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성

‘얼치기 여성부’ 자료 조작사건 전모

‘얼치기 여성부’ 자료 조작사건 전모

유력한 신문사 기자가 여성가족부를 대놓고 ‘얼치기 여성부’라고 강도 높게 비판해 화제다. 경향신문 김준 기자(사회부)는 3일자 자신의 기사인 [기자메모]에서 여성가족부가 자의적으로 왜곡 발표한 보도자료에 대해 분노를 터뜨리며 기사제목을 이례적으로 “아버지 氣 꺾는 ‘얼치기 여성부’”라고 올렸다. 김 기자는 여성가족부가 부처약칭을 ‘여가부’ 로 불러달고 할 정도로 가족정책 업무를 강조하고 있지만 실상은 튀틀려 있다고 지적하면서 ‘자녀 중 93.5%는 지난 한달간 아버지와 영화도 한번 안 봤다’ 는 내용의 지난 2일 여성가족부 보도자료를 공개적으로 비판했다. 그가 조사한 바에 의하면, 이 자료는 “의도적으로 왜곡”된 것으로 “응답자들은 ‘아버지’와 영화를 안 보는 게 아니라 ‘부모’와 영화를 안 본다고 답했는데” 여성가족부가 임의로 “ ‘부모’를 ‘아버지’로” 바꿔 발표했다는 것이다. 뿐만 아니라 “자녀와 놀아주는 아버지가 7.7%에 불과하다”고 돼 있는 자료 또한 “‘아버지와 어머니가 함께 놀아준다’는 응답을 빼고 계산한 수치” 였다고 한다. 더 기막힌 일은, 김 기자가 “왜 보도자료의 수치가 실제 조사 결과와 이렇게 다르냐”고 질의하자 여성가족부 관계자한테서 튀어나온 황당한 답변이다. “아버지의 소홀함을 부각시켜야 가정에서 활동하는 시간이 늘어나기 때문”이라고 했다나. 충분한 이유를 근거로

[성명]조배숙 의원의 “나도 여자지만 女 우대 싫다!” 발언을 지지한다

[성명]조배숙 의원의 “나도 여자지만 女 우대 싫다!” 발언을 지지한다

2006년 2월 17일자 한국일보 기사 “나도 여자지만 … 女우대 싫다”(박석원 기자)는 놀랄만한 내용을 전하고 있다. 성매매특별법과 여성할당제의 대표적 발의자 및 지지자로 알려진 열린우리당 조배숙의원이 16일 열린 MBC 100분 토론에서 당내 여성할당제와 관련하여 “나도 여자지만 … 女우대 싫다. … 여성이라고 봐주지 말라. 강하게 크고 싶다”며 분통을 터뜨렸다고 한다. 또한 함께 출연한 같은 당 김영춘 의원은 “강력한 여성지도자를 키우는 의미에서도 남녀동등 경쟁이 필요하다”고 동의했다고 한다. 우리 한국양성평등연대(평등연대)는 이러한 움직임을 조배숙 의원 등 여당 관계자들의 여성정책에 대한 방향성 선회의 신호탄으로 여겨 이를 찬성하고 적극 지지한다. 1. 여성정책의 방향은 주체적인 여성 기르는데 초점 맞추어야 평등연대가 그동안 일관되게 주장하였으며 이제 조배숙의원 등 여당 내에서도 이를 인정하고 있는 것과 같이, 여성정책의 방향성은 역사적으로 소외되고 억압되어 왔던 이 땅의 여성들로 하여금 당당히 자기 목소리를 내고 남성과 더불어 동등하게 경쟁할 수 있는 주체적 자아와 실력을 갖춘 여성을 기르는 데 있어야 한다. 그러나 여당을 위시한 여성권력계의 이제까지의 여성정책은 여성이 남성에 비해 사회적으로 불평등한 관계에 놓여있다는데 필요이상으로 집착함으로써 할당제를 통한

