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권뉴스

[번역] 건강 파시즘의 역사적 기원 / Dr. Stephen Davies (역자: 최형록)

[번역] 건강 파시즘의 역사적 기원 / Dr. Stephen Davies (역자: 최형록)

스티븐 데이비스(Dr. Stephen Davies) 옮긴이의 소개 최근 강력 시행되고 있는 강제성 금연정책과 주폭과의 전쟁 등 시민 건강 및 안전과 관련된 정책은 사회적으로 어떤 의미를 지니고 있을까. 이와 관련, 끽연 자유권을 위한 조직(Forest)에서 발간한 스티븐 데이비스 박사의 <<건강 파시즘의 역사적 기원>>에서 제 1장 “건강 파시즘 사상”을 옮겨 그 이해를 돕고자 한다. 어떤 사상이나 개념을 정확히 파악하려면 그 역사를 아는 일이 필수적이다. 오늘날 한국의 민주주의의 성과와 한계를 이해하려면 18세기 “2중혁명”(얼마 전 타계한 마르크스주의 역사가 에릭 홉스봄의 규정) 즉 프랑스 대혁명과 산업혁명 이래 유럽을 비롯한 전 세계 노동자 계급의 투쟁과 성패의 역사를 학습하여 성찰해야 하는 것과 같은 이치인 까닭이다. 이 책은 제 1장 건강 파시즘의 사상, 제 2장 예방접종 논쟁 1808-1867, 제 3장 ‘사회적 위생’과 우생학, 제 4장 결론으로 구성되어 있다. *옮긴이: 최형록(인문학자) 출처: www.forces.org/articles/forest/fascism.htm 머리말 서양 대부분의 나라들에서 오늘날 개인의 자유에 가장 음험한 위협은 “건강 파시즘”의 위협이다. 이것은 여론 일반에 크나큰 영향을 끼치며 특히 정치적 엘리트에게 크나큰 영향을 끼치기에 더더욱 의미심장한, 사상과

[최형록 에세이] 건강은 \’계급\’의 산을 우회할 수 없다

[최형록 에세이] 건강은 \’계급\’의 산을 우회할 수 없다

최형록(인문학자) \”황 우석 교수팀이 혹 노벨 생리-의학상을 타게 된다면 그때를 전후해서 남한민중은 ‘유전자 치료’를 받아 무병장수하게 되는 것일까요?.. 황 우석 교수의 배아줄기세포 복제에 대한 ‘애국주의의 허풍’에 휩싸이다 보면 건강과 장수에 필수적인 ‘계급의 차원’이라는 ‘실사’를 ‘구시’하지 못하는 어리석음을 경계해야..\” 8월 하순 오후 4시 30분경일까? 한국전쟁 때 ‘을밀대의 고도(古都)’를 고도(孤都)로 만들어 버린 참극의 주인공들이 그렇게 몰려가지 않았을까 싶은, 잠자리 떼의 은빛들이 어디론가 가버린 텅 빈 마당, 화단 이슬 머금었던 나팔꽃은 더위에 지친 듯하고 연두색에서 황색으로 과육을 변모시키는 요술쟁이 감나무는 한 해의 절정을 발산하고 있습니다. 늦여름의 미풍에 화답하는 은빛 바다만큼은 아니지만 살랑거리는 감잎들 사이로 황금빛 햇살이 정처 없이 나는군요. 기억의 돋보기로 초점을 맞춘 유년의 어느 날, 감나무 뒤 돌담에 초등학생 보다 약간 키 큰 해바라기 가족이 처연히 몸을 흔들고 있습니다. 농구의 박 신자, 탁구의 이 애리사, 축구의 차범근에 어린이들이 열광하던 시절이었습니다. 근래에는 ‘붉은 악마들’에 열광하는, 유명 인사들의 아첨의 눈꼽이 낀 낙관이 비판을 압도하고 있습니다. 문제는 그 악마들이 ‘빛 좋은 개살구’라는 것입니다. 박찬호의 연봉이

