싸움이어야 “

[참세상사람] “철군은 항의가 아닌 이기려고 달려드는 싸움이어야 “

지난 29일 김재복 수사가 단식을 하고 있는 청와대 분수앞 농성장. 울진에서 철군을 위한 농성과 릴레이 단식을 진행하고 있는 울진평화모임 회원들과 같은 모임 소속인 동화작가 박기범 씨가 농성장을 찾았다. 공교롭게도 이날은 평화바람 문정현 신부와 오두희 활동가도 김재복 수사를 찾아왔다. 분위기는 화기애애했다. 평화바람이 울진을 한번 방문하자, 이런 얘기가 나오는가 싶더니 김재복 수사도 “나도 여기 박혀 있을 것이 아니라 지역을 돌아다니며 단식 순례를 해야겠다”고 말한다. 동화작가도 같이 순례를 하겠다는 말도 나온다. 철군 투쟁 만담으로 웃음꽃이 피어난다. 알려진 바로는 8월3일 선발대 출국 이후 철군을 위한 단식, 농성, 시위를 하고 있는 곳은 두 곳이다. 한 곳은 청와대 앞이고 다른 한 곳은 새롭게 반전운동의 메카(?)로 떠오르고 있는 울진 군청 앞이다. 울진의 철군 투쟁이야기는 이렇게 시작된다. 대게가 유명하고 10월에는 송이가 좋다는 울진 바닷가에 동화작가가 정착을 했다. 동화작가는 여차 저차해서 그곳 초등학교 선생님들과 알게 된다. 그런데 알고 보니 초등학교 선생님들도 뭔가 한 가닥 하는, 인권과 평화를 제대로 알고 있는, 전교조 활동을 하는 선생님들이었다. 이들은 다들 이대로 있을 수

[동화작가 박기범의 단식일지] 길을 떠날 준비

[동화작가 박기범의 단식일지] 길을 떠날 준비

마지막 출국이 있던 날 – 서울 (28일) 서울까지 가는 게 무리라는 걱정도 있었지만 올라가기로 했다. 더 일찍 나섰어야 하는데 꼭 마쳐주어야 하는 일이 있어서 열 한 시나 되어서야 출발할 수 있었다. 바라님과 바하님이 함께 올라갔다. 서울까지는 쉼 없이 쌩쌩 달려야 다섯 시간. 넉넉히 쉬면서 가면 그보다 한 두 시간은 더 걸리는 길이다. 그래서 나는 미처 다 마치지 못한 일을 하겠다고 뒷자리에 앉아 노트북을 켰다. 죽변을 지나고 부구를 지나 원덕, 삼척을 지나는 길. 멀미가 심하게 왔다. 괜찮다고, 괜찮을 거라고 말하곤 했는데 제대로 혼이 나는 것 같았다. 스무 날이 넘게 아무 것도 먹지를 않고 있으니 속이 온전하다면 오히려 그게 이상하겠지. 컴퓨터를 덮고 옆으로 엎드리듯 쓰러져 뱃속이 편안해지기를 기다렸다. 그러다 나도 모른 사이 잠이 들었다. 여주를 지날 때가 네 시 반쯤 되었나? 동서울 톨게이트를 나갈 때는 다섯 시 이십 분쯤 되었다. 종묘 집회에 가 있는 바끼통 회원이 전화로 일러주길 집회가 썰렁하단다. 학생들이 좀 있고, 기껏해야 300명 정도 된다 한다. 300명이라고? 이 나라에서 침략군대를

