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자유주의

“교육문제, 통합적 비젼 속에서 풀어나갈 것”

“교육문제, 통합적 비젼 속에서 풀어나갈 것”

연구자 및 활동가들을 결집해 연구 역량을 집중하고, 교육문제를 통합적 비젼 속에서 각 영역 사업들을 펼쳐나가고자 한다. 과학적으로 교육문제를 분석하고, 논리를 생산하고, 사업프로그램을 만들어내자

신자유주의적 뉴딜의 망상

신자유주의적 뉴딜의 망상

한국판 뉴딜은 개념이나 용어사용법에서 결코 뉴딜을 차용할 수 없는 상반된 정책인 셈인데, 이런 신자유주의 정책을 뉴딜이라고 부르는 도착적인 시대에 우리가 살고 있는 것이다.

[다산인권] 민중 저항행동 잇따라 열려

[다산인권] 민중 저항행동 잇따라 열려

민중의 생존과 인권을 침해하는 정부의 정책에 저항하는 행동이 잇따라 열린다.

국보법 폐지와 신자유주의 개혁세력의 생각

국보법 폐지와 신자유주의 개혁세력의 생각

대중들의 직접적인 정치적 의사 표시라 할 수 있는 집회와 시위 등의 행동에 대해서는 폴리스 라인 안에 가두고, 이를 어겼을 때 단호히 단죄해 나가겠다는 것이 신자유주의 개혁세력의 음모

전쟁과 신자유주의적 금융세계화, 지속적인 투쟁에 대하여

전쟁과 신자유주의적 금융세계화, 지속적인 투쟁에 대하여

들어가며 70년대 중반 미국주도 세계자본주의는 위기에 빠진다. 65년 경부터 하락하던 이윤율은 결국 경제위기를 야기하고 말았다. 5-60년대 미국주도 세계자본주의의 황금기는 그렇게 막을 내린다. 각국에서 신자유주의 정책이 도입된다. 케인스주의 시대에 억압된 소유-금융이 권력을 되찾으면서 발언을 하기 시작하였다. 노자타협은 해체되었고 노동의 신축화가 진행되었다. 사회복지는 축소되었고 공공부분에도 금융의 원리가 강제되었다. 외채위기를 당한 남미제국들은 구조조정을 진행하였다. 노동자와 주변-반주변의 희생을 기초로 하여 80년대 초반까지 지속적으로 하락하던 이윤율이 다시 상승하기 시작하였다. 물질적 팽창에 뒤이은 금융적 팽창이 시작되었다. 금융세계화는 두 단계를 거친다. 70년대 런던의 유로달러시장과 초민족적 은행(Transnational Bank; TNB)이 주도한 금융화가 고금리-달러강세로 외채위기로 한계를 드러냈다. 외채위기를 해결하기 위해 베이커플랜(외채상환조건의 재조정)과 브래디 플랜(외채의 증권화)이 등장하였다. 그 결과 금융자본의 형태가 대부자본(은행신용)에서 가공자본(증권)으로 변하고, 신흥공업국은 이른바 초민족적 금융자본에게 엄청난 수익을 보장해주는 ‘신흥시장’으로 변모한다. 이어 90년대 뉴욕의 증권시장과 금융화한 초민족적 자본(Transnational Capital; TNC)이 주도하는 금융세계화가 시작되었다. 초민족적 법인자본은 지주회사를 핵심 조직으로 하는 ‘산업을 지배적 요소로 갖는 금융그룹’이다. 이들에게 직접투자와 증권투자는 더 이상 구별이 되지 않은데, 증권투자가 인수합병의 주요 수단이 되기 때문이다. 금융세계화의

[세계화에 저항하라!] [기고] 전쟁과 신자유주의적 금융세계화, 지속적인 투쟁에 대하여

[세계화에 저항하라!] [기고] 전쟁과 신자유주의적 금융세계화, 지속적인 투쟁에 대하여

전쟁과 빈곤으로 수억의 민중들이 살해당하고 고통 속에 신음하고 있는 지금의 상황은 곧 도래할 '최종적 위기'의 시기, 즉 미국경제의 '좋은 시절'이 끝난 이후에 도래할 시기에 비하면 그래도 나은 상황이라고 해야 할까? 하나의 운동일 수밖에 없는 전쟁과 신자유주의적 금융세계화에 대한 반대운동에 박차를 가할 시점이다.