[운동평론] 변혁모임의 대선투쟁에 대한 진보좌파의 태도

[운동평론] 변혁모임의 대선투쟁에 대한 진보좌파의 태도

야권연대 반대와 노동자 계급정치 강화를 기치로 내걸고 활동하고 있는『변혁적 현장실천과 노동자계급정당 건설을 위한 추진모임』(변혁모임)의 12.19 대선 대응에 대해 좌파진영 일각에서의 비판이 논란이다. 이들의 문제 제기는 크게 세 가지로 압축할 수 있다. 첫째, 부르주아 선거 무용론(無用論)이다. 코뮤니스트정치조직(CPO)에서는 지난달 19일 발표한 국제코뮤니스트전망 명의의 문건 “2012 부르주아 대선에 맞선 코뮤니스트노동자의 입장 -변혁모임과 대선 공동기구, 노동자 후보 전술에 대하여”에서, “(변혁모임은) 노동자정치를 노동자계급 고유의 영역인 투쟁의 장에서 실현하는 것이 아니라. 부르주아 선거공간에서 할 수 있다면서 그 속에서 선전선동과 조직화를 꿈꾸며 선거운동을 선거투쟁으로 미화시키고 있”지만 “노동자 계급을 위한 어떠한 성과도 선거나 그 과정을 통해 얻을 수 없다”고 말하고 “현시기 대선 정국을 둘러싼 사민주의와 동거, 의회 선거정치 몰입은 계급적 대중행동을 저해할 뿐”이라고 비판했다. 둘째, 조합주의 정치활동 한계론이다. 노동해방실천연대(해방연대)도 최근 기관지 사회주의정치신문 해방(74호) 김인해 명의의 문건 “\’노동자 대선 후보 전술\’은 역사적 퇴행이다”에서 “노동자 대선 후보 전술이 10여년전처럼 반복해서 결의되고 있”는 것은 “조합주의적 정치활동에서 비롯된 정체가 주원인”이라면서 조합운동이 “기존 정당들에게 정치적 압박이란 이름으로 청원하고 타격한 것”밖에 없어 “스스로 정치쟁점을

[최형록 에세이] 골라 골라 썩은 감자 골라 – 대선 제대로 보기

[최형록 에세이] 골라 골라 썩은 감자 골라 – 대선 제대로 보기

1. 머리말 나는 헌법을 준수하고 국가를 보위하며 조국의 평화적 통일과 국민의 자유와 복리의 증진 및 민족문화의 창달에 노력하여 대통령으로서의 직책을 성실히 수행할 것”을 국민 앞에 숙연히 선서할 사람을 우리는 선출해야 할 시점에 있다. 문제는 방금 인용한 대통령의 직책을 수행할 만한 ‘지성’과 ‘인격’을 지닌 후보자가 있는가 하는 것이다. 신한국당의 후보자로 나섰던 이한동은 자신이 내무장관 재직 시 현대중공업 노사분규에 1만 명을 투입해 사태를 진정(진정과 진압을 구별하여야 하지 않을까?) 시켰다면서 자신은 “정의가 있되 질서가 없는 나라보다 정의가 희생되더라도 질서가 있는 나라를 택하겠다”는 마키아벨리의 주장이 옳다“면서 “우유부단해 결단을 안 내리는 건 나쁜 결정보다 더 나쁘다는 생각도 하고 있다”고 말한다. 이런 자가 국민의 자유와 복리증진 및 민족문화의 창달에 노력할 수 있을까? 무질서를 질서보다 좋아하는 사람이 얼마나 될까? 질서도 질서 나름. 그 내용과 방식을 분별해야 한다면 그가 생각하는 질서란 박정희 식 질서가 아닐까? 그런 사고방식으로는 민주주의의 핵심적 절차인 ‘개방적 토론과정을 통한 최대한의 합의도출’이 우유부단으로 보일 것이다. 필자의 판단으로는 신한국당 경선에서 탈락한 이한동씨는 물론 현재 이전투구(泥田鬪狗)하고 있는대선

