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실 역사를 뒤돌아보면, 자본주의가 그러한 상황에 다다른 것이 이번이 처음은 아니다. 자본주의는 이미 1930년대에 그러한 상황에 다다랐던 것인데, 인류가 그것을 폐제하지 못함으로써 '대표적으로' 제2차 대전이라는 수천만 명의 희생을 치렀던 것이다. 그 후의 여러 전쟁, 정치적 대학살들이 그와 무관치 않음은 물론이다. 이제 다시 저들은 절규처럼 고백하고 있다. "우리가 누려온 높은 삶의 질을 당연한 것으로 받아들이면 안 된다. 기득권을 포기하라!"고. 즉, "자본주의는 이제 폐제되어야 한다!"고.
자본주의 사회에서 장애인/비장애인 차별과 장애인에 대한 차별은 자본과 권력에 기인한 것이다. 장애인과 비장애인의 차이를 차별로 전화시키는 신자유주의와 자본주의에 맞서는 투쟁에 노동자와 장애인들이 실천적으로 연대하자.
자본주의 사회의 근간은 자본의 생산과 재생산이며, 그 필요충분조건은 임금노동의 생산과 재생산이라는 점으로부터 자본가계급과 임금노동자계급은 이 사회의 생산관계의 골간을 이룬다는 사실은 초기자본주의 시대부터 현대자본주의에 이르기까지 변함없이 관철되고 있는 자본주의 사회의 원리이다.
감정노동과 하인노동의 팽창은, 현 시기 자본주의의 음울한 그림자를 표현한다... 그러나 나는, 꿈을 꾸기도 한다. 이 모든 것이 ‘고객의 권리’가 아니고 ‘인간의 권리’인 사회.
서울과 6대 광역시 노동자의 약 60%가 ‘자본주의가 가장 우월한 경제 체제냐’는 질문에 반대의사를 표시했고 66%는 ‘열심히 일해도 잘 살 수 없다’는 답을 내놓았다
자국 자본에 대해 저항하는 것이 아니라 자유무역 즉 시장 개방에 저항하는 것은 투우사의 붉은 망토를 향해 돌진하도록 하는 반노동자적 투쟁에 다름 아니다. 문제는 세계화가 아니라 자본의 세계화이며, 자본 자체이다.
브렌너를 비롯한 다른 맑스주의 경제학과들은 친자본주의 경제학자들이 여러 시 장의 등락 이면을 바라보지 못하고 있다는 점을 지적한다. "일반적으로 대중언론 이 빠뜨리고 있는 지점은 애초에 미국 주식 시장으로 투자를 몰아간 힘이다. 간 단히 말하면, 과잉생산의 위기인 것이다"라고 쎄스 산드론스키가 http://www.commondreams.org에 게시한 글에서 지적한다. "이 산업 저 산업 모두 이윤을 남기면서 시장에서 팔 수 있는 것보다 더 많은 상품 -자동차에서 컴퓨터칩까지- 을 생산했다. 특정 상품에 대한 시장 포화는 독자적인 현상이 아 니다. '왜냐'는 질문의 답변은 바로 노동자대중이 생산물을 구매할 수 없었다는 것이다." "그래서 과잉생산은 노동력을 구매하는 자들의 이윤율을 하락시킨다. 이윤이 없으면 생산을 높이는 설비에의 투자도 없는 법이다. 그 결과는 갈 데 없 는 엄청난 양의 돈이다"
이것이 보여주는 것은 미국경제가 잘 나갈때만 자유무역이 통한다는 것이다. 그 렇지 않을 때에는 보호 무역주의가 그 추악한 머리를 쳐들고 나온다. 자본주의가 불 황에 빠져들면, 보호무역주의가 되돌아온다.
. 지금 세계의 노동자계급에게는 이 과정에서 불가피한 투쟁을 어떻게 준비하고 조직할 것인가가 엄중한 과제로 주어져 있다.
유토피아(공상적) 사회주의는 자본주의를 넘어서는 미래사회(유토피아)의 운영원리에 대해 연구하고 실천했던 17,8세기 사회운동의 한 조류다. 주요 인물로 쌩시몽, 푸리에, 오웬, 까베 등을 들 수 있으며, 대개는 사유재산과 자본주의에 대해 비판적이었고, 공동체나 협동조합의 원리를 옹호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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