[주간노동자의 힘] 전지구적 반미・반전・반제투쟁의 현황과 과제

[주간노동자의 힘] 전지구적 반미・반전・반제투쟁의 현황과 과제

“오늘날 미국이 유일한 제국주의 열강이기 때문에, 전지구적 반제국주의 동맹을 건설해야 한다. 그러나 그 반제 전선에서 가장 중요한 것은 미국 내의 조직화일 것이다. 가장 효과적인 저항은 항상 국내에서 시작된다. 제국흥망의 역사가 우리에게 가르쳐주는 바는 제국의 시민들이 무한전쟁과 영구점령에 대한 믿음을 잃을 때에 비로소 제국체제의 후퇴를 강제할 수 있다는 점이다.” – 타리크 알리, “이라크의 재식민화”, 《신좌파평론[New Left Review]》, 2003년 5~6월호 국제적 차원의 계급적 역관계 21세기 초반 현시점에서 국제적 수준의 계급적 역관계는 노동자・민중에게 대단히 불리한 것이 사실이다. 과거 냉전시기에 비록 내부적으로 많은 문제점을 가졌지만, 소련을 필두로 한 사회주의 진영의 존재는 미국 제국주의로 하여금, 전면적 도발을 제어하고, 대신에 ‘저강도 전쟁’ 전략을 채택하도록 강제하는 힘이었다. 그러나 사회주의진영의 붕괴 이후, 러시아는 더 이상 미국에 맞설 열강이 되지 못했고 특히 연방 해체 이후 미국과 유럽의 포위・압박공세 속에 그 힘이 상당히 무력화되어 있다. 중국과 베트남은 이미 자본주의 체제 내부로 포섭되어 있어, 미국 제국주의에 봉쇄 당한 쿠바 사회주의를 제외하면 어떤 자본주의의 대안도 부재한 것이 현실이다. 지난 1991년 걸프전을 계기로

[주간노동자의 힘] 민주주의 문제와 신자유주의 지배전략에 대하여

[주간노동자의 힘] 민주주의 문제와 신자유주의 지배전략에 대하여

탄핵・선거정국을 지나면서 민주주의와 신자유주의의 문제는 마치 서로 상충되는 것처럼 제기되었으며, 전체 좌파 진영은 둘 사이의 관계에 대해 분명하게 인식하지 못한 채 방향성을 상실하고 표류하였다. 일부에서는 독재가 사라졌으므로 민주주의는 이제 더 이상 중요한 문제가 아니라고 보았으나, 민주주의 문제는 형식적 민주주의가 갖추어지는 것으로 더 이상 논란의 여지가 없어지는 것이 아니다. 일단은 부르주아적 정치 질서의 형식성에 가두어져 있는 민주주의의 실질적 내용을 확보하는 문제와 부르주아 민주주의의 틀 내에서 표현되고 있는 각 계급의 정치적 이해관계에 대한 이해와, 다양하게 논의되고 있는 쟁점들에 대한 정치적인 가공 능력이 요구된다. 전 사회적 관점에서 지배 계급과 중간 계급에 대해 – 단순한 의회 참여를 넘어서서 – 정치적으로 대응하는 전술의 부재는 운동에 부정적인 결과를 초래해 왔다. (낙천・낙선 운동, 촛불 부대에 대한 무기력한 대응) 나아가서는 미래 사회로의 이행과정에 ‘노동자 민중의 직접적 민주주의, 프롤레타리아트 민주주의를 어떻게 발전시켜야 하는가’ 하는 문제 역시 남아있는 과제일 것이다. 부르주아 민주주의의 한계는 민주주의를 폐기하는 것이 아니라 내용을 채우고 완성시킴으로써 지양될 것이며, 이러한 점에서 민주주의는 역사의 마지막까지 쟁점이 될 것이다.

