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형록 에세이] 염라대왕이 혀를 찰 사회
최형록(인문학자) 살아가면서 누구나 여러 가지 ‘충격적인 사건’을 접하게 마련입니다. 당신에게는 2003년 10월 현재 어떤 사건이 뇌리를 떠나지 않는가요? 나에게는 세 자식과 젊은 엄마가 자살한 사건이 거머리처럼 망각의 흐름 속에서 버티고 있습니다. 살려달라고 절규하는, 산고(産苦)와 희열 그 자체인 어린 자식 둘을 차례로 자유(?)낙하시키고 막내와 동반 투신한 여인. 이 여인의 행위를 두고 비정한 여자, 자식을 자신의 소유물로 생각하고 어린애의 인권을 전적으로 무시하는 여인이라고 평가하기도 합니다. 이런 판단은 일리 있는 한편 다른 중요한 차원, 자살이라는 선택의 자유의 이면인 ‘사회적 타살’의 차원을 놓치고 있는 것은 아닐까요. 약 1,350년 전의 계백장군의 비장(悲壯)한 행동이 생각납니다. 그는 나당 연합군과 황산벌에서 백제의 존망이 걸린 결전을 앞두고 패배를 예감했던지 자신의 칼에 자신과 동고동락했을 아내와 자식들의 피를 묻힙니다. 자신이 전사한 후 처자가 굴욕당하도록 내버려두고 가느니 차라리…. 황산벌과 ‘신자유주의의 내침(來侵)’, 포로가 될 처자와 유연한 노동시장거리에 내동댕이쳐질 자식들, 칼을 치켜든 계백장군의 눈동자와 자식을 치켜든 그녀의 눈동자…. 그녀의 남편, 그녀의 형제자매들, 그녀의 동무와 친구들, 그들은 그녀에게 어떤 인정(人情)을 베풀고 사회는 어떤 인권을 베풀었을까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