베티프리단, 엘리자베트 바댕테르의 길 & 정희진의 모순

베티프리단, 엘리자베트 바댕테르의 길 & 정희진의 모순

최 덕 효 (대표, 논설주간) 베티 프리단과 엘리자베트 바댕테르가 급진적 여성주의를 버렸을 때 그를 따르던 여성주의자들의 황당함이란 아마도 포레스트 검프를 따르던 일단의 군중들과는 비교가 안되게 충격적이었을 것이다. 작고한 베티 프리단, 95년 베이징 대회에서 ‘남녀 통합노선’ 주장 시몬드 보부아르의 영향을 받아 활발하게 여성주의운동에 매진하던 미국의 저명한 페미니스트이자 사회심리학자인 베티 프리단이 지난 4일 향년 85세를 일기로 별세한 소식을 여성신문 등 모든 언론들은 대서특필했지만 그에 대한 심도있는 재해석은 좀처럼 찾아보기 힘들다. 프리단은 미국 최대의 여성운동단체 전미 여성기구(NOW), 전미 낙태권행동리그(NARA), 전미 여성정치회의(NWP)를 발족시킨 바 있다. 그는 60∼70년대 활발히 여성운동을 전개한 주류여성계 인사로 84년 제럴딘 페라로 여성 부통령 후보 지명과 민주당 대통령 지명 후보대회 당시 여성 50% 할당 요구를 위해 상당한 영향력을 행사한 여성정치세력화 운동의 대모다. 그러나 프리단은 95년 9월 베이징(北京) 제4차 유엔 세계여성회의를 기점으로 여성정체성에 주안점을 둔 전투적 페미니즘보다 ‘남녀 통합노선’으로 선회함으로써 당시 급진적 경향의 페미니즘을 고수하던 기존 여성계와 작별을 고하는 충격적인 사태가 발생한다. 프리단은 “여성과 남성, 노인과 청년으로 사회계층을 분리하는 것 자체가 양극화를

너부리가 한국인권뉴스 및 평등연대에 충고하는 키워드

너부리가 한국인권뉴스 및 평등연대에 충고하는 키워드

1. (인권뉴스의 몇몇 기자들이 보여주듯) 기껏해야 ‘연대’를 사이비로 강조함시롱 열라 남성중심적 훈수만을 두려 할뿐이다. 이들에게는 들을 줄 아는(attentive) 귀가 없는 것이다. 여성운동에 주목의 눈초리를 던지는 ‘깨인’ 남성들도 알고 보면, 네트워킹에 있어서나 재정, 인력 풀에 있어서 아직도 ‘빈곤’을 벗어나지 못하고 있는 여성단체들을 여성’권력계’라 부르니, 이 ‘위축된’ 남성들의 여성권력 선망은 눈이 부실 정도다. 이들이 ‘훈수’두는 여성문제, 젠더권력 문제, 섹슈얼리티 문제에 대한 이들의 천착은 그 모호성이 태양처럼 빛난다. 한마디로, 이들은 여성들이 장구한 시간에 걸쳐서 너무나 힘들게, 그러나 조금, 너무나 조금 얻은 성과를 질투하는 것이다. 원래 지들꺼라고 생각하는 저 자지중심적 무의식땜시롱. 이런 남성들에게 지적으로 부족한 것은, 성차 및 젠더(가 가장 조밀하고 가장 방대한 권력구조라는 점)에 대한 특유의 무분별, 성차별주의일 텐데, 이것 역시 구체적으로 특수한 역사 속에 놓인 그들의 입장을 반영하는 것이기도 하다. [너부리 / 2006.1.7] 2. 생리공결제 관련 성명에 나타난 평등연대의 입장을 뜯어보면, 그들이 말하는 “평등,” “역차별”운운이나, “성을 악용하여 소기의 목적” 운운 하는 것은 정확하게 미국의 뉴라이트 일반, 특수하게는 안티페미니즘 뉴라이트 여성들이 주장하는 것과

여성운동에서 부르주아와 프로레타리아는 따로 없다?

여성운동에서 부르주아와 프로레타리아는 따로 없다?

안 빈 (한국인권뉴스 편집위원) 여성운동(특히 급진적 여성운동)은 다수 여성들의 관심사를 반영하는가. 이에 대한 엘리자베트 바댕테르(파리 이공과대학 ‘에콜 폴리테크니크’ 철학교수)의 견해는 매우 부정적이다. 자신이 행동주의적 페미니스트이기도 한 바댕테르는 여성운동이 여성의 ‘희생자 자처하기’로 말미암아 여성운동 본래의 취지를 크게 벗어났다고 단언한다. 바댕테르는 특히 미국 여성 해방운동은 여성을 남성과 대립적으로 보는 본질주의적, 분리주의적, 국가주의적 성격이라고 파악하며, 여성은 남성 폭력에 의한 피해자라는 규정아래 투쟁하는 이같은 잘못된 방식에는 사회학자들과 인류학자들의 ‘남성 지배’론이 일조했다고 비판했다. 바댕테르가 보기에 여성운동의 전술인 ‘희생자 자처하기’는 남성과 여성 사이에 발생하는 모든 차이점(차별이 아닌)을 일거에 소멸시키는 ‘요술지팡이’와 같다. 이런 방법이 때로는 이점이 없는 것은 아니지만, “파리 7구에 사는 부르주아 집안 여성과 파리 외곽에 사는 젊은 아랍 여자가 똑같은 투쟁거리를 가지고 있다고까지도 말할 수 있게” 터무니없이 비약된다. 다음은 엘리자베트 바댕테르의 책 ‘잘못된 길’ 서문 중에서 발췌한 것이다. 미국식 여성주의의 영향을 절대적으로 받고 있는 한국 사회에 의미심장한 메시지를 전하는 역작 ‘잘못된 길’ 일독을 권한다. 이 책을 두고 정희진(여성학, 서강대)은 한국에서는 급진적 여성운동조차 없었다고 강력하게 항변한