[동화작가 박기범의 단식일지] 불안한, 너무나도 불안한

[동화작가 박기범의 단식일지] 불안한, 너무나도 불안한

전범 민중재판운동 인권단체 모임에서 ‘전범 민중재판’을 위한 간담회가 있다는 얘기를 얼마 전 들었는데 그게 어제 있었던 모양이다. 가까운 곳에서 하는 거면 직접 가서 보고 싶다는 생각을 했다. 그러던 게 오늘 인권하루소식을 보니 어제 있은 간담회를 요약해 소개해주고 있다. 이 민중전범 재판 운동은 우리 나라 뿐 아니라 나라밖에서는 벨기에와 영국, 일본, 독일에서 벌써 진행되고 있다고 한다. 그리고 엊그제 본 신문에는 미국에서도 공화당의 전당대회를 사흘 앞두고 부시에 대한 시민법정을 열 것이라는 기사도 있었다. 여기에서 우리 나라의 민중재판은 미국의 점령 뿐 아니라 한국의 파병이 전쟁범죄라는 것을 뚜렷이 밝혀 내고, 그것을 통해 이러한 범죄 행위에 대해 마땅히 다루어야 함에도 입을 다물기만 하는 국제기구들을 압박하는 데에 그 목적이 있다. 지금도 엄연히 국제형사재판소(ICC)가 있지만 이 엄청난 범죄 앞에서 어떤 구실도 하려들지 않는다. 헌법을 어긴 대통령, 국제법을 어긴 나라의 책임자들을 그 누구도 심판하지 않는다면 그이들을 심판해야 하는 권리이자 의무는 당연히 우리 민중에게 있다. 참고로 유엔에서 오랫동안 일한 인권변호사 디아즈 씨는 지난 7월 말 한국에서 한 강연에서“한국군 이라크파병이

[동화작가 박기범의 단식일지] 스물 넷의 목숨, 사만 명의 목숨

[동화작가 박기범의 단식일지] 스물 넷의 목숨, 사만 명의 목숨

스물 넷의 목숨, 사만 명의 목숨 오늘 하루만 해도 스물 넷이 죽었다고 한다. 팔루자 최소 넷, 아마라 최소 열 둘, 나자프 최소 여덟. 이렇게 수를 헤아리면서 점점 나도 목숨이 죽어 가는 것을 숫자로 읽고, 숫자로 기억하려 한다. 오늘 하루 죽은 스물 네 명의 사람들 또한 모두 사랑하는 식구가 있겠지, 그이가 만약 아버지라면 굵은 수염을 부비며 사랑했을 아기가 있겠지, 그이가 만약 사춘기를 지나가는 소년이라면 풋사랑에 빠져드는 여자친구가 있었는지도 모르지. 내일이 돌아오면 고백을 해야지 하며 마음으로 수줍은 용기를 키우고 있었을지도 몰라. 그이가 만약 가축을 치는 농사꾼이었다면 새끼를 밴 양을 보면서, 달걀을 품는 닭을 보면서 앞날에 대한 꿈을 꾸었는지도 모른다. 아침저녁으로 어미 양을 들여다보면서, 닭 모이를 주러 나가면서……. 그런 사람들, 우리와 똑같이 꿈이 있고, 사랑을 나누며 살아가는 그이들이 하룻밤 사이에 또 스물 넷이 죽었다. 당장 끝내야만 하는 이 전쟁, 하루라도 앞당겨 끝내면 그와 같은 목숨을 최소한 스물은 더 살릴 수 있다는 말은 과장이 아니다. 최소 하루에 스물 가까운 사람들이 죽어가고 있는 것이다. 사랑하는

