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평화누리통일누리] 부산에서 평화협정 실현 한마당을 참관하다
서울 평화 협정 대회에 다녀왔다. 한편의 스펙타클한 영화를 본 느낌이다. 연출자와 출연자들이 모두 완성도 높은 작품을 추구하는 듯 보였다. 그래서 감상이 조금 강하다. 그래서 이제는 조금 여유를 가지고 말할 수 있다. “평통사는 평화와 통일이라는 수사뿐 아니라 실제로도 젊음을 지향하고 사고가 유연한 단체이다”라고. 이유는 간단하다. 그들은 현실에 뿌리를 두고 깊이 연구하고 실천적 대안을 고민한다. 그리고 실천은 항일무장투쟁의 혁명적 의지를 현장에 투영시킨다. 평통사는 1994년생이며 중학생 정도의 나이에 한반도의 상황을 꿰뚫고 평화와 통일의 대안을 구체적으로 내놓고 있다. 그래서 우리가 평통사를 평화 통일 운동의 ‘젊은 상상력’으로 호명하는 것은 단지 수사적 표현이 아니다. ‘발상의 전환의 귀재들’, ‘좌우파를 아우르는 상상력’ 이라는 다양한 호칭과 수사들이 계속 뒤따랐으면 좋겠다. 내가 평통사의 일원이 된 것을 스스로 자랑하게 되었으니 남들이 나보고 선술집에서 소주 몇 잔 들어가서 취기어린 상태의 주절거림이라고 해도 좋다.
바꾸어 말하자면 나는 평통사와의 진정한 만남 이전에 그 활동에 대해 수사적 차원에서의 평화 단체 정도로 조금은 편견을 지니고 있었다는 말이기도 하다. 그냥 자주파 경향의 조금 유연한 통일운동단체이겠거니 생각했다.
사실 평통사의 활동에 떠밀리듯이 참여하면서 자신의 의지가 동반되지 않았기에 또 그렇게 물결치는 대로 빠져나오면 되겠지 생각하였다. 명분은 만들기 나름 아닌가? 하는 것이라곤 인원 동원 밖에 없지만 서울 평협 대회를 준비하면서, 내심 알고 싶었던 것은 박석분, 유한경 그리고 오혜란 등이 가지고 있는 듯한 ‘젊음’의 실체였다. 그들을 알게 된 뒤 난 평통사를 의미 있게 느끼기 시작했다. 사실 아직 누가 누구인지 번지수 찾기도 쉽지 않다. 막가고 싶지는 않지만 인상파 화가가 된 느낌으로 막 말하는 것이다. 평통사에는 김종일, 유영재, 박석진, 고영대도 있고 강정구도 있지만 단순히 강렬함과 우직함과는 다른 젊음의 가능성을 그 여성 동지들에게서 느꼈다. 단순히 발랄하다 경쾌하다가 아니다. 정확히 잡히지는 않는다. 활동 방법의 새로움을 젊음이라고 부르는지도 모르겠다. 정작 중요한 것은 변화하는 현실을 인식하고 형상화하여 대중의 에너지를 응집시켜 폭발케하는 새로운 사회변혁적 기획 아닌가. 그 기획은 사람이 한다. 그런 기획에 대한 실낱보다 조금 더 큰 기대와 실천에 대한 공감이 그들에게 젊음을 느끼게 한다. 아니 그런 영웅에 대한 희망과 변혁 운동에 대한 간절한 바램 때문에 나는 평통사가 젊어야 한다는 당위적 요청을 하게 하는지도 모르겠다.
최용호(부산평통사)
2009.09.03 11:35