[운동평론]\’서울대 담배 성폭력 사건\’ 통해 본 페미니즘의 현주소

[운동평론]\’서울대 담배 성폭력 사건\’ 통해 본 페미니즘의 현주소

사회주의 페미니즘 외피 쓴 급진적 페미니즘의 패권주의 최덕효 (인권뉴스 대표) 최근 벌어진 이른바 ‘서울대 담배 성폭력 사건’에서는 한 학생회장의 인권을 무자비하게 짓밟은 국내 주류 페미니즘의 파쇼적 행태가 그대로 드러난다. 이는 결코 이해당사자 개인들만의 문제가 아닌 조직이 개입된 일그러진 여성운동의 현주소라는 점에서 각별히 주목된다. \’서울대 담배 성폭력\’ 사건의 대책위원회‘(대책위)에는 사회주의노동자정당건설 공동실천위원회(사노위)학생위원회 관악분회, 서울대 학생행진, 여성주의 자치모임 공간 등 서울대 학생단체들이 참여하고 있다. 이들은 사회대 학생회장 사퇴와 관련하여 서둘러 공식 사과문을 발표해 사태를 진정시키려 하고 있다. 그러나 국내 여성운동을 주도하고 있는 성性분리주의적 급진 페미니즘에 기반한 여성운동의 파쇼적 작풍은 여전히 대학을 비롯 사회 전역으로 악영향을 미치고 있다는 점에서 우리는 이번 사건을 좀 더 면밀히 살펴볼 필요가 있다. 먼저, 보도자료를 통해 사실관계를 재구성해본다. 서울대 담배 성폭력 사건일지 1. 2012년 3월, 서울대 사회대 여학생 A씨는 연인 관계였던 남학생 B씨로부터 이별을 통보받음. 2. 이에 여학생 A씨는 B씨에게 \”성폭력을 당했다\”는 내용의 요청서를 사회대 학생회에 투서(요지). \”B씨가 대화할 때 줄담배를 피우며 남성성을 과시해 여성인 나를 심리적으로 위축시키고 발언권을

[최형록 에세이] 고종의 목? 꿈에의 용기

[최형록 에세이] 고종의 목? 꿈에의 용기

최형록(인문학자) 1. 걸어 다니는 기념관 \’이익을 보거든 정의를 생각하고 위험을 보거든 목숨을 바쳐라. 필자가 대단히 매력적인 인물로 생각하는 의사(義士) 안중근이 여순 감옥에서 쓴 글귀이다. 그는 1909년 10월 26일 하얼빈에서 일제의 괴수 이등박문을 죽음으로 응징했다. 그로부터 수 십 년 후 식민지 조선의 어떤 청년은 일제의 괴뢰국 만주의 군관학교 졸업식에서 “대동아 공영권을 건설하기 위한 이 성전에 벚꽃처럼 질 제 목숨을 바칠 것을 결의합니다”라고 선서한다. 급우들로부터 “일본인 뺨치는 일본인”이라는 평을 받은 이 청년은 권력의 오르가즘의 순간, 1979년 10월 26일, ’죄 없는 몸’을 벗어났다. 심복이라고 믿었던 자에 의해서. ‘내 죽음을 헛되이 하지 말라’는 절규를 유언으로 남긴 청년의 기념비는 쓰레기더미 아래서 질식당하고 있는 반면에 일제에 충성을 다해서 출세할 꿈을 꿨던 청년은 이른바 국민의 정부의 국고보조금을 받아 기념관을 선물 받을 수 있는 운명에 처해있다. 제국주의의 잔재를 이렇게 청산하지 못한 사회가 과연 어디에 있을까? 정치적 보복을 하지 말아야한다는 언어도단으로 역사적 불의를 살려둔 사회에서 과연 ‘민주화’를 말할 수 있는 것일까? “일본인 뺨치는 일본인”의 기념관 건립에 민중의 혈세를 낭비하는