자이툰 본진 출국, 28일

자이툰 본진 출국, 28일

바끼통(http://cafe.daum.net/gibumiraq) 회의 밤 열 시부터 바끼통 회의가 있었다. 보통 한 번 하면 새벽 두세 시까지 하게 되는 회의다. 전에는 주마다 한 번씩 하던 것을 요사이에는 달에 한 번씩 하고 있다. ‘바끼통’이라는 요상한 이름을 가진 모임은 무어 달리 설명할 것 없이 그냥 전쟁을 반대하는 사람들이 모인 동아리라 하면 틀리지 않다. 그야말로 아무 것도 아닌 보통 사람들의 반전평화모임, 이 모임은 이라크전쟁이 일어나기 직전부터 지금까지 아주 질기게 활동을 해 오고 있다. 감동을 주는 사람들, 감동이 있는 모임. 오늘 회의에서 나눌 것은 크게 셋. 하나는 이동화가 이라크로 떠나기 전부터 얼핏 이야기했고, 얼마 전 메일을 보내와 정식으로 제안한 것, 그리고 또 하나는 이동화의 이라크활동 재정 후원 계획, 세 번째는 오늘로 단식 30일을 넘기고 있는 수사님을 지원하는 문제에 대한 거였다. 먼저 첫 번째 것. 동화가 이번에 다시 메일을 보내 제안한 것은 동화가 지내는 마을 둘레의 이라크 아이들과 한국의 아이들이 서로 편지 교환을 할 수 있게 도와주자는 것이다. 하지만 지금 이라크로는 직접 편지를 보내고 받을 수 없으니,

힘내라, 이라크! 힘내자, 철군!

힘내라, 이라크! 힘내자, 철군!

힘내라, 이라크! 텔레비전이며 신문이며 온통 올림픽 이야기지만 올림픽 이야기만 나오면 바로 건너 땅에 벌어지고 있을 폭격과 전투가 겹쳐지면서 눈살이 찌푸려지곤 했다. 일요일(14일) 밤, 서울에서 내려온 이들에, 이곳 울진 분들 몇 사람이 집에 와 있다가 텔레비전을 켜고 같이 뉴스를 보았다. 텔레비전 뉴스는 잘 보지도 않지만, 가끔 보기만 해도 올림픽 얘기 말고는 다른 얘기는 거의 못 보았다. 어제도 아홉 시 뉴스를 보면서 이게 스포츠 뉴스인지, 아홉 시 뉴스인지 참 너무하다 싶었다. 다른 곳으로 한참 눈을 돌렸다가 다시 텔레비전 화면을 보니 아주 낯익은, 그리고 그리운 모습 – 나르길라(물 담배)를 물고 있는 사람들. 이라크에는 물 담배를 놓은 가게가 많다. 마치 우리 나라의 찻집처럼 탁자에 소파를 양쪽으로 놓은 자리들을 여럿 갖추어 놓고서 물 담배를 피울 수 있게 하는 가게가 있는가 하면 식사도 할 수 있는 식당을 겸한 곳도 있다. 사람들은 물 담배를 물고 앉아서 이야기를 나누거나 가게 안에 있는 텔레비전을 보거나 한다. 그런데 바로 그 장면이 뉴스에서 나오고 있었다. 물 담배를 입에 문 채 활짝

[동화작가 박기범의 단식일지] 미친개, 제국의 전투기

[동화작가 박기범의 단식일지] 미친개, 제국의 전투기

장터 토요일은 낮부터 군청 앞에 나가 농성을 한다. 그래도 ‘군청’이 있는 읍내이지만 토요일 오후면 길에는 벌써 사람들이 없다. 평일에 일곱 시까지만 하고 들어오는 까닭도 그렇다. 일곱 시, 평해로 들어가는 막차를 보내고 나면 읍내는 잠든 듯 조용해진다. 그렇다고 해서 그 전까지는 사람이 많은 것도 아니지만. 책방에 맡겨두고 다니는 시위 물품 – 피켓들이며 책상, 파병철회 우산, 모금함, 자리, 문구류 따위 – 을 챙겨 군청 앞으로 나갔다. 아직 다른 분들이 나오지 않아 도토리 님과 둘이 그것들을 옮겨 농성장 모양을 갖추는데, 버스 정거장에는 사람들이 무척 많았다. 이렇게 사람이 많은 건 꽤 오랜만인 것 같다. 학교들이 하나 둘 개학하고 있다는 게 실감이 난다. 엊그제까지만 해도 교복을 입은 학생들이 한 떼가 되어 있고, 긴 걸상에는 오늘따라 보따리 하나씩을 차지하고 있는 할머니들도 참 많다. 사람들 사이로 들어가 종이학 피켓부터 상황판, 그림판, 구호를 적은 판 들을 군청 담장에 주욱 세워놓았다. 어느덧 피켓은 아주 많이 늘어나 군청 담장 한 쪽을 다 두를 수도 있을 정도다. 방학이어서 나와보지 못하던 학생들,