[월간평화연대] 비정규직, 불법파견, 그리고 여성노동자

[월간평화연대] 비정규직, 불법파견, 그리고 여성노동자

이렇듯 비정규노동자의 노동권이 제대로 발현되지 못하고 있는 현실에서 노무현 정권의 비정규법안은 비정규노동자의 권리 보장과 보호를 위한 실질적인 대책이 될 수 없다. 특히 파견법의 경우 자의적인 해고에 지속적으로 위협받는 불안정한 삶이 지속될 수밖에 없고, 노동조합 활동이 보장되지 않는 등 공정한 노동조건이 존재하지 않는 현 상황은 노동의 권리를 누릴 수 없는 노동자를 양산하게 될 뿐인것이다.

[월간평화연대] 군대의 여성화, 여성평화운동은 어떤 대답을 할 것인가?

[월간평화연대] 군대의 여성화, 여성평화운동은 어떤 대답을 할 것인가?

남성다움의 마지막 보루를 타파하고 말겠다는 페미니스트들의 의지는 현재 평등권을 실현했다는 차원에서 평가되기보다는 적어도 내게는 군대(군사주의)로의 여성(여성주의)의 흡수로 보인다. 물론 여성병력의 확대가 보다 일정정도 유연한 군대를 만들 수는 있을 것이다. 하지만 이것이 사회 전반적인 탈군사화에 디딤돌이 될지 혹은 걸림돌이 될지는 신중한 판단이 필요하다. 지금도 차고 넘치는 군인인데 여성도 그 수를 보탤 것이 아니가 가능하면 군축과 군대의 규모를 줄이는 방향에서 대안을 찾아야 할 것이다.

[다산인권] 행복은 출산률이 아니잖아요.

[다산인권] 행복은 출산률이 아니잖아요.

“사랑하라. 한번도 연애 안한 것처럼, 결혼하라. 앞으로 이혼하지 않을 것처럼, 아이를 낳아라. 이왕이면 많이 낳아라…그래야 오래 살게 될 것이다. 그러나 국가에게 손을 내밀진 말지어다.” 간혹 아니, 매번. 나의 생애주기를 모르는 사람들이 흔히 던지는 질문이 있다. “아이가 몇이세요?” 혹은 “아이가 몇 학년이지요?” “왜 제가 아이가 있다고 생각하세요?” “어? 왜 아직 결혼 안 하셨어요?” 물론 나의 나이 지긋한 얼굴로 보아, 추측하며 묻는 우리 사회의 인사치레이기는 하지만 여전히 우리의 사회적 담론은 결혼-출산으로 이어지는 릴레이며, 그 소속이 불분명한 나는 여전히 이방인이 되곤 한다. 허나 결혼한 상태일지라도 아이를 안 가지거나 아이가 안 생겨서 없거나, 결혼상태가 아닌 비혼의 경우에도 출산의 문제는 다각도로 나타날 수 있건만 여전히 ꡒ왜?ꡓ로 시작되는게 지금의 현실이다. 개인적으로 출산과 양육의 책임을 지고 있지는 않지만 최근 ꡐ저출산과 고령화사회ꡑ에 대한 높으신 분들의 탁상행정과 정통적 가족주의를 버리지 않는 사회적 인식을 바라보며 씁쓸함을 떨칠 수 없다. 어찌나 관심들이 많은지 처음 보는 사람에게조차 몇 명의 아이를 출산했는가에 초점이 맞춰져 있는 사회치고는 출산과 양육에 대한 기본 권리보다는 의무를 강요하는

[2005세계여성대행진] 여성들을 묶고 있는 끊어지지 않는 뫼비우스의 띠

[2005세계여성대행진] 여성들을 묶고 있는 끊어지지 않는 뫼비우스의 띠

통계지표들은 장황하게 쏟아지고 있지만, 다음에 나오는 정부의 여성빈곤 대책들은 과연 가난한 여성의 삶의 무게를 덜어주고 있는가? 2005년을 살아가는 여성이 처한 현실. 그 A B C를 살펴본다.

[질라라비] 노무현정부의 여성실업대책에 대한 평가와 이후 대안 [26호|특집3]

[질라라비] 노무현정부의 여성실업대책에 대한 평가와 이후 대안 [26호|특집3]

여성실업과 현실의 문제에 대안은 무엇인가? 근본적인 접근이 필요하다. 노동시장의 성별불평등의 해소와 본인의 선택에 의한 안정된 일자리가 요구되어진다. 한국의 노동시장구조의 안정성추구와 노동자의 권리증진, 차별적 억압해소를 기본으로 고용기회증진, 성인지적 사회보장과 노동시장구조의 시민권적 사회보장을 달성해야 할 것이다. 이러한 조건을 기본적으로 갖춘상태에서 성별영향을 고려한 적극적 노동시장정책이 이뤄져야할 것이다.

기사 330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