“개편특별 좌담(2) ‘지금 자본은, 이제 민중은’

“개편특별 좌담(2) ‘지금 자본은, 이제 민중은’

김정식(반전평화공동행동), 강동진(불안정노동과빈곤에저항하는공동행동), 천보선(범국민교육연대), 배경내(인권운동사랑방), 정영섭(민중연대), 김혜진(불안정노동철폐연대) 미디어참세상 개편특별 좌담(2) ‘지금 자본은, 이제 민중은’이 6월 7일(월) 오후 7시부터 진보넷 사무실에서 열렸다. 좌담(2)는 날로 노골성을 감추지 않는 자본의 공세가 각 부분 영역에 어떻게 침투하고 있는지 살펴보고, 이에 맞서는 민중의 저항을 공유하고자 마련하였다. 크게 (1)신자유주의 세계화 공세의 부문 영역에서의 양상과 저항, (2) 이에 맞서는 민중의 저항, (3) 민중언론 ‘미디어참세상’의 역할을 주제로 다루었다. 사회는 홍석만(another0415.net) 씨가, 좌담에는 천보선(범국민교육연대), 강동진(불안정노동과빈곤에저항하는공동행동), 김정식(반전평화공동행동), 김혜진(불안정노동철폐연대), 배경내(인권운동사랑방), 정영섭(민중연대) 씨 등 일선의 활동가들이 참여하였다. 천보선 씨는 “하반기 교육시장화에 맞선 총력투쟁을 준비하고 있다. 민중진영의 교육재편화와 더불어 다른 부문보다 한 번 해볼만하다고 생각된다.”며 교육시장화 반대의 의지를 내비쳤다. 강동진 씨는 “유럽은 연금이 1% 올라가면 수만의 사람들이 함께 하는 대중시위가 일어난다. 우리도 권리 의식을 갖고 아래로부터 대중적으로 확산해 가는 운동을 펼쳐야 한다”고 밝혔다. 김정식 씨는 “시민운동계열은 철저히 국익론 관점에서, 트로츠키 계열은 자본의 제국주의론의 분석 틀에 입각해 20세기 초반과 동일하게 해석한다. 그 외 운동진영은 반전운동에 회피하거나 방기하고 있다”며 반전평화 운동에서 나타나는 편향을 지적하였다. 배경내 씨는

[특별기획] 잃은 것은 ‘여성노동권’이요! 얻은 것은 ‘법’이다?

[특별기획] 잃은 것은 ‘여성노동권’이요! 얻은 것은 ‘법’이다?

지난 10년 동안 이 땅의 여성들이 잃은 것은 무엇이고, 얻은 것은 무엇인가? 먼저 얻은 것부터 열거해보자. 여성 관련법이 정비되어서 가정폭력, 성폭력, 성매매 방지를 위한 3대 여성인권 관련법이 제정되었다. 이게 10년 동안 여성들이 얻어낸 가장 큰 성과물 아닐까? “정말 잘 됐어. 이제 감금되고, 불에 타 죽는 여성은 없어지게 됐다!” 3대 여성인권 관련법 가운데서도 특히 성매매 방지법이 제정되고 나서 내 주변 여성들이 한결같이 보였던 반응이다. 남자들의 반응은 글쎄, 별로 없었다. 남자들이라고 해서 가정폭력, 성폭력, 성매매 방지법이 생기는데 좋지 않은 건 아닐 텐데 말이다. 하지만 여성인권 관련법이 만들어졌다고 좋아라 하는 남자는 보기 어려웠다. 아직도 우리 사회는 여성인권을 남성들이 옹호하고 앞장서는 데 가부장적 시선에 주눅 들어있기 때문이다. 2001년 행정부에 여성부가 신설되었다. 그 이름도 거창한 “Ministry of Gender Equality”. 그 뜻을 그대로 옮겨보면 “성평등 부”다. 무척 놀랍지 않은가? “Ministry of Women”이 아닌 것이. 정부는 1988년부터 정무장관 제2실에 여성분야 업무를 맡긴이래 급속도로 빨리 여성들의 사회진출을 이끌어내고 여성정책을 만들어냈다. 여성들이 이제 더 이상 집에 갇혀 지낼 이유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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