[최형록 에세이] 염라대왕이 혀를 찰 사회

[최형록 에세이] 염라대왕이 혀를 찰 사회

최형록(인문학자) 살아가면서 누구나 여러 가지 ‘충격적인 사건’을 접하게 마련입니다. 당신에게는 2003년 10월 현재 어떤 사건이 뇌리를 떠나지 않는가요? 나에게는 세 자식과 젊은 엄마가 자살한 사건이 거머리처럼 망각의 흐름 속에서 버티고 있습니다. 살려달라고 절규하는, 산고(産苦)와 희열 그 자체인 어린 자식 둘을 차례로 자유(?)낙하시키고 막내와 동반 투신한 여인. 이 여인의 행위를 두고 비정한 여자, 자식을 자신의 소유물로 생각하고 어린애의 인권을 전적으로 무시하는 여인이라고 평가하기도 합니다. 이런 판단은 일리 있는 한편 다른 중요한 차원, 자살이라는 선택의 자유의 이면인 ‘사회적 타살’의 차원을 놓치고 있는 것은 아닐까요. 약 1,350년 전의 계백장군의 비장(悲壯)한 행동이 생각납니다. 그는 나당 연합군과 황산벌에서 백제의 존망이 걸린 결전을 앞두고 패배를 예감했던지 자신의 칼에 자신과 동고동락했을 아내와 자식들의 피를 묻힙니다. 자신이 전사한 후 처자가 굴욕당하도록 내버려두고 가느니 차라리…. 황산벌과 ‘신자유주의의 내침(來侵)’, 포로가 될 처자와 유연한 노동시장거리에 내동댕이쳐질 자식들, 칼을 치켜든 계백장군의 눈동자와 자식을 치켜든 그녀의 눈동자…. 그녀의 남편, 그녀의 형제자매들, 그녀의 동무와 친구들, 그들은 그녀에게 어떤 인정(人情)을 베풀고 사회는 어떤 인권을 베풀었을까요?

[운동평론] 변혁모임의 노동자계급정치와 오세철 선생의 사회주의정치

[운동평론] 변혁모임의 노동자계급정치와 오세철 선생의 사회주의정치

우리 사회에서 선거는 거대한 블랙홀이다. 시시각각으로 다가오는 각종 선거들은 자본주의에 기반한 이 사회의 심각하고도 첨예한 모순들을 송두리째 삼켜버린다. 특히, 대선에서는 여야를 불문하고 언어의 성찬만 무성한 가운데 어차피 ‘차악’으로 대통령을 고를 수밖에 없는 게 아니냐며 은연 중 노동자민중들에게 허무주의적인 선택을 강요한다. 그리고 항상 그랬듯이 기득권을 누리는 수구보수 주류언론들이 이런 움직임에 기민하고 강력하게 힘을 실어준다. 뿐만 아니라 요즘은 이른바 진보로 분류되는 몇몇 언론사도 여기에 적극 가세해 기존의 여야 양자대결 구조를 재생산하고 있다. 이른바 ‘야권연대’라는 미명 아래 나름 조율하는데 눈코 뜰새가 없는 것이다. 이렇게 혼란스럽고 엄중한 시절에 사회주의자 오세철 선생은 기고문『사회주의정치의 실종』(10.15 경향신문)을 통해 몇 가지 운동 쟁점들을 다음과 같이 정리하고 있다. 세상을 바꾸는 것은 부르주아 선거가 아니라 노동대중의 직접행동이며, 인물의 선택이 아니라 세력의 대체(혁명적 탈바꿈)라는 것, 그리고 그 대체할 정치와 세력은 사회주의 정치와 노동자 계급이라는 지적이다. 따라서 “고통당하고 억압받는 노동계급과 함께 싸우고 그들을 정치의 주체로 내세우고 있는가?” 그리고 “부르주아 정치판에 ‘진보’정당의 이름으로 끼어들어 노동계급을 배신하고 부르주아의 한 분파로 행세한 것을 반성하고 있는가?”라고