[동화작가 박기범의 단식일지] 지율, 김재복, 목숨을 건 싸움

[동화작가 박기범의 단식일지] 지율, 김재복, 목숨을 건 싸움

청와대 가는 길 정말 가도 되는 건지, 괜찮은 건지 겁이 났다. 가봐야 굳이 드릴 말씀이 있는 것도 아닌데 괜히 가서 힘들게만 하는 건 아닌가 싶었다. 몸 힘들 때면 사람 하나 만나는 게 얼마나 어려운가? 다른 무엇보다 사람에게 치이는 일이야말로 정말 기운을 잃게 하는 일일 텐데 말이다. 주말에 서울 올라와 하루 더, 하루 더 있으면서 오늘 내려가기로 마음을 먹었을 때 하나 아쉬웠던 게 김재복 수사님을 한 번 못 보고 가겠다 하는 거였다. 수사님은 파병반대국민행동 지도부가 파병철회를 위한 무기한 단식농성을 시작하던 지난 7월 26일 함께 단식을 시작했다. 여드레가 지나 자이툰 선발대는 달아나듯 몰래 떠났고, 그것을 막기 위해 시작한 국민행동 지도부의 단식농성은 그것으로 마쳤다. 여기에 수사님은 오히려 이런 때야말로 더욱 중요한 시기인데 그대로 단식을 접어버리면 어떻게 하느냐며 명동성당에 폈던 농성장을 청와대로 옮겼다. 그렇게 길가에 나와 굶기 시작한 게 오늘(8월 18일)로 스물 나흘 째. 수사님의 싸움은 외로울 것 같았다. 얼굴이라도 한 번 뵙고 가야지, 이렇게 응원하고 있다고, 함께 하고 있다고 힘을 드리고 가야지 하면서도

[동화작가 박기범의 단식일지] 침략군을 보낸 나라의 백성

[동화작가 박기범의 단식일지] 침략군을 보낸 나라의 백성

침략군을 보낸 나라의 백성 어쩔 수 없이 나는 침략군을 보낸 나라의 백성이 되었다. 이 나라는 침략자들과 한 패거리가 되어 그 땅 사람들을 죽일 것이고, 그 땅 사람들을 죽여 빼앗을 것이다. 내가 아무리 이 전쟁이 시작하기 전부터 반대했고, 우리나라의 군대를 보내는 것에 반대를 해 왔다 할지라도 어쨌든 나는 침략군을 보낸 나라의 백성이다. 내가 먹게 될 음식, 내가 집에서 켜는 전깃불, 내가 물을 데울 때 쓰는 가스, 먼 길을 갈 때 타는 버스……. 그 모든 것들에는 이미 침략과 전쟁으로 죽어간 이라크인들의 목숨이 스며 있다. 내가 세금을 내거나 내가 낼 기름 값, 가스 값, 버스 값, 음식 값 따위들은 그 값은 모두 이 전쟁과 관련이 없을 수 없기 때문이다. 그러한 값이 올랐다면 그건 이라크로 보낸 군대의 총과 탱크를 마련하느라 더 높은 세금이나 물건 값을 내게 되는 것이기 때문이다. 거꾸로 그 전보다 값을 덜 내게 된다 해도 내가 이 침략과 약탈의 공범자가 되는 건 마찬가지다. 만약 세금이나 물건 값이 내려간다면 그건 수많은 이라크인들을 죽이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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