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주노동자

[액트] 이주노동자의 목소리로 한국사회를 발언하게 하라!

[액트] 이주노동자의 목소리로 한국사회를 발언하게 하라!

[필자주] 지금 가편 시사를 앞두고 있는 이주노동자프로젝트를 아직 섣불리 판단하기엔 이르다는 생각이 듭니다. 이후 인터뷰 영상물이 구체적으로 나오고, 진보네트워크에서 상영되고 나서 피드백을 포함해서 이주노동자인터뷰프로젝트에 대한 평가를 중심으로 백서(혹은 자료집) 작업을 할 예정입니다. 그때 좀 더 정확한 평가 작업이 이뤄질 것입니다. 이주노동자인터뷰프로젝트 스틸 작업 : 주하아린·빈진향 이 글은 인터뷰프로젝트 추진과정과 추진과정을 통해 성과라면 성과를 약식 기술했습니다. 아무래도 이주노동자인터뷰프로젝트에 대해 낯선 독자들을 위해 이해를 돕고자 서술 되었습니다. 개인의 기억에 의존한 부분들이 많기에 사실과 조금 다를 수 있고, 참가자의 관점에 따라 다를 수 있음을 전제하면서 글을 시작하고자 합니다. 시작의 풍경 작은 관심과 목소리 하나로 시작되다 이젠 기억이 가물가물한 4월. 한국독립영화협회(이하 한독협) 중앙운영위원회 회의에서 이마리오 감독(이주노동자프로젝트 총프로듀서)이 천막농성중인 이주노동자들의 연대를 이야기했다. 이전까지 한독협의 연대방식은 성명서와 집회 참가 등 보통의 시민사회단체의 활동과 거의 흡사한 형태였다. 따라서 이번에는 다른 연대방식을 고민하면서이주노동자 농성장을 방문하게 되었고, 우리의 연대의지를 농성장 이주노동자들에게 밝히고 무엇을 할 수 있을지 의논하게 된다. 사실 그때까지만 해도 어떻게 어떤 방식으로 결합할 지는 결정하지 못한 상황이었고,

[액트] 이주노동자미디어 교육

[액트] 이주노동자미디어 교육

1. 이주노동자의 상황 한국에서 이주노동자에 대한 기록은 1987년 한 일간지에 실린 필리핀 출신 이주노동자가 가정부로 일하고 있다는 기사에서부터 시작한다. 한국의 산업구조가 바뀌면서 노동력은 서비스업 등 3차 산업으로 이동됐다. 그 빈 공간을 메운 것이 이주노동자들이다. 소위 말하는 3D 업종에 이주노동자들은 한국인을 대신해서 낮은 임금을 받으며 일을 했다. 이주노동자가 먼저 있었고 그 관련법들이 이후에 만들어지기 시작했다. 하지만 그 관련법이란 것이 현실을 빗나가도 한참 빗나간 것들이었다. 현지법인연수생 제도, 산업연수생 제도는 이주 노동자들을 오히려 법의 테두리 밖으로 밀어내었다. 열악한 노동조건, 형편없이 낮은 임금, 그리고 한국으로 떠나올 때 진 빚을 갚기 위해 이주노동자들은 지정된 사업장을 떠나 불법체류자가 되었다. 2003년 7월 31일, ‘고용허가제’가 국회에서 통과되었다. 정부는 고용허가제가 불법의 신분인 이주노동자를 합법의 장으로 들여 놓았다고 선전을 했다. 하지만 고용허가제는, 단어에서 알 수 있는 것처럼 사업주가 이주노동자를 ‘고용’할 수 있도록 허가해주는 제도이다. 이주 노동자는 사업주가 자신을 고용했을 때에만 체류 비자를 얻을 수 있다. 하지만, 이 제도 하에서 이주노동자는 사업장 이동의 자유가 없다. 몇 가지 예외적인 이유로 이동을 할