[운동평론] 건강파시즘과 낙인찍기, 그 무서운 음모와 공모자들

[운동평론] 건강파시즘과 낙인찍기, 그 무서운 음모와 공모자들

건강한 모럴 테러리즘? “오늘은 또 어떤 험한 일이 벌어질까?” 차마 눈 뜨기가 무서운 세상, 연일 성범죄(성폭력)으로 도배하는/되는 언론들. 객관적 사실의 실체와 (성)범죄의 발생 원인과 분석은 수박겉핥기 수준이지만, 여하튼 대-한-민-국 국민들은 하루 평균 43명(2010년 1만 5천여 명, 자살률 OECD 1위)이 목숨을 끊는 사회적 살인과 정신분열의 자본주의 사회에서 오늘 하루도 위태롭게 지내고 있다. 잡다한 정치권력들이 마침 대선 길목에서 선정적인 여론몰이에 나섰다. ‘성범죄와의 전쟁’을 선포한다며 강력한 ‘도덕’의 칼을 뽑았다. 화학적 거세에서 물리적 거세까지 일사천리로 나가자고. 전자발찌도 더욱 강화하고 성범죄자 신상을 동네방네 알리자고. CCTV를 대폭 증설하고 불심검문 정도는 순순히 받으라고. 이참에 사형제를 존속시켜 흉악범들로부터 우리 아이들과 연약한 여성들을 보호하자고. 그리하여 자본주의 품안에서 ‘안전’하게 살자고 말이다. 2004년 성매매특별법(성특법) 시행 직후 현장 성노동자들을 만나 전국 성노동자 조직을 제안(성매매 여성 연대기구 뜬다: 경향신문 2004.11.06/ `성매매 금지법` 반대 첫 인터넷언론: 문화일보 2004.12.15)하고 성노동/성노동자운동에 직접 관련해 온 한국인권뉴스는, 성특법을 시작으로 향후 유사한 법·제도들이 등장해 파시즘의 강력한 일상적 수단으로 귀결되리라 예상하고 먼저 성특법 폐지운동부터 나섰었다. 그러나 이제는 상황이 확산돼 ‘건강파시즘(Health

[최형록 에세이] 부끄러워할 줄 모르는 사회는 의롭지 못하다 (1)

[최형록 에세이] 부끄러워할 줄 모르는 사회는 의롭지 못하다 (1)

최형록(인문학자) ‘열 사람이 도둑 하나 잡지 못 한다’라는 속담이 자주 떠오른다. 2009년 500만 인파가 부엉이 바위가 있는 마을로 몰려들었다. 전 대통령 노무현이 ‘착잡한 부끄러움‘의 자존심을 생명과 바꾼 심정이 수많은 사람들에게 ’착잡한 부끄러움‘의 공명을 불러일으킨 것이다. ‘死대강 邪業’을 비롯한 온갖 악정을 거리낌 없이 자행하는 ‘請禍隊’ 무리에 대한 분노 어린 분별심이 ‘부끄러움(羞惡之心)’의 공명과 어우러져 2010-06-02 지자제 선거에서 귀머거리 놈들의 귀를 열어주는 속 시원한 일이 일어났다. 무엇보다 돌팔이 의사 놈이 성형수술을 한 것처럼 흉측한 몰골로 변해가는 남한 생태계에 대한 그리고 생계의 터전을 잃도록 만드는 사특한 칼질에 제동을 걸고 나아가서는 그 칼을 거둘 수도 있으니 천만다행이 아닐 수 없다. 이런 안도감과 함께 드는 의문이 있다. ‘왜 남한 인구의 다수인 노동자 계급-농민-도시빈민, 민중이 ’살아있음‘에도 민중정당은 저토록 약세이며 급기야는 분열한 것일까?’. 노동자 계급은 자본가 계급과 마찬가지로 ‘소외 속에 있는 불완전한 인간’이다. ‘나’ 중심의 소외 속에서 살아가는 한 그는 ‘人間’, ‘자유로운 사회적 동물’이 아니다. ‘자유로운 인간’을 불교에서는 ‘깨달은 사람(부처-Buddha)’이라고 일컫는다. 부처의 마음으로 세상을 대할 때 세상은 ‘불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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