[취재수첩]노동운동 안에서도 소외된 이주노동자들

[취재수첩]노동운동 안에서도 소외된 이주노동자들

25일 출근하는 길에 한통의 전화를 받았다. ‘강제추방저지와 미등록이주노동자 전면합법화를 위한 농성투쟁단’(농성투쟁단) 단원 깔람 씨가 24일 출입국관리소 직원들에게 강제 연행되어 서울출입국관리소 앞에서 규탄집회가 열린다는 소식이었다. 소식을 접하고 목동에 있는 서울출입국관리소로 향했다. 집회예정 시각인 2시가 조금 안되어 도착해보니 이주노동자투쟁 지원단체에서 나온 한 회원만이 출입국관리소 앞에서 홀로 피켓시위를 하고 있었다. “집회 시간을 잘못 알고 왔나”라는 생각이 들어 물어보니, 2시가 맞다고 한다. “참가 대오가 늦어지나 보다”라고 생각을 하고, 땡볕을 피해 그늘진 곳에 앉아 참가 대오가 도착하기를 기다렸다. 30분 가량을 그렇게 앉아 기다렸는데, 여전히 참가 대오의 모습은 볼 수가 없었다. 눈에 들어온 사람들은 급하게 소식을 접하고 달려 온 이주노동자 관련 영상을 제작하는 영상활동가들과 전경들 뿐이었다. 대오를 기다리던 중 최저임금 관련 집회를 끝낸 민주노총 산하 700여명의 대오가 이 곳으로 결합할 것이라는 소식을 들을 수 있었고, 사람들 사이에는 기대감이 전해졌다. 2년 전부터 꾸준히 이주노동자 문제를 영상으로 제작해 온 ‘다큐인’의 문성준 감독에게 여러 가지 얘기를 듣는 동안 시간은 3시를 넘어가고 있었다. 여전히 참가대오의 모습은 보이지 않았고, 영상활동가들과 각

불안정 노동과 빈곤에 대항하는 공동행진

불안정 노동과 빈곤에 대항하는 공동행진

지난 6월 5일, 불안정 노동과 빈곤에 저항하는 공동행동이 여의도에서 첫번째 행진을 진행했다. \’불안정 노동과 빈곤\’ 때문에 고통받던 이들이, \’시혜의 대상에서 권리의 주체로\’ 당당히 일어서는 첫걸음을 내디뎠다고, 이렇게 신고식을 치렀다. \”오늘 불안정 노동과 빈곤에 저항하는 공동행진을 첫번째로 시작을 합니다. 1970년도에 \’우리는 기계가 아니다\’ \’근로기준법을 지켜라\’라며 산화해 가신 전태일 열사를 우리는 기억합니다. 그 때 전태일 열사는 \’우리는 기계가 아니다\’ 라고 얘기했습니다. 정말로 기계와 같은 삶, 인간으로써 존중받지 못 하는 삶을 넘어서서 스스로 인간의 존엄성을 외친, 그리고 노동자가 이 세상의 주체일 수밖에 없다는 것을 만방에 알린 사안이었습니다. \’우리는 노예가 아니다\’ \’근로기준법을 준수하라\’ \’우리는 노예가 아니다\’ \’우리에게 노동자성을 보장하라\’ \’우리는 노예가 아니다\’ \’우리에게 노동 3권을 보장하라\’ 30년 동안 무수히 많은 동지들이 그렇게 눈물을 흘리면서 외쳐왔고 그래서 우리가 쟁취했다고 믿었던 그 권리들을, 우리는 또다시 외치고 있습니다. 도대체 무엇 때문입니까? 이 땅에 비정규직 노동자가 늘어나기 시작하고 그리고 이 땅에서 일하면서도 정당한 노동자로 대접받지 못 하는 이주노동자들이 생겨나고 노동자이면서도 스스로 노동자라고 주장하지 못 하는 많은 노동자들이 생겨났습니다.

[특별기획] ‘때리지 마세요’에서 ‘고용허가제 분쇄’ 투쟁으로

[특별기획] ‘때리지 마세요’에서 ‘고용허가제 분쇄’ 투쟁으로

신자유주의 세계화와 이주노동자 87년 동아일보에 필리핀 출신 가정부들이 서울 강남에서 일한다는 내용의 기사가 실렸다. 물론 이전부터 이 땅 어딘가에는 사장들한테 망치로 얻어맞으며, ‘망치’라는 한국말을 배우고, 욕먹고, 제복 입은 사람만 봐도 경찰 같아서 슬금슬금 일하면서 일을 했던 미등록 이주노동자들이 있었겠지만, 87년만을 놓고 보아도 한국 땅에서 이주노동자들이 일을 한 지는 벌써 18년이 되어간다. 그러나 한국 땅에서 이주노동자들이 ‘노동자’라는 이름을 얻기까지는 많은 투쟁의 역사가 있었고, 지금도 명동성당 들머리에서는 이주노동자들이 ‘노동자’라는 이름으로 살기 위해 투쟁을 계속해 가고 있다. 일하라고 소리치는 사장을 뒤로 한 채 노동비자를 받고 당당하게 일하겠다고 공장 문을 박차고 나온 이주노동자, 형처럼 동생처럼 지내던 사장이 불법사람 고용해서 벌금 내느니 차라리 나가라고 했을 때, 그 배신감에 농성에 들어온 이주노동자, 한국에 들어온 지 채 4년이 되지 않아 합법화 대상이 되었지만 본국으로 돌아갔다 오면, 다시 일자리를 구할 수 없을지도 모른다는 형들의 말에 E-9비자도 포기하고 농성에 들어온 이주노동자… 이 곳 명동 성당 들머리에는 각자의 다른 삶의 이야기를 지니고 있지만, 여기에 모인 이주노동자들은 단 한 가지 한국

이주농성단 농성투쟁 200일 집회

이주농성단 농성투쟁 200일 집회

단속추방 반대와 사업장 이동의 자유, 노동허가제 실시를 외치며 작년 11월 명동성당에서 농성을 시작한 이주노동자 농성단이 겨울이 지나고, 봄이 지나며 농성투쟁 200일째를 맞이하고 있다. 그동안 정부는 강압적인 추방정책으로 일관하고 있으며, 이로 인해 11명의 이주노동자가 목숨을 잃었다. 농성단 또한 탄압을 받아,샤말 전 농성단 대표와 헉, 케이비, 굽타 동지가 연행돼 나라로 추방당했다. 정부의 강압적인 탄압과 언제 끝날지 모르는 농성에 지치고 힘들어 하면서도 농성단은 줄기차게 지역의 동지들과 만남을 갖고, 정부의 정책에 맞서 투쟁을 하고 있다. 200일째 투쟁집회는 여러 지역에서 오신 이주노동자 분들과 많은 연대단위 학생들, 그리고 장애인 이동권 동지등이 참여한 가운데 혜화동에서 열렸다. 단속추방 중단하라! 사업장 이동의 자유를 허용하라! 실질적인 노동3권 보장하라! 노동허가제 실시하라!

“40만 이주노동자 전국적 조직 건설에 주력”

“40만 이주노동자 전국적 조직 건설에 주력”

200일 농성, 40만 이주노동자의 희망 되어 8월 고용허가제, 더욱 거센 투쟁 불러올 것

제8회 인권영화제 상영작 3편 : 그림자 인간 + 산티아고 알바레즈의 중단편

제8회 인권영화제 상영작 3편 : 그림자 인간 + 산티아고 알바레즈의 중단편

그림자 인간 ▲ 도그 필름/1999/38분/다큐/독일 ▲ 상영일정: 5월 26일 2시 서울아트시네마 (산티아고 알바레즈 감독의 작품들과 같이 상영됩니다.) <그림자 인간>은 독일에서 불법 체류자 신분으로 낙인찍혀 살아가는 한 여성의 우울한 초상, 이와 비견되는 고도화된 물질 세계를 포개어 놓으며 제3세계에서 이주한 이주 노동자들이 느끼는 절망감을 전한다. 작품은 ‘나’를 부정당하고 이주 노동자로서의 ‘우리’를 거부당한 채 불법의 껍데기에 갇혀 스스로의 목소리를 잃은 한 이주 여성 노동자가 -얼굴을 드러내지는 못한다 하더라도- 카메라 앞에 서서 스스로의 존재를 공언하는 의의가 무엇인지를 탐구한다. 그녀는 저임금에 시달리는 것은 물론, 도서관이나 병원 등의 ‘공적’ 공간에 접근할 수 있는 권리를 차단 당하고, 많은 사람들에게 둘러싸여 있을 때에도 끊임없이 긴장감을 느껴야 하는 심정을 토로한다. 감독은 주인공의 우울함이 배어있는 나레이션으로 영화의 흐름을 이끌어 가되, 중간 중간에 ‘나’가 아니라 ‘우리’를 주어로 삼아, 이주 노동자 문제의 실체에 접근하면서 이를 극복해 나가려고 애쓰는, 집단화 된 의지를 표출하는 ‘입’을 등장시킨다. ‘나’에서 ‘우리’로 탈바꿈한, 사회적으로 발언권을 갖지 못했던 이주 노동자 집단의 목소리를 실음으로서 작품은 개별 이주 노동자가 겪는 부당함의

, 조갑제가 와도 밥해줄 수 있다

, 조갑제가 와도 밥해줄 수 있다

한끼의 식사는 대접하지 못할망정 쫓아내지는 말아야죠

전국이주노동자투쟁대회

전국이주노동자투쟁대회

지난 25일, 114주년 노동절 맞이 전국이주노동자투쟁대회가 열렸다. 명동성당 농성단이 농성을 시작한 지 163일 째. 그리고 많은 이주노동자들이 \’불법사람\’으로 낙인찍혀, 쓰다버린 기계보다도 못한 취급을 받기 시작한 게 언제인지도 가물가물해 진 지금.. 한겨울이 지나고 이제 따뜻한 봄이 찾아왔지만, 그들의 처지는 그대로이며, 그들의 요구사항도 여전히 얼어붙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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